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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나만 따라와 - 십대와 반려동물 서로의 다정과 온기를 나누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8
최영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3월
평점 :
십대와 반려동물
서로의 다정과 온기를 나누다
-일곱 작가가 들려주는 반려동물 이야기-
"우린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 절대 걱정하지 마"
제목부터 따스한 색감의 표지까지 책읽기전에 미소부터 먼저 지어지는 책이었다.
예전에 티비에서 봤던 유아교구광고한편이 생각난다. 한 아이가 엄마와 걸어가는데 커다란 보름달이 아이를 계속 비춰주는 장면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자꾸 달이 나를 따라와?' 엄마가 말했다. '네가 예뻐서 그래' ^^ 아이의 웃음과 따듯한 이미지들이 보기 좋은 광고여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따라오던 달이 자신만을 비추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나이에 만난 반려동물들은 정말 자신만 따라다녔다. 왜 자꾸 나만 따라오냐며 때로는 맞아주고 때로는 떨쳐내도 계속 반려인만 바라보는 그 반려동물들의 이야기 일곱 편이 이 책속에서 펼쳐진다.
처음 만난 여덟 살, 그 가을 이후로 퍼슬은 1년에 두 번씩 멋대로 나를 찾아왔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봄과 가을에 내 앞에 등장했다. 등굣길에 따라붙을 때도 있었고 밤중에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오늘처럼 길가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했다. (p. 16)
녀석은 해마다 침으로 축축한 도토리를 내밀었고, 내가 받아 주지 않으면 내 발치에 굴려놓고 돌아갔다. 늘 알이 굵은 도토리였다. (p. 17)
초등학교 시절 내내 녀석의 출몰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넌더리가 난다. 야, 네 동생 쥐 왔다. 얼른 가서 찍찍이랑 놀아줘야지 (p. 19) <누덕누덕 유니콘>
퍼슬은 공생동물로 만들어진 초창기 모델 설치류 동물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니콘이 탄생하자 저마다 공생동물로 유니콘을 선택했다. 재하가 어렸을때 돌아가신 엄마가 재하의 공생동물로 퍼슬을 신청해놓았었다는 것을 재하는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모두들 갖고 있는 유니콘이 갖고 싶었고, 유니콘을 입양할 수 있는 금액이 모아진 열다섯살에 퍼슬을 파양신청하고 유니콘 입양신청을 한다. 그리고 파양된 퍼슬을 잡기 위해 사냥꾼이 숲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왜 퍼슬은 왜 꼬박꼬박 재하를 찾아왔던 것일까?
퍼슬이 찍찍거리며 몸을 떨었다. 녀석의 몸 어디선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 작별 인사를 하면 됐다.마지막 인사를 나누겠다고 영기까지 왔으니까. 하지만 호흡이 한참 거칠어지다가 점점 가늘어지는 퍼슬을 보면서, 내가 상수리 숲으로 온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p. 35) <누덕누덕 유니콘 - 최영희>
유행하듯 소유하는 반려동물, 외형만 보고 갖고 싶어하는 반려동물에 대해, 반려동물은 함께 하는 것임을 그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였던 첫 작품부터 마음이 울렁거렸다.
송이는 가장 원하는 것이 산책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것도 산책이 되어 버렸다. 정말 공놀이가 재미있지만 그것만큼 무서운 놀이도 없을 것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송이의 등 뒤로 서서히 원이 형이 겹쳐지다, 이내 익숙한 열일곱의 소년이 되어 갔다. (p. 63) <피라온>
미르의 엄마는 어느날 공사장에서 떨고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 데려온다. 이름을 붙여주고 정성것 보살펴주어도 강아지는 버려진 두려움에 떨며 곁을 주지 않았다. 그 강아지에게 유독 마음이 갔던 미르는 버려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송이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송이는 한 마리의 강아지였지만, 하나의 반려동물이었지만, 자신 또한... 어쩌면 비슷하게...
나는 피라온이었다. 인간의 DNA 데이터를 분석해 특수 3D HB 프린터에 입력해 만든 인간의 복제품에 불과했다. (p. 69) <피라온>
인간 복제품... 아이를 원하거나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인 피라온. 어쩌면 반려동물처럼 피라온을 구입했던 사람들... 그렇게 미르가 식당에서 알게 된 원이 형은 가족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피라온을 입에 올리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저 아이는 인간을 위한 복제품이 아니에요. 기계나 제품도 아닙니다. 강미르 우리 부부의 아들입니다. 앞으로는 꼭 미르라 부르세요" (p. 79) <피라온 - 이희영>
피라온인 미르에게는 변함없이 따듯한 가족이 있었고, 미르는 송이에게 그마음을 전달해주면서 자신의 불안감 또한 공유하고 싶었다. 진정한 반려감은 아마도 가족애인듯...
이민자의 아들, 내가 이 땅에서 얻은 또 다른 이름이다. 대 놓고 무시하는 인간도 있고 뒤에서 무시하는 인간도 있다. 간혹 우리는 동등한 지구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글쎄다. 인종차별을 운운하면 모두들 놀라고 경악스러워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과연 몇이나 날 똑같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버지는 말한다. 세상 어디든 똑같고 세상 어디든 불평등은 존재한다고. 그래서 감내하라는 것인가? 오케이! 감내하라면 해야지. 그런데 나는 늘 아프다. 늘 상처받고 늘 움츠러든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p. 88) <스위치, ON>
외국에서 동양인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아마 힘들겠지... 생면부지의 동네로 이사만 가도 낯설고 적응시간이 꽤 걸리는 법인데 하물며 외국이라니... 다온은 캐나다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오기를 독기처럼 품은채 성장중이다. 하지만 아이스하키의 거친 세계에서 다온의 팔꿈치는 부서졌다. 산책겸 나간 바닷가 모래밭에서 만난 작은 생명체 덕분에 마음까지 부서지는 것은 면하게 된다.
"너도 루저냐? 앞발에 힘을 더 줘야지, 거북아"
나는 새끼 거북이를 향해 후 하고 입김을 불어 주었다. 녀석의 작은 등 위를 덮은 모래 알갱이가 떨어졌다. 비록 아주 적은 수의 모래 알갱이일지라도 등딱지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녀석의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급기야 나는 밤하늘에 울려 퍼지도록 구령을 외쳤다. "하나, 둘, 하나, 둘!"
흘끔 구덩이를 쳐다보니 작은 거북이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다치기라도 했는지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작은 발이 뭉개져 있었다. (p. 92) <스위치, ON - 이송현>
언젠가 바다로 돌려보내주어야 겠지만, 그대로 갈매기밥으로 두고 올 수는 없어서 다온은 새끼 거북이를 데려온다. 꼬부기라고 부르면서 녀석을 지켜보다 보니 작지는 쉬지않는 움직임에 다온의 끈기도 점점 되살아나게 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버튼이 눌려진다. 스위치 ON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여자아이들의 화장품 냄새, 남자아이들의 체취...... 보통의 사람들보다 먼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여느 사람들이 맡지 못하는 것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행운이라기보다 불행에 가까웠다. (p. 129)
"너 개코라며? 내 페친이 너 알더라" "그냥 개라던데?" (p. 130) <냄새로 만나>
고등학교 1학년 서진은 혼자 살고 있다. 후각에 예민하다는 것이 동물취급받게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도 새엄마와 지방에 가고 혼자 남은 서진에게 예민한 후각은 쓸데없고 불편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강아지는 코로 세상을 봅니다. (p. 139)
강아지는 냄새로 정보를 탐색합니다. 강아지는 냄새를 맡아 그 아이가 건강한 아이인지 사귈 만한 친구인지 등 모든 것을 알아낸다고 합니다. (p. 140) <냄새로 만나>
이웃사촌 민정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유기견이었던 개, 만나 는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면서 유독 서진을 보면 꼬리를 흔들었다. 만나의 반응으로 인해 처음 만난 날 만나를 하루 맡게 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서진을 괴롭히던 불량배들이 집에 들이닥친다.
만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으르릉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왈왈, 왈왈. 만나가 짖기 시작했다. 밤공기는 만나의 소리에 힘을 가세했다.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최는 만나에게 입을 다물라며,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불안했지만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숟가락에 맞은 만나가 낑낑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이 가빠졌다. 오가 발로 만나를 차려는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p. 143) <냄새로 만나 - 최양선>
서진이 맡았던 만나의 냄새, 만나의 반려인 민정누나의 냄새, 새엄마의 냄새....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들이 풍기던 냄새... 그 냄새를 맡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외롭기만 했던 서진은 만나를 만나면서 냄새로 다른 대상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말했잖습니까.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동물은 낯설기만 하다고. 당신 말대로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물을 낯설어하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좋아하지도 않는 데 돈과 시간을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네, 불쾌합니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제 겁니다. 제가 데려왔으니까요. (p. 162) <고양이를 찾 - 김학찬>
작품 제목을 쓰다 만 것이 아니다. '고양이를 찾' 이 제목이 맞다. ㅎㅎ 일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작품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데려왔던 길냥이에 대해 말한다. 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길냥이에게 밥을 주고 동물 좋아하진 않지만 길냥이를 집에 데려와 보살펴주고 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집나간 길냥이를 찾는 화자의 츤데레식 어투는 키득거리며 읽기 시작하다가 점점 웃을 수 만은 없게 되는 길냥이 보호기 였다.
고양이는 이제 나무 덤불 뒤에 숨지 않았다. 내가 산에 올라가 면 어떻게 알았는지 꼬리를 직각으로 세우고 다가왔다. 꼬리 끝부분은 언제나 나를 향해 구부러져 있었는데 그건 나를 신뢰한다는 표시였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초록색 눈을 가진 삼색 고양이의 이름은 신비로워야 한다.
시벨.
그 이름은 내가 오래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내 진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기꺼이 그 이름을 고양이에게 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시발, 시발이라고 외치고 다닐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시벨, 시벨이라고 불러 보았다. 그러면 상스러운 단어 '시발' 이 성스러운 단어 '시벨'로 변했다. (p. 204) <시벨 - 김선희>
최찬구 라는 함부로 지어진 이름을 갖고 있는 여고생은 임쓰(임대아파트 쓰레기) 라고 불리며 늘 투명인간처럼 지내왔다. 쓰레기를 모아오는 엄마로 인해 집은 움직일 공간도 부족한 쓰레기 집이었고 아빠의 직업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으며 한번도 대화해본적 없는 하나뿐인 언니는 언제까지 이 집에 살아야 하냐며 불평중인 그런 생활 속에서 흔하디 흔한 삼색이 길냥이 한마리를 만난다. 그리고 집을 떠나게 되던 날 소녀는 시벨에게 배낭지퍼를 열어보였고, 시벨은 순순히 배낭 안으로 들어갔다.
반 아이들 대부분은 캐양이를 키웠다. 개를 모체로 고양이의 유전자를, 또는 고양이를 모체로 개의 유전자를 배합한 상품을 모두 캐양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 더하여 주인이 원하는 성격을 갖도록 다양한 약물로 호르몬을 조절하여 성격을 통제하고...... 아무튼 캐양이는 그런 과정을 통해 개발된 개인 맞춤형 반려동물이었다. 흔히 PP(Personal Pet)라 불렀다. (p. 224) <돌아온 우리의 친구 - 한정영>
도아는 예쁜 PP가 좋았다. 리트리버를 모체로 한 대형 PP 였던 위니는 도아가 7년간 기르던 캐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털이 빠지고 볼품없어지는 위니를 반납하고 러시안블루를 모체로 한 캐양이 루이를 데려왔다. 루이는 너무너무 예쁜 인형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집근처에서 이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목이 잘린 비둘기, 피투성이가 된 쥐, 도아의 옛날 물건들 이 현관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은 인간맞춤형으로 만들어낸다는 설정부터 인형처럼 사고버리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꼬집은 이 작품은 읽는 내내 서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따스함으로 시작해서 아릿함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집은 일관된 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우린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 절대 걱정하지 마"
누구보다도 작고 보드라운 존재이지만 한없이 크고 든든한 존재에 대하여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읽고나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건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가족으로서 받아들일 때만 온전히 그 관계가 서로에게 따듯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나는 자꾸 너만 따라다닐 거야' 하는 반려동물의 목소리가 온기로 다가갈지 냉기로 다가갈지는 오롯이 반려인의 몫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