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되기 싫은 개 - 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팔리 모왓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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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1957년에 출판된 원제가 [ The Dog Who Wouldn't Be ] 인 이 작품은 소설은 아니다. 허구로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유년시절을 담은 추억담이다. 하지만 에세이라고 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와 함께 한 특별한 개 머트 의 생애를 따라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좋은 자연에서 어린 소년과 개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ㅎ

작품의 출판년도가 오래되긴 했지만 옛이야기처럼 읽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초월해서 읽히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교감에 관한 추억은 원래 그런 뭔가가 있지 않은가. 그런 뭔가가 가득한 책이다. ㅎㅎ

저자인 팔리 모왓은 캐나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연주의 작가라고 한다. 1921년생인 저자는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다. wow

넓다 못해 광할한 대지의 나라 캐나다에서 거의 100여년전 태어난 작가가 보낸 유년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친화적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주민에게 정착지를 정부에서 무상으로 주던 때라고 하니 아주아주 자연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도 대부분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자연을 담았으나 읽다보면 자연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과 그 생명과의 교감을 표현하고 있을 것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옮긴이의 번역서들을 보니 메디슨카운티의다리, 모리와함께한화요일, 파이이야기, 행복한사람 타샤튜더 등 옮긴 책들이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작가도 자신들만의 분위기가 있지만 번역가들도 그런 분위기를 가진 번역가들이 종종 있다. 자신의 번역분야를 가진 번역가의 작품은 믿을만 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옮긴이의 이력이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은 초딩나이의 팔리와 함께 했던 개 머트의 이야기 이다. 제목이 개가 되기 싫은 개 라고 해서 일종의 동물판타지 소설인가 싶었는데, 개인 머트가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저자가 머트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다보니 개 이상의 어떤 존재로 여겼던 마음을 담은 표현인 듯 하다. 개들이 자신이 개라고 생각한다기 보다는 사람이 개로 이름짓고 개로 보는 것 아닌가 개들은 그냥 자기자신일 뿐이다. 머트는 개 이지만 팔리 에게는 그냥 개 가 아니라 머트 라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어릴 때 머트는 개로 살면 미래가 없다고 결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행동을 고집스레 하면서 개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개로 믿지 않았지만, 멍청한 개들이 흔히 그러듯 자기를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머트는 개와 사람, 양쪽 모두에 가까워 보였지만 또한 그 어느 쪽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태도가 독특했다면 외모 또한 특이했다. 보통 세터 종과 전혀 다른 체격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알려진 어떤 종과도 달랐다. 뒷다리를 포함한 후반신이 전반신보다 몇 인치 높았고, 동시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머트의 눈이 한데 몰려서 시선을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귀가 좀 크고 비뚤지만 두상이 널찍하고 머리끝이 높고 둥그랬다.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특이하게 기품이 있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p. 24~25)

머트는 딱히 어느 종 이라고 알아채기 어려운 그냥 잡종견이었다. 게다가 외모는 일반 잡종견들보다 더 볼품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년 팔리는 머트를 강아지때부터 키우면서 머트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볼 정도로 머트의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소년에게 머트는 아주아주 특별한 개였다. 묘하게 생겼는데다가 하는 행동도 독특했던 머트를 보면서 소년은 개가되기 싫은 개라고 생각했다. 그냥 아주아주아주 특별한 머트 였다.

머트는 어딜 가든 기억을 깊이 새겨놓았다. 격노의 고함소리 같은 생생한 기억이든, 치매 같은 우중충한 색감의 뿌연 기억이든, 머트는 돈키호테의 분위기를 풍겼고,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 가족과 10년 넘게 살았다. (p. 31)

사람 중에서도 돈키호테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 개들 중에서는 더 흔치 않지 않을까? 머트는 개들 중에서 돈키호테였다.

사냥개를 기르고 싶었던 소년의 아버지는 머트를 키우는 내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사냥철이 되어 새사냥에 나섰을때 머트에게 홀딱 반하고 만다. 머트의 사냥 능력은 다른 개들과 달랐다. 주인이 쏜 총에 맞고 떨어진 새들을 물고 오는 일반 사냥개와 달리 머트는 다친 새들을 제압하여 물고 왔고 물로 도망친 새들도 물고 왔고 은신처에 숨은 새와 다른 사람이 쏘았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새까지 모조리 물고 왔다. 소년의 아버지와 동네 일대에 머트는 신화가 되었다. 아주 재밌는 일화들을 퍼뜨리며 ㅎ

외지인이 머트의 가격 높은 품종의 사냥개를 자랑하며 사냥실력을 뽐낼때 듣다못한 동네 사람이 머트 이야기를 했고 믿지 못하자 소년의 아버지 직장으로 몰려왔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사냥철이 아님에도 사냥준비하듯 총을 꺼내고 동작을 취한 후 머트에게 "탕 탕 가져와" 라고 말했다. 머트는 전속력으로 동네를 질주하여 새를 물고 왔다. 총기류 무기점 가게의 진열장 속에 있던 박제 된 새를!!! 외지인은 내기에서 졌다. ㅋㅋ

머트는 다른 면에서도 독특했다. 가족이 이사하여 새 동네에서 개들의 텃세가 심해 싸움을 붙여 올때 머트는 참을만큼 참다가 더이상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머트는 이번에는 싸워야 딘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민첩한 동작으로 훌러덩 눕더니 네 다리를 미친 듯이 자전거 바퀴 돌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 2인용 자전거를, 똑바로가 아니라 거꾸로 타는 것 같았다. 또 특이한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치광이의 통곡 비슷했다. 다리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고음의 사이렌이 커졌고, 결국 가스터번이 전속력으로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허스키 네 마리는 이 기묘한 행동을 보고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허스키들은 머트와 3미터쯤 멀어지자 일제히 몸을 돌려 체면을 내던지고 자기 집 뒷마당으로 달아났다. (p. 103~104)

머트는 동네 개들을 평정한 후 고양이 들도 제압했다. 개들을 피해 울타리사이를 고공산책하는 고양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울타리 사이 높은 곳을 걷는 커다란 머트를 맞닦드려야 했다. 심지어 머트는 사다리도 타고 올라갔고 나무까지 올라갔다. 물론, 내려올때 가끔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야 되긴 했지만. ㅋ

오카나간 강을 건너는 여객선에서 한 승객이 머트에게 던진 악의적인 눈빛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눈빛을 던질 만도 했다. 머트가 접좌석에 앉아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리고 6리터들이 통에서 체리를 꺼내 먹고 있었다. 체리를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주둥이를 들고 뱃전으로 고개를 돌려 태연하게 씨앗을 푸른 강물에 휙 뱉었으니. (p. 174)

가뭄철 대지의 먼지가 흩날릴때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달려도 먼지 한가득을 뒤집어 쓰고 가야 하다 보니 창문을 열려면 고글을 필수 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머트에게도 고글을 사주었고 어느새 머트는 혼자서 고글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창문으로 고글을 쓴 개가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는 것도 진 풍경일텐데 머트의 과일 취향은 소년과 너무 닮아서 체리를 좋아했고 먹다보니 씨를 뱉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고글을 쓴 개가 체리를 알아서 꺼내먹으며 삐죽거린 입으로 씨앗을 뱉어내는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자의 머트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저절로 웃음짓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연주의자이자 수집가였고, 독수리 알부터 공룡 뼈까지 자연의 모든 것은 집에 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옛날식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동물을 알 방법은 같이 살아보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난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랐고, 애송이 과학자로 나선 첫 탐험에서 소의 해골과 검은 뱀 두 마리를 수집해서 집에 가져와 침대 밑에 자리를 마련했다. (p. 175)

온 가족이 자연친화적이었다. 소년이 뱀을 가져오든 거북이를 데려오든 다람쥐를 잡아오든 소년의 집에선 모두 함께 살 수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소년이 여섯살때 물고기를 잡아서 집에 가져왔는데 어디 둘까 하다가 변기에 풀어 놓았었다는 것이다. 변기를 열었는데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본 (가족중에서 유일하게 자연친화적이지 않았던) 할머니는 격노했다. ㅋㅋ

소년은 숲에서 수리부엉이도 구조하여 함께 살게 됐는데 학교까지 따라 와서 곤란해지곤 했었다고 한다. 부엉이 두 마리와 고글쓴 머트와 함께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부엉이들은 뒷좌석에서 번갈아 날개를 펼쳐 비행 모습을 취하고 그 앞엔 고글 쓴 머트가 창밖 구경을 하곤 했다는데 이 장면 또한 저절로 상상이 되면서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저자의 글들은 다 자연을 담을 수 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했다.

읽는 내내 머트의 특이한 취향들과 소년의 독특한 자연사랑 때문에 웃음짓게 하는 이 작품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처럼 자연 친화적이지 않은 곳에서 살며 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따듯한 책이었다. 머트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쳤지만 저자는 이 작품으로 머트를 영원히 살게 해놓았다. 정말 특별한 개로 자리매김한 머트가 무지개다리 너머 청명한 숲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피곤해지면 기우뚱한 자세로 초점을 모르겠는 시선을 한채 고글을 쓰고 체리씨를 뱉어내고 있을 것 같다. 개가 아닌 것처럼 ㅎㅎ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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