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본기' '세가' '표' '서' '열전' 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고전으로, ‘본기’는 연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업적을 기술하고 있고, ‘세가’는 제후국의 흥망성쇠와 영웅들의 업적을 기술하였으며, ‘표’는 연대별로 각 시기의 중대 사건을 기록하였고, ‘서’는 각종 제도의 연혁을 기록하였으며, ‘열전’은 다양한 대표적 인물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사마천은 창조적으로 이 다섯 가지 부분을 종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통일체계를 완성시켰는데 [사기] 전체는 총130편으로, 사실 지나치게 방대하여 읽어볼 엄두를 내기가 좀처럼 힘든 고전이었다.
이 책이 비록 원전번역서는 아니지만, 원전번역을 했던 저자가 가려뽑은 어록이라고 해서 믿음도 가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구성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무엇보다 검정의 하드커버 책 자체가 멋짐을 풍기고 책장 한장한장 검정테두리 쳐진 분위기가 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책이라 디자인적으로도 고전의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BC 145? ~ BC 86?)은 전한시대의 역사가로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받는다. BC 91년에 완성한 [사기]를 펴내기까지 인생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고전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친 아버지덕에 지적 기반이 탄탄했고 성장후 아버지에 이어 천문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되었기에 황실 도서에서 다양한 자료수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에 궁형(거세)을 받고 투옥되었음에도 저술을 계속했다고 한다. BC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어 계속 문서를 다룰 수 있었기에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기]완성 2년 후에 사망하였다. 그야말로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전설상의 황제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 무제 때까지 2000여 년을 다룬 [사기] 는 중국고대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역사서를 읽는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사기] 일텐데,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열전' 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연상시켜서 [사기]를 읽게 된다면 아마 '열전' 부터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사기]는 사마천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투영된 역사서라고 한다.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평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기에 그러한 사마천의 글속에서 이 책의 어록들이 뽑힐 수 있었다. 책은 읽기에 굉장히 편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왼쪽 페이지에 어록 오른쪽 페이지에 관련해설이라 펼쳐진 페이지에서 어록하나하나 마다 완독가능하다 보니 언제 어느때 어느 부분을 읽어도 괜찮다.

오른쪽 페이지의 내용은 때로는 해설이고 때로는 역사적 배경이며 때로는 옮긴이의 평가가 들어있기도 하다. 대부분이 옛이야기처럼 어느시대 누구에게 이런일이 있었는데~ 하는 서술이 많아서, 때로는 왼쪽 페이지의 촌철살인에 때로는 오른쪽 페이지의 옛이야기에 마음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책한권을 쓰윽 다 읽게 된다. 이 양쪽 페이지의 핵심주제는 소제목으로 써있어서 매 페이지마다 이 소제목들에 대해서만 잠깐씩 생각해보아도 다양한 성찰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읽다보니 중국 역사에 대한 상식도 조금 알게 되는 게 있었는데 로마역사를 읽고 있어서인지 묘하게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했다.
"오제(五帝)란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이다.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이 그들이다. [사기]의 방대한 세계는 [오제본기]에서 시작된다." (p. 47)
로마의 태평성대 시절도 오현시대라 일컫는데, 중국고대사의 태평성대는 오제시대 이다. 고대시대 평화는 오황제로 완벽해지는 것일까? ㅎ
그리고 권세가의 집에는 늘 많은 식객들이 머물렀고 그 식객들 중 유능한 인재가 뽑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공자도 누군가의 식객이 되어 자신을 알아줄 권세가를 찾아 평생 떠돌아 다녔다. 이런 지식인들은 항상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알려줄만한 '유세' 를 해야 했는데, 지금의 선거유세가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로마에도 클리엔테스 라고 해서 자유민들이 귀족에게 다양한 지원과 보호를 받는 신의적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때는 귀족으로부터 식량지원도 받았다. 그리고 이 클리엔테스는 당연히 귀족의 정치적 지지세력이자 측근 인재가 되기도 했다. 이또한 왠지 고대중국의 식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고대에서의 상하관계는 이런식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ㅎㅎ
그런데 고대중국과 고대그리스로마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예란 법보다 우선 - 근본은 예이고 법은 그 하위 개념이다" (p. 281)
고대비극 [안티고네]가 생각났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장례문제를 두고 현재 인간왕이 정한 금지법과 인간으로 살아오며 전해내려온 관습법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고 있는 비극이다. 고대서양에서는 인간이 만든 법과 옛부터 전해오는 법 사이에 안티고네와 같은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사서인 [사기]에서 사마천은 '예가 법도다 우선' 이라고 못박는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인것일까?... 흐음... 뭔가 비교해본다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것인데, 동서양 비교는 자칫 개인적 편견에 빠지기 쉬우므로 더 많은 객관적 근거들을 찾아보고 해야할 것이니 여기서 패~쓰.
여하튼 이 책은 명언집을 읽는 느낌도 들고 역사서를 읽는 기분도 들고 옛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는, 다양한 면에서 짧고 굵은?! 책이었다.
어록이다 보니 아무래도 명언들이 많았는데 몇 가지 옮겨 놓아본다.
작은 예절에 얽매인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노중련·추양열전] (p. 32)
조량은 "돌이켜 자기 마음 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 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疆)이라고 합니다." (p. 63)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습니다. [회음후열전] (p. 104)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고, 군자는 쓰이고 소인은 배격당한다. 나라가 장차 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고 어지럽히는 신하들이 귀하게 된다. [초원왕세가] (p. 110)
천하에 재해가 없으면 성인이 있다 해도 그 재능을 펼 데가 없으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고 뜻을 모으면 어진 사람이 있어도 공을 세울 수 없다. [골계열전] (p. 238)
거처할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살피고, 부귀할 때는 그와 함께하는 사람을 살피며, 영달할 때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궁핍할때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며, 가난할 때는 그가 갖지 않으려 하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위세가] (p. 242)
영달할때 그가 천거하는 사람을 보라는 것은 자기 사람을 심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라는 것이다. 궁핍할 때 하지 않는 일은 진짜 싫어하는 혹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며 그 사람의 사정이 나아져도 그 일은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p. 243)
사마천은 자신의 작업을 공자가 저술한 것만큼 위대한 차원으로 했으며 자신의 불운과 공자의 불운을 동일시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p. 319)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춘춘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치부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의 상공업 발전의 면모를 볼 수 있어 '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는 재산, '식'은 불어난다 는 뜻으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이다. 사마천은 상업이야말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원류이며 이들 직업 모두를 함께 중시하는 진보적 면모를 보였다. 사실상 '중농억상'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벗어난 것이다. (p. 373)
속담에 '책으로 말을 모는 자는 말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옛날 법도로 지금을 다시르닌 자는 일의 변화에 도달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법도만을 따르는 공으로는 세속을 초월하기 어렵고, 옛날을 본받는 학문으로는 지금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오. [조세가] (p. 386)
온고지신도 좋고 옛 성현의 말씀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이 시대와 영합할 뿐 뛰어넘고 다스릴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p.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