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종유감 - 금수저, 깜깜이, 쓰앵님…‘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이천종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평점 :
금수저, 깜깜이, 쓰앵님~ '학종' 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정시 확대' 냐, '학종 개선' 이냐? 논란의 '학생부종합전형' 현 위치를 진단하고 명과 암을 들여다보는 학종 팩트체크
저자는 20년간 기자생활을 해오고 있는, 현재는 세계일보에서 교육팀장을 맡아 교육정책을 다루는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다.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다.
이 시대의 부모라면 누구나 입시문제에 예민하다. 유치원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여하튼 대학을 가야할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학종' 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기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온갖 기사들과 논문 및 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종' 을 체크한 이 책은 '학종'에 대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긍정이건 부정이건 여하튼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학종' 에 대한 목소리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학벌사회 한국에서 입시는 민심의 역린이다.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다루는 그 자리는 독이 든 성배다. 군사정권의 총칼도 무력했고, 민주화 이후 숱한 개혁도 허사였다. 입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정권의 목을 겨눈다. (p. 10)
그랬다. 사회가 어찌흘러가든 민심은 매번 휘몰아치진 않았다. 항상 뜨겁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입시문제'에 대해서만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먹고살기 힘들면 힘든만큼 내가 누려보았다면 누린만큼 내자식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은 가장 뜨겁게 민심의 중앙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 1장 - 학종 톺아보기
>> 키워드 하나, 금수저
국민들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공정성이다. (p. 33)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교육특구의 대학진학률이 낮다는 역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재수생에서 찾을 수 있다. ... 이 지역 학부모들은 그런 재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종이 아니라 정시로 가면 일반고는 초토화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p. 45)
고소득층이 수능을 더 선호한다고 보는 것도 물론 맞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진단은 금수저에게는 지필시험이든 정성평가든, 시험에서는 흙수저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p. 47)
금수저/흙수저 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격차가 벌어질 수록 적어도 제도에서만큼은, 출발선만큼은, 보이는것에서만큼은 똑같은 위치이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공정한가? 어차피 어떤 방식이든 금수저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들만의 리그에 흙수저는 손톱만큼도 끼어들기 힘들다. 그렇다면 모두가 똑같은 공정성을 찾기보다 금수저는 논외로 두고 다양하게 금수저를 공격?!할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게 아닐까?
>> 키워들 둘, 깜깜이
생기부 기재 요령에 모호한 예외사항을 둬서 사실상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학종의 성패를 좌우하는 생기부 기록의 공정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p. 81)
동일한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하더라도 대학별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고, 같은 요소에서도 세부 평가항목이 다르기 때문에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별 중점 평가요소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수 (p. 89)
전문가들은 학종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 공통의 학생부평가기준과 고교 유형별, 지역별 평가 결과를 공개하자고 주문한다. 학종에 대한 채점기준과 결과를 공개하자는 것으로, 대학이 학종 결과를 오픈하면 수험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대학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성평가의 기준을 공개하면 그것이 사교육 시장의 타깃이 되리라는 주장이다. 또 수험생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p. 90)
학종은 제도의 도입 배경과 취지만 놓고 보면 흠잡을 게 별로 없다. 고교교육 정상화와 대학의 창의인재 확보, 교육 당국의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인재 육성 등 삼박자를 두루 갖춘 제도다. 문제는 '기승전 대입'의 한국 사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맹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p. 92)
또 공정성 문제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다 보니 수험생들의 입시를 좌지우지할 생기부에 대한 신뢰도 또한 바닥이다. 학생들은 학종의 바탕이 되는 생기부를 선생님들이 공정하게 기재하는 지 믿을 수가 없고, 선생님들은 입시에 유리한 생기부 기재방법을 몰라 갈팡질팡 중이고, 대학은 학종판단의 기준을 오픈하지 않은채 자신들의 학교를 빛내줄 인재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기준기준기준 이 기준 잡기가 대체 가능이나 할런지...
>> 키워드 셋, 쓰앵님
대치동이라는 동네의 학부모 교육열이 유독 높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이들 스스로 입시를 통해 전문직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학력을 통해 학벌을 상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 의사와 변호사, 대기업 임원처럼 고소득 전문직이긴 하지만 이들이 자녀들에게 거대한 부를 상속할 만큼 재벌급이 아니라는 점이 과도학 교육열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벌급 부유층은 자녀가 공부를 못 하면 해외 유학이나 상속 등을 통해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많아 입시에 애면글면하지 않는다. (p. 106)
중산층이 없어졌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상류사회와 하류사회만 존재하는 듯 심화되는 양극화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상류사회 초입에서 어정쩡하게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아닐까? 학벌이라는 동앗줄을 부여잡고 반드시 상류사회에 진입하겠다는 욕망에 이미 상류사회구성원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쓰앵님~'께 무릎꿇으며 애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미 상류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쓰앵님' 따위 안중에도 없는데.
>>> 2장 학종을 바라보는 세 시선
>> 뿔난 학생과 학부모
대입제도 개편이 고교 서열화 해소와 대학 입시 공정성 강화 등 기회 균등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p. 148)
결국 학생부 중심은 신뢰성 부족과 수험생 부담 가중의 문제, 수능 중심은 고교교육의 비정상화 문제, 대학별 고사는 고교 진학지도 혼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한계를 드러냈다. 정책 일관성 부족으로 우리 사회에 교육개혁 피로감만 키웠다. ... 고교교육 정상화, 대입제도 단순화, 대입 공정성 확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과 같은 서로 다르거나 엇갈리는 가치를 모두 품에 안으려는 과욕이 부른 참사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교육정책은 없다' 라는 한계를 인정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절충과 타협이 난무했다. (p. 151)
대합입시제도는 대학에서 보면 학교에서 공부할 신입생을 선발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학생에게는 희망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대학은 촘촘하게 서열화돼 있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질 개연성이 아주 높다. (p. 155)
'환장할 우리 가족' 이라는 책에서 환장하게 하는 학벌에 대해 우리나라가 학벌사회가 된 것은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복지를 기업이 해줘왔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읽어며 무릎을 때렸다. 맞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고용안정성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노후대책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학자금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주택대출이 대기업에만 들어가면 해결되었다. 일반서민으로서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만사형통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IMF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젠 대기업이 그 무엇도 보장해주지 못했고, 그사이 성장했어야 할 국가복지는 여전히 바닥인 상황에서 부모세대의 학벌경험은 어쩔수없는 미련으로 상속이 되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다른나라와 완전 다르다. 한국에서의 대기업의 위치는 다른나라와 완전 다르다. 학벌사회의 문제는 결국 생계의 문제였기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입시'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복지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아우르려는 교육정책은 늘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제자리걸음만 할 것인가...
>> 착잡한 교사
동양 전통문화는 유교와 시험 위주 능력주의가 합해진 것이다. 유교사회에서는 권위자들의 글을 잘 외우는 것이 최고였다. 그래서 학자들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다. ... 수나라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 젊은 엘리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과거제도를 만들었따. 권위자들의 글을 열심히 외워서 과거에 급제만 하면 누구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세뇌하기 시작했다. ... 이 과거제도 덕분에 지도층이 권력을 유지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또 그 전 권력자들의 글을 비판하는 일 없이 그저 잘 외우는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했기 때문에 지도층의 말을 아주 잘 따라서 국가의 수직적 위계를 수월하게 유지했다. (p. 181)
사지선다식 정답이 있으면 모든 아이가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 튀는 자가 세상을 바꾸는데, 우리는 반대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면 안 되니까 남 눈치를 본다. 사지선다는 공평한게 아니고 모든 학생을 평균으로 만드는 거다. 진짜 실력을 찾아내는 게 공정하지. 어떻게 시험이 공정할 수 있나. 외우는 것으로는 혁신 없다. 무조건 외우게 해서 줄을 세우는 게 어떻게 공정한가. 동양에서는 학벌이라는 게 있어서 실력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에서 투자를 안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CEO가 얼마나 능력 있고 회사 매출이 얼마나 올라가는지를 보고 투자한다. (p. 182)
우리에겐 억압과 폭정의 역사가 많다. '시험' 은 지배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경제적으로 급성해야할 시기에는 국민모두를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했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다. 지배자에게 유리한 제도에 대해 의심해 볼 수 있고 평균보다는 다양성이 필요해졌다. 능력을 줄세우기로 판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든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성평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전히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시대적 흐름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답답한 입학사정관
평가 기록을 활용하는 입장인 입학사정관이 바라본 수업, 평가 기록의 내실화 방안은 무엇일까? 입학사정관들은 스펙이나 다양성보다는 방향성과 지향성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탐색, 교사 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재 방법에 대한 고민, 대학 서류평가 시스템의 지원, 입학사정관과 교사 간 대화의 소통의 시간 확충 등을 꼽았다. (p. 204)
입학사정관들이 생기부의 신뢰성이 낮은 이유 1순위로 꼽은 것이 교사별 개인차다. (p. 208)
입학사정관들의 주장이나 인식처럼 학종이 일반고 학생에게 유리해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는 연구도 적지 않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인프라의 격차를 극복하고 서울 주요대학에 합격하는 데 학종이 유리하고, 수능은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반박할 때 자주 등장하는 데이터다. (p. 215)
결국 신뢰의 문제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대학은 교사들이 작성한 생기부를 믿지 못하고,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사는 입학사정관의 판단을 믿지 못한다. 여전히 궁금한 것은 입학사정관 이라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공인되는 자격증 같은 게 있지 않은 입학사정관 이라는 직업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입학사정관이 되는 것인가? 입시의 방법도 중요하지만, 학종이 존재하는 한 입학사정관 들에 대한 자격요건도 판별해야 하지 않나? 교사들은 적어도 일정수준의 능력을 가졌다고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전세계에서 한국만큼 교사의 수준이 높은 나라가 드물다고도 한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은? 그들은 누구인가?
>>> 3장 대형 사건에서 찾는 입시 코드
>> 조국 파문, 그리고 입학사정관제와 학종 / >> 숙명여고 사건으로 다시 보는, 내신 / >> 자사고 전쟁과 고교 서열화
굵직한 사건들을 다시 보면서, 가진자들의 세계와 무리한 욕심을 가진 사람과 올바르지 못한 비전을 가진 정치가가 어떻게 사회를 망쳐왔는지 다시한번 씁쓸하게 되뇌어야 했다. 이런 사건들이 터질때마다 서열화을 욕하면서도 그 서열에 끼고 싶어하고 비리를 욕하면서도 그 혜택을 받아보고 싶어지고 정보를 찾지 않은 게으름을 정보를 가진 자들을 욕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은 이렇게 단편적인 비난들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져는 안된다.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 아닌가.
획일적 입시 너머를 꿈꾸는 학종의 그 좋은 취지는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종이 선물한 '고교교육 정상화' 라는 성과도 빛이 바래간다. 고교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학종 옹호론을 펴는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 기득권 수호 집단으로 비친다. 공정성의 깃발 아래 활활 타오르는 정시 확대론으로만 사람들이 몰린다. 정시확대론이 맞는다면 그 길로 가면 되겠지만, 그 역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일이다. 학종이든 정시든 금수저에게 유리하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수능이든 학종이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갈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시험으로 평생 악몽에 시달리거나, 금수저를 물지 못한 제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다. (p. 301)
소수의 몇몇 사람만 배울 수 있던 시대에서 의무교육시대가 되었고, 소수의 몇몇 사람만 갈 수 있던 대학에 대부분의 사람이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고 고등학교 까지 뺑뺑이 돌리며 평준화교육이 안착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대학 뿐이다. 일열로 순위를 매기던 제도에서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게 한 제도로 변하고 있다. 항상 욕해왔지만 의외로 교육과 입시는 나름 바른길을 찾아왔다. 한국식 문화가 반영된 한국식 학종은 이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중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분명하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자세는 팩트체크일 것이다. 모르는 채 선동되기 전에 제대로 알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마음먹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지 못할 거라면 나만의 우리만의 리그를 제대로 만들어 그들을 소외시키는 통쾌함을 기대하고 싶다.
ps. 표지가 참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니 카시오페아 책들은 대부분 표지디자인이 참 좋았다. 이 책의 표지도 멋지지만, 미술에게 말을 걸다, 아트인문학,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등 내가 읽었던 이 출판사의 책들은 하나같이 표지가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도 세련되고 색감이 좋았다. 이미지에 혹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카시오페아 책들의 표지에 혹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