열다섯 마리 개
앙드레 알렉시스 지음, 김경연 옮김 / 삐삐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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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세상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신 아폴론과 헤르메스가 어느날 술집에서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다가 토론을 하게 됐다. 인간의 본성을 놓고 아폴론은 모든 피조물이 다 거기서 거기다 라고 하는데 비해 헤르메스는 인간들이 특별하다고 했다. 예를들자면 인간의 언어능력 같은 것을 이유로 들어... 그렇게 두서없던 토론은 내기를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만약 동물이 인간의 지능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헤르메스가 말했다.

"난 동물이 인간들만큼 불행하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아폴론이 대답했다.

"어떤 인간은 불행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렇지 않아. 지능은 다루가 까다로운 선물이야"

"동물이 인간의 지능을 가지면 훨씬 더 불행하다는 데 일년 노예 노릇을 걸겠어. 어떤 동물로 할지는 네가 선택해" 아폴론이 말했다.

"인간 세상의 일년이지? 좋아. 내기해. 하지만 조건이 있어. 목숨이 다할때 동물 중 하나라도 행복하면 내가 이기는 거야" 헤르메스가 말했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 때로는 최고의 삶이 나쁘게 끝나고, 최악의 삶이 좋게 끝나기도 하니까" 아폴론이 말했다.

"맞아. 삶은 끝날 때까지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 헤르메스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행복한 존재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행복한 삶을 말하는 거야? 아냐, 괜찮아. 어느 쪽이든 네 조건을 받아들일게. 인간의 지능은 선물이 아니야. 이따금 쓸모있는 골치거리지. 그래, 어떤 동물로 할래?

이런 대화를 할 때 신들은 쇼 스트리트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리하여 빛의 신 아폴론은 병원 뒤쪽 견사에 있는 열다섯 마리 개에게 '인간의 지능'을 허락해주었다. (p. 17~19 발췌)

동물병원에 있던 열다섯 마리 개들에게 인간의 '지능'이 갑자기 주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능' 이 주어진 것이지 '지혜' 나 '지식' 이 주어졌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개들이 그 능력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발전시켜 나갈 지 알수 없다는 점에서 불확실하고 모호한 능력이다. 능력인지 아닌지조차 사실 애매하다. 여하튼 개들은 본능에 따라 살던 삶에 대해 갑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또 중요한 점은 '인간처럼'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개들은 개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쪽과 능력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패가 나뉘게 된다. 개들에게 인간수준의 '지능'은 과연 선물이었을까?

그러한 변화 뒤 최악의 대립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개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다. 무리가 정중하게 굴든 모호하게 굴든, 어떤 개들은 으르렁 소리를 내거나 이를 드러내지도 않고 대뜸 공격하려 들었다. (p. 36) 열두 마리 개는 자신들의 달라진 지위에 서로 다르게 반응했다. (p. 37)

동물병원에 남기로 한 세마리의 개들 외에 열두마리 개들은 동물병원을 탈출하여 거리의 개들로 살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거리의 개들은 이들 새로운 개들이 낯설고 그건 열두마리 개들도 마찬가지다. 자의식이 생긴 이 열두마리 개들인 이 모든 상황들이 당혹스럽다. 일반적 개들과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개들은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입장이 갈라지게 된다.

"아무도 내면의 말을 침묵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는 있지. 우리는 옛날의 존재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어. 새로운 사고방식은 우리를 무리에서 멀어지게 해. 하지만 개는 개에 속하지 않으면 개가 아니야"

"난 동의하지 않아. 우리에겐 새로운 길이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걸 왜 이용하면 안돼? 우리가 달라진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p. 46)

개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게 되었으나 그럴수록 더욱 개들의 자의식은 혼란스러워지고 급기야 지능을 무시하고 본능대로 살아가자는 쪽이 새롭게 생긴 능력을 활용해보자는 쪽을 공격하게 된다. 무참했던 살육전에서 살아남아 인간에게 구조된 매즈논은 거리가 아닌 인간의 집에서 살게 되고 인간의 특성을 관찰하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그는 인간의 언어를 안다는 사실을 인간들에게 숨기기로 다짐했다. 이유야 어떻든, 인간들은 개가 말하는 것을 못 견디는 게 분명했다. (p. 69)

메즈논은 스스로 인간의 언어를 습득했다. 하지만 첫마디를 내뱉어 본 순간 바로 깨달았고 결심했다. 다시는 인간의 언어를 말하면 안되겠다고.

매즈논은 예전의 패거리나 잔당을 발견하고 싶은 욕구를 전달할 수 없었다.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마지막 남은 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그 감정은 외로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폐한 느낌이었다. 하이 파크에 있으면 매즈논은 예전 은신처 친구를 만날까봐 경계하면서도 만나기를 바랐다. (p. 83)

무척 공감가는, 뭐랄까... 굉장히 인간적인 문장이라고 느껴졌다. 자신이 죽을뻔했던 장소에 찾아가는 심리도 친구였다가 적이 된 상대방을 다시 만나고싶은 복잡한 심리도 그냥... 이해가 갔다. 이것이 인간의 '지능'의 능력인 것이려나...

"멋지든 안 멋지든, 내가 이끌 거야. 싫으면 떠나도 좋아. 머무는 개는 제대로, 개처럼 살게 될 거야. 우린 문이나 나무를 나타내는 말이 필요하지 않아. 우리는 시간이나 언덕, 별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전에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았어. 우리 조상들도 이런 언어 없이 잘 지냈고, 지금부터 옛날 말이 아닌 것을 말하는 개는 누구나 벌을 받을 거야. 우린 사냥을 할 거야. 우리 영역을 지킬 거야. 나머지는 우리하고 상관없어"

"난 내면에서 일어나는 말을 멈출 수가 없어"

"그건 아무도 멈출 수 없어. 그냥 내면에 간직해"

"만약 실수로 말을 한다면?"

"벌을 받을 거야" (p. 93)

그들은 짖었지만,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옛날 언어라고 기억하는 것을 흉내 내도록 강요받았다. 사실상 개 흉내를 내는 개였다. (p. 96)

반대파를 숙청한 개들은 개들의 본성대로 살고자 한다. 헌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개들을 흉내내는 개들이 되었고 혼란스러움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출되었다.

아폴론과 헤르메스는 이런 개들을 지켜봤는데 이 둘의 내기가 올림푸스산 신들의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다른 신들도 저마다의 내기들을 하게 된다. 제우스는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비롯한 신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다시는 이 개들에게 개입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제우스 본인은 슬쩍 개입을 한다. 신화속에서도 늘 그랬듯이.

애티커스는 기도를 시작했다. 애티커스는 이미 이상적인 또는 순수한 개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바로 사유에 결함이 없는 개였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고귀하다고 믿는 모든 자질을 이 순수한 존재에 덧붙였다. 예리한 감각과 절대적인 권위, 견줄데 없는 사냥 솜씨, 저항할 수 없는 힘이 그것이었다. 어딘가, 반드시 그런 개가 있을 거라고 애티커스는 생각했다.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개의 자질 가운데 하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개는 진실로 이상적일 수 없었다. 따라서 애티커스가 마음속에 품고 있듯이, 개 중의 개는 실존해야 했다. 존재해야 했다. (p. 149)

개들의 언어를 거부하고 본능파의 우두머리가 된 개 애티커스의 모순은 인간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본능대로 살자고 개들을 이끌면서도 본인은 스스로의 자의식이 성장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제우스는 애터커스에게 마음이 쓰였고 죽는순간 마지막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기로 한다. 그 소원은 무리의 종말에 책임 있는 자가 벌을 받는 것이었다. 서로 물고 뜯는 살육전 후에 남아 있던 무리를 일거에 제거시킬 생각을 한 '개' 가 있었다.

한편, 인간의 집에 살던 매즈논은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할 수록 인간이란 족속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슬쩍 매즈논에게 특별한 능력을 추가로 부여한다. 그러자 갑자기 매즈논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보살펴주던 인간이었던 니라와 갈등이 심해져가던 매즈논은 이제 진심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개입하지 않기로 했던 신들의 세계에서 이들의 운명이 꼬여버리게 된다;;;

니라와 미구엘의 실들은 거의 니라와 매즈논의 실들만큼이나 가까이 얽혀 있었다. 니라와 미구엘은 매즈논보다 더 오래 살기로 되어 있었지만, 셋 모두의 생명의 실들이 너무 얽혀 있고 크기와 두께도 너무 비슷해서 아트로포스는 가위질을 하면 누구의 생명이 끝날지 확신하지 못했다. (p. 210)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 각 필멸의 존재들이 갖게 될 길이만큼 실을 뽑는 라케시스, 실을 끊어 지상에서 그들의 시간을 끝내는 아트로포스 이 운명의 여신 세 자매는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한 편이었지만, 그리스 신화속 신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변덕스러웠다. 얽히고 설킨 운명의 실들에 대해서는 간혹 의도적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매즈논의 운명의 실은 인간인 니라와 미구엘의 실과 너무나 가깝고 비슷하게 얽혀버렸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의 삶을 살게 된 매즈논 앞에 마지막으로 헤르메스가 나타난다.

동물병원을 탈출했던 초반에 개들의 언어를 즐기고 시를 읊던 개 프린스는 아폴론의 도움으로 개들 무리에서 홀로 도망쳐 나올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긴 방랑의 시간을 낙관적이었던 프린스는 나름 즐거운 삶으로 영위하고 있었다. 프린스는 새롭게 획득한 능력으로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 말장난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지능'을 부여받았던 개들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개가 되어 있었다. 프린스에게 내기의 사활이 걸리자 아폴론은 프린스에게 불행을 선물한다. 이 노쇠한 개의 시력과 청력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프린스는 굴하지 않았다.

"내 운이 변한 게 느껴져" 헤르메스가 말했다.

"운이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건 맞아" 아폴론이 말했다. (p. 271)

그들 사이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신이 아무리 힘과 지식과 섬세함을 지녔다고 해도 위반할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바로 죽음이었다.

한쪽에는 불멸의 존재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필멸의 존재들이 있었다. 헤르메스가 죽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듯이, 필멸의 존재들은 죽음없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헤르메스는 그 차이에 매혹되어 끊임없이 지상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신들이 필멸의 존재들에게 품고 있는 은밀한 사랑의 핵심이었다. 죽음은 이 피조물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 있었다. 그들의 언어에 숨어 있고, 그들 문명의 뿌리에 숨어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들이 내는 소리에서 죽음을 듣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에서 죽음을 볼 수 있었다. 죽음은 그들의 기쁨을 어둡게 하고 또 절망을 가볍게 해주었다. 헤르메스는 죽음을 갈망하기에 지상에 사는 모든 필멸의 존재를 매혹적이라고 여겼고, 심지어 때로는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에 값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감정'은 본성으로 보아 언어나 인간의 이해를 넘는 것으로, 헤르메스가, 모든 신이, 필멸의 존재를 없애버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 손에는 권능이,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이 있었다. (p. 273~274)

헤르메스는 프린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었다.

'개에게 인간의 지능이 주어진다면' 이라는 가벼운 판타지일 줄 알았던 작고 얇은 이 소설 한권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을줄 몰랐다. '~답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답게 산다' 라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인간만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으로, 인간처럼 의인화 시킨 동물이 아니라 인간만의 특성을 개들이 갖게 되었을때를 가정해보는 상상은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선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행복한 삶과 불행한 죽음에 대해 우화 아닌 우화처럼 읽히는 이 소설이 던져주는 묵직함에 머리도 묵직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가볍자면 또 한없이 가벼울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특성이기에 훌훌 털고 한번쯤 해봄직한 상상이었다고 여기며 책장에 책을 꽂았다. 일단은 프린스의 낙천성만 남겨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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