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800년 전에 갑자기 기후가 변하게 된다. 생명을 촉촉이 적셔주던 소나기는 사라지고 기후도 건조해지고 추워졌으며 숲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애롭지 못했다.
온도는 몇 도가 내려갔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치 빙하기가 돌아온 듯 했다. 몇천년간이나 온난하고 습도가 있는 기후 덕분에 동물과 식물이 성장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족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시절이 갑작스러운 식량부족 사태에 부딪힌 것이다. 숲이 주던 달콤한 열매에 익숙하던 사람들은 먹을 만한 다른 식량을 찾아내야만 했다. 누군가는 굶주림으로 아사에 이르렀지만 조금 더 운이 좋았거나 조금 더 현명했던 사람들은 인류를 새로운 생활양식, 농업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1000년 넘게 지속된 건조한 시절인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 최초의 농부를 탄생시켰다. 1000년이 지난 후 기후가 차츰 나아지자 인류는 새로운 농업 방식을 도입하여 다른 종들도 경작이 가능하도록 발전시켰다. 인류는 여러모로 더 건강에 좋고 노동력이 덜 드는 일일 수 있는 수렵채집사회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운그레이드'하여 발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쨌든 농업은 더 많은 인류에게 식량을 배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인구집중은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농업을 함에 따라 함께 사는 일이 가능해졌다.
문명으로 가는 도약의 단계에 북극의 빙권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만들어 남쪽에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홀로세 시기에 우리 인류가 선택한 건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가 아니었다. 진화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인류 종은 등장 이후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내지도 못했으니 진화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전혀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를 이루어냈는데 행동양식을 변화하며 적응해 가는 문화적, 사회적 진화이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거주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p. 164~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