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을 살면 안된다고 끝까지 강조한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귀를 막았고, 소크라테스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아테네 민주정은 무너졌다.
[크리톤] 은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분량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크리톤이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아마 여기서의 내용이 왜곡되어 '악법도 법이다' 라는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은 말이 소크라테스의 명언인 것처럼 퍼진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으면 악법도 법이라서 지키려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 에 대한 철학적 결론도 그러한 선택을 뒷받침 했다.
[파이돈] 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 에 대한 철학적 생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감옥에 갇혀 있다가 드디어 사형집행일이 되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헤 친구와 제자들이 모였다. 자신을 걱정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에게 죽음이 얼마나 괜찮은 것인지 설명한다.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나 철학적이었느냐에 따라 영혼의 길과 저승에서의 시간은 희망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나오는 '영혼' 에 대한 논증과 '저승' 에 대한 논증은 죽는날까지 제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논리를 입증시키는 소크라테스식 교육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면서, 나중에 종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상기설' 에 대해 나오는데, 우리가 배워 알게 되는 것들이 실은 단지 기억해내는 것이라는 이론은 플라톤의 <국가> 에서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체계를 잡게 된다.
[향연] 은 '에로스' 에 대한 대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에로스' 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에로스가 아니다. 시작은 에로틱하게 출발하지만, 마무리는 진정한 지혜로 매듭지어지면서 '향연'이니만큼 취객의 난동으로 마무리 된다.
'향연' 의 화자는 아폴로도로스 인데, 아가톤의 향연에 참석한 소크라테스 와 함께 있었던 아리스토데모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즉 직접들은 것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들은 것을 다시한번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결국 정말 그런 대화가 있었는지 알수 없다는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을 거쳐가다 보면 바뀌는게 일반적인데, 소크라테스의 말을 아리스토데모스가 듣고 아리스토데모스의 말을 아폴로도로스가 듣고 아폴로도로스의 말을 친구들이 들었을때, 소크라테스의 말은 과연 어느정도 그대로 옮겨졌다고 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단 한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책으로 남기면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고 일대일로 대화하면서 제대로 깨우치게 되는 것만을 중요시 여겼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의 지혜들은 다 플라톤의 책들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의 책들에서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대화체로 서술되지만 진짜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과연 소크라테스일까 플라톤일까? 게다가 '향연' 은 이 복잡한 건넘건넘과 술자리 라는 이중의 장치로 인해 그 진의를 더욱 아리송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래서 플라톤의 재치가 돋보이는 문장들도 많긴 하다. 취중진담일까 취중농담일까? 어쩔 수 없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플라톤의 철학이 아직도 연구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지인들을 초대하여 향연을 베푼다. 그런데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제의 과음으로 또 술을 먹는게 힘드니 재미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한다. 바로 에로스에 대한 예찬
파이드로스는 에로스 신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공경받아 마땅한 신이라 하고, 파우사니아스 는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구분하여 천상의 에로스를 예찬한다. 의사인 에릭시마코스는 건강에 빗대어 조화로움을 강조하고,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작가라서 그런지 남녀추니를 등장시켜 원초적 본성에 대한 본능으로서의 에로스를 강조한다. 아가톤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서의 에로스를 극찬하자 소크라테스는바로 에로스에 아름다움이 결핍되어 있음을 아가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수긍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은 예찬은 할줄 모르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인지라 에로스에 대한 진실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여기서 디오티마의 사다리가 등장한다. 에로스 신에 대한 기원에서 시작하여 범속의 에로스보다 천상의 에로스를 높게 보고 본능의 에로스도 인정하지만 에로스의 아름다움이 진리추구 인 것으로 정리되는 대화의 연결은 술자리에서 나온 논증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을 마쳤을 즈음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들어와서 애처로운 시비를 건다. 아테네 최고의 미남이자 아테네 최고의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향연]을 읽으면 플라톤의 풍자를 더욱 웃으며 읽게 된다. 술주정인듯 질투어린 시기인듯 알키비아데스의 넋두리가 끝나기무섭게 다른 취객들까지 들이닥쳐셔 향연은 그야말로 거나한 술판이 되고 만다. 앞서 이야기 했던 에로스의 진리는 어디로 갔나 싶지만, 마셔도마셔도 취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단 한사람, 소크라테스의 태도에서 플라톤은 에로스를 구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정말 고전의 매력이 있어서인지,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으로 구성된 책을 다른 판본이긴 하지만 이 책으로 3번째 읽은 것인데, 그래도 재밌다. 참 신기하다. 읽었던 것이기에 아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주석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책 구성을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과 <향연-메논-파이드로스> 로 하면 어떨까 싶다.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기다리면서 에우튀프론과 '경건함' 에 대해 나눈 대화인데, 저술시기와 상관없이 배경시간이 연결되고, '탁월함' 에 대한 대화인 메논 과 '미와 사랑' 에 대한 대화인 파이드로스를 향연과 함께 읽은 후 <플라톤의 국가> 를 읽으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대화편들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국가' 에도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만, '국가' 는 플라톤 철학의 결정체 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읽은 대화편들이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넘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충해준다. 무엇보다 플라톤의 '국가' 는 공부해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보니 다른 대화편들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어차피 원전을 그대로 읽을 수 없기에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원전번역본의 완성도는 본내용의 이해에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소설을 읽듯 매끄럽게 읽히는 번역과 친절하면서 충실한 주석들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다른 번역본도 출판사의 다른 고전 시리즈도 왠지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전을 읽은 기분이 뿌듯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