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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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얼마전 정식 출판된 소식을 통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금이 작가는 동화책에서 익숙했던 이름이었다. 아니 동화책이라기엔 좀더 깊은 감동이 있는데 뭐라고 해야하나....흐음...

여하튼, 짧지만 진한 여운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작가의 긴~ 스토리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봤는데... 정말 놀라웠다.

놀라운 몰입력!

시작하자마자 한페이지한페이지 놓치기가 아쉬워서 잠시잠깐씩 책을 내려놓아야 할때마다 마음이 급했다. 어서 다음장을 읽어야 하는데 싶어서.

드라마적 몰입력의 힘이 정말이지 대단히 강한 작품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 뻔하다 흔하다 싶으면서도 어느새 마음졸이며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고 스스로를 촌스럽다 생각하면서도 울컥하며 눈물흘리고 좀 신파적이다 생각하면서도 저절로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렇게 가슴떨리게 빠져들고 진한 감동에 먹먹해지는 드라마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가제본 표지에 적혀 있는 키워드가 #하와이 #여성연대 #100년전 #세여자이야기 #놀라운몰입도 인 이유가 있었다. 딱 그랬다.

일제강점기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노동자로 건너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그 노동자들과 결혼한 사진신부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그야말로 누군가의 인생 그 자체였다.

"맞습니더. 미국 땅인데 섬이라 카데예. 거 가면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는다 캅니더. 그뿐아이라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가 맘에 드는 기를 따서 입고 신으면 된다 캅니더. 날씨는 또 우떻고예. 사시사철 늦봄맨키로 따시니 겨울옷이 필요없다 아입니꺼" ( p. 7)

김해의 작은 산골마을에 종종 들르던 보따리 장수가 '포와'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열여덟살 버들이는 의병이던 아버지를 잃고 일본군 말발굽에 오빠도 잃고 동생들과 어머니와 힘겹게 살아가던 때였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고 의병의 딸로 결혼은 더더욱 먼이야기 같았는데, 포와로 시집가면 공부까지 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설렌다.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그 집에 뼈를 묻는 게 조선의 법도였다. 버들은 홍주를 생각하면 바늘에 손이 찔려 피가 번진 자수보가 떠올랐다. 아무리 수가 잘 놓였어도 피가 묻으면 쓸모없어진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 p. 14)

버들의 가장 친한 친구 홍주는 양반족보를 산 마을부잣집의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었다. 하지만 진짜 양반가문과 혼사를 맺고 싶었던 아버지에 의해 만난 신랑은 병든몸이었고 결혼한지 몇달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오게 된다. 홍주어머니는 버들에게서 들은 '포와'이야기에 자신의 딸을 사진신부로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내는 조선이 왠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이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신랑캉 얼라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오직 내 소원이다" (p. 36)

"애기씨들도 여서 더 낫게 살 수 있으면 뭐 할라꼬 부모 형제 떨어져 그 먼 데로 가겠습니꺼. 여서 지대로 몬 살겄어가 새 시상 찾아가는 기 아입니꺼?송화한테 측은지심 품고 여서도 포와 가서도 동기맨키로 잘 지내이소. 나이도 동갑이라예" (p. 44)

딸 앞에서 모질게 마음먹고 말하는 어머니의 소원을 마음에 품은 버들과 허울뿐인 조선의 법도를 벗어나려는 홍주는 무당의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자란 송화와 함께 하와이(=포와)로 가는 배에 오른다. 셋 다 포와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지만, 조선에서 살기 힘든 처지를 단박에 없애주는 낙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진신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게 구년째야. 대부분 우리 여관에서 묵었어. 다들 처음엔 초상난 것처럼 울고, 돌아간다고 난리를 쳐도 결국은 그 신랑하고 살아. 돌아갈 여비도 없고 결혼 안 하면 여기서 쫓겨나는데 어쩌겠어. 색시들도 여기까지 왔으니 신랑이 성에 안 차도 마음 붙이고 열심히 살아. 그럼 좋은 날 있을 거야" (p. 86)

낯선 땅에서 만난 사진신랑들은 사진과 너무 달랐다. 나이도 속였고 재산도 속였고 사는 형편도... 모두 다 속였지만... 이미 혼인신고가 된,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남편이었다. 결혼식은 초상집처럼 울음바다였다. 그렇게 눈물 속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농장주들은 대규모로 농사지어 설탕과 파인애플을 수출했다. 하와이가 미국령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출할 때 높은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서였다. 농장주들은 처음엔 원주민을 노동자로 썼는데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을 고용했지만 그들은 뜨거운 날씨와 힘든 노동을 견디지 못했다. 농장주들의 눈길은 아시아로 향했다. 처음 불러들인 중국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 대부분 농장을 떠나 미국 본토로 갔다. 그다음에 온 노동자들은 일본인들이었다. 그들 또한 계약 종료 후 본토로 가거나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자주 벌였다. 조선인 노동자는 1903년에 첫발을 디뎠다. 그 뒤 이민이 금지된 1905년까지 칠천명 넘게 왔지만 이십만 명이 넘는 일본인 노동자에 비하면 적은 수 였다. (p. 89)

"교회에 가면 세상 돌아가는 일도 듣고, 조선 소식도 알고, 또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 있으니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 (p. 91)

하와이에 노동자로 간 사람들은 스스로의 선택이지 강제징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만하진 않았다. 농장주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가혹하게 일을 시켰고 힘없는 나라의 노동자들은 나라를 뒷배로 둔 파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뼈가 으스러져라 노동해서 스스로 기반을 닦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조선의 상황은 나빠져만 갔고 해외노동자들의 구심점엔 교회가 있었다.

"내사 마 조선에 돌아갈 맘 없다. 여거 내 딸들 맘껏 핵교 보내고 자유껏 살 기다. 조선한테 쥐뿔 받은 기 업지만서도 내가 와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고향 떠난 우리한테는 조선이 친정인 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 아이가. 일본인 노동자들이 툭하면 파업하는 기 우째서겄노. 힘센 즈그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어가 노동자들이 하올레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기다" ( p. 197)

"내사 마 여 올 때는 내한테 해 준 기도 없는 그깟 조선 망해 삐리든 말든 상관없었는 기라. 그란데 아를 놓고 보이 그기 아이데. 나라가 일본한테 맥혀가 있으면 내 자식도 곁방살이 하는 집 얼라 맨키로 평생 주눅 들어가 살 기 아이가. 당장 밥 한 숟갈 들 묵어도 독립하는 데 힘을 보태야 않것나. 까막눈 무지랭이도 조선 사람이면 다 그레 생각한다 아이가" (p. 232)

하와이에 노동자로 살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버들은 나라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하와이에서도 독립운동은 전개되고 있었다. 지금도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외국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고 ㅎㅎ 그냥 여행하러 외국나갔을때도 외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조국에 대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일제강점기때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가시아바이나 정호 오삼춘 목숨 헛되지 않게 할라믄 반다시 싸워야 하갔구만. 내레 자식 앞에 당당한 아바지가 되고 싶어. 정호가 낸중에 아바지는 그때 어디세 뭬 하고 계셨댔시요, 하고 물으믄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간? 내레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하믄서 살기야. 그럴 수는 없지 않네. 정호야, 아바지레 일본놈 싹 다 무찌르고 나라를 되찾아 올 테니까니 오마니하고 씩씩허가 잘 지낼 수 있지?" (p. 269)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의 삶은고됐다. 사진신부들의 삶이 신랑들과 나이차이만으로 우울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중에는 건실하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어지만, 술과 도박과 폭력을 일삼는 노동자도 많았다. 타지에서 어린 신부들이 맞이한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물며 버들의 남편인 태완은 그와중에 독립운동에 몸바치고 있었다. 이래저래 여성들의 삶은 어머니의 삶으로 점철되면서,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 그 하나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갔다.

와히아와의 한인 교회는 두 개였다. 원래부터 있었떤 감리교회와 이승만이 세운 기독교회. 감리교단과의 갈등으로 호놀룰루에 한인기독교회를 세웠던 이승만은 한인이 많이 사는 와히아와에도 교회를 열었다. 와히아와는 동지회 회원들의 단결력이나 이승만을 향햔 충성심이 호놀룰루보다 더 강한 곳이었다. ( p. 281)

버들은 동지회 사람이 독립단 사람을 만나거나 교류를 하면 벌금을 물리다는 홍주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냥 만나면 얼마, 깊은 교류를 하면 얼마 하는 식으로 벌금 액수까지 매겨져 있었다. ( p. 288)

독립을 향해 힙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갈등은 심화되어 갔다. 이승만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우상화하며 충성심을 열성적으로 표현했고 반대파에 대한 폭력도 서슴없이 행했다. 버들은 그 어느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으나, 함께 사진신부로 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만교회에 다니면서 버들에게 등을 돌렸다.

"첨엔 과부 돼가 어진말로 돌아왔을 때 젤로 싦었던 기 사람들 한테 동정 받는 기였제. 인자 서방한테 소박 맞았다꼬 혀 차고 수군거려 쌓아 가기 싫다. 그라고 사업할라 카면 어느 한쪽에 발 담가가 있는 기보다 자유로운 기 낫다 아이가. 버들아, 우리 열심히 돈 벌어가 부자 되자" (p. 303)

우여곡절끝에 버들과 홍주는 세탁소사업을 벌이게 되고 송화도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셋이 함께 행복했던 시간은 짧았다. 너무 짧았다. 그간의 기나긴 고생들에 비하면 정말 너무 짧았다...

젋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 p. 324)

아마도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소설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고난을 겪고 조금씩 나아지려 할때 stop

하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현재 시점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왜냐하면 2020년 지금의 삶도 그리 녹록치 않고 파도는 여전했으므로...

한인들과 미국인들은 나이뿐 아니라 이름을 적는 방식도 달랐다. 자기 이름보다 성을 먼저 쓰는 한인들은 개인보다 가족을,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한다.(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말이다) 날짜를 표기할 때도 연도가 먼저다. 오늘보다 과거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우리 엄마 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p. 334)

그런가.. 성씨를 먼저 쓰고 연도를 먼저 쓰는 것이 이렇게 생각되어질 수 있구나...

훌라 선생님은 우리게게 춤뿐 아니라 알로하 정신과 레이의 의미도 가르쳐 주었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레이 또한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레이는 사랑을 뜻했다. 원주민들의 풍습이었던 레이는 레이 데이가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문화가 되었다. (p. 354)

이 책에 왜 '알로하' 가 들어가야 했는지 이 구절을 통해 절절이 전달되는 듯 했다. 그저 말뜻풀이였는데 그 자체로 충분했달까...

레이의 끝과 끝처럼 세 명의 엄마와 나는 이어져 있다. 나는 또 어느 곳에 있든 하와이, 그리고 조선과도 이어져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게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p. 384)

크... 정말 더할나위 없는 똑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세여자' 라는 소설이 있다. 이 작품과 같은 시기의 세여자를 다룬 소설인데, 실화적 소설이라 무척 감명깊게 읽었더랬다. 여기서의 세여자는 공산주의자로서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어서 역사적으로도 드문 장면들을 많이 알게 해준 좋은 작품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속 세 엄마들 이야기도 실화적 소설이라 여겨도 무방해 보인다.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을지라도 당시 대부분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되기에... 무엇보다 사투리 그대로 씌여져서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듯 드라마를 보듯 실제감과 입체감이 느껴져 더욱 실화처럼 다가왔다.

세여자를 다룬 소설은 이 두 작품 외에도 더 있는데, 세명이라는 숫자가 가장 다층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작가들이 세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된다...

여하튼,

가슴 뭉클한 가족 이야기...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이지... 너무나 뭉클하게 다와서...

오랜만에 진짜 가슴벅차게, 찐하게 읽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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