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을 잠시 찾아보니 노동운동을 오래했었고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듯 하다.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던 사람으로서 '전태일 50주년 기념 소설집'을 엮은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여전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저자 자신의 소개글을 보니 더더욱 작품의 무게감이 진하게 전해져왔다.
그렇다. 무게감... 읽는 내내 잠깐씩 숨을 몰아쉬어야 할만큼 각각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1부에서는 일제치하부터 분단까지의 노동현장을
<이천의 모스크바> 에서는 6.25 전후 한 마을에서 벌어졌던 엎치락뒤치락 하는 진영의 갈등을 농부의 시선으로
<두발자전거> 에서는 일제치하 노동운동의 태동과 해방후의 갈등을 방직공장 여공의 시선으로
<달뜨기 마을> 에서는 결혼 후 세상과 사상에 눈을 떠 여맹위원장까지 활동했던 여성의 시선으로
2부에서는 80년대를 전후한 노동현장을
<첫사랑 순희를 찾아서> 에서는 분단 후 혼란스럽던 정치상황을 첫사랑과 엮어 회상하는 노신사의 시선으로
<팬데믹의 날> 에서는 노동운동에 앞장서서 노동자로 한평생 투쟁하는 도중 5.18을 경험했던 여성의 시선으로
<37년 만에 맞춘 퍼즐> 에서는 원풍모방의 여공으로 성장한 노동의식을 여전히 실천중인 여성의 시선으로
3부에서는 불과 몇년 전 혹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노동현장을
<그들은 성자를 보았다> 에서는 성진노조원들과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작업으로 인한 투쟁의 현장을 겪어낸 노조원의 시선으로
<스무 명의 성난 여자들> 에서는 네임텍 이라는 스티커 회사에서 무시와 멸시 속에 꿋꿋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노조원의 시선으로
<캐디라 불러주세요> 에서는 정식직원이 아니기에 정식노조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던 캐디 노조원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한편한편 읽어갈 때마다 허구가 아닌 실화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하나 전부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소설들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다가도
변화한 시대만큼 새로운 형태의 착취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푸라기를 쥐던 손으로 계란을 던져 바위를 치다가 돌멩이로 벽을 부수는가 싶더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조금씩 인정받아 가는 현실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노동자가 등장한 이후 쌓였던 50년 억압이 전태일 을 계기로 터진지 다시 50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도 50년 뒤엔 지금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전태일 100주기 기념 소설집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꼭 그렇게 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