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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 -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가르침
달라이 라마 지음, 이종복 옮김, 툽뗀 진빠 편역 / 담앤북스 / 2020년 6월
평점 :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가르침
'명상', '죽음'에 이은 달라이 라마의 세번째 강론-화와 증오를 다루는 지혜
이 책은 199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달라이 라마 가 강론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당시 초청을 받아들이며 달라이 라마는 무엇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지 물었고 초청측은 인내에 대한 샨띠데바의 가르침을 부탁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께서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 제6장 인욕품' 의 게송들을 구절구절 풀이해주는 식으로 며칠에 걸쳐 강론이 진행되었고 1993년에 '화의 치유(Healing Anger)'로 출판되었던 것을 새로 번역하여 재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은 8세기에 완성된 저작으로 대승불교권에서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입보리행론>은 샨띠데바가 인도의 유명한 날란다 불교대학에 있을 때 요청을 받고 대중집회에서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라고도 한다. 수행자들에게 이 책은 대승불교가 제시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핵심적인 수행의 윤곽을 그려주는 중요한 문헌인데, 이 문헌이 11세기에 티베트어로 번역된 이래 티베트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입보리행론>은 티베트에서 대승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관련된 방대한 학술 업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마음수련'으로 알려진 전혀 새로운 장르가 일어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를 내가 너무 몰랐던 탓이다.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대부분 나와 같을 것임을 알았던 건지 편역자의 서문또한 위와 같은 내용들과 책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느라 길고 긴 편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입보리행론>의 제6장 인욕품'에 달라이 라마가 구절구절 주석을 붙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문화에 대해 서양보다는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친숙해서인지 책의 내용은, 읽을 때는 어려운 불교경전 읽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만 놓고 쉽게 생각해 보자면 불교의 기초개념들이었다. 이 책 한권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비심과 윤회와 업보를 설명하며 지금 작은 일에 화를 내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으니 참고 인내하라 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교를 전혀 모르는 기독교문화권인 미국에 가서 한 강론이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따라서 '화병' 이라는 한글병명을 가졌을 정도로 '화'를 많이 내는 우리네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던 나로서는 크게 얻을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이 책의 영문제목 <Perfecting Patience> '참을성 있는 인내심'의 불교적 수행이 미국에서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그냥 사는 일상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시도해 봤던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화와 증오를 일으키는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p. 78)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마음을 잘 길들이고 다스려서 내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유익한지 해로운지는 그 행위가 잘 다스려진 마음에서 나오는지 그렇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지에 달려 있다. (p. 115)
샨띠데바는 평소 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을 방지하는 법을 알려준다.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그 가해자의 본래 품성이라면, 그에게 화를 품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른 이들을 해치는 일은 그 사람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천성이어서가 아니라 모종의 주변 상황 때문이었다면 그는 환경적인 조건에 휘둘린 것이다. 따라서 그 경우에도 그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p. 155)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입히거나 다치게 했을 때 그는 악업을 쌓는 것이다. 따라서 상처 받은 일을 정호의 기회로 삼고 그 기회를 선사한 이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그 일을 인내함으로써 우리는 선업을 쌓아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p. 164)
우리가 화나 증오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인내와 감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일시적으로는 불편함이나 상처를 겪겠지만 미래에 일어날 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p. 209)
우리에게 그런 좋은 수행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참지 못하고 적에게 성질을 부렸다면, 인내와 감내를 수행해 공덕을 쌓는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p. 254)
"저는 대부분의 기도가 여러분 일상의 수행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게송들은 기도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일상생활에서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p. 320)
분노는 화나 증오와 다르고, 긍정의 에너지가 없는 화나 증오는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막상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다 화내거나 증오를 일으킬 일이 아니니 그 의미없음을 깨닫고 작은 화 들을 참다보면 더 큰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데다 이러한 선업은 윤회의 흐름 속에서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니 참고 인내하며 기도할때마다 기복 보다는 일상을 상기하고 늘 수행하는 마음을 가져보아라... 라는 이 책의 불교적 기본 가르침이 내게 와 닿기에는... 흐음...
본문 뒤에 '부록'으로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 제 6장 인욕품 의 전문'이 실려 있으므로 이 부록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티베트어 책을 번역한 영문판을 중역으로 옭겼다면 해석에 변형이 약간이라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역자가(종교전문가이므로 종교어에 대한 번역에 신뢰가 갔다) 티베트어를 직접 한국어로 옮긴 것이라고 하니 믿을만 할 듯 하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책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부록'만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고전의 명언들은 삶에 늘 유효할 때가 많으므로.
나는 그저 유명하신 스님이 '화'에 대하여 에세이처럼 쓰신 책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지라, 책을 시작하자마자 불교적 용어와 불교경전의 게송들이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다. 틱낫한 스님의 책이나 국내 스님들의 책을 편안하게 읽었어서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더 (불교적 색깔의 일상에세이가 아닌) 전문적인 불교적 종교서적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듯 싶다. 그리고 '부록' 은 다시 읽어봐도 좋을 고전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가치있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