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욕조에서 발견된 여교사의 사신, 풀장 주변 위에 떠있는 19개의 인형, 엽기적 살해 현장 주변을 맴도는 연쇄살인의 그림자! (표지 中)

 

베르나르 미니에

처음 듣는 작가 이름이었다.

<눈의 살인> 이라는 장편소설로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된 그의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 다수 영상화 되었다고 한다. <물의 살인1>을 읽는 동안 그러한 평가에 대해 아~! 할 수 있었다. 글을 읽음과 동시에 장면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다.

프랑스 스릴러 작가 하면 '기욤 뮈소'만 알았는데, '베르나르 미니에'의 작품에서도 그에 뒤지지 않는 스릴러적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앞으로도 그의 작품에 관심이 갈 듯 하다.

프롤로그 에서 한 여자의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납치된 후 몇 주, 몇 달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전의 삶이 있었던가. 매주 한 번쯤, 어쩜 그보다 자주 또는 드물게, 쪽문으로 팔을 내밀라는 지시와 함께 정맥주사를 놓았다. 아팠다. 주사 솜씨가 어설픈 데다 약물이 진해서였다. 그리고 나면 거의 곧장 의식을 잃었고, 깨어났을 땐 위층 식당에 앉아 있었다. (p. 9)

한 여자가 감금된채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시작부터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뒤이어 금요일-토요일-일요일-월요일-화요일 로 시간순서적인 사건 진행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프롤로그의 시간과 이 금토일월화 의 시간이 동시간대인지 과거와 현재의 교차시점인지 분명치 않다. 동일 사건인지 두 개의 별개 사건인지도 분명히 알수 없는채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 빠져든다.

마르삭 이라는 평온한 대학도시에서 한 여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온 나라가 월드컵 개막전에 흥분하고 폭풍우가 모든 배경을 압도하던 날, 혼자 사는 젊고 매력적인 여교사의 정원을 흘끔 내려다보곤 하던 이웃집 노교수의 신고에 의해 출동한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약에 취해있는 한 남학생을 체포한다.

이 현장에 마르탱 세르바즈도 가게 된다. 얼마전 충격적 살인사건의 주범인 연쇄살인마를 검거하여 유명세를 탄 마르생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20여년 전의 첫 사랑 마리안 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억울한 살인누명을 쓰게 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20년 만의 통화임에도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르삭은 세르바즈가 공부했던 도시이기도 하고 그의 딸인 마르고가 공부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리안과 그의 절친 프랑시스의 학창시절 우정과 배신의 추억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마흔 한살의 인생동안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린시절의 살인사건이었으나, 사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뛰어난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자살 이후 형사가 되었다.

그는 토라와 쿠란, 성서가 모두 펼쳐진 채 놓여있는 작은 가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종교에 관심 있으십니까?"

그가 묻자 윈쇼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술을 한 모금 들이켜는데, 기운 잔 너무 어딘지 짓궂은 눈빛이 이글거렸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종교라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들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을까요? 제가 저 가구를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세르바즈가 눈썹을 실쭉 치켜 올렸다.

"<머저리들 코너>" (p. 75)

사건을 신고했던 이웃집 노교수 올리버 윈쇼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지닌 마르삭대학 영문학 교수이다. 탐문수사 중에 세르바즈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이 노교수는 범인인것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상세한 묘사를 하는 걸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런식의 현실을 비꼬는 시니컬한 관점이 등장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르바즈가 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저자의 개인적 취향 때문인지 작품 내내 다양한 문학작품이 인용된다. 소제목 중의 하나가 '나는 플라톤의 친구이지만 그보다 더 진리의 친구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한 구절을 사용할 정도로 고전에 대한 인용도 자주 등장한다.

세르바즈는 또다시 스스로 시대에 뒤쳐진 느낌을 받았다. 그가 데리고 있는 젊은 부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으며, 그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일깨워주곤 했다. 조만간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수사로봇을 발명해 형사들을 폐기처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 77)

프랑스 감옥은 늘 결백한 사람들로 북적댔고, 거리에는 죄지은 자들로 넘쳐났다 판사와 변호사는 그 잘난 법복을 걸치고 도덕과 법에 대해 보란 듯이 일장연설을 토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법체계의 맹점이 무수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p. 84)

뜻밖의 한국 등장 ㅋㅎㅎ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 언급된 것을 반가워해야 하려나;;;

외국 스릴러 소설을 읽다보면 정의의 주인공이 형사나 요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법복 입은 자들에 대한 비판을 종종 본다.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정의의 주인공은 검사나 변호사 일 경우가 많지 형사인 경우는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문화의 차이일까 부패의 차이일까 ^^;;;

마르고는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점에선 어떤 의혹도 없었다. 문득 딸의 유부남 애인의 말이 생각났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카피톨 광장에서 딱 한 번 만났었다. "겉모습은 제멋대로지만, 마르고는 아주 속 깊은 아이랍니다. 똑똑하고 자주적이죠. 모름지기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할 거예요" 그 자체만으로 고통스럽거니와 가시 돋친 설전에 가까웠던 대화. 다만 아버지가 딸을 그간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준 대화이기도 했다. (p. 100)

wow 과거 딸의 애인이 유부남인데 형사인 아버지가 그 애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니;;; 더구나 딸은 이제 열일곱살인데;;;

하긴 고등학생때부터 술과 담배, 마약이 가능한 문화이니 애인의 범주도 우리네와는 많이 다르려나;;;

"잘 생각해봐. 네 목숨이 걸린 일이야!"

"음악이......"

"뭐, 음악?"

"바보 같은 얘긴 줄 알지만 자꾸 말해보라고 다그치니까"

"내가 무얼 다그치는지는 내가 잘 알아, 자 계속해봐. 음악이?"

"정신이 들었을 때 오디오세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p. 110)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잡힌 소년이자 마리안의 아들인 위고는 사건 현장에서 생소한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여교사 집의 오디오세트에서 CD가 나왔다. 구스타프 말러의 '킨도토튼리더(죽은 아이들을 위한노래)' 였다.

구스타프 말러.

이 음악가는 세르바즈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몇 년 전 검거한 연쇄살인마가 가장 좋아하여 사건현장에 틀어놓곤 하던 음악의 음악가이기도 했다. 말러의 음악에 대해서라면 둘 다 달인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쇄살인마는 얼마전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 사건의 범인을 추적할 수록 연쇄살인마인 쥘리앙 알로이스 이르트만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온천하가 언제 산산조각 날지 모르거니와 정치, 경제, 종교, 자원고갈이란 이름을 단 묵시록의 네 기사가 죽어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상황임에도 일촉즉발 지구촌 족속은 축구 같은 참으로 하찮은 짓거리에 미쳐 계속 광란의 춤만 추어댈 것인가 보다. 세르바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후재앙과 주가폭락, 대규모 소요사태와 대량학살이 걷잡을 수 없이 세상을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점수를 따는 데만 혈안이 된 바보들과, 그런 바보들을 응원하고자 경기장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더한 바보들은 늘 있을 거라는 생각. (p. 125)

연쇄살인마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는데 여기저기서 온통 월드컵 축구에 광분중인 것을 볼때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세르바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형사는 알면 알수록 참 사색적이고 문학적이다. 하지만 이 예민함에는 슬픈 기억이 깃들어져 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집안에 강도가 들어 어머니는 의자에 묶인 아버지 앞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그 소리들을 벽장안에서 들었던 어린 소년은 10년 후 자살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 공부를 때려치우고 경찰시험을 봤다.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나니'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에서 인용 (p. 157)

해석학은 '말하다' '표현하다'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헤르메네이아'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어근이기도 하다. (p. 163)

최근 읽었던 책 중에 프랑스 작가의 호메로스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는데, 프랑스는 라디오에서도 한 계절 내내 고전이야기를 하고 중학교에서도 호메로스를 읽는다더니 스릴러 소설에서도 고전을 등장시키는 구나 싶어 신기했다.

엘시노어의 궁정과도 같은 대학도시 마르삭이 험담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말조심에 대한 감각 또한 남다른 곳이거니와 지극히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애먼 사람을 저격하는 곳이며, 따라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비방은 용납할 수 없이 저급한 취향으로 간주되는 곳임을 세르바즈는 모르지 않았다. 요컨대 지금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고도의 지식인들로 수수께끼와 암시, 숨은 의미를 즐기며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섬세한 지성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하즐이었다. (p. 204)

살해된 여교사 클레르의 주변을 탐문할 수록 부유한 지성인들과 학생들이 주민의 대부분인 마르삭 만의 고유한 어떤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특성은 연쇄살인마 쥘리앙과도 닮아 있었다.

분명 복에 겨워서였을 거다. 적어도 마리안의 생각은 그랬다. 세르바즈 역시 말은 안했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죄로 여기던 휘브리스(도를 넘는 오만)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따. 이를 범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바람으로써 죄를 저지르는 것이요, 신들의 분노를 산다는 얘기였다. (p. 230)

20년 만에 만난 세르바즈와 마리안은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멈춰졌던 시간을 현재까지 연결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서로의 속내를 알게 된다.

세르바즈-마리안-프랑시스 의 삼각관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여전히 마르삭 교정에서 진행중이었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이 학교에서 사랑과 경쟁은 여전히 솔직해서는 안되는 분야인가 보다.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래. 지금 위고는 살인혐의를 받고 있어. 범죄현장에서 발각되었지. 다비드는 불과 몇 초 간격으로 그를 뒤따라 술집을 나갔고, 그걸 목격한 사라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아울러 1학년 최우수 학생 네 명이 거기 있었다는 거야. 다시 말해 반경 수백 킬로미터 내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의 젊은이 네 명으로 이루어진 4인조. 말해봐, 그런 각도로 보면 문제가 훨씬 더 흥미롭지 않아? 요컨대 구린 놈이 그들 중에 있는 거라고." (p. 251)

세르바즈의 딸 마르고는 용의자인 위고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살해된 여선생에게 배운 적도 있다. 소문을 타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 사건을 맡았다는 것은 학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위고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그런데 교내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마르고는 아빠와 다른 형태의 수사에 착수하기로 한다.

"당신들끼리 마음대로 놀아보라고. 그래서 당신들 중 누가 더 강한지 실컷 확인하라고. 결국 나는 당신들이 하는 노름의 판돈에 불과했던 거야. 싸움판 그 자체. 당신들의 그 고약한 경쟁의식. 그 오랜 대결 한가운데 나라는 존재가 있었지. 마치 전리품처럼 말이야. 알겠어?" (p. 427)

과거의 배신은 세르베즈가 알던 이유가 아니었고, 클레르에게 내연남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런데 내연남이 또 있다. 이른바 삼각관계.

삼각관계는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두 남자 사이의 한 여자, 두 여자 사이의 한 남자, 두 범죄자와 한 형사, 두 상관과 한 부하직원, 세명의 친구 등등등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용의자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하지만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만 쌓이고 예상되는 범인은 한명에서 두명 두명에서 세명으로 자꾸 늘어만 간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채 1권이 끝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연쇄살인마가 재등장한 것일까? 예상밖의 새로운 인물일까?

참, 소설에서 '헌병'이 자주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는 '헌병'의 개념은 군인이라 이해가 잘 안갔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소설에서 말하는 '헌병' 이라는 건 우리식으로 보면 파출소 또는 지구대 로 불리는 동네의 작은 경찰기관을 말하는 것 같다. 헌병으로 새로 부임하게 된 인물의 설명을 읽고 보니...

>> "도로교통 단속하고, 이따금 술꾼들이 드잡이하는 걸 정리해주고, 좀도둑질이나 기물파손행위, 학교 앞에서 약 파는 놈들을 잡아다가 콩밥을 먹이고, 뭐 그런 일들을 하며 지내요." (p. 491) <<

사실 이 소설이 2권세트인지 모르고 읽었던 터라 2권의 존재를 알았을때 아차 싶었다. 어쩌나... 한번에 몰아서 읽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된 채 덮게 된 마지막장... 이거 원 궁금해서;;;; 어서 2권을 찾아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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