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나온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현지의 다양한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책' '주목할 책' 읽어야할 책' 등등 찬사를 받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고대 비극 <안티고네> 를 현대판으로 완벽히 재해석했다는 평에서 확 끌렸던 작품이었다. 전에 고대 그리스 비극전집을 읽으며 왜 그 옛날 작품들이 여전히 읽히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기에 현대판에 대한 기대가 저절로 움텄다. 기원전 비극작품들이 인간사회에서 일어날법한 갈등의 최극단 지점까지 몰고간 후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유효한 질문들이었기에 다양한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또한 더욱 이 작품이 궁금했었다.
<안티고네> 는 연극으로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는 고대그리스비극작품이기도 한데, [운명과 분노] 라는 소설을 읽었을때 남자주인공이 새롭게 쓴 소설 속 희곡을 읽을 때에도 몹시 감탄했던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도 오래 기억할 계기가 있던 작품인지라 이렇게 새롭게 읽게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여전히 묵직하면서 안타까웠다...
<안티고네> 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오이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죽음 후 고향으로 돌아오나 왕권다툼으로 두 오빠는 이미 죽어 있고 왕권은 숙부인 클레온이 차지한 상태였다. 두 오빠중 추방당했던 한 오빠의 시신은 반역자의 시신이라 하여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채 버려져 있었던지라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장례치러준 댓가로 감옥에 갇혀 죽음에 이르고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클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약혼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현재의 정치적 법에 의해 반역자의 시신을 거부하는 것이 옳은가, 가족으로서의 인륜적 예법에 의해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인간이 만든 법과 인간이 지켜온 도의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시하는 것이냐를 묻는, 지금도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이스마 의 가족은 파키스탄 출신 영국시민권자다. 하지만, 이스마의 아버지가 테러조직에서 활동하다 사망했고 이로 인해 가족은 힘든 삶을 버텨내야 했다. 이스마가 대학공부를 접고 세탁부로 일하며 키워낸 어린 쌍둥이 동생 아니카와 파베이즈는 영혼의 단짝 같은 사이다. 아니카가 대학생이 되고 파베이즈가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했을 때 이스마에게도 기회가 왔고 미국유학을 떠나게 된다. 아니카는 법대생이 되고 파베이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의기소침해 있을때 아버지의 업적을 제대로 알려주겠다며 한남자가 접근하고 파베이즈는 그에게 급속히 빠져들어 급기야 IS에 가입하러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상이 아닌 현실을 마주했을때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살아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아니카는 파베이즈의 장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카라마트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시민권자다. 하지만, 이슬람종교를 거부하고 영국인으로서의 가치를 최우선에 둔 정치활동으로 내무장관직까지 오른 상류층 인물이다. 무슬림들에게 욕을 먹고 친지들에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영국적 가치가 이슬람 종교보다 더 무슬림들을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에게 하나뿐인 아들 에이먼은 외형적으론 아버지를 빼닮았으면서 내면적으론 섬세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니카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니카의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아버지의 정치적 삶과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의 삶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고 그는 다른 무엇보다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
안티고네 - 아니카
폴리네이케스 - 파베이즈
이스메네 - 이스마
클레온 - 카라마트
하이몬 - 에이먼
주요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핵심적 갈등까지 소설의 구성은 기가막히게 <안티고네> 비극을 현대판으로 재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