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 반니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항바이러스제에서 신경안정제까지,

인류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준 치료약의 역사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오래된 표어를 나는 얼마나 제대로 억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만 약을 사면서 약사에게 뭘 물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처방전에 따른 약을 받으면 그만일뿐 그 약이 어떤 약인지 나는 왜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는지 갑자기 의아해질 정도다. 진료를 받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는 약이 엄청 다양해진 세상에 살면서;;;

약은 약사에게

그렇다.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의사가 쓴 책은 많아도 약사가 쓴 책은 별로 못 본것 같다. 이 책은 약사가 약에 대해 쓴 책이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역사까지 곁들여서 쓴 책이라니. 기대만발 ㅎㅎ

약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문학적인 내용을 추가해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고 인류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약을 개발된 순서대로 배치했다. 궁극적으로는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약을 잘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p. 6)

먹는 식품들에 대해서는 뭐에 어떤 영양소가 들었고 어떻게 조리하면 좋은지 찾아 읽으면서도 약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싶다. 전문가급으로 어려운 약 이름을 줄줄 읊어댈 수야 없겠지만 간략하게라도 그 약이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지 알아두면 좋을것 같긴 하다. 그리고나서 처방전에 쓰여진 약이름을 보면 그 약이름들이 좀더 친숙하게 보이지 않을까? ㅎ

저자는 11가지 약에 대해 쉽고 간략하게 풀어주고 있다.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 여권 신장을 가져온 피임약, 카르브해에서 찾은 탈모 치료제의 열쇠, 현대인의 쓰린 속을 달래 주는 위장약, 환청과 망상에서 벗어나게 한 조현병 치료제,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게 한 항우울제,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재우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뇌 건강을 지켜주는 뇌 질환 치료제, 혈당을 낮춰주는 당뇨약,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유전자 치료제.

암소를 라틴어로 바카vacca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따와 접종한 우두의 고름을 백신vaccine이라고 했다. 이것이 1세대 백신이다. 이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과 콜레라 백신을 개발했다. 사실 백신이라는 이름은 제너의 종두법만을 의미했지만, 그를 존경한 파스퇴르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이 개발한 약도 백신이라 부르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p. 14)

어원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천연두의 백신을 개발하게 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있는 바다. 그런데 거기서 백신 이라는 이름까지 유래된 줄은 몰랐었다. 어원을 알게 될때마다 지금은 실생활에 사용되지 않는 라틴어가 학명에서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을 보며 새삼 대단한 언어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곤 한다.

전쟁 당시 스페인은 중립국이어서 독감이 퍼지는 사건에 대해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반면 교전국들은 검열을 이유로 자국 군대가 독감에 걸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새로 생긴 독감을 단순히 감기라고 말하며 국민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결국, 스페인에서 독감을 자주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p. 18)

스페인 독감은 멀리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18년 9월에 들어와 당시 인구 759만 명의 약38%인 288만 4,000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14만명이 사망했다.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시체를 처리할 사람이 없고 농가에서는 추수하지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p. 19)

얼마전 읽은 책에서 스페인 독감이 스페인에서 유래됐거나 환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언론보도가 잦아서 별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전쟁당시 중립국이라 그랬다는 걸 알고 나니 의아스러웠던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 조선에까지 큰 피해를 주었다니 놀랐다.

2002년 말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는 2003년 4월이 되어서야 병의 원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밝혀졌다.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까지 10여 종류가 알려져 있다. 사람, 돼지, 개, 고양이, 소, 닭 등에서 감염되지만, 사람에게는 중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사스는 변종을 일으킨 바이러스여서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중국, 동남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야생동물을 보양식으로 먹는다. 재래시장에는 많은 동물이 판매되괴 있는데 사스 유행 초기, 대부분의 환자가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요리하다가 감염되었다. 역학조사 결과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향고양이는 재래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에서 걸린 것이고 자연 숙주는 과일박쥐였다. (p. 27)

박쥐에게 있는 바이러스는 137종이나 된다. 그중 사람에게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다. 사람과 대다수 동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물질 인터페론을 생성해 대항하지만, 박쥐는 평소에도 인터페론을 만든다. 그래서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특이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박쥐는 체온이 40℃이상으로 다른 포유류에 비해 높다. 체온이 높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면역력이 강해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박쥐는 바이러스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살아간다. (p. 28)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매개로 사람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p. 31)

컨테이젼Contagion, 2011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보고나서 우한코로나라고 불리던 지금의 코로나사태를 미리 예견한듯 해서 놀랐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가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던 거다. 사스니 메르스니 불러서 헤깔렸지만 결국 다 코로나였던 거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의 중심에 결국 다 박쥐가 있었던 거다. 지금의 코로나사태는 어쩌면 예견된 사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변종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박쥐가 매체였음을 알았음에도 신약개발이나 야생동물취급에 있어 그 어떤 준비도 바이러스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타미플루를 개발한 사람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 부사장이었던 재일교포 한국인 김정은 박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계절 독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자 1996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알약으로 된 독감 치료제를 개발했다. (p. 30)

우리나라 제약회사에서 혹은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신약을 타미플루를 개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고... 앞으로 점점 더 약과 바이오와 건강관련 기술들은 중요해질텐데...

그러면 최근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처럼 야생동물에서 서식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자주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림, 오지개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면서 사람이 과거보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더 많이 침범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살던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촉이 빈번해지자 인류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만남도 크게 늘어났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전파한다고 현실적으로 모두 잡아 없앨 수는 없다. 만약 모든 박쥐를 멸종시킨다면 바이러스는 새로운 자연 숙주를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통해 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사람을 공격해 올 것이다.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유전체에서 연속하는 특성이 있어 생물 종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사람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되,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p. 35)

그렇다. 근시안적으로 박쥐탓만 해서는 해결되는게 없다. 결국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자연을 침해하는 인간탓이다. 다 자업자득인거다. 그렇다고 모두가 한마음한뜻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자연과 인간과의 불화를 전쟁으로 치를 것인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경구 피임약기 개발되면서 성과 출산은 분리되었고, 성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1965년 연방대법원은 마침내 피임을 인정했다. (p. 55)

마거릿 생어는 세상을 바꾸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콤스톡법의 지배로 억압받던 여성의 권리를 높였고, 과학의 힘을 빌려 경구피임약 시대를 열었다. 과학자는 아니었으나 뜻을 품고 사회변혁을 주도하며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을 남겼다. (p. 56)

저항자들에게 68혁명은 정치적으로는 실패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다.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같은 보수적인 가치들이 평등, 인권, 성 해방, 공동체, 생태주의 등의 진보적인 가치로 바뀌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라는 유명한 구호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저항했다. 그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요구했다. (p. 58)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피임약은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산아제한이라는 정부의 강요로 시작된 피임약의 부작용이 여성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노비드가 나온 이후 60년 가까이 호르몬 종류를 바꾸고,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부작용을 상당 부분 극복했음에도 대중화되지 못했다. (p. 60)

피임약의 발달사는 어떻게 보면 여성의 권리신장의 역사의 일면이기도 했다. 종교법에 매여있던 성적자기결정권이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초기약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부작용들은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마련이다. 산아제한 이라는 국책사업과 맞물렸던 부작용많은 피임약의 복용이 국내 피임약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었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피임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출산율이 낮은 상황인 것을 보면 그 격세지감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만든 약의 역사를 참고하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제약회상서는 신약 후보 물질을 찾을 때 이전에 시도한 자료를 먼저 분석한다. 그렇게 하면 시행착오도 줄이고 이전에 놓쳤던 틈새를 발견할 수 있다. (p. 99)

특허가 끝나면 오리지널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상실되어 다른 회사가 제네릭(복제약)을 생산, 판매할 수 있다. 그래서 맨 처음 개발한 제약회사는 이 기간 안에 수익을 내야 하므로 특허권 보호 기간의 연장을 바란다. 반면 제네릭이 나오면 일반적으로 약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환자는 특허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맨 처음은 아니지만, 같은 계열의 가장 좋은 위장약 잔탁의 성공은 후발주자라도 빨리 따라붙어 기회를 잘 잡으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p. 102)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상 특이한 발명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앞선 발명과 도전들이 있기에 가능했었다. 신약 개발도 그런것 같다. 이미 나와있고 밝혀진 것들을 제대로 습득해야 조금 더 나은 약을 만들수 있고 그러다가 새로운 신약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선의의 경쟁들이 꾸준히 있어야 약값도 싸지고 그럴텐데...

커피에서 카페인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룽게다. 1820년 룽게는 커피콩에서 순수한 카페인을 분리했다. 그는 괴테와 교분이 있었는데 룽게의 재능을 알아본 괴테는 그에게 커피 원두를 주면서 속에 있는 화학성분을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했다. 추출, 분석 기술을 통해 룽게는 순도 높은 카페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커피에 들어있는 혼합물이라는 뜻으로 카페인kaffein(영어로는 caffe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 175)

카페인이라는 이름을 보면서도 커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이런 ㅋ

괴테가 카페인 발견에 힌트를 주었었다니! 역시 역사는 이런 쏠쏠한 재미를 준다. ㅎㅎ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32만명을 파병했는데, 미군 다음으로 그 수가 많았다. 한국군은 9년에 걸쳐 56만 3,387건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때 5,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고 7,000여 명이 다쳤다. (p. 182)

미국은 베트남전 참전 보상으로 기존 경제 원조와는 다른, 획기적이고 파급 효과가 큰 종합연구소 설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 연구와 산업 응용에 도움이 되는 응용과학 연구소를 만들어 지원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발차관과 응용과학연구소 설립 원조에 합의했다. 한국은 전투 부대의 베트남 파병을 약속했다. 미국 바텔 기념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KIST가 설립되었다. KIST는 자율성을 지닌 비영리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국내의 가장 유능한 한국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하도록 급여와 대우를 보장했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기관 및 산업계와의 협조를 통해 개발된 기술이 파급되도록 제도화했다. 즉 KIST는 베트남 전쟁 참전 대가로 정치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래서 서울 홍릉 KIST 본관 1층에는 '존슨 강당'이 있다. (p. 257)

생각보다 베트남 파병의 기간과 규모가 길고 컸음을 알고 놀랐다. 9년이라... 6.25보다 긴 남의 나라 전쟁에서 그나라도 이나라도 전쟁의 피해는 전쟁기간의 몇배로 돌아오고 있지 않을까... 그 배경에 국가과학산업의 토대를 닦았다는 것이 참... 새삼 슬프다.

한방 3대 영약으로 손꼽는 처방이 경옥고, 공진단, 우황청심원이다. 원나라 초대황제 쿠빌라이 칸이 즐겨 먹었다는 경옥고는 얼굴을 옥처럼 가꿔준다는 의미로 원기회복과 노황예방에 좋다. 현대인의 만성피로, 전신쇠약, 기력소모, 기억력감퇴에 효과적이다. 황제에게 바치는 약이라는 뜻의 공진단은 허약체질과 갱년기증상에 먹는 보약이다. 마지막으로 우황청심원은 경옥고, 공진단는 달리 치료제 성격이 강하다. 인사불성, 두근거림, 정신불안증에 사용하는 것으로 문헌에 나와 있지만, 보통 시험이나 발표, 면접 등을 앞두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많이 먹는다. (p. 186)

우황은 소 쓸개에 생긴 돌인 담석을 말하는데 구하기 힘든 약재다. 사향은 궁노루라고도 하는 사향노루의 향선낭분비물이다. 사향은 우황보다 더 구하기 어려워 지금은 대체품을 쓴다. 사향노루와는 달리 사육이 가능한 사향고양이 향선낭분비물에서 사향을 채취한다. (p. 188)

경옥고, 공진단, 우황첨심원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무엇에 쓰는 약인지 잘 몰랐었는데, 이렇게 정리된 글을 보니 좋았다. 그리고 우황과 사향이 뭔지 알고 나니 그참... 약재라는 것이 정말 희귀하고 희한하구나 싶었다. 사스때 사향고양이 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향고양이가 많은가 싶었는데... 약재를 위해 사육되는 거였다. 결국 다 인간 탓인거였다...

1997년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를 보고 많은 어린이가 경련 발작을 일으켰다. 원인은 TV화면에 붉은색과 파란색의 빛의 현란한 깜빡거림이 뇌에 과도한 흥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화면을 오랫동안 본 어린이들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키며 병원에 실려갔다. 750여 명의 어린이가 고통받은 이 사건으로 포켓몬스터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킨 TV프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뇌전증은 이처럼 빛에 약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서도 발작을 일으키는데 반짝거리는 불빛이나 TV, 햇빛 등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p. 213)

예전에는 간질 이라고 불렀던 병명이 뇌전증으로 바뀌었다. 한결 병답다고나 할까 왠지 비하적인 의미가 느껴졌던 간질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뇌전증이 유전이나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게다가 포켓몬스터 같은 애니를 보면서도 그런 발작이 가능하다니 거참... 요즘 영상매체 문화가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엑스코프리는 2001년부터 기초 연구를 시작해서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모두 거쳐 개발됐다. 후보물질 개발을 위한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이다. 미국 FDA에 신약판매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국내기업이 자력으로 FDA신약승인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엑스코프리 개발은 후보물질 탐색부터 최종판매 허가까지 18년 이라는 장기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기간 성과가 없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연구비를 쏟아부었다. (p. 215)

얼마전 코로롱제약의 신약사기?! 기사에 마음 씁쓸했던지라 2019년 11월 SK바이오팜이 개발했다는 뇌전증 치료제 이야기를 읽으니 반가웠다. 신약 개발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주시기를 바래본다.

인슐린을 시작으로 성장호르몬, 인터페론 등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생산되면서 화학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p. 233)

한때, 기생충은 박멸해야 하는 악이었지만 기생충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을 인체는 이물질로 인식한다.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감시하며 관리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강해졌는데, 이방인이었던 기생충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이 생겼다. 아토피, 천식, 비염같이 예전에는 드문 질환이 늘어났다. 3만년 전 사람 몸속에서 회충이 발견될 만큼 사람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그래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나름 기생하면서 면역을 튼튼하게 해준 공로가 있다. (p. 252)

1980년대 우리나라 흡충 감염은 400만 명에 달했다. 그때만 해도 바이엘에서 판매한 빌트리시드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약값이 비쌌다. 그런데 KIST 응용화학연구소에서 3년여간의 연구 끝에 1983년 새로운 방법으로 프라지콴텔 합성에 성공했다. 신풍제약은 이 합성법을 실용화해서 디스토시드를 만들어 판매했다. KIST에서 만든 합성법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안 바이엘이 신풍제약에 특허권을 수십만 달러에 팔라고 요구했지만 팔지 않았다. 독일 역시 한국이 이런 약을 만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연합해 우리나라에 물질특허를 도입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후 합성법이 아닌 화학적으로 제조되는 물질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물질특허제도가 1987년에 도입되었다. 이때문에 독자적인 물질을 최초로 만들지 못하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신약 개발을 시작했다. (p. 260)

후발주자가 앞선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처음에 어떻게, 왜 기술을 개발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역사, 사회, 문화 요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쫓아간다고 해서 그들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모방에 그치거나 힘들게 개발해도 시장성이 없어 쉽게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신약 개발을 하려면 단지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p. 298)

11가지 종류의 약 개발 변천사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사이사이 약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변천사나 약개발에 있어 어떤 부분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질병과 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런 때일수록 장기적인 관점으로 미래사회를 준비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