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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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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미니애폴리스의 교외에 위치한 열두 살 루크의 집에 괴한들이 침입해 부모님을 살해하고 루크를 납치한다. 루크는 원래 자신의 것과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꾸며져 있는 방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혹한 훈련과 실험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키워 테러에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작년 여름 '아웃사이더' 라는 작품으로 시원쫀쫀한 스릴러의 세계를 맛보게 해준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올여름에도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악에 맞서는 초능력 아이들의 이야기다. '인스티튜트' 즉, 연구소.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은 팀 제이미슨.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찰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떠도는 중이다.

팀은 올라탔다. 그녀의 이름은 마저리 켈러먼이었고 브런즈윅 도서관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동부 도서관 협회인가 뭔가 하는 단체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 협회는 돈이 없는데 "왜냐하면 트럼프 하고 그 일당이 다 빼앗아갔거든요. 그들이 문화를 이해하는 수준은 당나귀가 수학을 이해하는 수준하고 비슷해요" 라고 했다. (p. 24)

근래 영미권 번역서를 읽으면 자주 등장하는 트럼프 ㅋㅋ 이젠 뭐 익숙할 정도다 ㅋㅋ 이런 면에서도... 역시 스티븐 킹!!

그는 평범한 사람들, 특히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친절과 호의를 베풀면 가슴이 뭉클해졌고 놀랐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그도 어떨 때는 그랬다) 미국은 아직 살 만한 곳이었다. (p. 25)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p. 26)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이 때로는 아주 초반에 속내를 드러내보일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위 구절이 그랬다. 올 여름 스티븐 킹의 스릴러는

살곳이 못되어버린 현실에서 살만한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소한 우연이 거대한 인연을 만들어내는 온기, 그것을 전해줄 것 같은 예감...

서늘한 스릴러를 읽는데 따스한 온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일면 모순되 보이지만... 스티븐 킹이라면 가능할 듯!

그는 경찰이었기에 서핑과 태양으로 상징되는 새러소타라는 휴양지의 낮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만큼이나 다른 밤의 얼굴을 알았다 밤의 얼굴은 역겨웠고 가끔은 위험했고, 그는 죽은 약물 중독자와 폭행당한 매춘부를 지칭하는 NHI, 즉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라는 뜻의 혐오스러운 경찰용 은어를 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10년을 경찰로 지내는 동안 냉소주의자가 됐다. 가끔 이런 감정을 집까지 안고 간 것이 그의 결혼생활을 무너뜨린 원흉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아이를 철저하게 거부한 이유 중에 이런 감정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에는 나쁜 것이 너무 많았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p. 55)

미국 경찰은 아무래도 온전히 가정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직업인가 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국경찰 혹은 요원들은 대부분 이혼남이었던듯;;;

세상엔 나쁜 것이 너무 많았고 잘못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천직이 경찰일 것 같은 팀을 어이없는 사건으로 사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휴일날 쇼핑중에 두 소년의 싸움을 목격하게 됐는데 한 소년이 총을 들고 있었고 그 총이 사실은 장난감 총이었다든가 그런데 그 장난감 총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천장을 향해 공포탄을 쐈는데 쇼핑천장의 샹들리에가 흥미거리용으로 현장을 핸드폰촬영중이던 시민 한명을 다치게 했다던가 그런데 그때 팀이 술 몇잔을 마신 상태였고(휴일이었다!) 그 시민이 여기저기 떠벌리고 소송거는 사람이었다든가 그래서 모범경찰표창을 받은 팀이 권고사직과 방랑이라는 갑작스런 사태를 겪게 되었다든가 하는... 지금 미국의 웃픈 현실이랄까.

총기사고와 마약사고에 대한 스티븐 킹의 경고는 작품마다 등장하는것 같은데 한결같은 그의 쓴소리에 늘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곤 한다.

여하튼 팀은 듀프레이 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야경꾼으로 임시 머물게 되는데 팀의 진가를 알아본 경찰서장은 그에게 경찰복직을 제안한다.

그리고 장면은 전환되어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소년이 등장한다.

루크 엘리스.

열두살인 이 소년은 아이큐 측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굉장한 학습능력을 가진 아이다. 고등교육과정의 영재학교에서도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 대학진학을 권유했고 최고수준의 대학 두곳에서 비공식적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다. 그리고 이 천재소년에겐 또다른 능력이 있다.

피자 팬이 테이블 위를 미끄러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버트와 아일린은 그런 줄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루크가 흥분하면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p. 93)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망에 한껏 들떠있었을 때 어느 밤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부모님과 루크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부모님과 루크는 천재적 학습능력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능력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던 루크가 일으키는 특이한 어떤 현상때문에 그들이 왔다. 그리고 루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방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파닥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그걸 가라앉혔다. 잠겨 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았지만 문지방 너머의 복도는 그가 12년과 몇 개월을 살았던 그 집의 2층 복도와 전혀 달랐다. (p. 108)

하룻밤 사이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돈속에서 루크는 자신처럼 영문도 모른채 납치당해와 있는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아이들은 루크처럼 뛰어난 학습능력은 없었지만 루크가 능력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특이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텔레파시 혹은 염력.

그녀는 말문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는 점점 더 귀해지는 상품이 있었다. 상아. 호피. 코뿔소 뿔. 희금속. 심지어 석유까지. 여기에 IQ와 별개로 비범한 재능을 소유한 특별한 아이들이 추가됐다. 이번주에 딕슨이라는 아이를 비롯해 다섯 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었다. 훌륭한 업적이었지만 2년 전에는 그런 아이를 30명쯤 데려올 수 있었다. (p. 113)

그들은 루크의 천재성 따위는 관심없었다. 루크가 사물을 움직이는 능력, 그것에만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실험들... 그들에게 아이들은 소모품이었다.

루크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 빠르게 현실을 이해해 나간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누가? 왜? 어떻게?

여기가 어떤 시설인지 몰라도 고목들로 뒤덮인 숲속, 그러니까 외딴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놀이터만 해도 그가 맨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6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수용하는 교도소의 운동장이라는 게 있다면 딱 이렇게 생겼겠다는 것이었다. (p. 135)

MIT와 에머슨에 입학할 예정이었던 루카드 데이비드 엘리스가 컴퓨터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한 점으로 전락했다. 루크는 그의 방으로 돌아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책이 없었다. 한 권도 없었다. 컴퓨터가 없는 것만큼이나 몹쓸 일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몹쓸 일이었다. (p. 183)

루크를 다른 아이들처럼 어린 소년으로만 본 것이 그들의 착오의 시작이었다. 루크에게 책을 주지 않음으로써 다른 형태의 사고를 하게 한 것이 그들의 무지의 시작이었다. 루크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들에게 루크는 평균에도 못미치는 TK 소유자일 뿐이었지만, 루크는 왠만한 어른 몇명이 머리를 모아도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소년이었다. 아이들이 견딜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은 아이들을 좌절시켰지만 루크는 좌절 이상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물이 마르자 서글픔과 상실감이 아니라 그보다 단단한 다른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일종의 기반암이었다. 그런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위안이었다. 이건 꿈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고 이제는 여기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단단한 것은 그 이상을 원했다. 악에 바친 열두살 짜리의 무능력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어 했고, 그럴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 236, 237)

그들이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루크는 새롭게 자신을 각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들이 원했던 방향으로도 루크의 능력은 각성했다. 루크는 진짜 자신을 감추었고 서서히 계획을 짜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크 엘리스는 머리가 비상한 동시에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오버해 가며 붙임성 있게 굴던 아이였다. 그는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두 수행한 뒤에 책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는 심연이 있고, 책 속에는 거기 숨겨진 것을 소환하는 비밀의 주문이 들어 있었다. 모든 걸작 미스터리물이 그랬다. 루크에게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최고였다. 미래의 언젠가는 그가 직접 책을 쓸 수도 있을지 몰랐다. (p. 323)

공과대학과 영문학전공 대학교육과정을 동시에 배우고자 했던 천재소년 루크, 루크의 지식에 대한 열망과 책에 빠져드는 몰입감을 보면서, 특히나 책에 대한 경외감과 미스터리물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루크가 스티븐 킹의 어릴적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아무래도 천재 같다! ㅎㅎ

여하튼, 루크는 시설과 관리자들의 헛점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누구도 모르게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만 시설을 빠져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돌아와서 다른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p. 442)

전직 경찰 팀도 천재소년 루크도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뀐' 운명을 맞닥뜨린채 1권이 끝났다.

빨리 다음줄을 읽고 싶은데 마음의 다급함과 궁금증을 따라가지 못하는 눈의 속도가 아쉬울 정도로 빠져드는 소설이었다. 아~~~~ㄱ 2권이 읽고 싶다.;;;

1947년 생의 스티븐 킹과 1945년 생의 딘 쿤츠는 미국 스릴러 소설계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로 비유되곤 한다고 한다. 두 거장은 여전히 그 어떤 현역보다 왕성하게 집필 활동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경이롭지만 스타일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스티븐 킹은 스토리를 중요시 하고 딘 쿤츠는 플롯을 중요시 한다는 인터뷰모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 거장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전체구조가 사전에 이미 탄탄하게 짜여진 플롯과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는 둘 다 매력적이다. 서로다른 반전의 묘미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 두 가지 매력을 한 시대에 스릴러라는 같은 장르로 만나게 해준 두 거장에게 마음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루크의 탈출은 성공할까? 루크와 팀이 만날 것 같긴 한데... 둘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다른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 시설의 운영자들은 어떤 세력일까? 악을 증폭시키는 어른들에 맞서는 아이들이 그 거대한 악을 분쇄시킬 수 있을까? 궁금하다궁금하다궁금하다~~~;;;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천재적인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여름엔 역시 스릴러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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