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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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한 사회 비판과 해학적 인물 묘사로 만들어낸 가장 '디킨스다운' 소설이자 19세기 최고의 영국문학 완역본

차가운 도시 밑바닥에서 피오오른 선한 용기와 삶의 희망

영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단권 완역본



원전 완역본! 중요하다. 제목이 널리 알려지고 익숙한 책일수록 그 책이 축약본인지 중역본인지 완역본인지 아는 것은 내용 이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원전 완역본 이라 할지라도 출판사와 번역가에 의해 얼마나 충실하게 번역되었는지도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대지성 에서 나오고 있는 클래식 시리즈는 무척 반갑다. 익숙한 고전들에 대해 원전을 완역해 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이전의 번역본들이 했던 실수들을 (원전에서 멀어졌던 번역을 다시 원전에 가깝게)수정하면서 현대적인 매끄러운 문장들로 가독성도 높이고 있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중 4권 읽어봤는데, 그중 2권은 이전에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봤던 책이서 더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읽었던 4권 모두 좋았어서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영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라는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작품을 원전 완역본으로 읽었던 첫 책은 '두 도시 이야기' 였다. 혁명의 시대를 배경으로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러브스토리이자 역사소설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가장 디킨스 답지 않은' 소설이라는데, 디킨스의 첫 책으로 읽고나니 내게 작가의 첫인상은 만연체의 지루한 문장임에도 몰입하게 되는 서사적 매력을 가진 소설가였다. 그런데 <올리버 트위스트> 를 읽으며 인상을 확 바꿔갖게 되었다. 완전 호감 급상승!!!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범죄자들과 런던 인구의 하류층에서 선정되었다는 것이 아주 조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일 것이다. 사익스는 도둑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에다가, 주인공 소녀는 매춘부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의 보편적 본성에는 최상과 최악의 색조들이 뒤섞여 있다. 상당 부분이 추악한 색조를 띠지만,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자, 변칙이며, 일견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그것이 의심받는다면 나로서는 도리어 기쁘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그것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 저자 서문 中)


디킨스는 서문에서 자신의 의도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하고 있다. 잡지에 연재되던 글들을 책으로 묶어 내면서 그동안의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했을 이 서문은 저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고 이런 인물들을 골랐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 의도만으로도 왜 영국인들이 디킨스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들을 동정했다. 이 사람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는 묘비명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디킨스는 누구도 애정어린 눈으로 보지 않았던 계층을 따뜻하게 보고 있던 작가였고, 따듯이 봐줄수 없는 사람들도 그 나름의 개연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작가였다.


노부인은 지혜와 경험이 풍부한 여성으로, 무엇이 아이들에게 좋고 자기 자신에게 좋은지 아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부인은 주급에서 자기 몫을 더 크게 떼고 난 후, 교구 아이들에게 원래보다 훨씬 더 적은 몫을 할당했다. 노부인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끝을 모를 정도로 아이들의 몫을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내고 있었는데, 대단한 경험주의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p. 24)


디킨스 만의 풍자와 해학이 어떤 것인지 시작부터 느낄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읽는 내내 우리나라 판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비참한 현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 표현방식에 있어 웃음이 나게 하고, 시작을 항상 주변적인 배경설명부터 해서 인물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까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고아 농장' 이라 할 수 있는 어린 고아들의 보육시설 책임자인 노부인에 대한 표현방식은 당시 빈민시설들에 대한 설명과 관리인들에 대한 표현에세 내내 유지되는데 그 반어적 설명들이 그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배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낡은 밧줄의 실밥을 푸는 간단한 과정 속에서 교육과 기술이라는 두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올리버는 말단 교구관의 지시에 따라 꾸벅 감사인사를 올린 다음, 서둘러 커다란 보호소 건물로 끌려가서 거칠고 딱딱한 침대 위에서 훌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이 축복받은 나라의 자상한 법률에 따른 사례를 어디에서 이토록 고귀하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다니! 가엾은 올리버! 올리버는 행복하게도 주위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잠이 푹 들어서 생각도 못했겠지만, 바로 그 날 이사회가 올리버의 미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렸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 이사회의 신사들은 아주 현명하고 깊은 철학을 지닌 분들로, 구빈원에 관심을 두게 되자 단번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점인데,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구빈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구빈원은 공공오락을 제공하고 공짜 술집이자 1년 내내 아침, 점심, 저녁, 차를 얻어먹는 곳이니, 놀고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은 낙원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사회의 신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구빈원 안에서 서서히 굶어죽든가, 아니면 바깥에서 빠르게 굶어죽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규칙을 세웠다. (p. 32~33)


신랄한 비난보다 비트는 문장이 상황을 더 극적이게 만든다. 어린 올리버의 처지는 더 딱하게 다가오고 구빈원 관계자들은 더 악독하게 다가오지만 그 총체적인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자꾸 나오니 이런것이 풍자와 해학인가 싶으면서 디킨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 광경을, 배 속에서는 고기와 술이 썩어나고 얼음 같은 피와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좀 보았으면 싶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개도 거들뗘보지 않을 진수성찬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허기로 잔뜩 독이 오른 올리버가 고기뼈를 갈기갈기 찢어내듯 뜯어먹는 끔찍한 탐욕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면 그 감상이 어떨까? 이보다 더 바라는 소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철학자도 똑같은 음식을 올리버와 똑같이 탐욕스럽게 먹는 것이다. (p. 59)


어린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장의사 도제로 넘겨져 받은 첫 식사는 살점이 너덜너덜 붙은 고기뼈였다. 구빈원에서는 멀건 귀리죽만 먹었는데, 주인네가 먹고 남긴 뼈다귀부스러기도 걸리버에는 처음 먹어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이들이 직접 겪어보기를 디킨스는 톡 쏘아붙인다기 보다는 은근히 힐난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해방은 성실한 영국인들이 가장 먼저 당당하게 내세우는 자랑거리이므로, 모든 공적이고 애국적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이러한 행위가 칭찬받을 만하다는 점을 굳이 독자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이렇게 인간은 언제나 자기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은 심오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철학자들이 모든 대자연의 행위와 행동의 주된 원인으로 규정한 공리주의 법칙을 입증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은 아주 현명하게도 대자연의 절차를 공리와 이론의 문제로 좁혀놓았고, 대자연의 높은 지혜와 이치만을 단순하고 멋지게 칭찬함으로써 감정이나 너그러운 기분, 충동의 문제는 고려대상에서 치워버린 것이다. (p. 142)


올리버가 런던으로 도망쳐와서 소매치기 패거리들에 섞이게 되고 처음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했을 때 너무 놀라 달아나다가 도둑으로 오인받아 잡히게 되는데, 이때 정작 소매치기를 했던 소년들은 올리버를 쫒기게 두고 도망간다. 이 상황을 두고 저자는 철학과 사상을 들먹여가며 풀어내는데 그 고급적 비꼬는 문장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피식피식 웃게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작품 전체내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이런 날에는 굶주림에 지친 부랑자들이 수도 없이 텅 빈 거리에서 눈을 감는다. 이들의 죄가 무엇이건 이보다 더 쓰라린 세상에서 눈을 뜨는 일은 없을 터였다. (p. 258)


풍자와 해학 사이 끼어있는 이런 문장들은 순간순간 짧고 굵게 가슴을 파고든다. 웃다가 접하는 참혹함은 훨씬 더 극적으로 비통하게 느껴진다.


"구빈원 밖 구제라는 게요, 잘만 관리하면 교구의 안전 장치가 되지요. 가장 큰 원칙은 극빈자들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만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지쳐서 구걸하러 오지 않거든요" 교구관이 우월한 지식을 뽐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p. 262)


비참한 극빈자들의 삶을 우롱하는 극빈자 관계자들의 대화는 갈수록 기가 막히지만, 저자는 결말에 가서 기가막히게 마무리 처리도 깔끔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 중에서 안 좋아 보이는 부분은 증명이 가능하고, 좋아 보이는 부분은 전혀 증명을 할 수가 없어요" (p. 338)


올리버가 전혀 증명할 수 없는 좋아보이는 부분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안좋아보이는 부분을 증명하던 허울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저자의 스토리구성능력은 탁월했다. 짜임새가 딱딱 들어맞아서 600여페이지 두께의 내용을 지치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자신감에 찬 사람들만큼이나 가장 천박하고 타락한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약점이 바로 자존심이다. 낸시는 도둑과 악당들의 비참한 동료이자 천한 소굴에 버려진 부랑자였고, 늘 교수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을 오가는 인간쓰레기들과 한패였다. 이렇게 타락한 존재조차도 자존심 때문에 여성스러운 감정을 미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낸시는 이런 감정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이야말로 낸시에게도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닳고 닳아서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인간성이었다. (p. 448)


디킨스가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으로 표현한 인물은 낸시 였다. 소매치기일당의 멤버이자 난폭한 사익스의 애인인 낸시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밑바닥삶이었던 낸시의 현실적 존재감과 올리버와 엮이면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인간애의 비현실적 감정은 디킨스가 논리로 설명되지 않지만 인정할수밖에 없는 감정을 지닌 인물로 내세운 대표적 캐릭터다. 그리고 읽다보면 어쩔수 없다는 낸시의 선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꾸준한 선함의 상징으로서의 올리버보다 더 종교적일 수 있는 인물인 것도 같다. 작품속에서 올리버는 지상에 강림한 천사같은 순수 그 자체 이지만, 타락한 천사같은 낸시를 보며 더 반성적인 삶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올리버로 시작해서 내내 올리버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주변인물들과 삶이 조명되면서 올리버는 부수적인 존재로 밀려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중심엔 올리버가 있고, 모든 사람들의 엮어주는 존재는 여전히 올리버다. 수없이 악한 상황에 내몰리면서도 한번도 악함에 물들지 않는 올리버는 종교적 상징 같기도 하고 현실적 꿈 같기도 하다. 올리버의 환경을 통해 본 당시 극빈자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올리버의 삶을 통해 본 상징적 희망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너~무 깔끔한 마무리라 읽는 내내 무겁게 마음을 누르던 안타까움들이 희석되는 듯 했다. 전에 읽었던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와 <올리버 트위스트> 는 한 작가의 작품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깔끔한 서사구조와 몰입도 높은 전개로 디킨스의 매력을 느끼기엔 둘 다 훌륭한 작품이었다. 현실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되, 시선이 따뜻한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런 작가 리스트에 디킨스의 이름을 굵직하게 새기게 한 <올리버 트위스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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