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한 히틀러 연구가의 죽음이 촉발한 부조리극,

혹은

사랑하는 스승이자 친구를 위한 긴 고별사

표지 中

 

 

네덜란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요스트 더프리스 의 국내 첫 출간 소설.

1983년 생으로 언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예술분야 편집장으로 활동중이면서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데 2013년 발표한 두 번째 작품 <공화국>으로 플랑드르 지역의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황극책부엉이상을 수상한 소설.

사상이 격돌하고 동료와 충돌하는, 지적 싸움으로 가득한 책으로 현재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외양과 실제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접근을 시도한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얻은 소설.

이 소설에 대한 배경 설명을 왜 이렇게 길게 하느냐.... 하면...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해해보기 위해서이다.

책의 반 이상을 읽었을때 까지도 내가 읽고 있는 것은 그저 글자 였다.

케이

이런식?!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휘몰아치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BOOK 북

이라고 읽혀졌다는 것을.

읽는 내내 당췌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덜란드 소설은 처음이라 그런가... 싶다가 또 이해가 안되면 그들의 지적싸움을 나만 이해를 못하는 건가... 싶다가 무엇을 지적하는 부조리극인건가 싶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에게 왕과 같았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은 기나긴 애도였고 슬프디 슬픈 진혼곡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코넬대학교에 있는 브리크의 아파트에서 대화를 나눈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악한 금발에 훤칠한 미남인 프리소 더포스는 일인 근위대처럼 아래층 부엌에 자리했다. 그는 브리크의 학계 측근 중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동급인 가운데 으뜸인 자'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서 항상 커피, 차, 또는 브리크가 요구했음 직한 신문이나 기사, 책을 대령한다. "나의 작은 사설 무장친위대"라며 브리크가 미소 짓는다. (p. 35)

네덜란드인인 브리크와 프리소는 미국 코넬대학교에 함께 있다. 브리크는 저명한 교수이고 프리소는 그가 만든 잡지 <몽유병자>의 편집자이다. 그들은 히틀러학에 관심이 많고 다방면에서 비평을 즐긴다. 브리크의 요청으로 프리소가 칠레로 출장을 떠났을 때 브리크는 한 호텔에서 갑자기 추락사 한다. 프리소는 칠레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느라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위대한 독재자>포스터 액자는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럼에도 왠지 나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이 집은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고 낯선 이들의 손을 탔으며, 따라서 그의 존재는 아득히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재회는 내게 덜 개인적이고 덜 '브리크스러운' 것이 되어, 더 가볍고 더 쉬웠다. (p. 61)

프리소가 완쾌되어 돌아왔을 때 브리크는 부재했다. 그가 남긴 것들만 고스란히 존재했다. 하지만 프리소는 그의 부재를 믿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그저 가볍게 일상처럼 그냥 그렇게 보기만 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말로는, 브리크의 공개 추모식에서 최고조는 놀랍게도 필립 더프리스 라는 네덜란드 연구원의 추도사였다. (p. 71)

그의 이름이 왜 굳이 언급되었을까? 기사에는 그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내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적어도 <몽유병자>에 그가 글을 쓴 적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그 사람을 안단 말인가? (p. 73)

"브리크 일 등은 애도를 표하는 바이네. 추모식에서 당신이 정말 최고였어"

"그건 내가 아니야!"

"확실해? 신문에 났던데!" (p. 106)

"어떻게 생겼던가요?" 내가 물었다.

"손님 또래에, 머리카락 색이 같고, 키도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p. 129)

 

프리소가 참석하지 못했던 장례식에서 참석했던 모든 이의 관심을 끌었던 필립 더프리스 라는 청년은 프리소 더포스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브리크의 제자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프리소는 브리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 이전에 필립 더프리스 라는 청년의 갑작스런 등장과 관심집중에 격분한다. 알지도 못하는 그 청년의 추도사로 인해 브리크가 왜곡되었다는 듯이, 갑자기 등장한 그 청년이 오랜 세월 함께 한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듯이. 그래서 그 청년과의 토론 일정이 예정되 있는 학회 참석을 수락한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목적? 빈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에 택시운전사가 던진 질문은 그 자체로는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학회에는 그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기후 변화, 질병 퇴치, 세계 평화 같은 '중대 사안'을 다룬다면 틀림없이 그렇다 -- 그런데 우리는? (p. 88)

브리크와 프리소의 대화도 그랬지만, 이 학회 참석기간 동안 설명되어지는 상황들은 그야말로 지적 싸움 이었다.

이 학회는 말하자면 히틀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학회였다. 히틀러학이 어찌나 다양한지;;; 린츠의 히틀러학자들, 빈의 히틀러학자들, 철십자훈장 히틀러학자들, 벙커의 히틀러학자들, 바이마르 히틀러학자들, 베를린의 히틀러학자들, 불가피주의자들 등등등... 이런 학자들이 정말 있단 말인가?

그들중 계보학자들은 '히틀러의 정자 세포를 레판토 해전 이전 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 있게 되었고', 해부병리학자들은 '히틀러의 남성상' 에 대해, 인식론자들은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모든 편지와 모슨 서류'에 대해, 애서가 들은 '히틀러 독서목록'을 만들고, 재봉사들은 '그가 입었던 제복을 죄다 본으로 만들어 정확하게 마름질해 냈고', 이발사들은 '사진을 자료 삼아 그의 수염을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한 수치로 재계산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화가, 요리사, 연대학자등 그야말로 거의 모든 분야가 히틀러를 연구하고 있었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지적이어서 그저 혀룰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 연구학계에는 물론 또다른 부류도 있었다. 갈수록 인가를 끌고 있는 분야로, 사실에는 관심이라고는 없으며 새로 발견된 사실에는 더더욱 관심 없는, 브리크와 나 같은 사람이 속한 그룹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정보가 무슨 소용이냐고 브리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는 사람 없는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어?' 누가 보아도 실제라고 여기는 공포 이미지가 어떤 종류의 사실성보다 가치 있고 힘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어떻게 비옥한 땅을 찾으며 나아가 그 생각이 어떻게 우리의 상상 안에 존속하느냐이다. (p. 97)

아무도 모르는 정보가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브리크의 추모현장에 없었던 자신을 아무도 모른다고 여겨질수록 참을 수 없게 된 프리소는 필립 더프리스를 향한 맹목적인 미움으로 자신이 필립 더프리스 인양 남들을 속이기고 다니기 시작한다.

펠릭스가 열여덟살 때 그의 부모님은 겨울 스포츠를 하러 가는 그 전형적인 구절양장 도로에서 운전대를 놓치고 말았고, 그는 동생들과 함께 조부모님 집에 가서 살아야 했으며, 장남인 동시에 막둥이 성인으로서 동생들을 돌보았다. 피파는 정작 나보다 펠릭스를 알고 지낸 지 더 오래되었으나 그가 어떤 시절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내 의견에 동의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몇 주 동안, 더러는 몇 개월 동안에는 애도에 접어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 꽃과 음악을 골라야 하고, 공증인과 상의해야 하며, 부고를 보내야 하고, 보험과 정기구독을 해지해야 하며,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무릇 완벽한 도피가 되어 '죽음과 부재'가 아닌 다른 무엇에 집중하도록 강제한다. 피파의 말로는, 어쩌면 펠릭스는 그 제1단계를 지나지 않은 듯하다고,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도 여전히, 삶이 또한 실제 겪어 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질서 정연한 삶을 쫓는 듯하다고 했다. (p. 122)

프리소의 절친 펠릭스의 과거 경험에 대해 여자친구 피파에게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었음에도 프리소 자신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더 안좋았다. 프리소는 먼 타국땅 칠레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브리크의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정리 절차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죽음과 부재가 아닌 다른 무엇에 집중하도록 강제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필립 더프리스 라는 청년에게 집중하고 집착한다.

필립 더프리스와 토론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할 것은 당연지사였다. 벌써 내가 그 대신에 민망함이 느껴졌다. 그가 브리크와 거의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음을, 빌어먹을 그랬던 적도 없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점과 이번에는 허풍 떨 수 없다는 점을 보란 듯이 알려 주어야 했다. (p. 141)

부재를 경험하지 못한 프리소의 일탈이 애도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내게는 꽤 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해긴 했지만... 다 읽고 이제와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종래의 이름은-주로 성인이나 순교자 이름에서 가져온-그 시기에 대대적으로 사라지고 세속적 이름이 선호되었는데, 정치권이 부추기기도 했지만 1940년대부터 전대미문의 성장을 보인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어요. 히틀러라는 이름이 그리 문제될 건 없었지요." 그녀의 이론은 브리크의 학생 한 명이 조사한 내용과 일치했는데, 히틀러 말고도 스탈린 다섯 명, 처칠 세 명, 무솔리니 두 명이 전화번호부에 있었다. (p. 204)

히틀러라는 이름을 갖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갔던 칠레에서의 프리소의 시간은 이름이라는 허명과 실존하는 존재 자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프리소의 애도적 방황을 미리 예견한 듯한 경험이었다. 갑작스런 질병에서 타인에 의해 생명이 건져지는 경험을 한 프리소가 브리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는 스스로 헤쳐 나오기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음을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혹시 다른 사람도 고려했었는지 알고 싶었다. 꼭 집어 말하면 프리소 더포스, 1991년 창간된 히틀러 르포지 <몽유병자>의 전무후무한 편집장으로, 요시프 브리크의 최근 저서 다섯 권 가운데 적어도 네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열렬하게 공동 편집하고 공동 기획하며 일일이 다 챙겼던 '일인 근위대'

"그게 누구요?" (p. 255)

 

브리크를 애도하는 과정은 곧 프리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애도기 이자 성장기로 읽혀지는 면도 조금은 있다.

연단에는 옆으로 흰 가르마를 탄 정치인 같은 인사가 샴페인 잔을 들고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그러니 우리 모두 즐거워하자'라는 뜻의 라틴어로 중세부터 부르던 유럽 대학생들의 전통적인 찬가이다. 원제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를 거침없이 선창했다. 나는 교수, 지식인, 언론인, 예술가, 학생이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감히 합창을 청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고, 또한 그들이 그 청에 응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마음으로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가 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질 줄은 더더욱. (p. 323)

우리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것이 우리의 공동체임이 틀림없었다. 우리의 새로운 공화국, 학력주의 사회, 그토록 박식한 이 모든 사람-상황이 달랐다면 말이다. 그러면 나도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을 테고, 무리의 일원으로 느꼈을 테고, 필시 브리크의 뒤에 서서 기차놀이 춤을 추며 그의 어깨를 내 어깨처럼 느끼며 들썩였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즐기지 못했다. (p. 324)

 

그들만의 학회, 그들만의 공화국. 하지만 브리크가 있었을 때는 우리들의 학회, 브리크의 왕국이었다. 프리소는 이제 왕국이 없어졌고 공화국의 혼란을 목도하는 중이다.

"너는 이 학회에 나보다 자주 왔었지? 브리크가 없는 지금은 많이 다른가? 내 말은, 내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건지, 아니면 너무 열렬한 브리크 팬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가 그렇게 사라지면, 왕이 죽은 것과 좀 비슷하지 않아? 그러면 그 자리에 뭐가 남는 거지?"

"공화국" 나는 말했다.

"공화국, 그 말은 언제 들어도 서글픈 구석이 있어. 무언가가 지나가고 난뒤에 오는 법이니까. 왕조의 뒤에, 황조의 뒤에. 공화국은 절대 저절로 존재할 수 없지. 도대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야" (p. 341)

 

돌고돌아 만난 필립 더프리스는 예상보다 더 많이 프리소를 당혹스럽게 했다. 반전이라면 나름 굉장히 큰 반전적으로. 뒷통수를 뙇

통은 비었다. 브리크는 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거기 빈에 앉아 이 환상 장례식에서 깨어났다. 아주 한참을 물속에 있다가 마침내 수면을 뚫고 공중으로 고개를 내미는 듯했다.

통은 그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필립 더프리스의 침대에서 통을 품에 안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바다에 재를 던져 버린 그 순간에 숫제 머물로 있었다. 나는 일말의 원망도 없이 유골단지를 필립의 침대 옆 협탁에 도로 갖자 놓을 수 있었다. 그 어떤 환영은, 내가 그것으로 무얼 하든지 간에 그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었다. 어떤 현실도 그것을 이기지 못했다. 내 배속에서 뭔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몇 달 동안 느끼지 못했던 초연함이라는 감정이었다. (p 376)

 

혼자만의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야 프리소는 다시 돌아왔다. 자기 자신에게로. 브리크가 없는 삶도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프리소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때로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극한 소모가 필요하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히 함께할 거라 믿었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 실제감을 인정하기까지 어쩌면 사람마다 다 다른 방식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프리소가 브리크를 떠나보내며 부른 애도가는 왕국이 멸망하고서야 등장할 수 있는 공화국에서 울려퍼지는 진혼곡이었다. 그리고 그 공화국에서는 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왕은 자연스럽게 잊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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