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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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흔든 역주행 베스트셀러

끔찍한 악몽이 덮친 4일간의 이야기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는 딘 쿤츠의 작품을 나는 좀 많이 늦게 알았다.

'사일런트 코너' 라는 작품으로 처음 접했는데, 그 한 권만으로도 이미 팬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일컬어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 스톤즈라면, 딘 쿤츠는 비틀스다' 라고 극찬했고 롤링 스톤스는 '미국 최고의 서스펜스 소설가'라고 칭송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가였다.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딘 쿤츠의 작품은 짜임새가 알찬 것 같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큰 틀로 짜놓고 세부적인 사건들을 엮어가는데 다 읽고 나면 똑 떨어지는 맛이 일품이다. 액션, 서스펜스, 미스터리, 로맨스, 초자연적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읽을수록 점점더 몰입하게 된다.

이 작품은 단 4일간의 기록을 담았지만 하루하루가 어찌나 박진감 넘치는지 다 읽고 나면 며칠을 몇년같이 살아낸 주인공의 심정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엔딩이라 좋다. ㅎㅎ

다른 아이를 대니로 착각한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주 전 다른 차에서도 대니를 보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히 본 학교 운동장에서도, 사람 많은 거리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대니를 보았다. 최근에는 대니가 살아 있는 꿈에 계속 시달렸다. (p. 12)

크리스티나 에번스 는 30대 중반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를 만드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대니를 키우면서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일년전 큰 사건이 발생했다. 캠프에 갔던 아들 대니가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큰 사고라 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니 시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관계자의 의견에 따라 확인하지 않고 매장했다.

쓰라린 고통과 비극, 끝없는 슬픔에서 벗어나 이제 전도유망한 앞날로 빛나는 지평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살아갈 가치가 있는 미래가 보였다. 앞으로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p. 76)

위와 같은 문장을 읽으면 항상 떠오르는 노랫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무나 상심했고 슬펐으나 치열하게 일만 하는 것으로 버텨왔던 크리스티나에게 드디어 사회적 성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조금은 자신의 미래에서 어둠이 걷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그녀에게 자꾸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경찰 따위 겁나지 않아. 제길. 우리가 누군지,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고 말하겠어? 경찰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걸. 전혀. 그걸로 끝이지. 어디선가 우리의 꼬리를 밟는다 해도, 빨리 손 떼라고 압박하면 그만이야. 이건 국가안보 사업이라고, 친구. 아주 큰 사업이란 말이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규칙을 어길 수 도 있어. 결국 정부가 만든 거니까" (p. 192)

티나(=크리스티나)는 엘리엇 스트라이커와 가까워진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두 남녀는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다. 티나는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엘리엇과 상의하게 되고 엘리엇은 그녀를 도와주려던 중 집에 괴한이 들이닥친다. 괴한이 하는 말로 미루어 보건데, 티나와 그녀의 아들 대니에게 벌어진 일은 그냥 사고가 아니었다. 변호사 엘리엇은 과거 육군 정보부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그 경력이 십수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발휘될 줄이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티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영적인 세상? 환상? 투사 경험? 그녀는 초능력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제껏 믿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신이 꾼 꿈이 다른 세계가 보내는 신호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져보고 있다. (p. 212)

아들인 대니의 죽음에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깨닫게 된 티나와 엘리엇은 거대 배후세력과 음모가 자신들 앞에 펼쳐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티나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의구심이 이해와 수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티나와 마찬가지로 믿지 못할 현상을 믿게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런 말이 있죠. '웃음은 고통받은 이들을 위한 연고이자 절망에 맞서는 최선의 방어고 우울증에 듣는 유일한 약이다'"

"누가 한 말이에요? 셰익스피어가 한 말인가요?"

"그루초 막스가 한 말일걸요" (p. 243)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미국의 희극배우가 했다는 인용구를 보면서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 속 송중기의 이미지가 엘리엇과 겹쳐졌다. 살떨리는 위기의 상황속에서 농담과 유머의 효과에 대해 ㅎㅎ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 249)

차갑게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와 한줌의 빛도 들지 않은 어둠속에서 어떤 존재가 티나와 엘리엇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 그 불길함이 안타까움으로 변하는 깨달음의 순간 티나는 그 '어둠의 눈' 과 한편이 된다.

그는 동료 모두가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우파일 거라 예상했다. 첩보 분야에 좌파들이 배치되다니, 이럴 수가. 그러다 케네벡은 깨달았다. 극좌와 극우는 기본적으로 같은 목표 두 가지를 공유한다는 사실 말이다. 둘 다 이 사회를 원래 생긴 그대로가 아니라 더욱 질서정연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강력한 정부가 국민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길 바랐다. 물론 자세히 보면 좌파와 우파가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의 유일한 논쟁점인 '과연 누가 지배계층이 되는가'는 일단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다음 일이었다. (p. 297)

거대 배후세력과 정부가 연결된 만큼 권력에 대한 비판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논리에 새삼 좌절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배층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두사람 그저 평범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위협할 수 있음을 소설은 증명한다.

이 둘은 대체 누구지?왜 어딘가 구석에 박혀서 숨어 있지 않는 거지? 왜 무서워 벌벌 떨지 않는 거지? 크리스티나 에번스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 전직 쇼걸이라고! 알렉산더는 쇼걸이 평균 이상으로 똑똑할 수 없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스트라이커가 제아무리 육군 정보부에서 일했따 하더라도 그건 아주 오래전 일 아니던가. 그렇다면 대체 저들의 이런 힘과 배짱과 인내심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분명 두 사람은 알렉산더가 알지 못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따. 그가 알 수 없는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들이 가진 이점이 뭐냔 말이다. (p. 399)

아무렇게나 살인을 지시하는 싸이코패스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이점,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 죽을때가지 알지 못할 그 감정!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품고 사는 바로 그 마음!

리첸이라는 중국인 과학자가 미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는 중국에서 10년 만에 새로 개발한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생물무기 정보가 담긴 디스켓도 가지고 왔지. 그 물질은 우한 외곽에 있는 DNA 재조합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우한-400'이라는 이름이 붙었소. 그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미생물 중 400번째로 개발된, 독자 생존이 가능한 종이었기 때문이오. (p. 435)

이 책의 띠지에 써인 홍보문구가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 단독 한국어판 출간' 이었다. 아마도 위 단락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저 우한-400은 좀많이 다르다. 그래서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40년 전에 예견했다고 하기엔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 우한 이라는 지역명이 등장하고 그곳에 연구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처음 지명을 알게 된 나로서는 우한 이라는 곳이 이미 그런 위험성을 지닌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다.

이 책은 40여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198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나 1996년에 작가가 시대변화를 반영한 개정판을 냈고 그것이 번역된 작품이라서인지 그렇게 오래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시간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지금의 현실 이야기인것처럼 생생했다.

비교적 초기에 발표되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보니 약간 어설픈 부분이 살짝 있긴 했지만 이 소설의 강력한 흡인력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발표를 하는 대가의 작품은 최근작이 아주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하지만, 40여년 전 초기작이 이정도라니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역시 딘 쿤츠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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