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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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사람들' 이라는 부제가 붙은 <THE OTHER PEOPLE> 가제본을 받아 읽을 기회를 얻었다.

작가는 C.J.튜더

그녀의 첫 작품 '초크맨'을 읽었던지라 세번째 작품이라는 이 소설에 호기심이 일었다.(두번째 작품은 '애니가 돌아왔다' 도 곧 읽어볼까 싶긴 하다) 첫 소설 '초크맨'은 나오자마자 영화판권이 팔렸을 만큼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나또한 재미있게 읽었었다. 첫작품 같지 않게 서사의 촘촘함에 신경쓴 티가 났다고나 할까 ㅎㅎ

'디 아더 피플' 은 '초크맨'보다 더 밀도높게 진행되면서 마지막에 초자연적 현상까지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티븐 킹 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보다 어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더 많을 수도 있기 마련이니까.

처절한 고통을 가까운 사람보다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오히려 속깊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심리 자체가 사실 설명하기 쉬운 심리는 아닐수도... 이 작품은 그러한 복잡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복수 라고 말하기엔 뭔가 모자란 표현 같은 그런...

실종은 죽음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더 나쁘다. 죽음에는 끝이 있다. 죽음에는 슬퍼하는 시간이 허락된다. 추모하고 촛불을 켜고 꽃을 놓는 시간이. 떠나보내는 시간이.

실종은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있는 림보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지평선 위에서 희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절망이 콘도르처럼 맴을 도는 낯설고 암울한 세상 안에서. (p. 25)

게이브는 퇴근 중이었다. 아내와 딸과 저녁을 함께 먹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런 평범한 저녁을 꿈꾸며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꽉 막힌 도로에서 앞차 뒷좌석에 있는 딸아이의 얼굴이 보았다. 그차를 맹렬이 쫓아봤지만 놓쳤다. 집에 갔을 땐 아내와 딸이 모두 살해되었다며 경찰이 막아섰다. 그는 시신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종된 것이었다. 살해되었다는 딸이, 분명히 앞차 뒷좌석에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아빠 라고 말하는 딸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는 이후 미친듯이 고속도로를 헤매며 딸을 찾는 생활을 전전하게 된다.

화장실, 탈의실, 거울이 있는 모든 곳. 프랜은 예전에는 앨리스의 거울 공포증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공포는 없었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논리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는 전처럼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거울이 앨리스의 기면증을 유발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p. 41)

계속 도망쳐 다니며 계속 겁에 질렸다. 어떤 아이도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되는 거였다. 하지만 어떤 아이도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면 안 되는 거였다. (p. 70)

프랜은 어린 소녀인 앨리스를 데리고 도망다니는 중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앨리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앨리스를 지키기 위해 계속 도망쳤다. 하지만 곧 발각되곤 했다. 게다가 앨리스에게는 그녀가 모르는 공포가 심어져 있었다.

그녀는 잠을 잔다. 하얀 방에 누워 있는 창백한 소녀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미리엄은 가장 오래된 직원으로 이 집에 처음부터 있었다. 처음 그 이전부터 있었다. 그 현상은 2~3년 전에 시작됐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1층에서 차를 끓이는데 음 하나가 들렸다. 피아노 건반 소리였다. 딱 한번. 아이가 눈을 뜬 것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벌어지기도 하지 않는가. (p. 45, 46)

미리엄은 오랫동안 한 여자를 돌보고 있다. 어릴때부터 보아와서 식물인간이 된 소녀때 모습 그대로로만 보이는 여자를 미리엄은 살뜰히 간호하고 있었다.

게이브는 다시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단어와 글자의 파편들이 서로 겹쳐져 있었다. 하지만 다섯 글자가 도드라져 보였다. 죽은 남자가 남긴 희미한 각인이었다.

다른 사람들. (p. 81)

비쩍 마른 그 남자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지 않았더라면,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고개를 내민 악몽처럼 너덜너덜한 수첩 위로 떠오른 그 단어를 보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 (p. 86)

케이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다. 두아이의 싱글맘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정기적으로 들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게이브를 몇 년째 보고 있다. 그가 딸의 실종전단지를 돌릴 때부터 3년째 고속도로위를 헤매며 카페에 들를때마다. 그러다 어느날 그가 뚫어져라 보고 있는 수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단어를 보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

한참 뒤에 사마리아인은 자기 잔을 집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한숨을 쉬었다. "다크 웹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게이브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들어본 적 있었다. 실종된 아이나 친척이 있는 사람은 다크 웹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기존의 검색 엔진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광대한 지하 인터넷. 화려한 공식 웹 아래에 숨겨진 공간. 일반적인 웹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곳을 이용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깊고 어두컴컴한 곳이 원래 그렇듯 거기에 오물과 침전물이 쌓였다. (p. 161)

게이브가 자살을 생각했던 다리에서 한 남자를 만만다. 이름이 아닌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는 그는 그저 '사마리아인'으로 부르라 했다. 그는 여러모로 게이브가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게이브는 물어볼 수 없었다. 이 검은 남자는 위험했다. 하지만 게이브는 그저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될뿐 그의 사연을 알아낼 필요도 여력도 없었다. 그로부터 다크 웹 세상의 '다른 사람들' 을 알게 됐다.

Q: 명칭을 다른 사람들이라고 지은 이유가 뭔가요?

A: 인간은 누구나 비극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벌어지기 전까지는요,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용서하거나 잊어버리는 데서 위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정의를 구현하도록 서로 돕는 데서 느끼죠.

Q: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요?

A: 돈이 오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우리는 기브 앤드 테이크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요청하고 신세를 갚는 시스템으로요. (p. 180, 181)

게이브의 아내는 살해당했다. 딸도 함께 살해당했다고 경찰도 처가도 얘기하지만 게이브는 딸이 실종됐다는 믿음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집에 있던 여자아이의 시신은 누구인가? 왜 장인어른은 게이브에게 시신검안을 못하도록 했나? 프랜을 쫓는 자들은 누구인가? 앨리스가 보는 환영은 누구인가?

게이브가 수십년간 숨겨온 비밀이 끔찍한 살해사건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날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양심적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수십년째 약속을 이행중이었다. 고문에 가까운 약속을.

그 약속과 그에게 벌어진 참혹한 사건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식물인간 소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정말 식물인간인가? 사마리아인은 왜 게이브를 돕는가?

프랜이 사라졌을때 앨리스는 케이티에게 연락할 수 밖에 없었다. 케이티는 앨리스가 앨리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케이티가 자신의 아이들과 앨리스를 데리고 게이브에게 도망쳐 왔을 때 그들은 서로의 퍼즐을 맞춰볼 수 있었다. THE OTHER PEOPLE 이 누구인가를.

나에겐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 생각한 사건이 갑자기 터져버렸을 때, 뉴스에 나오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내게 벌어졌을 때, 그 억울함과 분노를 법이 만족스럽게 처벌해주지 않을 때, 낯선이가 다가와서 다른 방법이 있다고 알려준다면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누군가의 복수를 해주고 누군가가 나의 복수를 해준다면, 내가 했던 복수가 내게 복수로 돌아오고 누군가가 했던 복수가 누군가에게 또다른 복수로 돌아오고, 그렇게 복수가 복수를 낳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세상은 어찌 되는 것일까...

세상에 The Other People 이 더 많을 것 같지만 The Same People 이 더 많다.

나와 다른 사람들 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하나를 풀고 다음을 풀어가며 차근차근 전체를 완성해가는 이 작품은

인간의 고통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인간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도 함께 보여준

단숨에 읽히지만 긴 생각이 남겨지는 괜찮은 스릴러 소설이었다.

여름엔 역시 스릴러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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