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응시를 통해 혐오를 비추는 불빛,

패배가 만들어내는 뜨거운 눈빛

 

 

<딸에 대하여> 라는 작품을 통해 김혜진 작가를 알게 됐다. 그리고 팬이 되었다.

'어비' 라는 작가의 단편을 읽고, 이번에 <불과 나의 자서전> 을 읽고 나니, 작가만의 색깔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겠지만, 작가의 작품들 속에선 일관되게 전해지고 있는 주제가 있었다.

소외된 혐오와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젊음.

하지만 작가는 소외된 혐오를 중앙에 배치하고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것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쉽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렇다고 쉽게 절망적이라고 포기할 수도 없는, 삶의 진솔함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낡은 동네의 한 건물 철거현장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안타까움과 미안함, 후회와 죄책감 따위의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이라 할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이상할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이곳이 사라지는구나. 오히려 그곳에 서 있는 동안 내가 느낀 건 그런 실감이었고, 오늘 정말 그 일이 일어날까 하는 의 심이었습니다. (p. 11)

남일동이라는 동네의 상징적이었던 장소 제일약국건물의 철거현장에 굳이 찾아갔었던 것은, 없어질듯 없어질듯 없어지지않고 내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장소가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실감이 필요해서였다. 현재적 실감은 감정에 앞서 반드시 필요했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 남일동이 그 시절 어머니에게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더 오래 지난 뒤에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나를 키우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p. 24)

 

서른살 홍이는 3년전 갑작스레 발병한 두드러기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낸다. 하릴없이 백수로 지내고 있긴 하지만 홍이의 속이 태평하지 않다는 것은 그녀의 피부발진이 보여주고 있었다. 남일동의 제일약국에 약을 사러다닌다는 이유로 홍이는 남일동을 내내 배회하고 있다. 그러다 주해모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딸 수아를 홀로 키우는 엄마 주해를.

다들 몰라서 가만있는 줄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입바른 말만 하는 사람을 누가 좋다고 해. (p. 41)

어머니의 말은 홍이에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주해를 처음 만난 날 홍이는 3년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왜인지 남일동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이 없다는 생각 탓입니다. 남일동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처박히듯 방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p. 51)

소설을 읽는 내내 남일동에 대한 묘사는 내가 나고자란 동네를 생각나게 했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닥 변하지 않은 곳... 남일동 같은 곳을 나또한 알고 있달까...

주해라면 뭐든 솔직하게 답할 텐데도 대놓고 뭔가를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추측과 의혹을 부풀리는 것이 사람들에겐 더 익숙하고 편한 방식이었을 겁니다. (p. 52)

누군가 새로 이사를 와서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내보자고 할때 선뜻 그러자고 손내미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될까? 그저 스쳐지나가는 잠깐의 모습만 보고 이런것같더라 저런것같더라 하며 수근대는 방식을 왜 선호하는 것일까...

내 눈엔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레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p. 56)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한 길에 가로등 설치를 요구하고, 한번도 마을버스가 올라온 적 없는 산동네에 마을버스노선을 만들려고 청원서를 들고 사인을 요청하는 주해에게 동네 사람들은 냉대하고 박대할 뿐이었다. 불편한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그 고집을 뚫고 마을버스가 들어왔을때 정작 가장 많이 타고다닌 것은 자신들이었으면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주해를 찾았습니다. 그럼 누구한테 말을 해? 시작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이 집 새댁이 여기 책임자 아니요?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고 거의 강요나 강제로 보이는 그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주해는 모두 들었습니다. 임시로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제 것을 내어주고서라도 사람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p. 92)

 

주말에 약국사거리에서 주해가 안쓰는 물건을 펼쳐놓고 앉아있던 것을 시작으로 한두사람 모여들더니 '마녀시장'이라는 유명세를 얻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게 됐을때, 주해옆에 하나둘 모여들어 장사하던 동네사람들은 점점 더 당연한듯 주해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홍이 씨, 그렇게 해서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얻나요?

사람들 마음을 얻어야 해요?

주해는 내 팔을 잡고 소곤거렸습니다.

홍이씨,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요. 알잖아요.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난 정말 잘하고 싶어요. (p. 95)

 

주해는 그저 그 낡고 후미진 동네에서 살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 뿐인데, 동네 사람들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더 뻔뻔스럽게 당연하게 받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재개발계획 소문이 퍼진다. 늘 그랬듯 계획만 세우다 어그러질것이라 홍이는 생각했지만 주해모녀는 아파트로 이사할 꿈에 부푼다. 하지만 주해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동네 밖에서도 찾아왔다.

누가 그래? 그 새댁이 그래요? 도서관이고 버스고 다 시에서 결정하고 시행하는 일이지. 어디 한 사람 힘으로 되는 것인가. 별소릴 다 듣네. 어디 가서 괜히 그런 말 꺼내지 말아요. 동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떠난 주해 모녀에 대해 냉담하게 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자고 안간힘을 쓰던 주해가 바보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주해가 가지려고 했던 것이 고작 이 동네에 머무르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남일동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집이 없다는 불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선 결코 알 수 없는 주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따져보면 나도 이곳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쨋거나 나 역시 끝까지 주해를 믿지 못했으니까. (p. 162)

남일동에서 학교를 다니며 따돌림을 당했던 중3때의 기억은 홍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왕따당하는 박대리의 옆을 지키게 만들었고 그 결과를 홍이의 피부는 여전히 되새기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만났던 주해모녀를 통해 홍이는 더더더 남일동이 두려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불길은 몸부림치듯 높이 더 높이 솟구쳤습니다. 그 순간에는 어둠을 이기며 몸집을 부풀리는 그 불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니, 차라리 그 불이 여기 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지고 더 커지고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저 남일동을 모두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무시무시한 남일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더는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던 것입니다. (p. 167)

한 사람 한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p. 168)

 

여기까지 읽고나서야 제목을 다시 살펴봤다. 불과 나의 자서전...

홍이에게 남아 끊임없이 홍이를 괴롭히는 남일동의 흔적을 불은 태워버릴 수 있을까...

한 번씩 그 밤에 드럼통 바깥으로 넘쳐흐를 듯 넘실거리던 불꽃을 떠올리면 남일동이 허물어지는 것을 기필코 봐야겠다는 오기가 살아나고 그 마음이 점점 번지고 커지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늘 정오에 남일동의 남은 주택들이 철거됩니다. (p. 170)

철거현장에서 시작해서 철거현장으로 돌아오는 홍이의 기억을 함께하는 동안, 주해모녀가 살았던 1년남짓한 시간이 남일동에 남겼던 흔적을 함께 더듬는 동안, 주해의 당당함과 홍이의 두려움이 상반되지 않고 동시에 아프게 다가와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불의 자서전은 짧게 끝났다면 산동네 남일동은 이제 철거됐다면, 홍이의 자서전은 현재진행중이다. 그리고 주해의 삶도...

하지만 읽는 내내 알고 있었다. 꺼졌다 생각했던 불씨는 숨어있기 마련이며 철거되고 새로 세워진 재개발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래서 더 홍이와 주해의 남은 시간들이 벌써부터 힘겹게 다가왔다.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어쨌든 홍이도 주해도 나도 모두 살아있고, 삶이 지속되는 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1983년생으로 2012년에 등단한 젊은 작가가 이토록 뚜렷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김혜진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빛과 그 인물들의 삶이 보여주는 불빛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빛들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