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아직도 도시 이름에서 우주 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큼 이 인물을 매우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 땅을 밟아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의아하기만 하다. (p. 87)
콜럼버스와는 달리 포르투갈의 위임을 받아 항해를 떠났던 피렌체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남아메리카 북쪽에 닿았다. (p. 88)
지명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인물은 좀 덜 알려진 부유한 스리스틀 상인 로버트 아메리크 이다. 아메리크는 1497년5월에 존 캐봇이 래브라도에 도착했을 때 타고 간 마테오 선을 후원했다. 베스푸치 보다 2년 먼저 신대륙에 도착한 캐봇은 북아메리카 해안선을 탐사했다. 따라서 신대륙의 지명은 오랜 전통에 따라, 캐봇의 후원자인 로버트 아메리크의 성이 붙여진 것이다. 지명을 정하는 전통을 살펴보는 것이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탐헌가나 후원자의 이름이-성이 아닌- 지명이 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반에 헨리 허드슨이 현재의 뉴욕이 된 지역에서 새로운 강을 발견했을 때, 그 강은 헨리강이 아니라 허드슨강이라고 불렸다. 따라서 아메리카 지명의 영예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자격없는 어깨에 올라간다면, 신대륙은 아메리카가 아닌 베스푸치로 불려야 될 것이다. (p. 89)
진짜 미스터리는 어떻게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에 대한 모든 영예를 거머쥐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당시 영국과 신흥국 미국 사이에 대서양을 가로질러 피어오르던 적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1775년과 1783년 사이의 전쟁이 끝난 후(미국 독립전쟁), 미국은 영국과 관련된 사람이나 일을 모두 피했다. '마스터' 같은 단어가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보스'에 자리를 내주고, 흰 가발을 쓰고 대중앞에 나설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은 언어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적개심의 대상이되었다. 혁명 후 미국은 시베리아인, 일본 원주민, 바이킹 등의 발견을 등한시하며, 영국인이 아닌 콜럼버스와 영국의 지원을 받았던 존 캐벗 사이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주인공을 결정하려 했다. 승자는 미국 해안 근처에도 가지 못한 콜럼버스가 되었고, 독립전쟁을 통해 혐오한는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게 된 미국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콜럼버스의 영토, 콜럼비아 라고 불렀다. (p. 93)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섬의 주민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전락시킨 죄로 족쇄를 차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던 콜럼버스의 잔학 행위들이 알려지가, 그의 명예가 허울을 벗게 되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콜럼버스의 기념일에 실시하는 행사가 꾸준하게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 시민들은 센트럴 파크에서 콜럼버스 동상을 없애달라고 유욕시장에게 요청하는 상당히 많은 시위들을 벌였다. (p.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