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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평점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좌파vs우파의 구도가 끝나고 부족별 재배열이 시작됐다
대단히 명석한 책이었다.
책에 명석하다라는 표현이 이상할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ㅎㅎ
미국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담긴 책이었지만, 저자의 분석을 통해 미국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는 책이었다. 굉장히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저자 에이미 추아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데 그간 써온 책들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대략 훑어보니 법 관련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논쟁적인 지점들을 드러내주는 책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보건데 앞선 책들도 굉장히 흥미로울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을 널리 알린건 의외로 자녀 훈육법을 다룬 '타이거 마더' 이다. 참 다방면에서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해준다. 책 제목이 알려주듯이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집단에 속하게 되는데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상황 대처법이 달라지게 된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국가나 민족 등 커다란 집단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작게 쪼개진 부족들이다. 그것도 동일 정치적 목적으로 모이게 된 부족들.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본능이기도 하다. (p. 8)
책을 여는 첫 문장무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동안은 부족의 동일성에 관심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부족의 배제본능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우리는 왜 서로를 배척하는가?
인종은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은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 지금도 트럼프 당선의 배경이 된 부족적 정치를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어리둥절해한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에게 '사기를 당할'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소득층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었을까?미국 엘리트들이 놓친 점은 트럼프가 취향, 감수성, 가치관의 면에서 실은 백인 노동자 계급과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p. 13)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지금 상황을 만들어온 패착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온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도 상당부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 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모든 집단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런 느낌을 갖고 있다. 백인도 흑인도 라틴계도 아시아계도 남성도 여성도 기독교도도 유대교도도 무슬림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진보도 보수도 다들 자기 집단이 공격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받고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어느 집단이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고 억압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종종 다른 집단의 비웃음을 산다. 너희보다 우리가 받는 박해와 차별과 억울함이 훨씬 큰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정치적 부족주의다. (p. 18)
모두가 서로에게 자신들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 이것만으로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민족을 초월하는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동화시키는 데 이례적으로 성공한 미국의 독특한 역사는 미국이 그 외의 세계를 보는 방식에 틀을 제공했고, 미국의 외교정책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군사적, 외교적으로 개입하는 대상 국가들의 인종, 민족, 분파, 부족적 분열을 간과하는 것은 단순힌 무지, 인종주의, 혹은 자만심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온갖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미국인'이 될 수 있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인과 쿠르드인은 왜 그런식으로 '이라크인'이 될 수 없단 말인가?(p. 32)
저자는 그동안 미국이 개입했던 나라들 즉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예로 들며 왜 미국이 승리하지 못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수퍼집단'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던건지 신랄하게 평가한다. 그동안의 판단미스들은 지금의 미국 상황을 만들어냈고 미국은 다양한 부족으로 쪼개지고 있는 중이다.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촉매 중 하나다. 빈곤한 다수 대중이 있는 개발도상국에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이 존재할 경우, 예측 가능한 결과가 뒤따른다. 거의 불가피하게 강렬한 민족적 증오가 발생하고, 이는 소수 집단의 자산을 징발, 약탈하는 폭동과 폭력으로 번지며, 인종 청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여건에서 '제약 없는 자유 시장' 정책을 추구하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소수 집단의 부를 더 증가시켜서 다수 대중의 분노를 한층더 키우고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정책을 취하는 정권에 대한 분노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이 베트남에서 벌어졌다. (p. 65)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미국은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베트남에 갔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바라던 자유가 아니었기에 베트남사람들은 미군과 독립전쟁을 치룬 셈이었다. 미국이 주려던 자유는 미국식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는 베트남 사람들 모두에게 돌아가는 헤택이 아니라 상위 소수사람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었고, 게다가 그 소수 사람들은 중국출신 화교인들이었다. 공산주의대 민주주의 라는 프레임으로만 판단했던 미국이 보지못한 베트남 내부의 상황은 한국전쟁 전후의 상황을 생각나게 했다. 광복 후 친일파 제거 없이 들여온 미국식 정치는 결국 한국전쟁을 낳았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단지 급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집단이건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지배를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 법이라는 부족 정치의 근본 원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p. 81)
아프가니스탄은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로만 희미하게 알려진 곳이다. 우리는 미국처럼 분쟁지역에 개입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세계 곳곳의 분쟁뉴스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분쟁은 그저 이슬람 세력의 종교분쟁으로 대충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분쟁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 엎지락뒤치락 하는 당파싸움이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었다. 한순간 미국이 어느 한쪽에 주도권을 쥐어준다고 해서 유지될 수 없는...
베트남과 아프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곧 자신이 도우러 간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사면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깨달았다. 중동 한복판에 자유 시장 민주주의의 빛나는 모델이 생겨나기는 커녕 미국은 이곳에 ISIS가 생겨나게 했다. (p. 102)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탈식민지 국가들에게 급격한 민주화는 재앙적인 결과를 낳곤 했다. 미국이 부족 정치에 눈감은 것은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듯이 이라크에서 ISIS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p. 126)
이라크 전쟁 또한 이유도 결과도 희미하게 다가오는 분쟁이었다. 그런데 아프간과 탈레반, 그리고 이라크와 ISIS 사이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 읽고나니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냉전 때도 그랬듯이 승리주의에 취해 있던 10년 동안 미국은 부족정치의 강력한 힘을 고려하지 못했다' 라는 저자의 말은 중동에서의 실패가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현재를 타격한 배경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테러리스트의 전형적인 특질'이나 '테러리스트적 성격'을 짚어 내고자 하는 시도의 문제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테러리즘은 무엇보다 집단 형상이며 부족정치의 살인적인 표출이다. (p. 130)
부족주의는 탈인간화를 통해 공감과 감수성을 마비시킨다.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또 집단 정체성은 순응의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이 혼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개인의 책임은 집단 정체성으로 녹아들고 집단 정체성에 의해 부패한다. 그렇게 해서 잔혹하고 끔찍하 행동을 찬양하고 그런 행동에 가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p. 143)
빈곤이 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단주의를 파악하는 데서 핵심은 빈곤 자체가 아니라 집단 간 불평등이다. (p. 144)
막대한 집단 불평등을 배경으로, 극단주의 집단은 일원들에게 정확하게 기존의 사회 제도가 제공하지 않았던 것을 제공한다. 부족, 소속감, 목적의식, 증오하고 죽여도 되는 적, 기존의 양극화를 뒤지을 기회, 치욕을 우월함과 승리고 바꿀 기회 등, 이것이 알카에다와 ISIS가 사용한 공식이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적 이데올로기만 설파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집단 정체성을 통해 일원들에게 지위와 권력을 제공한다. (p. 147)
테러 부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종교적인 문제로만 판단했던 테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 폭력의 발화점은 부족함이 아니라 부당함이라는 것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시사점을 준다.
남미 사회는 기본적으로 '피부색 지배 정치' 사회다. 사회 계층의 구성을 보면 신장이 크고 피부색이 하얗고 유럽 혈통인 지배층이 맨 위에, 신장이 작고 피부색이 짙고, 토착민 혈통인 대중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단계가 있다. (p. 157)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오래도록 무시받아 온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음으로써 차베스는 사랑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은 차베스의 결점을 충분히 그냥 넘어가 줄 용의가 있었다. (p. 171)
중동 보다 더 멀리 느껴지는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식민지 기간 끝에 남미의 지배층은 유럽 백인이 되었다. 하지만 인도 카스트 제도와 또다른 피부색에 따른 구분은 놀라울 정도로 차별적이었다. 차베스의 장기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수 민중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차베스가 죽고 여기저기서 장기독재의 후유증이 터지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지금 사실상 파탄국가가 됐다. 그리고 차베스와 비슷한 다수의 선택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득권'(정치, 경제적 지배층)과 자신은 매우 다르고 심지어 자신에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이던 후보가 정치 경력도 없는 상태에서 기득권을 공격해 '혁명'이라고까지 불린 움직임을 이끌면서 대통령이 됐다. (p. 177)
물론 차베스의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이었고 도널드 트럼프의 혁명은 전혀 그렇지 않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의 포퓰리즘은 반자본조의적이지 않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증오하지 않는다. 많은 가난한 이가 부를 원하며 적어도 자녀들이라도 부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현 시스템이 그들에게 불리하도록 '조작'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라틴계이건 간에 가난한 노동자 계급 미국인은 옛날식의 아메리칸 드림에 굶주려 있다. (p. 178)
너무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백인 남성우월주의로 똘똘뭉친 거대부자 트럼프의 지지 세력이 미국의 빈민들이라는 것이.
물론 여기서의 빈민은 백인이다. 백인 엘리트층이 기득권이 되어 포용을 외치고 하나의 미국을 내세우며 통합을 요구할때 유색인종과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장하고 있을때 소외되어 왔던 유일한 계층이 있었다. 바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백인인 다수의 미국인들, 트럼프처럼 많은 것을 갖고 싶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한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불평등을 만든 부족적 간극을 확인할 수 있는 미국내 다양한 세력들을 소개하는데,
'점령하라'운동, 소버린 시티즌, 갱단과 마약의 수호성인인 '죽음의 성녀' 라는 민속신앙, 번영복음, 나스카, 프로레슬링 등에서 미국의 부족적 형태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번영복음 에 대한 부분은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지는 형태라서 읽으며 마음이 참... 안좋았다. 답답하기도 하고...
요컨대 '백인 미국인'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둘로 분열되어 있다. '농촌/중서부/노동자 계급'인 백인과 '도시/연안 지역'의 백인 사이에는 상호작용도, 공통점도, 상호 간의 결혼도 너무 없어서, 이들 사이의 차이는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민족적ethnic'차이라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자신이 상대와 반대되는 정치 부족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p. 207)
미국의 부족주의는 도널드 트럼프를 갑자기 백악관으로 밀어 올렸다. 이 부족주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불평등이 미국 백인들 사이를 어떻게 분열시키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중서부의 백인이 보기에 '연안 엘리트'는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이다. 그리고 많은 개도국에서 보았듯이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은 반드시 민주주의에 의한 반발을 불러온다. (p. 208)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성숙할때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유지는 커녕 나빠지고 있는데 그동안 불쌍하다 싶었던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것을 보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평가되지 않고 주관적인 기준에서 이해될때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남이 가진 것을 보며 분노한다. 문제는 남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서로의 눈에는 더이상 그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포용과 통합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는 이제 불평등과 분열의 나라가 되고 있다.
미국은 전례 없이 부족적인 불안감이 만연한 시기에 들어섰다. 200년 동안 미국의 백인은 논란의 여지없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다수였다. 하나의 정치적 부족이 매우 압도적으로 지배적일 때는 마음대로 남들을 박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너그러울 수도 있다. 더 보편 지향적이고 더 계몽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어느 집단도 지배력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모든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끼고 다른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일자리나 기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자격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집단 간의 제로섬 경쟁으로,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퇴락한다. (p. 224)
저자는 직설적으로 미국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세세히 지적하며 걱정한다. 하지만 끝까지 낙관의 희망또한 놓지 않는다.
과거 모든 이민의 파도마다 미국의 자유와 개방성이 승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만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유대를 잃고 실패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인가? 그렇게 해서 미국이 무엇이었는지, 미국인이 누구였는지를 잊을 것인가? (p. 260)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실패를 부인하기보다 인정하는 종류의 드림이어야 한다. 실패는 희망에 기초해 지어진 나라, 언제나 무언가 더 할 일이 있는 나라의 스토리라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꿈은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의 약속이고 이 땅에 닿은 모든 개인을 위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늘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미국인들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신화를 현실에서 실현시켜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p. 262)
미국적인 미국의 가치를 담은 시 한편 - 랭스턴 휴스 의 <미국이 다시 미국이 되게 하자> 로 마무리하는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게 던지는 자성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한국의 정치현실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울림이 컸다. 여러 면에서 지금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훌륭한 책이었다.
ps. 세페이지 넘게 감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가득 써놓고, 본문의 어떤 장보다도 긴 70여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보면서 참 열심히 쓰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러한 인재와 이러한 책이 있다는 것도 미국이 지금의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희망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