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재생 이야기
김정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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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진화 중인 런던의 비밀은 무엇인가

도시학자가 바라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철학

 

 

밀레니엄브릿지에서 찍은 세인트폴 대성당과 하늘이 어우러진 표지가 산뜻하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몇년 전 런던에 일주일쯤 머문 적이 있었다. 숙소가 세인트폴대성당 근처라서 도보로 성당과 밀레니엄브릿지 건너편을 오가며 산책하곤 했었다. 그때는 걸으면서도 그 길들이 왜 편한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것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 보행자 중심이었다. 런던시내 곳곳엔 걷기 좋은 곳들이 정말 많았다.

런던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산업시대때부터 전통깊은 도시인만큼 낙후지역도 많았고 발전격차가 벌어진 곳도 많았다. 하지만 런던은 도시재생사업을 꾸준히 벌여왔고 여전히 진행중이기도 하다. 다른 대도시들도 그런곳이 많겠지만, 도시재생사업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런던을 선택한 것은 완성된 모습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방향성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런던이 도시재생에 크게 성공한 것처럼 언급되지만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혹독한 시련과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일련의 과정이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 도시들에 충분히 교훈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필자가 런던에 주목하는 분명한 이유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선정한 10개의 대상은 성공한 사례라기보다 교훈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p. 6)

시행착오는 중요하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실패로 간주하고 뒤엎어버리기기 쉽지 시행착오에서 무언가를 배워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그와는 반대되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은 쉬워도 배울건 배우고 버릴건 버리는 반성과 통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런던의 도시재생사업의 사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그 어려운 시간들을 거쳤기에 지금의 런던이 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제1회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던 런던이 100주년을 기념하며 개최했던 영국 페스티벌의 중심지역으로 선정됐던 '사우스 뱅크' 는 페스티벌이 끝난 후 그 영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도시재생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게 된다. 기존과 다른 방식의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모범적 지역으로 발전한 이곳은 지금 시민 모두를 위한 휴식처이자 아지트가 되었다.

오늘날 테이트 모던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로서의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문화예술공간이 쇠퇴한 장소, 나아가 지역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테이트 모던은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템스강 남북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영국의 대중지 '타임 아웃'을 포함한 각종 언론의 조사에 따르면 테이트 모던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p. 34)

런던에 관광을 가면 꼭 들러야할 곳 중에 '테이트 모던'은 늘 들어가 있다. 이 예술적 장소는 원래 운영을 중단하고 방치되있던 '화력발전소' 였다. 우리나라에 강남과 강북의 경제격차가 있듯이 런던엔 템스강 북쪽과 남쪽의 경제격차가 있었고, 남쪽은 늘 낙후지역이었다. 런던에서 가장 쇠퇴한 지역에 자리잡은 '테이트 모던' 은 예술적 공간의 가치를 넘어 지역발전 균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 '테이트 모던' 을 템스강 북쪽 지역과 연결해주는 다리가 '밀레니엄 브릿지' 인데, 이 다리의 의미 또한 남다르다.

오늘날 다리 디자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공법과 첨단 재료가 적용되는 만큼, 드러난 결과들 또한 무척 화려하다. 이에 반해 밀레니엄 브릿지는 최근에 건설된 다른 다리들과 비교해 외형적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 대신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보행자 전용 거리로 편안하게 연결함으로써 오랫동안 단절된 템스강 남북을 어우르고 런던을 통합하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p. 82)

이 다리 디자인을 공모했을때 수많은 디자인들이 제출되었었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디자인들이었지만, 최종 선택된 것은 다리 자체를 빛나게 해주는 디자인이 아니라 다리가 연결하는 두 지역을 돋보이게 만드는 디자인이었다. 다리를 만드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의도를 캐치한 디자인이 지금의 밀레니엄 브릿지 였다.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길에서 길로 연결된 '길' 로서 이 다리를 건너다닌다. 다리 자체를 보며 감탄하지 않는다. 다리위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의 지붕을 보며 감탄하고 다리위에서 테이트모던의 독특한 건물외양에 설레여 하며 그저 건너다닐 뿐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길인 것처럼.

유럽 도시들은 공통적인 도시 구성방식을 갖는다. 규모와 형태는 다르지만 상징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과 시청이 자리잡고, 그 외에 중요한 정치, 행정, 문화예술 관련 건물이 광장 주변을 에워싼다. 이와 같은 구성은 전형적인 그리스 로마 문명의 영향으로써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이 비슷한 원리를 따랐고, 전쟁이나 재난 등의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큰 변화없이 현재까지 유지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유럽 주요 도시들의 시청은 보통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낡았을지라도 신축하는 것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p. 85)

이 유럽적 전통을 획기적으로 깨뜨린 곳이 런던 시청 이다. 독특한 외관도 그렇지만 그 위치도 파격적이었다. 중심지가 아닌 낙후된 남부 템스강변에 자리잡음으로써 주변 지역까지 재생시켰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 가 늘 새롭게 함께하고 강변 산책로까지 개선시킨 런던 시청은 저자의 표현처럼 '겉모습은 전혀 시청답지 않지만, 내면은 가장 시청답다' (p. 96) 그렇게 런던시청은 런던시민들이 런던을 색다르게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런던은 템스 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이므로 강 주변에 다양한 시설들이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테이트 모던이 된 곳도 강변의 화력발전소였고, 템스 강을 오르내리는 무역에 의해 거대한 창고들도 강변에 즐비하게 건설되 있었다. 그러다 강을 오르내리는 물류산업이 쇠퇴하면서 거대한 창고들은 쇠락해갔다. 이 쇠락한 창고는 교통의 요지였으나 임대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다양한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관심을 갖고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변모해갔다.

도시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쇠퇴와 마주한다. 쇠퇴한 지역에 남은 과거 유산을 활용할 것인가, 아닌가는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모두 헐고 전면 재개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샤드 템스는 기존의 산업유산과 주변 공간을 보호하고 재활용하는 것으로, 완전히 새롭게 조성하는 것 이상의 장소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도시재생의 구체적인 대안과 가시적 성과를 남겼다. (p. 126)

버려진 창고지대를 훌륭히 복구해낸 샤드 탬스가 있는가 하면 철저히 실패했던 지역도 있었다. 바로 세인트 폴 대성당 앞쪽 지역인 '파터노스터 광장' 이다. 세계2차대전 이후 완전히 파괴된 이 지역을 개발하던 당시 실용성에 중심을 둔 고층건물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0년에 걸친 건설이 마무리되고 몇년후 쇠퇴하는 초유의 현상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완공된지 20년만에 다시 재개발하기로 전격 결정된다.

런던은 물론이고 영국의 도시계획 역사상 전무후무한 충격적 상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역사지구, 그것도 오랜 논쟁 끝에 채택된 마스터 플랜에 따라 완공된 장소를 고작 20여 년이 지나 재개발한다니! (p. 137)

큰 실패를 바탕으로 큰 교훈을 얻은 런던은 이 지역 20년밖에 안된 건물들을 부수고 다시 새롭게 구획을 정비하고 층수를 낮춰 재개발했다. 어디서든 세인트 폴 대성당의 커다란 돔 지붕을 볼 수 있게된 지금은 이곳이 런던 시민들을 위한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쇠퇴는 커녕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아마 '시장' 이 아닐까.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 은 도시형 재래시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전통의 맥은 있으나 점점 낙후되고 시장으로서의 기능도 쇠락해가던 때 재생사업이 추진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새롭고 최신식 현대적 시장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 아니라, '조명, 전기 배선, 배수, 바닥 포장, 페인트 등 기본적인 기반시설' 에 집중함으로써 본래 가졌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다는 점이다. 이렇게 새로워진 시장은 여느 백화점 못지않게 성황리에 관리되고 운영되고 있다.

브런즈윅 센터는 영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체형 주상복합 공동주택이다. 영국에서 주거와 상가가 단일 권역, 특히 하나의 공동주택에 자리하는 방식은 보편적이지 않다. 영국의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주거 영역과 상가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방식은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이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공동주택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처럼 단지 내에 편의시설을 갖춘 별도의 상가를 만들지 않고, 광장이나 정원 등 거주자들이 공유하는 공공공간만 존재한다. 따라서 철저하게 주거 영역은 주거 기능에만 충실하고, 상권은 주거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조성된다. (p. 174)

역시 문화가 다르면 환경도 다르게 구성된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내에 상가가 없으면 이상하고 아파트 촌 바로 옆에 상가 촌이 없으면 불편하다 여기며 주상복합이 제일 비싼데 영국사람들은 이런 구조를 선호하지 않는다니. 주상복합 형 브런즈윅 센터는 결국 건설되고 얼마후 바로 낙후되기 시작했으나 중심에 광장을 만들고 시민들이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재탄생하게 되었다. 도시재생은 그 도시의 문화적 수용성을 감안해야 성공하기 마련이다.

런던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최고층 빌딩은 '더 샤드' 이다. 그런데 이 건물이 런던의 랜드마크로서만 상징적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런던 브리지역' 의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로서 더 의미있는 곳이었다.

런던 브리지역은 과거나 현재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각종 오명을 얻었다. 런던에서 가장 복잡한 역, 런던에서 길 찾기 가장 힘든 역, 런던에서 가장 지저분한 역, 런던에서 가장 추한 역 등 사실상 역과 관련된 부정적 이야기는 모두 들을 정도였다. (p. 19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어설프게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 잘된 일이었다. (p. 195)

더 샤드의 성공여부는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공간적으로 런던 브리지역과 어떻게 연결되고,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가가 더욱 중요했다.

건물의 형태는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볼륨이 감소해서 300미터가 넘는 높이에도 시각적으로 주변을 압도하지 않는다. 무어보다 중요한 것은 저층부를 최대한 비워서 런던 브리지역의 공용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킴으로써 최대한 공공성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더 샤드에서는 도시에서 흔힌 마주하는 권위적ㅇ니 초고층 건물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절제된 디자인으로 실제 방문객이나 주변 보행자는 더 샤드의 존재를 크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p. 198)

초고층 건물이 주는 위압감... 저자의 글을 읽으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 그랬다. 더 샤드 주변부를 걸으며 이 건물이 크다거나 위압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미리 예약하면 위층에 있는 전망대를 올라갈 수 있어서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다 시간맞춰 전망대에 올라갔을때 내려다본 런던 시내 풍경에 속이 뻥 뚫리며 새삼스럽게 이 건물이 이렇게 높았나 싶은 기분이 들었었다. 잘 지어진 건물이란 외형적으로 위용을 뽐내는 것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건축가가 일관되게 공유한 생각은 사용자와 지역 주민을 동시에 고려한 공공성이다. 결국 전혀 다른 두 개의 혁신적 개념이 런던 브리지역에서 통합되어 지역 활성화를 위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p. 204)

런던 브리지역은 내·외부 공간 모두 철저하게 보행자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앞서 설명했뜻이 기존역사가 오명을 넘어 악명을 얻을 정도였기에 새로운 역사가 이용자들과 주민들에게 주는 감흥은 크다. (p. 211)

저자가 알려주는 도시재생사업의 예들을 보면서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사업의 핵심가치는 '공공성' 과 '보행자중심' 이었다. 런던 브리지역에 이어 이 책의 마지막 예로 등장하는 킹스 크로스 역 재생사업은 앞선 사례 지역들을 통과하는 가치들의 총집합 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21세기에 추진된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를 하나만 꼽는다면 아마도 '킹스 크로스'일 것이다. 왜 그럴까? 킹스 크로스 재생사업은 시민참여, 민관협력, 공공공간 조성, 보행환경개선, 역세권 활성화, 산업유산 재활용, 복합개발, 주거지 활성화 등 오늘날 도시재생이 추구하는 화두의 대부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p. 217)

초기 논의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주민들이 킹스 크로스 재생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높은 비율의 공공공간과 보행친화형 디자인 때문이다. 그 출발은 킹스 크로스역 앞의 광장과 주변 공간이다. (p. 248)

전체 8만여 평의 사업 부지에서 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거의 모든 공간이 보행 중심이다. 앞서 설명한 일련의 프로젝트 중에서 서비스 차량을 제외하고 일반인의 차량 출입이 가능한 장소는 단 한 곳도 없다. (p. 250)

도시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발전과 낙후과 왔다갔다 한다. 따라서 사람이 잘 갈 수 없는 곳은 사람이 걷기에 불편한 곳은 사람이 모일 수가 없고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지역활성화는 언감생심이다. 런던의 도시재생사업을 보면서 가장 좋아보였던 점은, 낙후된 지역과의 균형 발전을 고려하되 일시적이 아닌 장기적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광장이 되었든 공원이 되었든 일단 사람들이 모일수 있는 공공공간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행자중심의 길과 건물이 들어서게 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면 지역활성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걸어서 편하게 갈 수 있는 곳,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곳, 걷다보면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는 곳, 그런 공간들이 우리 도시들에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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