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 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
이한용 지음 / 채륜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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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

 

 

저자는 30년째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인연을 이어오며 실험고고학과 대중고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전곡선사박물관장으로서 매년 한국에서 세계구석기심포지엄을 열고 주먹도끼를 직접 만들어 분석하는 실험연구를 하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고학과 시민의 다리역할을 했던 경험을 살려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인류의 도구 2부는 인류의 기원 3부는 인류의 예술이다.

1부 인류의 도구에서는 구석기의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주먹도끼 이야기기 주로 나오는데, 같은설명이 글마다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살펴보니, 서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이라는 연재글이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의 근간이 되었다는 에필로그 글을 읽고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연재글이다 보니 글 한편한편의 완성도는 좋으나 연재기간의 격차를 고려한 앞선 글에 대한 요약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글의 특징을 앞에서 미리 밝혀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2부와 3부로 갈수록 중복이 없어지고 글 한편한편 독립적으로 읽혀져서 이내 적응이 됐다. 그리고 읽다보니 주먹도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다 읽고나서는 중복되어 설명된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남기도 했다.

돌을 두드려 깨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는 적어도 250만년 전부터 시작한다. 돌을 갈아서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약 1만년 전이라고 볼 때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구석기시대다. (p. 14)

석기제작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다양한 종류의 석재를 사용하게 되는데 신기술과 신소재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후기구석기시대에 등장한 신소재의 대표 주자가 바로 흑요석이다. (p. 15)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동해안 지역과 중부지방에서 출토되는 흑요석제 석기는 백두산이 원산지인 흑요석을,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되는 흑요석 석기는 일본 규슈산의 흑요석 원석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시대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중부지방으로 이어지고, 일본 규슈에서 한반도의 남부지방까지 흑요석이 공급되던 그 길은 구석기시대의 실크로드, 흑요석 루트였다. (p. 19)

 

신석기시대도 석기시대라는 이미지에서 원시인적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구석기시대라고 하면 우가우가 하는 원시인이 생각났었다. 그런데 흑요석 루트가 있었다니... 자신들이 살던 지방에서 나지 않는 돌의 원석을 먼곳까지 가지러 가고 갖고 와서는 가공해서 사용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저런 책으 읽으며 드는 생각인데, 석기시대는 예상보다 무척 수준있는 문명을 이루었던 시대였을 것 같다.

주먹도끼는 자르고, 찍고, 썰고, 긁고, 뚫고, 파고 등등 인류가 구석기시대의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했던 도구이며 가장 중요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이 주먹도끼가 동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 전곡리 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럽 중심으로 인도의 서쪽 편에만 존재한다고 믿어져 왔던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는 앞뒷면을 정밀하게 가공해 날이 거의 직선이고 앞뒤 좌우가 대칭인 날렵한 모양의 주먹도끼가 주로 발굴되고 있다. 반대로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두툼한 형태의 양면가공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있다. 이렇듯 주먹도끼의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는 석기를 만드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원재료인 석재의 차이 때문이다. (p. 21)

 

고고학과 역사학에 있어서 서양중심 서양우월주의는 두드러진다. 동양 이라는 표현도 서양인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봤을때 동쪽이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니... 학문이 먼저 발달할 수록 먼저 발견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결론은 아니다. 주먹도끼가 동양에서 발견되지 않아서 석기를 사용하는 원시시대에서부터 서양우월주의적 해석이 일반적이었다고하나 전곡리 주먹도끼의 발굴로 인해 그 편견은 부서졌다. 유럽의 돌로만든 성이 우리나라의 나무로 만든 저택보다 기술이 우월해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수 있는 재료에 따라 건축재료가 달랐을 뿐이다.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객관적이고 평등적인 해석은 중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석기는 250만년 전 호모하빌리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330만년 전의 석기관련 자료들도 보고되고 있어 최초의 석기제작자가 살았던 시기는 점점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p. 27)

330만년 전이라... 감이 오지 않는 머나먼 시간대이다;;; 그때부터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왔다니... wow

2018년 여름 강원도 정선의 매둔동굴에서 연세대학교 박물관 고고학조사단이 중요한 유물을 발견했다. 납작한 자갈돌을 모루돌 위에 올려놓고 두드려 양쪽 끝부분을 깨서 만든 그물추가 여러 점의 작은 물고기 등뼈와 함께 발굴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조사단이 밝힌 이 그물추의 연대가 무려 2만9천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그물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기의 것이라고 한다. (p. 51)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있는 나라라고 하는데, 전곡리 주먹도끼 부터 정선의 그물추까지 고고학에서 중요한 유물들이 자꾸 발견되는 걸 보면 신기하다. 그에 비해 고고학에 대한 지원이나 대중화는 미비하게 느껴져서 아쉬운 마음도 든다. 고고학 관련 학과도 적고 연구진도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견들이 이루어지는데, 고고학이 힘을 받으면 중요한 유물이 여기저기서 막 발견될 것만 같은 느낌? ㅋㅎㅎ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발명품 중에 그 역할에 비해서 가장 저평가 받고 있는 유물을 꼽으라면 단연 바늘을 첫손에 꼽고 싶다.

인류 역사는 바늘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진화의 여정을 순항하던 인류에게 다가온 매서운 빙하기의 추위는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었다. 이때 등장한 바늘, 바늘귀가 달린 바늘로 꼼꼼하게 꿰맨 옷과 신발은 인류가 빙하기의 추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p. 53)

현재까지의 고고학 증거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바늘이 있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에게는 바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죽을 뚫는 송곳 정도가 옷을 만드는 도구였던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는 정교한 바느질이 가능한 귀 달린 바늘이 있었다. 이 작은 차이 밖에 없었다. 송곳에 구멍을 뚫어 귀 달린 바늘을 만들었던 그 작은 차이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생존을 결정지었다. (p. 55)

 

바늘!!! 그랬구나... 바늘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다니. 왜 여러 고인류중에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걸로 아는데, 바늘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였다니 놀라우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느껴진다.

현재까지 약 250개의 동굴에서 후기구석기시대 예술 활동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동굴벽화에 그려진 것들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동물그림이다. 벽화에 남겨진 동물들 가운데는 사냥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동물그림들도 많다. 창이나 찌르개와 같은 무기에 정통으로 맞은 짐승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창에 맞아 상처를 입거나 부상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동물들의 생생한 그림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냥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들이다. 동굴벽화는 자신들의 사냥기술을 뽐내기 위한 표현이며 '이 동물을 잡으려면 여기를 찔러라' 하는 식의 사냥기술의 교재 같은 역할로도 볼 수 있다. (p. 63)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호에 대한 해석도 다양할 것이다. 주술적 의미에서 교육적 의미나 다른 해석도...

여하튼, 예술활동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시간 외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두다리로 서고 손이 자유롭고 뇌용량이 커질수록 예술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을 것이다. 예술의 발달 또한 진화의 발달에서 중요한 프레임이 되어준다.

최근 들어서 중국의 학자들은 저우커우덴의 호모 에렉투스들은 이미 70만년 전에 불을 사용했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국경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나라나 민족의 개념은 더더욱 의미가 없는데 자국의 구석기유적의 연대를 점점 더 오래된 것으로 발표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을 보면 자기 나라의 영토 안에 구석기시대 유적이 더구나 아주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국격을 높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p. 82)

석기시대에는 당연히 국경이 없었다. 고인류의 이동은 수만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석기시대에 살았던 인류가 현재지역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수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국경내에서 유적을 판단하고 경쟁하는 것은 학문의 발달에 그리 좋은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인류의 앞니에 남아 있는 석기자국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50만년 전의 인류의 93.1%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니 놀라운 연구결과다. 오늘날 우리 현생인류에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11%라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비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일까? 우리가 대부분 오른손잡이가 된 이유는 인류가 석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p. 89)

석기를 만들때는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 내리치거나 때거나 해서 모양을 만들게 되는데, 좌뇌가 손의 사용을 주로 관장하므로 석기를 잘 만들기 필요한 정교한 손동작은 좌뇌가 활성화되어야 더 수월해진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좌뇌의 운동조절기능의 영향을 받는 오른손잡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신기하다. 50만년전부터 오른손잡이가 인류에게 많았다니... 이렇게 보면 현재인류는 고인류에서 별로 달라진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류 초기의 두 발 걷기를 시작한 고인류들이 알려주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튼튼한 두 다리라는 것이다. 머리가 먼저 좋아지고 두 다리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두 다리로 일어서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뇌도 커지고 머리도 좋아진 것이다. (p. 113)

고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뇌용량의 확대는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설명이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어떤 고인류가 됐건 간에 걷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공통사항일 뿐이었다. 그런데 진화의 핵심을 두 발 걷기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설명은 새롭고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백만년 함께 경쟁하며 지내던 여러 종의 고인류들 가운데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만이 기후변동에 잘 적응하여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그 비결은 고기라도 먹자는 과감한 선택의 결과이다. (p. 122)

고인류의 주된 식량자원은 채집으로 얻어진 식물성 자원이었다. 그런데 환경의 변화는 식물자원의 부족을 가져왔다. '고기라도 먹자' 라는 표현에 웃음이 난다. 지금은 고기고기 하며 완전 좋아하는 고기를 과거에는 이거라도 먹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을 거라는 설명이 ㅎㅎㅎ

총 193종의 유인원과 원숭이들 가운데 오직 단 한 종 우리 인간만이 과감히 털가죽을 벗어버리고 털 없는 원숭이가 되었을까?

우리가 털을 잃게 된 아니면 털을 없애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체온유지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무더운 기후에서 처음 등장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체온유지와 털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p. 136)

 

기후변화로 수가 줄어들고 있던 매머드가 갑작스런 기온상승으로 더욱 멸종의 길에 가까워졌다는 것과 비슷하게 아프리카에서의 고인류가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되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그 외에도 오래달리기로 빠른 사냥꾼들과 다른 사냥법을 통달했던 고인류에도 털은 거추장스러웠고, 털이 없으면 진드기, 벼룩 같은 체외 기생충이 숨어들 곳도 없어진다는 등 다른 설명들도 아~! 싶었다. 예전엔 막연히 고인류에게는 털이 북실북실 했으려니 했는데 그러고 보니 뼈바늘로 옷을 지어입어야 할 정도면 털이 없는 매끈한 피부였겠다 싶기도 하다.

화산 기원물질의 경우에는 과학적인 연대측정법의 적용이 가능해서 화산재의 나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유리 물질인 화산재는 폭발한 지점의 화학성분 및 폭발 당시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화산마다 각각 모양이 다르다. 이런 화산재의 특성 때문에 지금까지 폭발한 화산에서 나온 화산재는 어디 출신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이를 알고 출신지를 알 수 있다니? 고고학에서 화산재야말로 유물의 연대와 기원을 알아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이고 중요한 자료이다. (p. 172)

그 작은 화산재입자로 몇만년전 어디에서 폭발한 화산의 물질인지 알 수 있다니... 과학의 발달은 고고학에서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듯 하다.

인류의 기원이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것이 확실해진 이 시대에도 구석기시대 이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예술적 감성의 표상인 동굴벽화의 기원이 유럽이라는 것이 마치 서양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동굴벽화는 서양에서만 발견되어야 하는 자존심에 상처가 생기는 발견들이 최근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에서 3만 5천 4백년으로 연대 측정된 아생 돼지 그림들이 발견되어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가 꼭 서양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p. 220)

예술은 특정 지역에 살던 특정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생인류가 정착했던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생겨난 인류 공통의 유산이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어가고 있다. (p. 221)

 

석기시대는 상상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머나먼 옛날 몇 만년 몇 십만년 전이다. 적어도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 남게 되기 전의 시간대에 있었던 고인류 진화에 대해서만큼은 인류공통의 유산으로 우열가림없이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인류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매장은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단계에서 나타난다. 약 700만년 전 고인류가 두 발로 서기 시작한 이래 수백만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죽은 자를 잘 묻어주는 매장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 10만년 전 중기구석기시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매장이 동굴에 죽은 이의 시신을 잘 안치하는 정도였다면 후기구석기시대에 들어서는 바닥에 구덩이를 파서 무덤을 만들고 무덤 바닥에 뼈나 돌을 까는 등의 무덤을 만드는 방식이 세심해진다. 그야말로 살아서 사는 집과 같은 죽어서도 사는 집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신과 함께 묻힌 구슬과 상아 등 많은 부장품들이 이들의 영적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소위 내세관을 말해준다. (p. 229)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니...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대단히 고차원적인 일이다. 후기구석기시대의 고인류에서 지금의 인류까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뇌용량과 기술 같은 것 말고 외형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거의 동일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아렌느 깡디드에서 발견된 '다람쥐 모피를 입은 아이' 라는 별며을 가진 어린아이의 매장유구 설명에서는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6살 정도된 아이가 죽자 엄마 아빠는 수십 마리 다람쥐를 잡았고 그 꼬리를 잘라 폭신한 망토를 만들어 입혀서 잘 묻어주었다. 아이의 머리맡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돌로 만든 실로폰, 조개껍데기 같은 장난감이 놓여있었다. 붉은색 흙을 정성스럽게 뿌린 이 아이의 유골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개껍데기로 소꿉장난을 하며 뛰어 놀았을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는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약 2만 5천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 마을사람들은 어설픈 걸음걸이로 '우가우가'하는 원시인이 아니라 사후세계의 생활까지 관념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p. 231)

 

오래전 시대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유적유물은 무덤이다. 무덤이 간직한 것은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뼈와 유물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상상하며 읽으니 마음에 또다르게 다가왔다.

학자들에 따라 다소 이견은 있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악기 중에 가장 오래된 악기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슬로베니아 디제바베 유적에서 출토된 동굴곰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플루트다. 약 4만 3천 년 전에 만든 이 플루트에는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정확히는 현재 남아 있는 부분에서는 2개의 구멍만이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p.235)

구석기시대의 예술이 동굴벽화에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도 있었다. 동물의 뼈 특히 안이 비어있는 새의 뼈로 만든 악기는 악기로서의 기능이 훌륭했다. 구석기시대의 생활이 참 신기하고도 궁금해진다.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고 가족이 죽으면 슬퍼하며 정성껏 무덤을 만들고 도구를 개발하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즐기는 생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왠지 구석기시대인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인류 진화와 구석기시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구석기시대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수필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류의 진화와 구석기시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우리 인간은 계속 진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를 아직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아주 가끔은 생각해 보는 삶이 조금은 더 보람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 255)

학술서라고 나온 책도 학술서라고 하기엔 모자란 책이 있기 마련인데, 수필집이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책은 쉽게 읽히지만 학술서라고 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이러한 책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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