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스페이스 - 나를 치유하는 공간의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나를 치유하는 공간의 심리학

The Science of Place and Well-being

 

 

저자는 인간의 행복에서 장소와 공간의 역할, 그리고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이 치유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정신건강 전문가라고 한다. 매슈 윌슨과 함께 <셀CELL>에 발표한 획기적인 논문 '신경과학과 건축, 공통의 토대를 찾아서'로 '신경건축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태동을 알렸다는데, 신경건축학 이란 생소한 용어가 등장한다.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 부른다. (p. 6)

이 책은 2003년 무렵 태동한 신경건축학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지침서다. 건축과 공간이 인간의 뇌와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유전자 수준에서 몸 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친절하면서도 폭넓게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최신 신경건축학 연구 결과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삶을 영위해야 행복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p. 7)

 

이 책을 감수한 정재승 박사의 추천의 글을 읽으며 기대치가 높았었다. '신경건축학' 이란 분야 자체가 생긴지 얼마 안되었고, 2009년에 출간됐던 책이 올해 재출간된 것이기에 그간의 보충내용이 있으려나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힐링 공간을 알려주는 공간적 결과를 담은 것이 아니라 힐링을 위해 공간이 의미가 있다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뇌과학적 책이었다.

<1부 치유가 시작되는 곳, 당신의 머릿속> 에서는 심리학이 건축을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드러낼 수 있을지 살펴보면서 신경건축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시각적 요소들이 치유에 어떤 영향을 주고, 우리가 귀로 듣는 청각적 요소들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며, 손끝과 코끝을 느끼는 촉각과후각적 요소들이 어떤 치유적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물리적 공간이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문제를 다룬 최초의 연구 결과가 1984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되었다. (p. 37)

인간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이용하여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각 감각이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의 개별 특징들을 감지하고 나면 우리의 뇌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특징들을 통합하여 풍부한 색채와 입체음향을 지녔으며 냄새가 나는 3차원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는 우리가 어떤 곳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주변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감각을 통해 우리가 인지하는 그림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럴 때마다 뇌는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업로드하고, 그 정보를 끊임없이 갱신되는 세상의 모습 속으로 통합한다. (p. 168)

 

'마지막 잎새' 라는 소설이 갑자기 생각났었다. 창밖에 담벼락만 보이는 낡은 방일지라도 그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잎 한 장이 주는 치유의 힘은 컸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장소들은 대개 자연이 있는 곳들이다. 눈으로 보는 초록이나 파랑과 귀로 듣는 새소리 물소리와 코끝에 스치는 숲냄새 바다냄새 는 그것들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을 연상시킨다. 각각의 감각들을 통합시키는 것은 결국 공간에서 이루어지므로, 공간에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치유능력이 있었다.

<2부 공간과 기억이 빚어내는 마술> 에서는 스트레스란 무엇이고 그 스트레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요소들을 알아야 하는지 살펴보면서, 현대 건축의 심리학적 모험으로 디즈니의 테마파크를 예로 들어 환상적 공간이 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길찾기의 신경과학과 연결지으며 기억에 대한 뇌과학을 설명한다. 공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스트레스와도 연결되고 스트레스 해소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3부 힐링 스페이스를 찾아서> 에서는 사람들이 왜 산티아고로 떠나는지 에 대해 기적의 사례나 평온과 명상이 주는 치유의 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몸 속 치유의 경로를 깨우는 법으로 플라시보 효과와 학습되는 면역 그리고 호르몬을 살펴본다.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살고 있는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한다.

19세기 의료에서 세균이론을 이해하고 감염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21세기 의료에서는 병원 환경에 존재하는 스트레스 요인들을 이해하고 감소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 359)

몸이 아픈 환자들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 모두를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건강과 치유의 방정식에 마음이라는 요소를 다시 불러들이고, 더불어 감정과 물리적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방식까지도 끌어들여야 한다. 건축공간이 기분과 생리적 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기분과 생리적 반응은 환자와 의료진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면, 정서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공간을 짓는 데 돈을 들일 근거와 동기를 얻을 수 있다. (p. 367)

 

과학적인 의료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에서 알수 있듯이 전쟁에서 부상당해서 죽는 것보다 부상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의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한 사망율이 더 높았기에 나이팅게일의 환경개선책 만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감염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위한 병원이 필요한데, 완연한 자본주의 사회라서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병원이라는 건축물에 대해 환경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대는 비용지출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신경과학 연구는 깊이·빛·색·물체·장면·랜드마크에 대한 시지각, 소리와 정적에 대한 청지각, 냄새의 인식, 길 찾기, 명상의 효과와 치유에 대한 믿음 등 우리가 감각지각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기초로 더 깊이 있는 혁신을 이끌 것이다. 두뇌의 모든 기능에 도움을 주도록 병원 환경을 설계하면 몸이 원래 지닌 치유력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혁신안은 스트레스와 불안이라는 짐을 덜어주고, 지각이나 기억의 손상을 극복하게 해줄 디자인 요소들을 내놓을 것이며, 그 결과 약물치료, 내과 및 외과적 합병증, 의료 사고 및 과실의 발생률을 줄여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복감을 키워주고, 치유 속도를 높여주고, 노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연장해줄 것이다. (p. 380)

1부의 앞부분 조금을 제외하고는 본내용의 대부분이 뇌과학 신경과학적인 내용들이라서 공간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싶었었다. 이 단락을 읽고나서야 앞서서 공간과 큰 관계 없어보이는 깊이·빛·색·물체·장명·랜드마크·청지각·후각·길찾기·기적과 명상 이야기를 왜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병이 나면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병에 대한 치료말고 몸이 지니고 있는 치유력을 설명하기 위해 이 모든 요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몸이 지닌 그 치유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공간의 힘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더 거시적으로 봤을 때, 병원의 설계를 변경해서 전염병을 뿌리 뽑으려던 19세기의 노력에 견줄 만한 것이 있다. 바로 도시 전체의 설계를 바꾸는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선견지명이 있는 과학자들과 도시계획 설계자들은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바꿔 전염병을 통제하려고 애써왔다. (p. 388)

일단 병원의 건축적 요소들에 신경을 먼저 써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도시 설계를 생각해봐야한다. 병원에선 치유를 돕겠지만 도시에선 힐링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능력이므로.

스모그가 심한 도시는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베이징, 카이로, 자카르타, 상파울루, 서울 등이다. (p. 401)

뉴욕 주민의 기대수명은 미국 내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뉴욕이 치유의 장소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 404)

 

오염된 환경이야기를 하면서 스모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기오염의 사례 사진으로 도시 서울의 스모그 사진이 실려있는 것을 보면서 서울이 이런 예로 인용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에 비교되는 도시 뉴욕의 변화에는 크게 감탄한다. 하지만 기후협약에서 빠져나간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다.

19세기가 도시 전염병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은 도시 전염병이 소탕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전염병 확산이 증가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질병을 심화시키는 사회 기반시설과 환경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 지도자와 보건정책 전문가들이 할 일이 될 것이다. (p. 412)

신경건축학이 바탕이 되어 건설된 병원과 탈바꿈할 도시를 그려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환경을 생각해본다. 감추어져 있는 치유의 메커니즘을 증진시키는 데에 공간이 주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공간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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