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의 눈으로 본 위선에 찬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예민한 성찰과 젊은이가 겪는 성장의 아픔!

표지 中

 

 

고전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들이고 다수의 독자들에게 칭송을 받은 작품들인데다 작가들도 대부분 저세상분이시니 나와 같은 일개 독자 한 명쯤 마음으로 감동하지 않는다 해서 문제가 되진 않을것이다. (사실, 현대 소설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하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성의 없는 책들은(안타깝게도 그런 책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혹평을 하게 되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조심하는 편이다. 아무리 먼지같은 존재의 독자이지만 그래도 왠지 안좋게 말하는 건 미안해서?!;;;)

그렇다. 나는 이 책에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감동은 커녕 멘붕이 올 지경이었다.

앞서 읽었던 책들 중에 나를 멘붕에 빠트렸던 책의 으뜸은 다자이 오사무 의 '인간실격' 과 '사양' 이었다. 이 두권의 책은 읽는 내내 한 글자에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공감은 커녕 끝도 없는 냉소와 허무 속에서 무책임의 절정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위대한 개츠비' 였다. 피츠 제럴드의 단편 몇편들을 읽을땐 좋았는데, 이 작품만은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목이 개츠비의 집념 정도였다면 아마도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하다니 흐음...

그리고 이제 한 권이 더 추가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이 왜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책으로 꼽혔으며 지금도 추천도서 목록 상위권에 있으며 샐린저 라는 작가를 칭송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열여섯살 소년의 정신분열적 방황기를 읽는 동안 내 정신도 분열될 뻔 했다.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홀른 콜필드 는 키가 훌쩍 큰 미남형의 마른 체형인 열여섯살 소년이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재학중인 펜시 고등학교에서 곧 퇴학당할 예정이다.(한 과목만 제외하고 전부 F학점을 맞아서) 이번이 세번째 퇴학이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 자란 이 소년은 폐병이 걸릴 정도로 담배를 피우는 골초에 어지간한 술로는 취하지 않는 주당이며 세상만사 모든 것이 불만스럽다.

나는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있다. "젠장!" 하고 나는 말했다. 실은 지금도 "젠장!"이라는 어휘가 걸핏하면 튀어나온다. 워낙 아는 어휘가 적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이에 비해 때로 너무 어리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지금은 열일곱 살이지만 아직도 열세살 짜리 소년처럼 행동하기 일쑤다.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나는 키가 6피트 2인치 반이나 되는 데다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그렇다. 머리 한쪽, 그러니까 오른쪽 머리에는 새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도 가끔 열두살 짜리처럼 행동하곤 한다. 다들 그렇게들 말하지만 역시 아버지가 앞장서서 그렇게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지만 절대로 진리는 아니다. 어른들이란 자기네들 말이 절대진리라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긴 나잇값을 하라는 말을 들으면 하품만 나오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때로 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때도 있다. 이건 정말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이 뭔들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있냐마는. (p. 18)

열일곱 살이 되고 보니 열여섯살때의 행동이 열세살짜리 같았다고 회상하는 이 소설은 열두살짜리 어린애보다 더 철없는 행동을 일삼으며 어른들은 죄다 비웃는 정체성 없는 자아를 가진 소년의 분열기 이다.

나는 그동안 창문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맨손으로 눈을 뭉쳤다. 뭉치기에 알맞은 눈이었다. 나는 그 눈덩어리를 아무 데도 던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길 건너편에 주차한 차에다 그 눈을 던지려고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 먹었다. 차들이 너무나 하얗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다음엔 소화전에다 던지려 했는데, 그것 역시 너무나 하얗고 깨끗했다. 결국 아무 데도 던지지 않고 단지 창문을 닫고 눈뭉치를 더욱 딱딱하게 만들면서 방안을 서성거렸을 뿐이다. 얼마후 나와 브러서드와 애클리 셋이서 버스에 올랐을 대도 나는 여전히 그 눈덩어리를 쥐고 있었다. 운전사가 문을 열고는 나더러 그것을 밖으로 던져버리라고 했다. 이건 어떤 사람에게 던지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란 절대로 남을 신용하려 들지 않는다. (p. 60)

누구한테나 시비를 걸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음담패설에 환장하면서도 진짜 사랑에는 빠지지 못하고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년의 예민함과 신경쇠약적 반응은 순수한 것을 만났을때 그나마 누그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어른들에 대한 멸시는 여전하다.

나는 그때 겨우 열 세살이었는데, 내가 차고의 유리를 모조리 박살내는 바람에 모두 내게 정신분석인가 뭔가 하는 것을 받게 하려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정말 비난할 뜻은 없다. 동생이 죽은 날 밤 나는 차고 안에서 잤는데 주먹으로 창문을 모조리 때려부쉈던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그해 여름에 산 왜건의 유리까지 박살내려 했는데 이미 내 손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짓을 하다니 참 어리석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앨리를 모르니까 내 심정을 이해 못 할 거다. (p. 63)

홀른에게는 작가인 형과 앨리라는 남동생 그리고 피비라는 막내여동생이 있다. 앨리는 병으로 일찍 떠나던 밤 홀른은 난동을 부렸고 앨리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앨리의 죽음에 대한 이별을 하지 못했다.

이 세상의 엄마란 누구나 약간씩은 머리가 돈 존재이다. 그러나 나는 모로의 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괜찮은 여자였다. (p. 88)

나는 옆자리에 있는 그 무당 같은 세 여자들에게 다시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금발의 여자에게 그랬다는 뜻이다. 나머지들은 전혀 입맛을 돋우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이것들이 갑자기 바보처럼 함께 킬킬거리는 것이었다. (p. 109)

여자란 바로 그런 것이다. 여자들이 무엇인가 예쁜 짓을 하면 별로 볼품이 없거나 바보 같은 것이라도 남자는 그만 그녀에게 반쯤 미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법이다. 여자라는 것. 제기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족속들이란 말이지. 정말이라니까. (p. 113)

여자는 머리가 좀 둔하다. 잠시 끌어안으면 여자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만다. 여자는 흥분하면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p. 142)

 

기차에서 만난 동급생의 엄마가 예쁘다는 이유로 여자로 인식하고,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을 속으로는 깔보면서 춤을 추고 싶어 끌어들이는 홀른은 실은 여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마초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갖 무시와 쎈척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겉모습일뿐 이해와 공감이라는 단어를 아는지나 모르겠다. 하지만 수요일에 퇴학당하기로 되어있음에도 일요일에 기숙사를 도망쳐 나온 이유는 여자때문이었다. 룸메이트가 자신의 친구인 옆집 소녀 제인과 데이트하러 나갔다온 것을 알게 된 후 괜한 주먹다툼을 하고 무작정 뛰쳐나온다.

제인 앞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회만 생기면 여자를 실컷 놀려주는 걸 즐기지만, 제인에게만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는 바로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여자다. 이따금 여자들이 놀림받는 것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그들은 놀림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귀면서 한번도 놀려본 적이 없는 상대라면, 새삼스럽게 놀려댈 수는 없는 법이다. (p. 121)

제인을 생각하고 룸메이트에게 화가나고 제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고 싶지만 홀든은 결국 제인에게 전화도 못했고, 제대로 고백해본 적도 없다.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 그 생각이 자기중심적인 제멋대로의 생각이라서 문제라면 문제랄까... 홀든은 그 누구와도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어린애가 걸작이었다. 보도가 아니라 차도 위를 걷고 있었는데, 인도와 차도를 경계짓는 화강암턱 바로 곁이었다. 그애는 모든 아이들이 그러듯이 직선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걸으면서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애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아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호밀밭을 걸어 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모고리도 아주 예뻤다. 아이는 별 이유없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들은 붕붕 하며 곁을 스쳐 가고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주변을 요란하게 진동시키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애는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면서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하고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내 마음을 한결 명랑하게 해주었다. 더 이상 나는 울적하지 않았다. (p. 174)

홀든의 타락적 분열의 시간 사이사이 등장하는 순수한 장면들은 홀든의 이상향이다. 어린이의 모습으로 죽은 앨런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지나가는 어린애의 노랫소리에 우울함을 떨쳐내며 추운 겨울 연못가의 오리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그때만이 홀든의 진심이 엿보인다. 수시로 우울하고 수시로 화가 나는 홀든의 기분은 대체적으로 외롭고 처참하다. 하지만 홀든은 자신의 오락가락 하는 기분조차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

제기랄, 그녀는 지독히 화가 났다. 나는 정신없이 사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사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구 울기까지 했다. 이 지경이 되자 나도 약간 겁이 났다. 그녀가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내가 저와 함께 있으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해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며 고자질하지나 않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p. 200)

부모의 돈으로 호텔을 잡아 숙식하고 택시를 타고 다니며 공연을 관람하고 술 마시는 시간 속에서도 겁이 나는 유일한 대상은 부모님이다. 그 무엇에서도 독립하지 못한채 투덜대기만하는 캐릭터들이 나는 참 개인적으로 별로다.

그런데 문제는 내 주소록에는 불과 세 명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인의 전화번호, 엘크턴 힐스에서 나를 가르친 앤톨리니 선생과 아버지의 회사 전화번호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주소를 적어두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p. 204)

끊임없이 누군가를 집적대고 시비걸면서 끊임없이 외로운 것을 누구 탓만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갑자기 드는 생각은, 그 누구의 주소록에도 홀든의 전화번호는 적혀 있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사실 그랬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미치도록 좋아한다. (p. 211)

역시 나랑 안맞는 소설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와 개츠비의 소년시절 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을 주는 호밀밭의 파꾼이라는 소설은....

"야, 한 가지만 분명해 해두자. 오늘 밤에는 콜필드식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을 거야.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될래?" (p. 218)

"지난 번 만났을 때 네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

"정신분석인지 뭔지를 받아보라는 말?" 내가 물었다. 그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그 녀석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정신분석인가 뭔가를 하는 의사였다.

"별로 하는 것은 없을 거야. 다만 너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고 너도 이야기만 하면 될 거야.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스스로 네 정신의 형태를 인식하도록 도와줄 거야" (p. 221)

 

열세살때도 그랬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내 불러냈을때 받은 조언도 그렇고, 홀든은 아무래도 정신분석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듯 한데...

"오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싫다는 거야?"

"아냐. 그건 아냐. 그렇게 말하지 마. 왜 그런 말을 하니?"

"좋아하지 않으니가 그렇지. 오빠는 어느 학교든 다 싫어해. 오빠가 싫어하는 것은 백만 가지는 될 거야. 그냥 싫어하고 있어"

"아냐, 그게 바로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야. 바로 그거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지?"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봐"

"한 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 말야? 좋아, 말하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p. 251)

 

이도저도 다 귀찮아지고 집에 가기는 두렵고 그냥 어딘가 막연히 먼 곳으로 떠나볼까 싶던 차에 마지막으로 여동생 피비를 만나러 간다. 밤에 몰래 숨어들어간 집에서 자고 있던 피비를 깨워 하는 대화는 이 작품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장면이지 싶다. 순수한 어린 여동생 피비는 홀든 보다 더 사리판단을 잘 하는데, 결국 홀든을 현실에 붙잡아 준것도 어린 피비였다. 홀든에게는 늘 동심이 필요하다.

"지저분한 말씨 좀 쓰지 마. 좋아, 그럼 다른 것을 말해봐. 장차 되고 싶은 것 말야. 이를테면 과학자라든가 변호사 같은거" (p. 255)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줄까?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줘?"

"뭔데? 욕 좀 하지 말고 말해봐"

"너 그 노래 알고 있지?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하는 노래 말야. 바로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그건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라는 노래야.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만나면' 을 '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p. 256)

 

피비의 질문은 좋아하는 것도 되고싶은 것도 없는 홀든을 생각하게 한다. 홀든이 유일하게 피비와만 소통하는 것은 아마도 피비가 어린 어린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심없이 살 수 없는 홀든은 어린이 상태에 머물러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이 커버렸다. 어린이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 파수꾼은 홀든에게 필요한 존재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홀든의 멈춰버린 성장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서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실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내말 알겠니?" (p. 276)

주소록에 있던 세 번호 중 제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아버지에겐 전화를 걸 수 없었고 선생에게 전화를 건 홀든에게 지금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전에 그만둔 학교의 선생님이었음에도 앤톨리니 선생은 집으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성심껏 홀든에게 조언해주려고 노력한다.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만 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냐. 내가 말하려는 것은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밑바탕에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이런 경우는 불행히도 드문데- 단지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만 가진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더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학식이 없는 사상사들보다 겸손하다는 점이야. 알겠니, 내 말을?" (p. 279)

"학교 교육은 그 외에도 도움이 되지.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계속하면 자기 머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고 또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지 않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일정한 크기의 자기 머리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을 일일이 시험해보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해주지. 자신의 진정한 용량을 알게 되고 거기에 따라 자기 머리를 활용하게 되지" (p. 280)

 

하지만 홀든은 앤톨리니 선생의 집에서도 도망쳐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피비를 보고 떠나려고 피비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홀든은 피비를 만난다. 떠나겠다는 홀든에게 따라가겠다는 피비. 홀든은 화도 내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피비는 막무가내다. 피비는 동심을 지닌 어린이. 홀든은 동심에 약하다. 그리고 동심만을 지향한다.

"아까 말한 것 정말이야? 정말 아무 데도 안가? 나중에 진짜 집으로 갈 거야?" 하고 피비가 내게 물었다.

"그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피비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사실 나중에 집으로 갔으니까. (p. 310)

피비가 목마를 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행복을 느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여하튼 피비가 파란 외투를 입고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이건 너무나 멋있었다. 정말이다. 이건 정말 보여주고 싶다. (p. 311)

 

회전목마를 타는 피비를 보며 홀든은 행복해진다.

사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나는 그런 일에 대해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여기에 등장시킨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에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우스운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 313)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곧 학교로 돌아갈 예정임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여운을 남긴다. 이제 홀든은 그마저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이 홀든에게는 그런 의미였을까...

1919년에 태어나 1940년에 등단했고 1951년에 펴낸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명성을 얻은 샐린저는 은둔의 작가로 유명하다. 1965년이후 사회를 떠나 은둔을 시작한 샐린저는 이후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고, 그 누구와도 만나거나 교류하지 않은채 40여년 동안 절필하고 살다가 2010년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학창시절도 입학과 중퇴를 거듭하며 순탄치 않았고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 부부생활도 평탄치 않은채 결국 긴 세월 홀로 은둔하다 세상을 떠난 작가의 삶이 마치 홀든의 노년기 모습같아서 작가의 생애가 궁금하지만 알려진 것이 없다. 작가는 자라지 못한 자신을 숨긴채 살다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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