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직업은 큐레이터다. 화가보다도 어쩌면 가장 많은 작품을 보는 사람이 아마도 큐레이터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고급지게 표현되는 전문직 큐레이터가 보는 그림은 어떨지 궁금했다. 저자는 현대미술사와 비평 강의를 하는 교수이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쓰기도 한다.
책을 읽어보니 이제 갓 서른즈음 되었을 법한 나이로 짐작된다. 십대 후반부터 유학생활을 했고, 방학이면 유럽을 여행했고, 졸업 후 바로 취직이 되었으며,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자연이 생각났을때 제주도에 전시관 겸 사무실을 살뻔할 만큼의 경제적 기반이 있고, 한강에 걸어서 혹은 뛰어서 운동을 나갈 수 있는 환경인 압구정에서 싱글라이프를 살고 있는 여성이다. 내가 왜 이렇게 책의 본질적 내용과 상관없는, 책에서 부수적으로 조금씩 어쩌다 등장한 이런 조건들을 늘어놓고 있느냐하면, 처음엔 자꾸 저자의 본심을 외면하고 저자가 가진 것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봤던 나 때문이다.
미술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어차피 여유가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들 아닌가?! 하루하루 먹고살기 팍팍하고 오늘내일 어찌살지 답답한 일상에 미술이 예술이 끼어들 틈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그림을 보고 예술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하지만 막상 보고나니 경험하고 나니 그림이 삶에 주는 영향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문자는 말보다 좁고 말은 그림보다 좁았다. 문자로 씌여진 것들에서 행간을 읽는 것보다 말로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나았고, 말로 규정되지 전의 그림들이 주는 생각들이 더 낫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삶의 여유보다는 마음의 여유문제였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일수록 그림이 주는 위안이 필요했을 수도 있는데... 잘 몰라도 그림을 보며 느끼는 개개인의 생각들은 다 다를 수 있고 그게 당연하므로 그림을 본다는 것은 다 혼자보는 것이다.
그림 보는 게 좋아지면서 이런저런 그림관련 책들을 읽었었다. 고전적 그림에 대한 해설서부터 역사적 그림에 대한 풀이가 좋은 책도 있었고, 미술사적 인문학책도 좋았는데, 그림에 대한 해석을 너무 개인기분파로 하거나 상관없는 글과 그림을 엮어내는 책들은 읽기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