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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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2017년 여름에 방송된 <호메로스의 함께하는 여름>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저자 실뱅 테송은 이 책을 쓰기 위해 키클라데스 제도의 섬에 틀어박혀 에게해 해변과 햇빛, 파도 거품, 바람과 함께 지냈다. 그가 우리에게 제안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펼쳐 들고 바다 앞에서, 방 창문 앞에서,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몇 구절 읽어볼 것을. (표지 中)

 

신기한 일이다.

라디오에서 2천8백년 전의 서사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더 신기한 일이다.

문화 깊숙이 호메로스가 자리잡은 사회에서 자란것도 아닌 내가 이런 책에 끌리고 이런 책을 쓴 저자의 권유에 마음이 설렌다는 것은.

이건 고대의 기적이다. 2500년 전 에게해의 자갈밭에 던져진(혹은 상륙한) 한 시인이, 몇몇 사상가가, 철학자들이 세상에 내놓은 가르침이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무뎌지지 않았다니!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아직 되지도 않은 상태에 대해 알려준다. (p. 11)

몇 편의 노래로 인간의 윤곽을 그려낸 것. 호메로스 이후로 아무도 다시 하지 못한 일이다. (p. 13)

서양역사와 철학을 읽는동안 호메로스를 수시로 만났다. 고대그리스 비극과 아이네아스까지 읽고 나니 정작 가장 먼저 읽었어야 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전을 읽은 듯 하다. 이책저책에서 하도 자주 접해서인지 안 읽었음에도 이미 읽은 듯한 기분이 드는 이 두권을 나는 올여름에 꼭 읽어야할 것 같다. 비록 키클라데스 의 어느 섬에 가지 못하고 에게해는 커녕 동해바다 조차 구경하기 힘들지라도 올여름엔 꼭 이 두 고전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호메로스가 이미 다 풀어냈던 이야기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존재를 둘러싼 불가사의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신들이 정말로 존재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 신들이 호메로스에게 예지를 불어넣었다는 것. 그렇게 시간의 심연 속에 던져진 이 시는 우리 시대를 만나도록 예정된 전조였다는 가설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제우스의 태양 아래 다랄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리하여 이 시들을 관통하는 주제들-전쟁과 명예, 위대함과 달콤함, 두려움과 아름다움, 기억과 죽음-은 영원회귀라는 화로의 연료라는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인간의 불변성을. 현대의 사회학자들은 인간이 개선될 수 있으며 진보가 인간을 개선해주고 학문이 인간을 개량한다고 믿는다. 객설이다! 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p. 22)

사람은 안 변한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개과천선? 글쎄... 허드렛말로,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안 변한다. 2천8년전부터 안 변했고 아마 역사시대 이전의 사람들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고대 서사시에서는 더 원초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글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화려하게 꾸민 나머지 엄청나게 변한 것처럼 여겨지게 할 수 있지만, 사실 사람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때문에 고전이 고전이 되어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 오래된 책들을 읽어야 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는가? 중학교1학년 교과 과정에 호메로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숲속을 쏘다니며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지독히도 지루해하며 교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곤 했는데, 그때 하늘에는 전차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짜릿한 현대성을 띤 시, 독창적이기에 영원한 황금시가, 소란과 격노로 들끓는 노래가, 풍성한 교훈과 더없이 가슴 저린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시인들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암송하는 노래가 우리 안에서 우러나도록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p. 24)

이 신의 노래들, 이 황금시들, 이 열정적인 시를 여러 세대가 누리지 못하게 박탈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교육부 소속 교육학자들의 노고 덕에 그리스-라틴 인문학이 위축되고 있다. 관념론자들이 학교 개혁을 책임지면서 50년 만에 고대 학문이 죽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언어를 배우는 건 엘리트주의라는 것이다. (p. 32)

wow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중학교 1학년 교과 과정에 있다니;;; 정작 고전을 배워야 할 나이엔 고전을 배우지 않게 되고... 하지만 어렸을때 고전을 만나는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만나봐야 어른이 되었을때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나서 찾게 될 수 있다. 청소년기에 고전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나는 대학필수교양과정에 고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여유가 있고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때 고전은 새롭게 다가온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처럼 풍성한 결과를 낳은 작품은 많지 않다 - 종교적 계시가 담긴 위대한 텍스트들은 별도로 치고, 이런 해설 활동은 경이로운 놀이인 셈이다.

시에 빠져들어 이따금 성경의 시편을 암송하듯 그 시들을 암송해보자. 누구라도 거기서 자기 시대의 그림자를, 자신의 번민에 대한 답을, 자신의 경험에 대한 예시를 발견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기서 교훈을 끌어낼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위안을 찾을 것이다. (p. 34)

나도 고전에 맛을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껄 아쉬웠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고전이 가슴으로 읽히는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고전을 읽게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빛과 파도 거품, 바람의 젖을 먹고 자란 늙은 젖먹이, 맹인 예술가의 영감을 이해하려면 그곳의 작은 섬에 머물러 봐야 한다. 장소의 정기가 인간을 기른다. 나는 우리 영혼에 지리의 링거가 꽂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그 초소에 머물러 보고서야 <오디세우스> 와 <일리아스> 의 물질적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다.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문장을 갖고 있다. 그리스의 공간은 바람이 때리고, 빛이 관통하며, 의미심장한 발현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다. 오디세우스는 고통의 배를 타고 그런 신호들을 받았다. 프리아모스와 아가멤논의 병사들은 트로이 평원에서 그 신호들을 자각했다. 지리 地理 속에 산다는 것은 독자의 육신과 텍스트의 추상 사이의 거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p. 40)

인간의 삶은 환경적 조건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 들이 쓰여진 그 곳에 가야 글 속에 스며든 그 바람과 파도와 햇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직접 슝~ 날아가 에게해 섬에서 호메로스를 읽었던 저자가 부럽다. 하지만 장소의 현장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한글로 이 위대한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숲출판사 천병희 선생님의 그리스로마 고전 책들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 이 책들이 있어 고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영역 일역의 중역이 아닌 그리스어 라틴어 원전 번역서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정말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섬들은 소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호메로스의 가르침이다. 다양성은 저마다 개별성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다양성이 존속하길 바란다면 거리를 유지하라! (p. 57)

태양 아래 드러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길을 열정적으로 걷지 않고 왜 내세를 희망한단 말인가? (p. 59)

현시대에 던지는 호메로스의 전언은 이렇다. 문명은 모조리 잃을 것이고, 야만은 모조리 얻을 것이다. 매일 아침 독서를 하며 호메로스를 기억할 것 (p. 79)

어떤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알아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호메로스는 우리가 운명 앞에서 평등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p. 147)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신화의 세계에서는 계급이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왕자와 거지는 똑같은 범용과 똑같은 덕성을 보일 수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인간애를 타고난 피조물이 아니며, 하인이라고 반드시 순진함을 전유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주라고 해서 반드시 영혼의 품격을 갖춘 것도 아니다. 호메로스의 세계는 본질주의적이지 않다. 그 세계는 현실을 닮아서 횡으로 열려 있다. (p. 151)

이 작은 책을 읽으며 이렇게 내가 밑줄치고 싶은 문장을 많이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가볍게 그리스고전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 이렇게 다시 고전에의 열망을 갖게 할 줄은 몰랐다. 고대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졌던 이야기들이 현대의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우리는 천 년 후에도 호메로스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 시에서 21세기 초의 세계를 뒤흔드는 변화들을 이해하게 해줄 지혜를 발견할 것이다. 아킬레우스, 핵토르, 오디세우스가 하는 말이 복잡성의 안개 속에 무지를 감추는 데 탁월한 기술자인 전문가들의 분석보다 더 많은 걸 밝혀준다. 호메로스는 그저 영혼의 불변요소들을 발굴해낼 뿐이다.

투구와 갑옷을 바꿔보라. 말을 탱크로, 범선을 잠수함으로 대체해보라. 도시의 성벽을 유리 타워로 바꿔보라. 나머지는 유사하다. 사랑과 증오, 권력과 복종,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주장과 망각, 유혹과 굳건함, 호기심과 용기, 지구상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신들은 다른 얼굴들을 취했고, 사람들은 더 무장했으며, 인구가 늘어나서 지구는 작아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내면의 이타케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곳을 되찾기를, 때로는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를 꿈꾸지만, 대개는 그것을 지킬 수 있기를 꿈꾼다. (p. 167)

십년간의 트로이 전쟁, 십년간의 귀향길...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오디세우스의 이타케를 향한 여정을 보며 인간삶의 희노애락을 고전의 문장들로 확인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그리고 여전히 사는게 거기서거기다 라고 느껴지는 그 감정이 때로는 좌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온함과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고전에서 강조하는 절제를 우리는 지금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곤 한다.

<일리아스> 는 전쟁의 시이기 때문에 시사성이 있다. 2500년이 흘렀어도 피의 갈증은 여전히 펄떡이고 있다. 무기만 변했을 뿐이다. 진보란 인간이 자신의 파괴력을 키우는 능력이다. (p. 291)

얼마나 영혼이 지치고 심장이 메말라야 우리 눈앞에 생생하고 화려하게 펼쳐진 경이를 두고도 불확실한 낙원을 희망하게 될까? (p. 337)

고전을 읽는다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문만 가득 떠안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중요하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근본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 질문들을 기억해내는 경험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었는데 표지가 너무 아쉬었다. 사마귀라니;; 왜 하필;; 사마귀 표지만 아니었다면 두고두고 쓰다듬었을 책인데;;;) 여하튼, 올여름엔 꼭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아> 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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