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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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할 [중용]60수의 힘

 

저자의 이름은 못외웠어도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이라는 책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다. 사오년전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이 안나는 걸로 보아 저자가 사십대에 썼던 논어 책을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으니, 저자가 오십대에 쓴 중용 책은 잘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최근에 '논어' 원전 완역본을 읽었는데, 그때도 이전에 읽었던 논어 관련 책이 기억이 안나서 그때는 내 기억력의 문제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알았다. 내 기억력도 문제는 문제지만,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은 논어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십, 중용을 읽어야 할 시간' 이 중용 책이 아닌 것처럼.

이 책은 중용에 대한 해설이나 번역을 중심으로 한 책이 아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 저자가 오십대의 나이에 생각해봄직한 화두들에 대해 중용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인생강의를 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중용의 구절들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오면서 중용을 중심으로 내용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순서상관없이 부분적 발췌를 해서 그 부분을 예로 들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을 잘 알고 있는 학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 들이기는 하나, 중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중용에 대해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을 읽고서도 논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중용 자체를 목적에 두고 읽는 것이 아니라, 오십대에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들을 인생조언처럼 여기며 이 책을 읽는다면 편안하고 수월하게 읽히는 책이다. 삶의 연륜이 꽤 쌓인 나이이긴 하나 아직 '지천명'을 깨닫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때 고전의 몇 마디 말로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더 내려놓고 더 배우는 마음자세를 갖게끔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읽다보면 '중용' 을 제대로 읽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중용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중간적이고 중심적이고 그래서 묵직하고 편안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실 중용은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잡하던 세력의 다툼 속에서 탄생한 중용은 그래서 더욱 나라의 중심을 군주의 중심을 개인의 중심을 강조하게 됐던 것인듯 싶다. 그래서 저자가 제일 처음 인용한 중용의 구절이 '소은행괴' 이다.

[중용] 하면 평온하고 차분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다. [중용]은 극단이 판을 치는 '소은행괴'의 세상에서 주위에 널려 있고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평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쉰의 나이도 조명이 쏟아지는 특별하고 화려함보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일상처럼 부담 없는 보통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가기 때문이다. [중용] 과 쉰의 나이는 평범함에서 잘 어울린다. (p. 21)

사회가 혼란할 수록 다양한 인간군상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중용이 필요했던 춘추전국 시대는 공감력 없고 괴상한 행동을 하는 소은행괴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 인용된 구절들 중에는 공자의 말씀도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손자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제대로 연구했구나 싶기도 했다. 사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사상은 후대로 갈수록 반론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공자의 사상은 당대에 실패했기에 후대에 확산되었다.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시대를 그렇게 망가트렸구나 하는 후회가 다음 시대는 제대로 바른 세상을 만들어보리라는 기대가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져 오게 한 것이 아닐까. 그때와는 또다른 소은행괴들이 판을 치는 현대에서 나이들어갈 수록 중용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이 그렇게 이여져 있는게 아닐까.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약한 것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주도적인 사람은 혼자 있는 상황에서 삼간다. (p. 44)

[중용]에서는 이중의 역설을 통해 나는 '자신을 알고 있는 나'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공적 공간에서 주의하는 만큼이나 사적 공간에서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에 대해 유학이 사람에게 숨 쉴 공간을 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전일적으로 통제하려는 도전으로 볼 수도 있다. (p. 47)

 

유학은 대부분 개인개인의 수양을 강조한다. 사실 한사람한사람이 다 각각 제대로 된 한사람한사람이면 그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저절로 올바른 사회가 될수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올바른 한사람한사람이 될 것을 공자왈맹자왈 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사람들이 중용대로 살기에 관심을 두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데도 이를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용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고 또 왜 중용대로 살아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중용]이 쓰인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p. 60)

공자는 중용대로 살 수 있지만 한 달 동안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공자가 중용대로 살자고 제안하면서 자신도 장기적으로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p. 61)

 

중용을 설파하는 공자님도 중용대로 사는 것이 한들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니... 그럼 공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범부들은 어쩌란 말인가? 중용을 배우란 말인가 배워도 소용없다는 말인가? 이 뒷 내용을 정말 주의깊게 읽었는데 어려운 이유는 나와도 해결법은 나오지 않았다. 어려운 이유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데;;; 역시 중용을 완역본으로 읽어야 하는 걸까...

내가 자식으로 부모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그런 태도로 자식을 키우면 되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그런 태도로 부모를 모시면 된다. 핵심은 내가 자식으로서 또는 부모로서 무엇을 바라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바라는 바가 분명하지 않으니 자식과 부모에게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 쩔쩔매게 된다. (p. 90)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좋은 말이었다. 내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뭔가를 기대할때 나도 자식으로서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뭔가를 기대할때 내가 내 자식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준다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선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리라고 하고, 도리를 터득하는 것이 교육이다. (p. 107)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 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은 사람이 천에게 명령을 받은 대로 살아야 하고 그 명령의 내용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라는 맥락으로 읽힌다. 사람은 천이 명령한 본성을 실현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그러지 않으면 사람답지 않은 사람 또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사람은 천이 자신에게 무엇을 명령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지천 知天 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맹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천명은 사람에게 인의예지의 네 덕목을 본성으로 실천하라고 명령했다고 할 수 있다. 천에서 성으로 연결되고 나면 사람은 솔성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천이 명령한 인의예지의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의 도다. 성이 도로 연결되고 나면 사람은 수도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사람은 솔성으로 실천하면서 도를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넓히는 길이 바로 나를 가르치고 남을 이끄는 교가된다. (p. 108,109)

 

이 구절이 [중용]에서 제일 첫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책의 중간즈음에 등장하지만, 첫 구절은 기억해 놓고 싶었다.

[중용]에는 중용이 없다. 우리는 책 이름을 들으면 그 안에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용]은 그렇지 않다. [중용]에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이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풀이한 내용도 없다. 그렇다 보니 [중용]을 읽고 나더라도 중용이 뭔지 분명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대학] [논어] [맹자] 에 비교해서 어렵다고 한다. (p. 113)

이 책에는 [중용]책이 없어서 '중용' 이 없다 치더라도, [중용] 책에도 '중용'이 없다니 그렇다면 '중용'은 어떻게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그래서 예로부터 [중용]책에 대한 해설서가 많았고 주희 라는 학자의 책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하고, 정약용의 책도 의미있는 풀이라고 하는데, 필부로서 중용을 깨우치기는 더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제사는 유학을 종교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제사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함으로써 죽은 자를 주기적으로 소환하여 공동체에서 영원히 기억되게 하는 활동이다. 유학에는 사후 심판과 천당이라는 개념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 행적에 따라 영혼이 구원되는 절차가 없다. 죽으면 육체적으로 소멸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철저히 잊힐 수 있다. 제사, 특히 명절 제사보다 일 년 단위로 지내는 기제사가 중요하다. 제사에서 향을 피워 영혼을 부르고 술을 따라 육신을 불러 제상에서 혼과 백이 만나게 된다. 제사상을 보고 후손이 자리하니 결국 조상과 후손이 만나게 된다. 이렇게 죽은 조상은 주기적으로 자신이 살았고 후손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후손이 축문으로 일 년간 있었던 일을 고유하면 조상과 후손이 같은 소식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제사를 되풀이하면 세상은 산 사람이 독점하는 곳이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교류하는 장이 된다. 이를 통해 조상은 죽어도 죽제 않게, 즉 영원히 살게 된다. 따라서 제사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생명, 즉 영생을 누리게 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p. 218)

세계4대종교 라고 하면, 기독교,불교,이슬람교,유교 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유교는 종교는 아니고 철학 혹은 사상이나 동양문화권에서 종교와 같은 전통적 믿음이라 4대종교로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사에 대해 이렇게 읽고 보니 유교의 종교성이 느껴면서 이해가 됐다. 그리고 한명 혹은 소수의 몇명만 누리는 영생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영생이라는 평등개념이 몹시 혁명적으로 보였다. 천당과 지옥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가능하고 모두에게 연결된다는 생각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것 아닌가?!

[중용]은 성인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좋을 텐데, 다섯 가지라니 좀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인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이 신이라면 절대자, 전지전능 등으로 간명하게 규정할 수 있다. 성인은 신이 아니지만 범인과 다르다. 이런 성인의 특성을 설명하자니 이런 면도 있고 저련 면도 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p. 265)

첫째는 '총명예지'다. 성인의 첫번째 특징으로 앎을 내세우고 있다. 둘째는 '관유온유'다. 그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 셋째는 '발강강의'다. 기백이다. 넷째는 '재장중정'이다. 성인은 위엄이 있고 점잖으며 곧고 바르다. 기품이 넘치고 공정하다. 다섯째는 '문리밀찰'이다. 조리가 있고 디테일에 강하니 사태를 차근차근 구분하여 잘 풀어갈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은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노력 끝에 이른 최고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p. 266,267)

 

중용의 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였으나 성인이 어떤 사람인지 읽어내며 끝났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나, 나이 오십이 넘고나면 모두가 성인이 될 마음으로 중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려나...

저자는 [중용]이 아름답다 하였다. 후대 학자들이 다양한 풀이를 끊임없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용] 자체는 함축적이고 애매모호하다는 얘기다. 한자 자체가 뜻글자라서 한글처럼 문장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한구절한구절 한단어한단어 해석해 나가며 이해해야 하는데, 그 한자들로 이어진 문장들 단락들이 하늘에 구름인듯 바다위 파도인듯 눈에 읽히나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시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두루뭉수리한 풀이보다는 명확한 해석이 필요한 사람인지라 저자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미처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중용 한문장한문장 풀이해주는 책을 읽고나야 이 책의 묘미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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