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읽은, 우리가 읽을 모든 소설에게 바칩니다.

소설은 마치 졸음이 올때처럼

우리의 일상에 어떤 단어와 문장을 심어

무의식 속에서 뻗어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변화시키죠.

살금살금, 그러나 돌일킬 수 없는 방식으로.

 

 

 

서간체 소설인 이 책은 주고 받는 편지로 서사가 진행된다.

편지를 주로 쓰고 사건을 진행해나가는 '안느 리즈' 라는 여주인공의 통통튀는 문체와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되면서 하나의 인연으로 묶이게 되는 과정이

읽는 내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분위기와 구성이 굉장히 비슷하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은 영국여성이 여주이고 여주의 직업이 작가이고 우연히 전달된 소설속의 주소를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대상들이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시대적 배경이 세계2차대전중이라서 전쟁의 상처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라면

'128호실의 원고' 는 프랑스여성이 여주이고 여주의 직업이 출판계이며 우연히 전달된 소설속의 주소를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대상들이 모두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시대적 배경이 1983~2016 의 현대라서 삶의 상처를 운명적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랄까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볼때 굉장히 경쟁적 관계라서 비슷한 구성을 한 두 작품이

영국작가가 영국여성을 화자로 한 소설과 프랑스작가가 프랑스여성을 화자로 한 소설로 비교가 될까 싶은 궁금증이 읽기전에 조금 있었지만

읽고나니 큰 차이는 없었다. 두 작품 모두 발랄하고 따뜻하며 유쾌하면서 운명적인 사랑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을 하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밝은 소설이라 읽기 편안하고 읽고나서도 편안했다.

특히 '128호실의 원고'는 원고를 완결한 작가를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나름 흥미진진해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 주는 힐링감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때마다 관계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나가며 읽어야 나중에 그 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때 아~그때그사람 하고 반가워할 수 있다. 기억이 안나면 제일 앞에 있는 인물소개란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된다. ㅎㅎ

안느 리즈 는 휴가동안 머문 호텔 서랍장에서 한 소설 원고를 발견한다.

그 소설을 읽고 너무나 좋았던 나머지 소설속에 메모된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편지는 작가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소설의 앞부분 반은 안느의 편지를 받은 작가가 쓴 것이 맞지만 뒷부분 반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한다. 30여년만에 돌려받은 자신의 원고를 보며 작가는 과거에 완성하지 못했던 소설을 마무리짓기로 결심하고, 안느는 소설의 후반부를 쓴 작가를 찾기로 결심한다.

실베스트르씨, 여기까지가 제 독후감입니다. 이 글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살면서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것들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만성 통증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답니다. 당신의 글을 또 읽게 되기를 기대할게요. 출판은 언제라도 가능하니 꼭 마무리하세요. (p. 25)

호텔 128호실에서 발견된 소설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게될 때마다 그 소설을 읽었던 사람들은 그 소설이 얼마나 자신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삶의 변곡점을 가져다 주었는지 고백하며 안느의 추리에 기꺼이 동참한다.

지난번 말씀하시길 '우리에게 올 운명이 아니었던 사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읽은 게 우리의 공통점이라고 하셨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저는 알고 있답니다. 이 작품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소설은 제가 다시 길을 되찾고 좀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려고 그 해변까지 온 거에요. 때때로 서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잖아요. 그건 절대 우연일 리가 없어요. (p. 84)

전화와 이메일이 당연해진 시대이지만 128호실의 원고를 읽은 사람들은 편지를 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글로 쓰는 것에 대한 매력을 알고 있다. 직접 말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보다 천천히 도착하고 생각하며 읽게하는 편지만의 매력, 그리고 소설이 얼마나 삶에 필요한 것인지 서로서로 공감하며 소설만의 매력을 편지에 녹여낸다. 이 매력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나도 잊고 있던 손편지 라는 전달수단에 대한 향수가 저절로 생겨난다. 손편지 참 좋아하는데... 글씨가 괴발개발이라;;; ㅠㅠ

소설이라는 배가 우리를 태우고 멀리까지 데려가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고 우리를 영원히 변화시킨다는 것도 알죠. 종이 속 인물들이 우리의 추억을 변화시키고,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어요. (p. 297)

소설이 삶에 스며든 사람들의 이야기 '128호실의 원고' 는 책읽기를 사랑하고 소설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책장마다 테두리에 무늬가 있어서 책장이 편지지 같은 느낌이 드니 매 페이지마다 편지를 읽는 기분이 더해져 그또한 좋았다.

원고의 여행은

안느 리즈 호텔 128호실 - 나이마 레자 해변 - 로메오 도서관 - 빅토르 클레데르 축구연습장 - 앨런 안톤 독서모임 - 윌리엄 그랜트 부모님댁 - 다비드 재활시설 - 앨비르 아버지의 서재 - 로랑 막드랄

로 연결연결되면서 프랑스와 캐나다와 벨기에를 넘나들고

청춘의 첫사랑과 중년의 새로운 사랑과 노년의 마지막 사랑을 연결시킨다.

무엇보다 이 원고의 진정한 작가 실베스트르 파메 가 소설을 다시 쓰게 되면서 그의 삶을 되돌려 놓는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흩어지고 듣는이의 기억속에서 변형되어 남을 수 있지만

글은 종이게 써지는 순간 기록되고 읽는이의 기억속에서 재해석된 의미와 변형되지 않은 문자를 남긴다.

같은 글자를 읽어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이지만 한번 기록된 글자는 고정된 문자이므로 글자에 대한 감흥은 서로 공유하며 공감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읽는 다는 것은 말과 다른 생각을 주고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삶이 경험하지 못한 감동을 준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책을 읽고 소설 읽는 것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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