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리의 폭력성이 지난 세기에 비해, 그리고 그 전의 몇 백년에 비해 평균적으로 줄었음을 보여준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 평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중이다. (p. 517)
얼굴 모양의 '여성화'는 홀로세까지 계속되었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의 변화가 얼굴 모양의 이런 변화를 매개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만일 그렇다면 양성 모두에서 나타나는 더 가냘프고 여성적인 두개골은 인간 집단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관용이 자연선택되면서 생긴 부산물일 수 있다. (p. 520)
공격성이 적은 남성들이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면, 그 형질이 집단 내로 빠르게 퍼질 것이다. 인간 사회가 진화함에 따라,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더 조밀하게 살게 되고 나아가 생존을 위해 광범위한 관계망에 의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의도하지 않게-우리 자신을 길들였을 것이다. (p. 521)
인간의 '자기 길들임'을 둘러싼 논의는 정치적·도덕적 해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생물학적 개념은 언제든 이런 식으로 오용될 수 있지만, 사실 진화에 도덕적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난 일이 일어난 것은, 그저 자연선택이 그 시점에 그 환경에서 기능을 잘 수행하는 적응들을 선호하고 나머지를 추려냈기 때문이다. (p. 523)
우리는 종을 한 덩어리로 불변하는 존재로 보는 덫에 빠지기 쉽다. 인간이 살아가는 짧은 시간의 틀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화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강화한다. 하지만 종은 물론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이는 진화의 교훈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화석에서, 살아 있는 생물들의 구조에서, 그리고 DNA에서도 본다. 종은 항상 변한다. 한 개체군 내의 특정 유전자형의 빈도는 새로운 돌연변이 없이도, 유전자 이동과 자연선택을 통해, 그리고 다른 종의 DNA가 도입됨으로써 변한다. 이 춤을 만들어내는 것은 종의 구성원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인데, 어떤 환경에서든 그 상황에 더 나은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한 유기체가 상호작용을 하는 다른 모든 종을 포함하는 생물학적 환경도 포함한다. (p. 53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