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의 반격 - 이미 시작한 인류 재앙의 현장
비에른 로아르 바스네스 지음, 심진하 옮김 / 유아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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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한 인류 재앙의 현장

인간만 모르는 운명의 시계가 빨라진다

 

 

표지에 커다란 빙하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빙산의 일각' 을 생각나게 한다.

빙하가 녹고 있다고 인류 재앙이 시작됐다고 하는 표지의 문구들과 빙하의 사진이 어울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문제를 거론하는 책인가 예상했었다. 빙하의 반격을 액면그대로 빙하의 녹음으로 인한 인류재양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의 내용들이 나의 식상한 예상들을 뒤엎었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빌 브라이슨'으로 불릴만큼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연구자이자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노르웨이는 지도의 위치상 빙하와 겨울과 친숙한 나라이다. 그만큼 더 잘 알고 더 깊이 체험하고 있을 것이었다.

1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고 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지지도 않는 위도상 남쪽 지역으로 처음으로 가게 돼서야, 나는 눈, 얼음 혹은 영구동토의 형태로 얼어있는 지구의 부분인, 빙권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인구 밀도가 높고 태양이 작렬하는 인도 북부와 방글라데시의 갠지스 고원에서 40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땀에 흠뻑 젖게 돼서야 나는 얼마나 빙권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1년 중 가장 무덥고 건조한 시기 동안 이 지역의 사람들을 생존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그를이 갠지스 고원에서는 보이지도 않았을 바로 저 멀리 히말라야 높은 곳에 있는 산 속 얼음과 눈이었다. 몬순이 오기 전 몇 달 동안 서서히 메말라가는 강들을 호우가 채워주지 못할 때, 지구의 지붕에서 녹아 흐르는 눈과 빙하가 강이 완전히 메말라 갈라지지 않도록 돌봐주고 있었다. (p. 17)

빙하의 곁에서 일년의 반이상이 겨울인 곳에서 사는 저자가 눈도 내리지 않는 일년의 반이상이 여름인 나라에 가서야 새삼스럽게 빙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사람은 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 자기가 아는 것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다른 생각을 하려면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운 나라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우기다. 하지만 그 다음은 건기다. 그 많던 빗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빗물이 강물이 되어 인간에게 필요한 물을 대준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존에 직결된 물을 제공해 주는 것은 얼음과 눈과 빙하였다.

빙권이 기후에 그렇게나 중요한 이유는 빙권이 하얀색이기 때문인데 라틴어로는 알베도라고 한다. 알베도라는 용어는 태양빛이 지표면에서 얼마나 반사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태양으로부터복사된 에너지는 파장 길이, 지표면의 특징, 어떤 각도로 지표면에서 반사되는지에 따라 달려있따.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태양복사에너지의 양은 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p. 36)

알베도 효과는 얼마나 중요한 걸까? 오늘날 지귀의 평균온도는 섭씨15도 정도이다. 계산식에 의하면 만약 지구가 완전히 바다로만 덮여 있다면 알베도는 0.06으로 굉장히 낮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27도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구의 온도가 현재보다 12도 높아진다면 지구의 대다수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다. 만약 지구가 완전히 하얀빛으로 뒤덮인다면 알베도는 1에 가까워질 것이고 평균온도는 대략 영햐 40도 정도로 떨어질 것이다. (p. 37)

 

산위의 눈이 녹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하얀 면적이 줄어들 수록 알베도는 높아지고 그렇게 온도가 올라가면 또 눈이 녹고 빙하가 녹는다. 온실가스도 문제겠지만 알베도 효과 측면에서 바라본 온도 상승은 또다른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겨울의 왕국을 향한 긍정적인 경험들을 가진 나에게는 안데르센과 루이스가 그랬듯이 겨울의 왕국을 무섭고 위험하고 악의 기운이 머무는 곳으로 묘사하는 동화나 이야기가 이상하다. 안데르센의 책에서는 악랄한 눈의 여왕이...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에서는 하얀 마녀가... 오늘날의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이런 이야기는 분명 겨울이 주는 긍정적인 면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겨울을 짜증 난다고 여기는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썼을 것이다. 눈이 길가에 쌓이고 사람들이 얼음 위에 넘어져서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그런 겨울만 본 사람들 말이다. (p. 46)

저자가 자라온 노르웨이의 겨울환경에 대해서 한참을 풀어놓길래 왠 추억담이 이렇게 긴걸까 싶었는데 괜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저자의 성장속 계절은 대부분 겨울이었고 그 겨울은 결코 위험하거나 부정적이기만한 계절이 아니었다. 겨울, 추위의 중요성이 동화에서조차 왜곡되고 있는 것에 아쉬워 하는 저자의 마음이 책을 다 읽고 덮을 즈음 나에게 전달되었다. 심지어 추위를 너무나 못견뎌하는 나이지만, 추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빙권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약 250만년 전)에 인류의 친척인 호모-계열의 종만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속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도 극도의 추위와 건조의 시절에 등장했다. 북극은 무자비한 추위에 휩싸였고 유렵, 시베리아, 북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얼음으로 뒤덮였던 빙하기였다. (p. 159)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참 생존하기 어려웠을 시절이었음은 분명한데, 바로 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변종이 승자가 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다른 종은 종 전체가 사라지거나 새로운 변종이 분화되어 틈새를 찾아 나서며 생존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인류의 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한 가지 경향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의 도움으로 생존 능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p. 160)

인류는 정착해 거주 생활을 시작하고, 농업으로 생계 수단을 바꿔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발전으로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 극적인 변화는 빙권의 변화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연이은 기후 전환이 발생하는 빙권에 의해 초래되었을지도 모른다. (p. 162)

 

책의 절반을 넘어가도록 '빙하의 반격' 무엇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제를 보니 'Frostens Rike' 노르웨이어 번역을 해보니 '서리의 왕국' 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서리의 왕국' 이 왜 '빙하의 반격' 이 됐단 말인가? 그런데 위 챕터를 읽고서 비로서 깨달았다. '서리의 왕국' 도 '빙하의 반격' 도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변천사에 대한 관점을 바꾼 의미라는 것을. 저자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서 빙하의 역할을 주체적 기둥으로 세워놓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왜 '노르웨이의 빌 브라이슨' 이라고 불렸는지, 책을 절반이상 읽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1만2800년 전에 갑자기 기후가 변하게 된다. 생명을 촉촉이 적셔주던 소나기는 사라지고 기후도 건조해지고 추워졌으며 숲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애롭지 못했다.

온도는 몇 도가 내려갔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치 빙하기가 돌아온 듯 했다. 몇천년간이나 온난하고 습도가 있는 기후 덕분에 동물과 식물이 성장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족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시절이 갑작스러운 식량부족 사태에 부딪힌 것이다. 숲이 주던 달콤한 열매에 익숙하던 사람들은 먹을 만한 다른 식량을 찾아내야만 했다. 누군가는 굶주림으로 아사에 이르렀지만 조금 더 운이 좋았거나 조금 더 현명했던 사람들은 인류를 새로운 생활양식, 농업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1000년 넘게 지속된 건조한 시절인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 최초의 농부를 탄생시켰다. 1000년이 지난 후 기후가 차츰 나아지자 인류는 새로운 농업 방식을 도입하여 다른 종들도 경작이 가능하도록 발전시켰다. 인류는 여러모로 더 건강에 좋고 노동력이 덜 드는 일일 수 있는 수렵채집사회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운그레이드'하여 발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쨌든 농업은 더 많은 인류에게 식량을 배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인구집중은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농업을 함에 따라 함께 사는 일이 가능해졌다.

문명으로 가는 도약의 단계에 북극의 빙권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만들어 남쪽에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홀로세 시기에 우리 인류가 선택한 건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가 아니었다. 진화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인류 종은 등장 이후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내지도 못했으니 진화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전혀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를 이루어냈는데 행동양식을 변화하며 적응해 가는 문화적, 사회적 진화이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거주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p. 164~170)

 

진화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식물과 동물들에게서 진화의 흔적을 발견한다. 나는 인류도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인류는 아니 인류만 진화를 멈춘 것이다. 인간외의 다른 생명체들이 온몸으로 부딪혀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를 바꾸는 진화를 해나갈때, 인류는 어느 순간 스스로를 변화시켜 적응하는 것이 아닌 도구를 사용한 적응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구가 발달할수록 인류 자체는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대 인류 문명의 발달 수준이 발견될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인류는 진화하지 않았기에 변하지 않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라고 부르는 사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외계인이 갑자가 지구에 인류를 뚝 떨어뜨리고 간 것처럼 갑작스럽게 진보된 인류의 문명이 늘 의아했는데 갑자기 묘하게 다 설명받은 느낌이었다.

빙하가 환경과 특히 건조한 계절에 물 공급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빙하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p. 206)

영구동토층이 녹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큰 위험은 엄청난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불가역적인 온난화를 가속화시킬 거라는 점이다. (p. 218)

인류가 등장하여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전멸시켰을 때 지형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풀이 있던 곳은 오늘날엔 모기, 관목, 이끼가 자라는 숲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유일한 변화가 아니었다. 눈이 덮인 지역도 변화했다. 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눈을 파헤치면 한기가 땅에 스며들어 여름에 녹았던 영구동토층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었다. 동물들이 사라지면 눈은 평화를 누리지만 땅은 전처럼 깊은 곳까지 얼 수 없다. (p. 226~227)

 

빙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산위의 눈이나 암석빙하의 해빙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는 것은 더 큰문제로 보였다. 지구엔 겨울이 필요하다. 이러한 겨울을 돌려주는 데 초식동물의 도움이 무척 중요한 것을 처음 알았다. 자연엔 동물들이 뛰어다녀야 한다. 겨울엔 눈이 와야 하고 극지방엔 빙하가 있어야 한다.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빙하가 녹는다는 것을 기후환경문제로만 이해했을 때와, 이 책을 통해 지구형성과 인류변천에서 빙하의 그리고 겨울의 영향력을 깨닫고 이해했을 때 생각보다 큰 격차가 느껴졌다. 기후적문제가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빙하가 이렇게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 있었다니 그야말로 제대로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가 어떤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는 다른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빙하의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지구를 다시 서리의 왕국으로 변모시켜줘야 할 때다.

겨울의 왕국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역사에서 수차례 그래 왔던 것처럼. (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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