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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월든
서머 레인 오크스 지음, 김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평점 :
식물에게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자라거든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 속에 포함된 '월든' 을 보는 순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의 '월든' 을 다들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월든' 이 1854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까, 150년도 더 이전의 책이다. 문명 사회를 떠나 외딴 숲속 호숫가에서 자연인으로 살았던 시간들을 써낸 그 책이 벌써 그렇게 오래되었다니... 그 시절 이미 문명사회를 떠나 자연속에서의 삶을 추구했다고 하니... 그보다 더 현란한 사회 속에 사는 우리는 너무 자연을 잊고 있는게 아닐까... 그때처럼 자연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저자는 도시속에서 소로와 비슷한 경험을 이루어내고자 한다. 그렇게 이 책은 도시 속에 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너무나 멀리 식물과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식물을 가까이 끌어당기에 만들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숲과 밭과 함께 했고, 직업상 도시로 이사오면서 멀어졌던 자연을 아파트 안에서의 가드닝을 통해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다. 풀한포기 화분 하나에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1000그루를 훌쩍 넘는 약 550종의 식물이 아파트안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원래의 직업(패션업계, 영화제작 등등)에서 지금의 직업(건강, 웰빙, 소통)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해온 것도 식물의 영향이 큰 듯 하다. 그리고 그동안 식물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해 온 만큼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 책도 그러한 활동 중의 하나이다.
근처에서 숲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시에서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식물을 실내로 가져오는 것이다. 실내 식물은 내 안에 잠재된 다른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움으로써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든 온전한 나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내식물은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 대지를 소중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p. 65)
저자는 자연에 있을 때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저자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터뷰들이 책속에 짤막하게 인용되어 있는데, 대부분 힘들었던 삶에서 식물로 인해 어떤 치유를 받았는지 고백하고 있는 글들이다. 마음이 아플때도 몸이 아플때도 식물은 의외로 큰 치유력을 발휘한다. 은은하지만 강하게.
비의학 용어인 '식물맹' 은 1998년 식물학자 제임스 완더시와 엘리자베스 슈슬러가 만든 용어로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을 봐도 알아차라지 못하는 증상'을 일컫는다. (p. 78)
식물맹은 생각 이상으로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식물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 식물이 우리 삶을 넘어 생태계에 미치는 중요성도 보지 못할 수 있다. 피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예로 환경보호와 정책에 대한 관심과 재정적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에서 정한 멸종위기종 중 57퍼센트가 식물이지만 절멸 및 멸종위기종에 배정된 자금 중 식물을 보호하는 데 쓰이는 비용은 4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p. 80)
'식물맹' 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는데, 생각해보니 중요한 단어인 것 같다. 우리 주변엔 식물맹이 정말 많은데 아무도 식물맹이 자신인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라고는 집안에 화분 몇 개 들여놓고 죽지않을만큼만 겨우 돌보고 있는 나도 식물맹에 속하는 것 같다. 식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과연 환경보호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길가에 꽃이 있는지 가로수잎이 변했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바쁜 일상만 반복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생각할 수 있을까? 생태계의 진정한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식물이 멸종하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주변 식물들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반성을 해본다;;;
원예의 달인이든 초보자든 식물과 호흡을 맞춰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물을 '적극적으로 관찰' 하는 것이다. 이렇게 관탈하다 보면 원예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을 음미함으로써 마음이 차분해진다. 번잡한 도시에서도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틈틈이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식물은 행복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좋은 동지가 되어준다. 우리는 그저 자연을 마음에 담겠다고 결심만 하면 된다. (p. 86)
사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큰 도전은 아니다. 봄이면 꽃화분 하나 들여놓고 싶고 여름이면 시원스런 나무 그늘이 그립고 가을이면 과실이 달린 나무를 보고싶고 겨울이면 설경속의 푸르름을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들때 그런 생각이 들때 가까운 화원에 가거나 가까운 수목원에 가면 된다. 집안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만 식물은 일단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꽃을 보다가 화분을 보다가 작은 것부터 하나둘씩 집안에 들여놓고 하루에 몇분이라도 가만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품에 안기진 못해도 자연을 눈에 담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식물을 보는 시간은 의외로 마음을 굉장히 편안하게 해준다.
식물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며 우리를 도와줄 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처리가 무척 능숙하고 조용하고 우아해서 그 비범한 능력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탓에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식물을 심미성이나 유용성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그 세계에 직접 들어가 그 안에 담긴 억겁의 자연 '지식'을 해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식물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식물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인지하게 될 것이다. (p. 120)
천연자원을 생각할때 보통 화석연료부터 생각나는 것 같다. 하지만 식물은 천연자원으로서 굉장히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먹거리부터 섬유, 가구, 생활용품, 연료 등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자원고갈문제를 이야기할때 식물을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식물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던가? 정말 너무 당연하게 이용하고만 있지 않은가?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물들에게 놀라곤 한다. 그래서 동물보다 사실 식물이 더 신비롭지 않냐고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가 먹여주고 보살펴주지 않아도 식물은 알아서 번식하고 자라고 적응한다. 심지어 극한 환경에서조차도 식물의 생명력은 놀랍다. 식물의 이용가치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식물 자체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도 큰 문제이다.
식물은 어떤 장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일으키는' 기적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식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이는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명백한 메시지이다. 식물은 곧 생명이다. (p. 180)
그렇다. 식물은 생명이다!!! 자연 이라고 말할 때 식물의 위치를 병풍처럼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식물이 정말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발이 달려 돌아다니는 것만 눈에 보이게 움직이는 것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은 끊임없이 호흡하고 생사를 반복하고 있는 생.명.체. 다.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고 존중하기 시작하면 자연에 대한 환경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지만, 필요할 때 도움을 조금 얻는 것 빼고는 그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드물다. 세상의 모든 실내식물은 절대로 자연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원산지에서 우리에게까지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화원 너머에 있는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렌즈가 되어준다. 심지어 조용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우리가 더 좋은 지구의 지킴이가 될 수 있도록 자극한다. 이것이 내가 식물에게서 배운 종요한 교훈 중 하나다. (p. 245)
작은 것에서 시작한 호기심과 관심이 얼마나 큰 발견과 깨달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우리는 다양한 사례들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집 안에 작은 식물과 함께 살기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관심과 호기심이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늘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에게 늘 과도한 강탈을 해오고 있으면서도 눈길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고맙다고도 하지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아예 생각조차 잘 하지 않았다. 자연과 떨어져 사는 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그러한 태도를 굳어지게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콘크리트바닥의 일부 혹은 아파트시멘트벽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을 늘 생각하면 좋겠지만,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 부담스럽다면 일단, 작은 식물부터 가까이두고 찬찬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음... 일단 우리집 화분들부터 잘 챙겨봐야 겠다;;;
땅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생 견딜 힘을 비축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복 재생되는 자연의 후렴구에는 무한한 치유의 힘이 있다.
밤이 끝나면 새벽이 오고, 겨울의 끝에 봄이 찾아온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 (p.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