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현장에서 시작해서 철거현장으로 돌아오는 홍이의 기억을 함께하는 동안, 주해모녀가 살았던 1년남짓한 시간이 남일동에 남겼던 흔적을 함께 더듬는 동안, 주해의 당당함과 홍이의 두려움이 상반되지 않고 동시에 아프게 다가와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불의 자서전은 짧게 끝났다면 산동네 남일동은 이제 철거됐다면, 홍이의 자서전은 현재진행중이다. 그리고 주해의 삶도...
하지만 읽는 내내 알고 있었다. 꺼졌다 생각했던 불씨는 숨어있기 마련이며 철거되고 새로 세워진 재개발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래서 더 홍이와 주해의 남은 시간들이 벌써부터 힘겹게 다가왔다.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어쨌든 홍이도 주해도 나도 모두 살아있고, 삶이 지속되는 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1983년생으로 2012년에 등단한 젊은 작가가 이토록 뚜렷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김혜진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빛과 그 인물들의 삶이 보여주는 불빛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빛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