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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숨어 있는 생명의 기원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정진관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7월
평점 :
모든 생물은 일련의 협력관계에서 진화한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하지 않고, 자연계에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미물도 모든 생명체와 연관이 있다.
가이아
신화속에서 대지의 여신 이름인 가이아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를 의미하곤 한다. 가이아이론 혹은 가이아학설은 지구를 하나의 커다란 (생명적)유기체로 보고 따라서 모든 것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조화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화속 여신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지구 또한 인간의 눈에 담기엔 너무나 거대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남긴 흔적을 쫓아 지구라는 유기체의 기원을 탐구하고 가이아가 숨겨놓은 생명력을 얼추 찾아내오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Hidden Life of Life - A walk Through the Reaches of Time 삶의 숨겨진 삶 - 시간의 범위를 걷는 것> 이다.
'기원'을 찾는다는 것은 간단히 생각했을때 두 가지 방향에서 가능할 것이다. 현재에서 출발하여 과거로 가는것 아니면 태초에서 시작하여 현재로 오는 것.
이 책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고 있는데 생명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다 보니 읽다보면 내가 마치 가이아가 된 것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내가 가이아라고 여기며 생명을 하나하나 살펴보다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까지 애정의 눈으로 보게 되고 그렇게 지구라는 유기체를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모든 생명체는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고 서로 하나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추적하려고 한다. (p. 12)
유기적 연관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첫장부터 강조함으로써 이 책의 방향성은 뚜렷한 셈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과도.
우리에게 유익한 미생물은 우리와 함게 거주할 뿐만 아니라 진핵생물 속의 세포보다 그 수가 10배 더 많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실 우리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는 초만원 기차처럼 빽빽하고 밀도 높은 생태계 속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독립적이고 외로운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p. 26)
미생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과장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상에서 생명체 형태의 기본적인 분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물과 동물 분류가 아니라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의 분류다. 지구가 생성된 후 처음 20억 년 동안, 원핵생물은 지구의 표면과 대기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p. 44)
태초의 지구에 지금 우리가 생명체라고 여길만한 존재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모든 생명체는 결국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이고 당연하게도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미생물은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데 20억 년이나 걸렸다. 사람들은 왜 20억 년이나 걸렸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20억년 동안에도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미생물을 만들고 있었다는 뜻일까? 사실 미생물은 종류가 많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그 시간 동안 심지어 미생물도 진핵생물도 아닌 진핵생물과 같은 종류 또는 어떤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구는 초기에 화산이 분출하고 유성과 충돌하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따라서 미생물이, 다르고 알 수 없는 유기체를 생산했다면, 그들은 화석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p. 47, 48)
인간이 알수 없는 시간에 대해 알아내는 방법은 과거가 남겨놓은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화석. 그런데 나는 아마도 모든 과거가 화석에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화석으로 남지 않은 (화석이 된 생명체 이전의) 생명체가 있었다는 문장에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긴 시간 동안 아무 생명체도 없다가 갑자기 화석에 남은 그런 생명체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건데, 지구가 수차례의 생명체 멸종을 경험했고 남은 것보다 남지 않은 생명체들이 많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 듯 하다. 지구는 정말로 쉬지 않고 생명체를 만들고 있었다. 갑자기 신비로운 기분이 들 정도다.
흥미롭게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곰팡이, 동물 또는 식물은 원생생물과 관련이 있다. 우리와 관련된 것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원충말라리아다. (p. 54)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균류를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p. 68) 진균류로 발달하는 원생생물은 사람으로 발달하기도 한다. (p. 74)
어떤 물질에서 세포에서 균에서 생물에서 (사람을 포함한) 동물로의 변화는 길었던 과정의 시간대비 책에서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길고 길었던 시간의 변화에 대해 지금의 우리가 알수도 없을 뿐더러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파악하는 것도 버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생명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고등'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종류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로 언급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등'존재는 우리 자신의 정의에 의해서만 '고등'인 것이다. 우리가 '하등'한 것으로 보는 다른 것과 비교할 때만 분명하기 때문이다. (p. 74)
인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간외의 모든 것에 대해 인간과 비교하여 차별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인간이 지적이면 다른 생명체는 무지하고 인간이 고등이면 다른 생명체는 하등이다. 하지만 가이아적 입장에서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각판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원래의 판게아는 적절한 시기에 갈라져서 더 작은 대륙이 되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바다는 어디에서나 접근할 수 있다. 판게아를 제외한 건조한 대지는 그렇지 않았다. 생명체가 대륙과 섬에서 살기 시작한 후, 그들은 날지 않는 한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지구의 흥미로운 존재는 대부분 날지 못했다. 이런 고립은 중요하다. 고립은 많은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고, 공기와 햇빛으로 당을 만들고 산소가 자유롭게 떠다니게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없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p. 92, 93, 94)
진화에서 고립은 중요했다. 너르고 너른 한덩어리로 있었을 때보다 작게 갈라지고 쪼개져 환경이 제한적이 되었을때 진화가 더 빠르게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이제야 해본다. 그냥 그대로 살 수 있으면 진화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있던 대로 살 수 없었기에 진화해야만 했을 것이다.
공기와 햇빛으로 당을 만들고 산소가 자유롭게 떠다니게 할 수 있는 생명체, 저자는 식물을 등장시킴에 있어 가장 먼저 지의류에서 출발한다. 지의류 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검색해봤다. <지의류 - 균류와 조류의 공생체. 균류는 조류를 싸서 보호하고 수분을 공급하며, 조류는 동화 작용을 하여 양분을 균류에 공급한다. 나무껍질이나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데 열대, 온대, 남북극으로부터 고산 지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참나무는 어디서나 이처럼 단체 행동을 한다고 한다. (p. 114) 지능을 가졌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식물은 또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p. 119)
도토리를 먹는 동물이 너무 많아져서 땅에 심어져 싹을 틔울 도토리가 부족해 졌을때 참나무들은 서로 소통하고 다음해 단체로 도토리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러면 도토리를 먹지 못한 동물개체수가 줄고 그 다음해에 참나무는 다시 도토리를 맺는다. 나무들의 의사소통에 관해 최근 읽은 책에서도 나왔었는데 식물의 대화라니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지능은 동물만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 애매해진것이 식물의 대화뿐만 아니라 식물의 기억력때문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미모사는 갑자기 물이 잎에 떨어졌을때 잎을 접지만 그 물방울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엔 다음번 물방울부터는 잎을 접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의 구분도 그동안 너무 획일적으로 판단해온 것이 아닐까.
그게 바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몸은 따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하거나, 콧물이 나오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심장은 뛰고 콩팥은 물질을 걸러내고 폐는 공기를 주입힌다. 우리의 생각은 나중에 작동한다. (p. 119, 120)
우리가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신체능력을 조절해주진 못한다. 퓨마를 만났을때 자동적으로 소름이 돋지만 도망가야겠다는 행동은 그 다음에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식물은 생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는 않을 지언정 느끼고 기억하고 바로 자신의 능력을 조절한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동물과 식물의 사고체계가 다르다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식물은 건조한 대지를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고, 그곳에 다음 동물이 도착했는데 그들이 바로 절지동물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문으로 최초로 물을 떠난 동물이다. (p. 127) 오늘날 절지동물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그 수가 많다. 그들은 널리 퍼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은 분류학적으로 우성인 구성원이나 훗날의 척추동물이 하는 일을 했다. 즉, 체구가 매우 커진 것이다. (p. 130) 척추동물은 절지동물만큼 많이 번식하지 않았다. 우리의 조상은 해면동물이나 산호충처럼 바다 밑 지대에 붙어 있는, 미삭동물이나 미삭동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생 생명체인 멍게였다고 여겨진다. (p. 132)
가이아 라는 명칭이 신화적 의미로 생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면 바다는 실질적인 의미로 생명의 어머니로 불리는 것 같다. 생명체의 시작은 바다였다. 그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멍게였다니 ㅍㅎㅎㅎ 신선하다!
척수의 이름을 따서 우리는 척삭동물문이다. 오늘날 달 위를 걷는 우주 비행사와 바다 밑 바다에 박혀 있는 멸종된 여과섭생을 하던 멍게류와 닮은 점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조상의 업적을 명예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척삭동물문에 멍게를 포함시킨다. 그래서 척수가 있어 책을 읽고, 차를 운전하고, 전쟁을 하고, 현미경을 통해 멍게류이 화석을 관찰한다. (p. 134)
어려울 수 있는 자연과학적 이론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으로 서양사람들은 의외의 위트나 은유를 사용하는 것 같다. 그들의 위트가 항상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멍게는 내게도 통했다. ㅎㅎ
물고기가 공기호흡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기온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위아래 어느 방향으로도 이동할 수 있는 3차원 생태계인 바다가 있는데, 왜 물고기들은 육지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을까? 물론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포식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초기 척추동물로 추측되는 많은 것은 다른 수생동물에 비해 몸이 작아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흥미롭다. (p. 140)
멍게와 물고기를 거쳐 양서류로 왔다. 지구는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하지만 육지의 생태계는 더 급속하고 다양하게 진화되어 왔다. 평온해 보이는 바다가 생태계적 입장에서는 더 살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고 진화해야만 하는 육지의 생태계가 더 살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가이아는 한 순간도 쉬지 않아 온듯 하다.
양서류는 6500만 년 동안 육지에서 번성한 절지동물보다 늦게 나타나서 식물에 의해 조성된 생태계를 차지할 정도로 적응했다. 절지동물은 새로 나타난 양서류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양서류 성체는 오늘날에도 절지동물외 다른 동물은 먹지 않는다. 절지동물은 양서류에게는 유일무이한 식량자원이다. 양서류는 시간제 육상동물이 된 이후 절지동물이 했던 일을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항상 젖어 있거나 촉촉한 다른 종류의 생태계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발전했다. (p. 142) 그들은 모든 단점을 잘 극복했고, 모든 절지동물을 먹으며 5000만 년 동안 지구를 통치했다. 양서류가 그렇게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5000만 년은 50만 세기다. (p. 144)
50만 세기라...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그긴 시간동안 지구의 육지가 양서류 세상이었구나.... 하지만 지구에 대규모 멸종상황이 발생했고 많은 양서류가 멸종할때 절지동물과 곤충은 거의 영향받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그냥 벌레라고 퉁쳐서 지칭하는 그 생명체들은 정말... 위대하구나;;; 여하튼, 이 양서류에서 양막류가 나왔고 이 양막류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한쪽은 포유류 다른 한쪽은 공룡,익룡, 현대의 파충류와 조류로 진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에서 알이 먼저다. ㅎㅎ(이 결론은 얼마전 읽은 다른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룡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며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이들이 나타나기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것은 우리 계보의 초기 구성원이 적어도 항상 크지는 않았지만 외관상으로는 무섭게 생긴 공룡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믿기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공룡'이라는 이름과 달리 우리 조상의 이름은 박사 과정의 연구과제가 될 정도다. 그 이름은 '단궁류'다. '융합된 아치(궁형)'를 의미하며, 당신의 관자놀이 옆에 있는 얼굴 측면에서 시작하고 광대뼈와 위턱뼈로 구성된 뼈의 다리를 의미한다. (p. 151) 발자국을 남긴 발은 똑바른 다리의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포함한 많은 오늘날의 포유류의 것과 같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손이 단궁류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고 단궁류가 오늘날의 보행 방법을 발명했음을 의미한다. (p. 154) 단궁류에는 아마도 비늘이 없었겠지만, 피부도 화석이 되지 않기 때문에 피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p. 155) 단궁류는 80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후에, 여러 종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로 줄어들었다. 살았던 것 중에는 우리 조상이 된 오리너구리 타입이 있다. (p. 157)
인류의 기원을 세포나 멍게로 얘기할 때만해도 아주아주 먼 옛날 이야기구나 싶어 현실감이 없었다. 그런데 공룡시대의 조상이라... 구체적으로 오리너구리 타입이라니;;; 유인원을 넘어선 인류의 조상을 생각하는 것은 뜻밖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단궁류' 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지만 진화에 있어 중요한 획을 그은 단어인 것 같다. 하지만 늘 유의해야 할 것이 중요한 핵심단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주변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단궁류의 오랜 통치기간 동안 다른 타입의 파충류가 진화하고 있었고 외부적으로 봤을때 그들이 지배파충류였다. 바로 공룡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룡 종의 무리는 '새' 다.
공룡은 평생 성장하지만, 아기는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세계에 사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공룡은 대부분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단정짓기 어렵다. (p. 170) 새의 호흡은 동물 호흡 중 가장 효율적인 형태며, 아마 공룡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은 자가 가온의 징후일 수 있는데, 태양 가온보다 산소가 더 많이 필요하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포함한 많안 공룡은 깃털이나 솜털이 있었는데, 솜털은 아마도 어릴때에만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자가 가온의 징후다. (p. 171) 그리고 익룡이 생겨났다. 또 다른 조룡이다. 익룡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룡과 공존하는 전설적인 동물이고 자가 가온 동물이다. (p. 173)
거대한 크기의 공룡화석을 보며 그것이 성체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공룡의 골격에서는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인 뼈층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 자라거나 내부 장기가 너무 커서 그들을 지지할 수 없을때까지 자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잔혹한 생태계에서 그렇게 자라다가 먹고먹히게 되는 것이다. 더 클수 있었다니;;; 온혈과 냉혈 동물의 구분이 생기기 전에 이런저런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진화였던 것 같다. 여하튼 티라노사우루스에게 깃털이 있었다는 내용을 작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생소했지만 이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ㅎ 하지만 새를 보면서 공룡을 연상하는 것은 여전히 잘 되지 않는다. ㅎㅎ
일부 익룡은 거대했고 모두 날 수 있었다. 그들은 공룡시대에 살았으며 처음에는 공룡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독특한 형태의 파충류였고, 공룡보다 더 흥미로웠다. (p. 186) 익룡은 온혈동물이었던 것 같다. (p. 194) 우리는 석탄기와 백악기 사이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약 1억 5000만 년의 기간이다. 그 기간동안 공룡과 익룡 뿐 아니라 돛이 있거나 없는 다양한 크기의 광범위한 단궁류의 집합체인 우리 원시 포유류 조상들이 살았다.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은 이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큰 동물은 악어 타입, 즉 앨리게이터, 가비알, 카이만을 포함하는 그룹이다. (p. 197)
공룡으로 다 뭉뚱그려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익룡도 악어도 공룡과 달랐다. 악어들은 공룡과는 별도로 지배파충류의 조상에게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한다. 이 악어타입은 육지동물인 공룡에서 진화되어 나왔지만 다시 물로 되돌아갔다. 악어외에도 수달, 오리너구리, 고래, 돌고래도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진화의 방향은 역시 직선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다.
6600만 년 전, 세계는 백악기~제3기 대멸종을 경험했다. 대멸종이 없었다면 지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가지 이론은 멸종기간은 짧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으며 혹독했다는 것이다. 식물, 육상동물, 해양생물, 즉 곤충을 제외한 모든 생물체의 75%가 사라졌다. (p. 203) 첫 번째 셍물체가 유성으로 인해 사라진다면 그들과 유사한 다른 생물체가 진화하여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가이아는 멸종으로 인해 실패했지만 아이디어 자체가 좋으면, 그녀는 종종 다시 시도한다. (p. 207)
대멸종이 발생할 때마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확확 바뀌었다. 어쩌면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대멸종이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생명체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등장했고 아마도 새 생명체가 등장하는 시간은 점점 빨라지지 않았을까? 한번 만들기를 했다가 부서뜨리고 새로 만들땐 더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가시두더지와 오리너구리는 단공류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단공이란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로 '하나의 구멍'을 의미하고 총배설강을 뜻한다. 그들은 대변이나 소변 그리고 분만을 위한 배출구가 따로 있는 우리와는 달리, 새나 파충류처럼 배출구가 하나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포유류보다 조류나 파충류와 더 비슷하다. (p. 216)
오리너구리는 생각보다 아주 고대적 동물이었다!
100만 년 동안 화석이 된 사람들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에서 진화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들의 새로운 분류학적 이름은 오로린 투게넨시스(투겐 출신의 토착민)이며 그들을 밀레니엄 맨 이라고 한다. '원시인' 과 '호모 사피엔스' 에서와 같이 모든 조상은 '남자' 또는 '호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가사일을 제외한 모든 주요한 일을 남성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번째 '남자' 화석인 '밀레니엄 맨'은 아주 공정한 명칭이다. (p. 231) 밀레니엄 맨은 약 580만 년 전에 사라졌는데, 이는 그 종류이 사람이 200만 년 동안 살아남았음을 의미한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멸실환, 즉 '미싱링크'로 인간과 유인원 사이로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변형되었다. (p. 233)
조류와 포유류를 거쳐 유인원까지 왔다. '밀레니엄 맨' 이라... 이런 명칭이 있었구나... 하지만 사전에 검색하면 안나온다;;; 역시 호모어쩌구저쩌구 라는 학명이 우세한 것이겠지...
사람상과(우리를 포함한 유인원) 와 사람족(인간 형태의 우리 조상의 한 부류) 이 널리 흩어져 자신의 환경에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조상들을 한 번에 하나씩 등장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유인원과는 (우리가 보면)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종류의 원시 인간이 함께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 인간형을 생각할 때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이 있었고, 각각의 동물은 서로 다른 종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 많은 동물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p. 238)
진화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가장 크게 공감하는 것이 바로 이부분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한장의 직선형 발달로 설명하는 그림은 떼어내야 한다. 인류는 작고 구부정한 모습에서 점점 허리가 펴지고 털이 없어지며 키가 커진 순서대로 그렇게 단 한가지 단 하나의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동시대에 수많은 유인원이 함께 존재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 대를 이어 변모해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가장 커다란 왜곡이다.
호모에렉투스 와 네안데르탈인을 간략히 살펴보고 나서 저자는 부시먼으로 알려진 '산족' 에 정착한다. 아주 최근까지, 여구 6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바로 위의 조상이라고 '산족'을 표현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는 왜 우리가 보는 방식을 되돌아보는가'
그 사람들은 '접촉 이전', 즉 다시말해 그들은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것에 접촉하지 않았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선진 세계' 사람들이 감염되는 질병이 없었다. '접촉 이전'은 종종 단점으로 여겨지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우리 종족처럼 적어도 10만 년 동안 살았으며, 그들의 문화는 이제까지 세계에 알려진 문화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문화일지도 모른다. (p. 259)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주환시라고 불렸다. 주환시는 '무해한 사람들'로 번역했다. Ju는 '사람'을 의미하고 hoan은 '깨끗하고 안전하며 유해하지 않다'라는 의미고 si는 복수형이다. (p. 263) 오늘날 산족은 나미비아인으로 시골에서 살고 있고, 그들의 이전 생활방식은 사라져 버렸다. (p. 266)
저자는 '주환시' 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함께 지내며 보고 배웠다. 그들은 결코 미개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혜는 우리와 다를 뿐이었다. 그 환경 속에서는 그들의 지혜가 더 빛났다. 하지만 몇 년 후 다시 저자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바오바브나무 근처에 백인의 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샘물에 갔지만, 한 백인이 집에서 나와 샘물이 자신의 것이르모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접촉 이전의 주환시와 처음 만났을 때는 몇 분 만에 우리에게 물을 마시라고 초청했었따. 나는 시대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바오바브나무는 일찍 죽었다. 백인이 잔디에 물을 주느라 샘물이 고갈되었기 때문인듯 했다. (p. 299)
저자가 처음 갔을때 적어도 200년은 된 거대한 바오바브나무옆 작은 샘 가까이에 주환시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주환시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들은 빼앗은 것 없이 빼앗겼다.
산족은 자연세계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 형태와 같은 종류의 삶을 살았으며 우리와 가축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서로 다른 종은 욕구도 문제해결 방식도 다르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산족은 이것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도 같은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채, 다른 종을, 지식은 가지고 태어났지만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 조상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다른 종도 관찰하고 배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p. 274)
주환시 즉 산족의 생활방식은 굉장히 협력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식량을 구하고 삶을 지속하는 것이 '문명'사람들에게는 고난과 힘듦으로 보였지만 그들은 모든 면에서 굉장히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미 접촉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그들을 과거의 생활모습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할 순 없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평화로운가?
저자가 마무리짓는 현재와 미래는 암시적일뿐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이아로 이 책의 흐름을 읽어오면서 내가 가이아라면 지금의 현실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는가?
얼마전 읽은 SF 소설에서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지면서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 로딩되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라면 온전한 육체로 환경에 적응하며 정신을 육체와 함께 유지할 것인가 최신기술에 힘입어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 떠도는 세계로 로딩될 것인가 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로딩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그런 마음이 견고해진다. 원래 갖고 있고 누리고 있던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 환경이 비참하여 육체를 버리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라는 것 자체를 생각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해결해나가는 쪽이 나는 더 마음편하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매이지말고 가질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 좀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자꾸 이런저런 곁다리로 빠지곤 했지만 쉽게 읽히는것에 비해 어려운 생각들을 심어주는 책이었다. 가볍게 생물학책으로 읽어도 좋겠고 진화의 흐름을 따라가보는 것에서 그쳐도 좋겠지만 궁극적으로 무엇을 고민해봐야 하는지 찾아가며 읽는다면 더 좋을 포괄적인 주제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