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기술 -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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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심리학에서 배우는 내려놓는 삶의 즐거움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덴마크에서 가장 신뢰받는 대중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라는 저자가 쓴 이 책은 언뜻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 거나 5가지 삶의 원칙이라거나 하는 식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고 'THE JOY OF MISSING OUT' 라는 원제는 '내려놓는 것의 즐거움 이랄 수 있을 것인데 '절제의 기술'이라는 어떤 기술을 알려주는 듯한 한국어판 제목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200여 페이지의 작고 얇은 이 책은 비교적 빨리 읽히는 책이었다.

현대 심리학은 주로 개인이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맥락에서 절제를 다룬다. 물론 이러한 심리적 접근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다양한 측면을 함께 다룬다. 바로 심리학과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이라는 관점을 통해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다섯 가지 삶의 원칙을 소개하려 한다.(p. 18)

절제라는 단어는 개인적인 욕망억제적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절제의 기술이라 하면 개인적 마음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절제는 개인적인 측면이 아니었다. 저자의 포부대로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이라는 다양한 분야가 응축되기엔 전개되는 내용이 짧아서 제대로 느낄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중요한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을 중요시 여긴 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은 '선택지 줄이기'이다. 이 원칙은 심리적 관점에서 자기 통제력을 구체적으로 발휘하는 법과 연결된다. 우리 마음에는 '쾌락 쳇바퀴'라는 비극적 시스템이 있다. 새로운 쾌락이나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대신, 선택지를 줄이면 된다.

두 번째 원칙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마음의 순결함은 단 한가지만 바라는 거이다' 라고 말했다.

세 번째 원칙은 '감사하고 기뻐하기' 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를 다룬다. 특히 절제(소프로시네)를 윤리적 삶의 핵심 요소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의 덕 개념과도 연결된다.

네 번째 원칙은 '단순하게 살기' 이다. 절제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다룬다.

다섯 번째 원칙은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절제는 단순하며, 그렇기에 아름답다. (p. 18~21)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이 다섯 가지 분야에서 도출되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볼 차례다.

원칙1> 선택지 줄이기 - 내 삶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심리적 준비

연구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개념의 자기 절제만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라는 결론을 내렸다. 달리 말해 자기 절제 능력이란 오롯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인격 특성이라기보다는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새로운 실험은 미셸이 했던 첫 번째 실험의 가치를 떨어뜨렸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다. 한 개인의 성공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 심리 특징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나 양육 환경 등 그를 둘러싼 여러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p. 32)

마시멜로 실험은 유명해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심리학자가 마시멜로를 주는 어른의 조건에 변화를 주었다. 신뢰할만한 어른인가 아닌가에 따라 아이들의 마시멜로 인내 결과는 유의미하게 달라졌다. 마시멜로를 기다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절제 뿐만 아니라 마시멜로를 제시하는 어른 즉 환경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었다. 드라마의 반전 결과를 본듯 이 실험의 결과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본적으로 덴마크가 이룬 높은 수준의 평등과 복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은 행복지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언급한 삶에 대한 낮은 기대 역시 꽤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유럽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얀테의 법칙은 간단히 말해 '내가 대체 뭐라고?'라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성공에만 목매는 일은 다소 천박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러한 얀테의 법칙과 삶에 대한 낮은 기대 덕에 덴마크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실망과 실패를 잘 견디는 것 같다. (p. 47)

사계절이 뚜렷하다기 보다 늘 추위가 긴 나라, 좁은 땅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거친 삶을 살아야 했던 민족, 덴마크 사람들이 '얀테의 법칙'을 체득하게 된 원인이었을까?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이래?' 라는 태도를 바탕으로 갖게 되었을까;;;

트럼프는 특히 '나는 패배를 믿지 않는다'라는 장(노먼 빈센트 필이 쓴 <긍정적 사고의 힘 이라는 책 에서)을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패배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듯하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그는 자신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할 경우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조차 당당하게 거부했으니 말이다. 민주적인 절차와 제도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끔찍한 태도였다. (p. 50)

트럼프가 필의 긍정적 사고에서 배운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긍정적 사고를 통해 자신만을 위한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p. 51)

 

트럼프는 거의 세계적인 공공의 적이 된 것 같다. ㅎㅎ 정치분석 책은 물론이고 이런 심리·철학서 뿐만아니라 소설에서까지도 요즘 읽는 책마다 자꾸자꾸 등장한다. 그리고 항상 욕을 먹는다. 아주 오~래 살건가 보다. ㅎ

행복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타인들에게 올바르게 매여 있는 상태다. (p. 54)

우리가 쉴 새 없는 유혹의 문화 속에서 사는 한, 그런 개인적인 노력은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앞으로 이 책에서 계속해서 다룰 주제다. (p. 62)

 

원칙2>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실존적 이유

덴마크 시인 피트 헤인의 시 < 다 바라지 말아야 한다>

다 바라지 말아야 한다.

너는 그저 한 부분일 뿐.

너는 세상 속 한 세상만을 소유한다.

'그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길과 하나가 되어라.

다른 길들은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늘 돌아온다.

문제로부터 숨지 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문제에 맞서라.

유한함이야말로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네가 존재하고, 행동하고, 겪어야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다.

그게 유한함이다.

우리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p. 68)

 

때로는 길고 자세한 설명보다 짧고 끊어지는 시 한편이 더 깊게 공감이 되곤 한다.

키르케고르는 종교 사상이기에, 선 또는 순결한 마음을 보증하는 존재가 신이라고 말한다. '선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맞다. 그것은 언제나 틀림없는 말이다. 그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신이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확실하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보상이라는 말과 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보상이자 목적이라는 생각과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로 연결한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신의 개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키르케고르가 우리 사회에 점점 널리 퍼지는 도구화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만은 틀림없다는 점이다. (p. 74)

키르케고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의 마음 너머엔 더 큰 세상이 있으며, 그 세상에서는 사적인 소망과 취향과는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만이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p. 96)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종교사상가 라는 점에서 그의 책을 읽어도 다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전달해주고 하는 점은 알것도 같다. 삶의 방향이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다른 객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원칙3> 기뻐하고 감사하기 - 경제학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에게 백합과 새를 스승으로 삼아 무어보다 침묵을, 말을 삼가는 법을 배우라고 간청한다. 우리가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침묵을 배울 이유가 없다. 침묵을 배울 때 비로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p. 111)

절제도 지나치면 해롭다. 절제가 신성불가침 원칙이나 금욕이 되면 절제하는 사람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절제도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자! (p. 129)

윤리는 추상적이고 지적인 게임이 아니라 실천적 모험이다. 행동의 문제다. 그리고 그 행동을 절제하는 문제다.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절제라는 품성을 갖추려면 건강하게 잘 가꾸어진 감정이 필요하다. (p. 130)

 

욕망은 경제와 밀접하다. 경제가 만들어낸 산물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선택하게 하고 욕망을 부추긴다. 저자는 경제에 휘둘리지 말것을 조언한다. 그렇다고 욕망을 억누르라는 것은 아니다. 윤리는 왠지 종교적 철학적 금욕적 느낌을 주지만 저자는 윤리적 절제를 건강한 품성에서 찾고자 한다. 건강한 품성은 스스로 알아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일관되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원칙4> 단순하게 살기 -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정치적 결정

지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안전한 나라에서, 비교적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건 다소 위선적인 일이 아닐까? 욕망을 좇는 대신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엘리트주의적이고 특권적인 태도가 아닐까?누군가는 '부족한 게 없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물론 타당한 반응이다. (p. 150)

솔직하다. 이런저런 수치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나라 덴마크에서 교수로 살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저자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들을 할법 하지 않은가? 저자가 먼저 이 의문점을 인정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태도에서 나는 왠지 여유감을 느꼈다. 뭔가 많이 가져서 느껴지는 여유감이 아닌 다른. 그리고 저자는 곧바로 답을 찾는다.

이 책에서 나는 개인이 절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주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중대한 결정은 집단적 차원에서 내려지기 때문이다. (p. 153)

저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가진 개인적 조건들이 아닌 다른 것을 보도록 유도한다. 개인적 절제는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때가 많지만 시스템적 절제는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구글에서 '단순하게 살기'를 검색했는데, 대부분 스칸디나비아풍 가구를 파는 웹사이트나 실내 디자인 웹사이트로 연결되었다. 잠시 그 사이트를 둘러본 결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단순하게 살려면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 161)

재밌지 않은가? 단순하게 살기 위해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자본주의 하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잘못 받아들여서 일수 있지 않을까? 절제와 검소를 추구하는 단순하게 살기 운동이 왜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것일까?

2300년 전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무척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로 '경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철학자 제롬 시걸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 모두 경제의 목적이 점점 더 많은 것을 갖는 데 있지 않다고 답한다. 오히려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어려움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경제를 이야기할 때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p. 162)

고대 철학은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근본적 질문들을 먼저 선점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 질문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답을 찾아낼 뿐 정답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개인적 소비선택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니 단순하게 사는 것도 뭔가 새로운 것을 더 사는 것으로 종결되기 쉽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는 '공동체의 삶을 책임지는 적극적 자유'를 말한다.

절제의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하게 살기 운동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하지만 현실에서 단순하게 살기 운동은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었다. 단순하게 살기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정말 단순하게 살려면, 개인이 상당한 경제적, 문화적 자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제대로 알려면, 토론을 하거나 민주적인 제도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삶 역시 타인이나 사회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자. 개인과 집단을 이분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둘은 사실상 상호 의존하고 있다. (p. 167)

우리 아아들이 절제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도 저절로 절제의 기술을 터득하지는 못한다. (p. 169)

적극적 자유를 누리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통찰력과 비판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자유는 연대 의식도 포함한다. 사실 연대 의식이야말로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다. 절제의 기술은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기쁘게 내려놓는 마음이다. (p. 170)

 

원칙5>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 - 일상이 즐거워지는 삶의 미학적 형식

혹시 '조모 JOMO, Joy Of Missimg Out'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오늘날 널리 퍼진 유행어인 '포모 FOMO, Fear Of Missing Out'의 반대말이다. 우리는 내려놓는 일과 뒤처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p. 176)

내려놓음, 지금, 여기 를 강조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것을 강조하시는 법륜스님이 자꾸 생각난다. 저자의 원칙들은 불교적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럴까봐 끊임없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얼마든지 계속 원해도 된다고 유혹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놓는 절제력을 기르고 의지력을 키우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 몇몇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간접적인 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개인적 차원에서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제도와 조직, 기술, 가족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p. 187)

환경을 바꾸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정치적인 선택들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회적, 문화적 환경은 개인들의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같은 거랄까.

개인은 수많은 선택지를 손에 쥔 소비자가 되어 제공된 메뉴에서 이것저것 선택해 삶을 조립한다. 그 결과 그냥 자연적으로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오늘날처럼 의례의 영향력이 줄어든 현상으로 인해, 개인이 생애 전환기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사회적, 심리적 토대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묻는다. (p. 189)

사회의 탈 의례화는 바꿔 말하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유대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철학자 앤서니 홀리웨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례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보편적인 도덕 가치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의례에 도덕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의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여야 도덕성도 발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p. 190)

오늘날 많은 사람이 혁신과 파괴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혁신이나 파괴는 우리 삶의 모든 형식과 한계를 없앨 뿐이다. 삶에 도움이 되는 혁신적 사고를 하려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p. 194)

개인들에게 자기 앞날을 위해 마시멜로를 쌓아두라고 가르치는 대신, 주변 사람과 마시멜로를 나누어 갖는 행동을 권장하고 보상을 해줘야 한다. (p. 198)

절제의 기술을 배우는 일은 단지 공허한 금욕주의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충분히 행복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p. 200)

 

 

한명한명의 개인들이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당연히 공동체적 삶은 지양될 것이다. 한명한명의 개인들이 건강한 품성을 갖고 적극적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함께살기 위한 절제를 할 수 있을때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동체적 삶은 지향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들이 어떻게 해야 많아질 수 있을까... 자각? 교육? 둘다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가능해지면 좋겠다!

ps. 표지그림을 아무리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나는 자꾸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이 떠올라서 책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어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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