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가장 꾸준히 한 일은 '니아 먹는일'

본격 나이 탐구 에세이

지금 사는 세상은 젊으나 늙으나 처음 살아보는 세상이다

 

 

저자는 갱년기 안면홍조는 수줍음으로, 가슴 두근거림은 설렘으로 포장 중 이라는 작가이다.

자신의 소개를 이처럼 하는 것으로 책의 분위기는 유쾌한 분위기는 시작부터 드러난다.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이고 두 아들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바쁘게 살던 50대 초반의 저자는 몇년전 폐경을 맞은 후 갱년기에 접어든 몸의 쇠퇴에 대해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의 생활에 대해 지금의 나이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생각들을 적은 글이 이 에세이 집이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호르몬의 흥망성쇠가 뚜렷다다고 볼 수 있다. 평생 생성되는 정자와 달리 난자는 유한개이고 그 유한성의 끝은 폐경이다. 사춘기는 남녀 모두 겪지만 갱년기는 폐경후 여성의 몸과 정신에 어쩌면 사춘기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족적을 남긴다. 딱 갱년기에 접어든 저자의 나이는 이런저런 변화의 시점이다. 50대의 여성이 쓴 에세이를 몇 권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갱년기 삶의 우울함을 떨쳐낸 극복기 처럼 쓴 에세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저자는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챙겨가는 삶을 살아왔고 그랬기에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갱년기 우울증은 겪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갱년기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의 에세이를 시작하는 그림 몇 페이지는 어찌됐든 저자에게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처방약이 필요했음을 저자의 스타일대로 보여주고 있다.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걸 아시는지? '늙다'는 움직임과 과정이지만 '젊다'는 어떤 상태나 성질을 나타낸 것이다. '늙어갈' 수는 있지만 '젊어질' 수는 없다 (p. 10)

본문 첫 페이지에서 본문 글도 아닌 ( ) 안에 쓰여진 보조문장이 wow 싶었다. 그랬구나...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랐다. '늙다' 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것이, 그래서 늙어갈 수는 있지만 젊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 이 동사와 형용사의 구분이 신선하면서도 굉장히 의미가 강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중요한 건 '변화'다. 변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변하지 않음'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우정', '한결같은 마음, '언제나 처음처럼' 등등의 말을 여기저기다 마구잡이로 갖다 썼다. 좋은 말,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게다가 변하지 않는 것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음이 아집과 관성, 무기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귀찮아서 안 변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변하려면 안 쓰던 것을 신경을 써야 하고 모르던 것을 새로 알아야 한다. '아, 아무일이라도 생겨라' 하는 마음이 젊은 마음이다. '제발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면 늙은 것이다. (p. 45~46)

소설과 극본, 시나리오를 두러 써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자의 문장은 재치있으면서 편한하게 읽힌다. 나이들수록 변화는 귀찮거나 두려운 것이고 그래서 꼰대가 되기는 쉬워도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변화가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게 좋은 것이 있고 변하지 않아야 좋은 게 있다. 그 구분을 할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변화를 위해 배울 준비가 되있는 자세가 겸손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 해도 쇠락과 비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채워지는 내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일을 믿으며 오늘을 산다. 연습이란 그런 것이다. (p. 139)

저자는 에너자이저 경향이 있어 보인다. 아들 둘이 고학년이 되었을때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운동도 꾸준히 배우고, 그림도 배우며 일정시간은 카페에서 글도 쓴다. 그러한 여력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러한 에너지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활기찬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나이들어 가면서 비움보다는 자신을 위한 채움을 하고 있다. 나이든다고 늙어간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대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온갖 책들이 비움을 강조한다. 뭔 문제만 있으면 비우라고들 한다. 하지만 채워진게 있어야 비울수도 있는 법이다. 바쁘고 열심히 사느라 비워진 내안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나이들어가며 받게되는 선물같은 시간들이다. 누군가를 위한 시간보다 나를위한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을 쇠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운동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녔다. 가기 싫은 발걸음을 어떻게든 스포츠센터까지 옮기게 만든 에너지가 뭐였을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두 돌 된 애를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운동한다고 애를 맡겼으니 그 시간에 꼭 운동해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이 있었다. '엄마가 얼른 몸도 마음도 튼튼해질게. 그래서 더 많이 놀아줄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정신과 약과 비싼 상담 치료 대신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p. 155)

두 아들이 어릴때 저자는 우울증을 겪었다. 바쁘고 치이는 반복되는 일상이 하릴 없이 눈물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약은 듣지 않았고 상담은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운동을 하면서, 처음엔 그야말로 꾸역꾸역 다니면서 몇년이 지나서야 운동의 건강한 매력이 저자에게 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저자는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이제는 하루라도 빠지면 몸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적응이 됐다. 그 사이 몸도 정신도 건강해졌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와 초보엄마의 좌절감은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적인 병은 뚜렷이 신체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기에 경제적 부담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헛돈 쓰는 것 같고 소용없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

운동이 효과적이고 좋은 것이라는 건 알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신체를 가진 나로서는 저자의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살기란 얼마나 불편할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몸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없는 임신부가 이용하기에 대중교통은 얼마나 불친절한지 체험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안에 손톱만큼이라도 지장을주는 사람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지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 주변부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p. 222)

나는 나이든 싱글이나 결혼한 신혼부부 지인이 생기면 아이를 꼭 낳으라고 조언하곤 한다. 결혼을 했건 안했건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내가 성장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자란다. 신체적 성장이 멈추면서 정신적 성장도 멈추었던 것이,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이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 텐데...

평범한 사람이 무언가 계속 노력해서 '발전' 이라는 걸 하려면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재미도 있다. 그리고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 (p. 248)

완벽주의는 힘들다. 나이들면 더 힘들다. 그래서 나이들면서 좀 덜 하라고 내려놓으라고들 이야기 한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룰 꿈을 갖기 보다는 선택적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으나 늙으나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은 삶의 활력소이다. 하고 싶은 것을 잘해서 발전하고 싶은 것은 때로는 에너지가 되고 때로는 강박이 된다. 어느 나이에 무엇을 하던 재미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도 재미를 느끼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어서 어느 순간 재미는 사라지고 힘들어지곤 하는데, '재미' 를 꼭 염두에 두어야 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마음은 18세 풍랑기 이고 장래 희망은 웃긴 할머니 인 저자의 유쾌 발랄 인생 성장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 먹을 수록 소화력도 떨어지는데 나이 때문에 체하면 정말 약도 없지 않겠는가 ㅎㅎ 누구나 공평하게 매년 한살씩 먹는 것 같지만, 그 나잇값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약이 없으니 조심해야지. 나이를 자~알 먹어 가는 과정중에 저자의 갱년기 에세이는 따듯한 공감과 편안한 일상을 공유하는 책이라 재밌게 읽었다. 설날 이라는 나이먹는 명절을 보내자마자 이 책을 읽고 나니 왠지 더 쑥쑥 읽히고, 명절의 피곤함도 가시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 나이를 잘 먹어가 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