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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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이제껏 우리가 몰랐던 우리 모두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고 변혁시켜 온 정신사의 궤적과 한국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 온 이어령의 시대적 선언!

 

 

띠지의 사진을 왜 저런 포즈로 찍으셨을까;;; 종교 교주 같은심;;;

이어령 선생님 이름을 안들어본 사람보다 들어본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꾸준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도 놀라운데,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시리즈 집필을 시작하셨다니 더욱 놀랍다. 게다가 그 시리즈 제목이 무려 '한국인 이야기' 이다.

00인 이야기 라는 제목을 들으면 대부분 로마인이야기 라는 책 제목을 떠올리게 될 것 같은데, 나또한 그러하여 이 책이 소설적 역사이야기 인줄 알았다.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역사를 살아온 사람 즉, 한국인에 초점을 맞추어 연대기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시려나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책이었다. -0-

책은 태명 이야기로 시작된다. 태명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늘 있어온 관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어령 선생의 북콘서트 후 책에 사인을 해주던 자리에서 쑥쑥이이름으로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야 선생은 태명에 대해 알게 되신듯 하다. 그리고 태명이라는 것이 한국인만의 것임을 논증하기 시작한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 당연히 우리는 우리말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자가 없어 그 뜻이나 소리를 이두식 한자로 표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라는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의 이명으로 '불구내' 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석에서도 광명이세 로 밝혀져 있듯이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 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혁거세를 토박이말로 환원하면 '불구내'는 '밝누리(놀이)'가 아니라 '밝아누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혁거세를 한자의 뜻으로 풀어보면 '밝을 혁' 과 '누리 세'로 그 뜻이 부합한다. 그러니까 혁거세는 원래 이름의 뜻을 옮긴 훈차요, 불구내는 그 이름의 발음을 적은 음차 라고 보면 된다. (p. 19)

태명으로 시작하여 이름에 대해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시는데, 한글에 대해 이분만큼 정확히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 믿고 읽게 되는 내용들이었다. 지금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태명이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진짜 오리지널 한류라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되는 내용들이었다. 2001년쯤에서부터 태명짓는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그렇게밖에 안됐나 싶어 놀랐다.

아시아는 성을 중시하고 유럽은 이름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 표기 순서가 다르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한국과 중국은 성씨를 중요시 여겨 한국은 세계에서 성이 가장 적은 수에 속하고 인구가 그렇게나 많은 중국도 인구의 85퍼센트 안팎이 100개 이하의 성씨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성씨는 갯수는 많지 않은데 비해 일본은 성씨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여 성씨와 이름을 자주 바꾸고 새로 짓고 하다보니 30만 종의 성씨가 있다고 한다. 이름의 문화만 보더라도 서양과 동양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엄청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보는 차이가 바로 이 한 살 나이 차이에서 비로된다. 천년만년 다른 문화와 문명 그리고 앞으로 올 미래의 세월에 큰 차이가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최첨단 초음파 기술이라 할지라도 앞 못보는 심봉사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모태의 생명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람 눈의 수정체도, 카메라의 렌즈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오직 생명의 예지를 지닌 '마음의 눈' '영혼의 눈' 이라는 점이다. (p. 63)

저자는 한국인 고유의 배내 문화에 대해서도 장점을 부각시킨다. 한국나이는 서양식 만 나이와 혼용되어 헤깔리기 일쑤이지만, 태아를 생명으로 존중하여 태어나자마자 1살로 치는 태도는, 태아를 생명으로 존중하지 않고 0살로 치는 서양식 태도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걷고 뛰는 두 발의 힘이 오늘의 인간과 그 문화 문명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 못하는 것은 물건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은 손에서 나왔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행동의 힘은 발과 다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문화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쥐고 잡는 능력 때문에 짐승과 다른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같은 유인원들이 먼저 인간으로 진화했어야 옳았다. (p. 83)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침팬지나 고릴라도 하루에 기껏 길어야 3킬로미트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채집 시대의 원인류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는 것이다. 손이 아니다. 이동성을 가능케 한 바로 그 발과 다리가 오늘의 인간과 그 문화 문명을 만들어낸 주역이었던 것이다. (p. 84)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손이 아니라 발이 인간을 유인원에서 독립시켰다. 그리고 쿵푸와 가라데는 손을 사용하지만 태권도는 오직 발만 이용하는 운동이다. 태권도가 갑자기 달리 보인다. 최근 걷기 가 유행인데 이또한 달리 보인다.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는 민족도 한국인데 유일하다는데 심지어 발까지!! 저자의 한국인 장점논리에 점점더 빠져든다. ㅎㅎ

출산후 미역국을 먹는 문화도 한국인만의 고유한 산후조리법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미역은 바다속 잡초 취급당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출산과 미역국은 생소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미역의 산후조리능력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뱃속 태아를 소중히 여기고 산후조리를 미역국으로 보신했던 한국인은 애초에 생명을 주시는 삼신할머니 문화부터 달랐다.

일찍이 이능화 선생이 <조선무속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삼신할머니 의)'삼' 은 한자의 삼(三)이 아니라 태(胎)를 뜻하는 우리 고유의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요즈음 말로도 탯줄을 자르는 것을 '삼 가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삼신을 '三神'이라고 해온 것은 '생각'을 '生覺' , 사랑을 '思郞' 으로 써온 한자 중독증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삼신의 뜻을 토박이말로 바꿔놓으면 꼬부랑 고개의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p. 120)

드라마 도깨비에서 등장했던 삼신할머니의 다채로운 모습(할머니 아가씨 등등)은 한국에서만 가능했던 표현이라고 한다. 타 문화에선 상상도 못했던 생명신의 모습이라고 ㅎㅎ 몽고반점도 한국인의 경우 발생률이 97퍼센트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면서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응원열정을 연결짓는데 묘하게 설득되어진다.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지만 타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신선했다.

인터넷에서 캐낸 한국인 이야기다. IMF의 환란 때 떠돌던 유머인 것 같다. 경제난으로 일가족이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실을 시도한다. 그런데 한 사람도 떨어져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였고, 어머니는 바람난 주부에, 딸은 날라리 였다. 거기에 큰아들은 제비족이었고, 둘재 아들은 비행소년, 막내는 덜떨어진 아이였다는 이야기다. 한국사람이라면 이러한 우스갯소리를 듣고 웃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외국인은 아니다. 유머 감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기러기아빠' 나 '제비족' 그리고 '바람난다' 같은 독특한 한국어의 속어를 이해하지 못할 거다. 더구나 '날라리' 나 '비행'의 동음이의어는 음운 체계가 달라 번역조차 불가능하다. (p. 145)

저자는 전공을 살려 한국어의 장점을 여러면에서 부각시키는데 읽을때마다 한글의 위대함은 감탄스럽다. 고전서만 고집하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다양한 글을 인용하시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인데, 저자가 퍼온 저 유머를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한글은 정말 위대하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젖을 빨던 아이가 음식을 '씹'는 아이로 성장하고, 오즘 '싸'고 똥 '싸'던 아이가 오줌 '누'고 똥'누'는 아이로 바뀐다. 이렇게 똥오줌을 '가리게'되면 가랑이 사이에 족쇄처럼 채워졌던 기저귀를 떼게 된다. 쉬쉬와 응가와 끙가 같은 절묘한 소리와 패턴을 분석해보면 태명과 상통한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쉬쉬' 는 잇소리다. 간지러운 잇몸에서 막 이가 나려고 하는 바로 그 치음이다. '응가'는 응애하고 태어날 때 숨 쉬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고, '끙가'는 그보다 더 힘을 줘야 하는 쌍기역 소리다. 이렇게 미세한 차이가 젖먹이 똥싸개아이에게 전달되면, 이제는 자의로 배변을 할 수있는 힘이 생겨난다. (p. 161)

한글이 위대한 것은 표현방식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 글자로 적을 수 있었던 우리말의 표현이 다양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말의 표현은 정말 글자 하나차이로 성장을 표현해 낼 수 있을 다채롭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제대로 번역될 수만 있다면 외국인들이 정말 깜짝 놀랄텐데...

제주도 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은 요람 문화권에서 벗어난 거의 유일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애를 업어 기르는 포대기는 밀착형 육아문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애를 업고는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주도만이 아이를 구덕에 넣어 기르는 걸 봐도 짐작이 간다. (p. 172)

2,000년 전 로마의 정치인 세네카는 스와들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부모는 아직 유약한 정신을 가진 아기들에게 약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견뎌내도록 강요한다. 그들은 울고 발버둥치려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그들의 몸이 곧게 자라지 않고 굽을 까 봐 단단히 천으로 묶어둬야 한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교양 교육을 시키는데, 만일 이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면 겁을 주어야 한다' 아기를 천으로 꽁꽁 감싸주는 스와들링은 아이가 힘들어해도 강요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겁을 줘서라도 뜻을 이뤄야 한다는 폭압적 부모론이다. 적어도 세네카의 말 속에 아기의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 186)

부르는 언어가 다르고, 믿는 종교가 다르고, 감고 두르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더라도 유럽의 스와들링 풍습만은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공간적으로 모두 스와들 문화권에 속하는 유럽권 지역이다. 멀리 4,500년 전 고대로부터 17세기 이후 스와들링에 관한 비판이 이뤄지기 이전까지 스와들링은 아무런 문제 제게 없이 모두가 공유하는 육아방식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스와들링 풍습은 전 세계적으로 뿌리 깊게 남아 행해지고 있다. (p. 194)

 

한국인만의 포대기와 기저귀문화의 장점을 이야기 하면서 서양에서 이루어졌던 스와들링 육아법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기저귀가 없었다니;;; 기다란 천으로 미라처럼 묶은채 요람에 떨어뜨려 아기혼자 재우면서 용변을 볼때마다 갈아준것도 아니라니;;; 뱃속에 있을 때는 생명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태어나서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보살핌이 없는 문화가 역사에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 그런데 한국인만의 독특한, 안고 업어 재우는 밀착형 육아의 스킨십문화는 서구로 건너갔고, 현재 한국에선 서양식 스와들과 분리형 육아를 선호하고 있다니 이무슨 안타까운 일인가... 나도 길거리에서 아이를 앞에 정면을 보게 하여 매달고 다니는 젊은부모들을 보면 머리와 팔다리가덜렁거리고 있는 아기를 보면 불안함이 느껴진다. 가슴에 꼭 안아주거나 등에 푹 업어주는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언어학자들은 이 의성어가 가장 발달한 말로 한국어를 꼽는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의성어를 많이 쓴다는 건 이미 객관적 통계로도 밝혀진 바 있다. 정식으로 사전에 나와 있는 것만 8,000개다. 일본은 2,200개, 독일은 우리의 7퍼센트 수준인 541개이니 말하 것도 없다. (p. 237)

다채롭게 표현할 도구가 많다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류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이나 한국 영화가 점점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화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 축하축하 ㅎㅎ)

일본도 옛날에는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돌잡이 문화가 같았지만, 그것을 보유하고 발전시켜 지금까지 지속하는 것은 한국뿐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책을 잡는 풍속이 없다.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책을 덜 읽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를 보면 책과 연관된 단어가 많다. 일본 사람은 '쓰구에' 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책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남편을 서방(書房), 'Library Man'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자기 남편을 '책방'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책으 귀하게 여긴 민족인 거다. (p. 274)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우리 돌잡이는 앉아 있고, 일본의 돌잡이는 같은 좌식문화인데도 돌상을 앉아서 받지 않고 서서 걷는다. '앉다' 와 '서다' 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비록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기는 하나 중세에 만들어진 버질의 동상은 좌상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에서 그것이 입상으로 바뀌게 된다. 중세의 '앉은 자세' 와 르네상스기의 '선 자세'는 대립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서 있는 자세가 전투적, 행동적, 외향적인데 반해, 앉아 있는 자세는 평화적, 명상적, 내향적인 것에 가깝다. (p. 275)

 

돌잡이 문화가 한국에만 있었구나... 남편을 책과 연결시켜 서방님이라고 불렀다니, 남편은 책만 읽는 사람이었던건가 ㅎㅎ 여하튼, 좌식문화의 평화적 연결도 돌잡이 문화의 미래희망성도 다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잡는다' 는 의미가 들어있는 돌잡이문화가 있는 한국인만이 기회를 잡고 사랑을 잡고 운명을 잡고 나아가 세계를 잡는 '잡는다'는 의미를 가장 제대로 아는 민족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그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ㅎㅎㅎ

'3'이란 숫자는 세계 어디에서나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한국인만큼 셋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건 그냥 돈이나 물건을 세는 수의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수를 알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셋이라는 수다. 서양아이들이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결정할 때, 동쪽 아시아의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내기를 한다. 이항대립이 아니라 삼항순환의 오묘한 사고 체계를 공유하는 거다. 그것도 일본 아이들은 동전 던지기처럼 단판으로 하는데 한국의 아이들은 보통 삼세판이다. (p. 283)

그렇다. 숫자 3 참 좋아한다. ㅎㅎ 저자는 이 숫자 3을 세살까지의 중요성과 연결지으며 다시한번 한국인만의 태교문화와 육아문화와 생명존중 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밖에 나가면 서양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그 방대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ㅇ르 찾아서>의 맨 첫머리가 그렇게 시작한다. 한국의 소설에서는 눈 씻고 보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쓴 소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한국의 아이들은 '나들이'란 말을 알기 때문이다. 나들이의 집합 기억이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p. 305)

서양문화에서는 일반적인것 같은 분리불안이 한국에서는 성립하지 않을 것 같은 육아방식에서의 신뢰감은 고향의 추억과 한국인만의 호미의 재발견을 거쳐 할머니 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꼬부랑 할머니에서 시작해서 열두 고개를 지나 꼬부랑 할머니로 끝나는 셈이다. 이 꼬부랑은 인간이 만든 직선길이 아닌 자연이 만든 길이기에 곧 신이 만든 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과거다. 내가 훗날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과거였던 시간이 내 훗날 미래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옛 이야기의 의미다. 수천 년을 이어온 옛이야기, 그때 내 말이 있었고, 내 말이 또다시 수천 년을 이어 아이의 옛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그 아이의 아이로 또다시 이어진다.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또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로 탄생한다. 요즘 잘 쓰는 말로 '오래된 미래'라는 당착어법이 생겨난다. (p. 381)

과거는 현재의 자양분이 되고 현재는 미래의 기반이 된다. 옛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이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계속 이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이어지는 것,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한국인만의 옛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자긍심을 북돋우며 오래된 것을 잊지 말고 활용하여 미래를 만드는데 활용하도록 연결짓고 있다.

'오래된 미래'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티벳 저쪽 산골마을 라다크의 현실을 다룬 오래된 미래는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단어였다. 미래 보다는 오래된 에 방점이 찍혔달까.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미래는 그 의미가 아니다. 오래되었지만 소중한 한국인만의 고유한 장점을 대를 이어 계승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다. 오래된 을 바탕으로 한 미래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가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 는 이제 탄생 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시킬 지 모르겠으나, 역사서가 아닌 다양한 내용을 아울러 '한국인 이야기' 라는 제목을 쓰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저자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령과 병환으로 십년만에 완성됐다는 이 '탄생'을 시작으로 마지막 권까지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으시길 응원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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