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작업실
소윤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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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에세이

경기도 양평에 있는 집이자 작업실인 호두나무 작업실에 살고 있는 저자는 순수미술과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중인 화가이다.

흑백 세밀화로 그려진 표지가 너무 예뻐서 눈길이 갔다. 게다가 화가가 쓴 에세이라고 하니 책속에서 간간이 그림도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세밀화의 예쁜 표지껍질을 벗겨내면 이 책의 숨겨진 진짜?!표지와 제목이 등장한다.

<붓끝을 따라가는 화가의 하루하루>

평온한 시골의 전원풍경을 배경으로 한 꾸밈없는 저자의 옆모습 사진은 이 책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하루하루를 읽다보면 여유라기 보다는 만족을 외로움이라기 보다는 고독을 여하튼 소박하지만 즐기는 삶에 대해 느끼게 된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림은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다 한들, 그 누구도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글은 매우 직접적인 전달 방식이다. 한평생 그림 뒤에서 은둔하듯 살아온 내가 민낯 같은 사적인 얘기를 풀어내야 한다니, 부담스러워 현기증이 났다. (p. 5)

이 책은 시골에 살며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한 오지 여행자의 생활 수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어딘가에서 화가의 삶을 꿈꾸고 있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응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p. 7)

 

집필을 시작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간 후에야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에세이 출간 제의를 받고 기뻤다고 한다. 그동안 책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느라 책을 꾸준히 접해 왔고 칼럼도 간간이 쓰고 강연도 종종 해왔음에도 자신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출판한다는 것은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었을 것도 같다. 아무래도 본업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므로. 하지만 저자의 책은 짧으면서도 정갈하게 다듬은 흔적이 역력했고 화가의 생활에 대한 추상성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성으로 내려오게 하여 사는게 뭐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언가 가고 나면 또 다른 것들이 생을 채워가리라. 그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인생이 얼마나 짧은 여정이었나를 회고하는 나이가 되면 아지랑이처럼 모든 것들이 피었다 사라지는 허무한 꿈이려나. (p. 38)

의욕충만하고 생기발랄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기때문에 중년의 인생이 알려주는 것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갈수로 느끼는 거지만 연륜은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발휘하는 듯 하다. 살다보니 정말 그렇다, 나이 좀 먹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려운 것, 낯선 경험들을 겪고 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의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억지스러운 용기보다는 익숙한 일상들이 더 중요해지는가 보다. 남 보기에 예쁜 옷보다 내 몸에 익숙하고 편안한 옷이 좋은 것처럼. 해낸 일은 잘한 것이 되고, 하지 않은 일도 크게 후회로 남지 않는다. (p. 51)

책속에는 그림보다 저자의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일상의 사진이 저자가 사는 환경 덕인지 자연친화적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에세이글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편안함을 전달해 준다. 하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화가로서의 모습이 엿보일때였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모습이니까.ㅎㅎ

 

 

어떤 경로로든 책들은 끝도 없이 쌓여간다. 집 공간을 차지할 만한 가치를 가진 책들만 남겨진다. 실로 많은 분량의 서적들을 부정기적으로 처분하곤 한다. 책들을 정리하며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때가 있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 생명을 가졌던 나무가 버려진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책장에서 오래도록 버틸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수십 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나로서는 알 수도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생이면 족하리라. (p. 114)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보니 나도 부정기적으로 책을 처분하곤 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책이 어느정도 쌓였다 싶으면 남길 책과 떠나보낼 책을 분류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책 한권 한권 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여러 사람의 노고가 쌓였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집에 그 노고를 다 모셔둘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안타깝지만 보낼 책은 보내야 한다;;;

시골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원치 않는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헛되이 시간을 버리는 것이 더 무섭다. 그들도 나도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일 뿐이다. (p. 191)

보리 라는 반려견과 외딴 집에 사는 것에 저자는 만족을 느끼는 듯 하다. 집이 곧 작업실이라해서 계속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작업실이 곧 집이라 해서 계속 늘어져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감탄스러웠다. 작업일지대로 일을 하고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텃밭도 가꾸고 그림보다도 여행을 좋아하는 모험심까지 갖춘 저자도 나도 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다른 존재라고 여기면 그 뿐이다. 각자의 삶을 기성복처럼 맞출 필요는 없는거니까.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자신이 파둔 굴속에 처박혀 세월을 보낸다. 굴 밖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간다. 하지만 그 굴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재미난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은밀한 축복이다. (p. 210)

책을 읽어갈수록 표지가 전해주는 세밀화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는 화가겠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책을 안본지 오래되서 저자가 그려넣은 일러스트가 있는 책을 본 기억은 없지만 살짝 등장하는 저자의 그림들을 보면서 더욱 ㅎㅎ

 

 

글 간간이 자신에 대한 묘사들이 있었는데, 책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저자의 정면사진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조금은 펑퍼짐한 중년의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왠걸 전혀 아니셔서 ㅎㅎ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책과 그림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에세이였다. 개인적으로 느낀 가장 큰 여운은,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해 사는 사람의 일상을 봄으로써 내가 그러한 삶을 선택한다면 혹은 선택했었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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