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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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편집자, 편집장으로 콘텐츠의 꿈을 집요하게 실현해온

고경태의 30년 그 시간의 기록

 

 

굿바이 라는 인사는 헤어질때 하는 말이다. 문득 인사말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영어엔 시간대별 인사가 있다. 아침, 점심, 저녁. 그냥 합쳐서 헬로 해도 되겠지만.... 한국어는 존칭과 시제가 있을뿐 아침, 점심, 저녁 시간대별 인사의 구분은 없는 듯 하다. 그저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셨어요 ...

왜 뜬금없이 인사말에 대한 생각을 했냐하면 읽는 내내 왜 제목이 '굿바이, 편집장' 이었는지가 머릿속에 떠다녔기 때문이다. 왜 헤어지는 인사로 책을 시작하는가... 아마도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 달랐기에 적응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헬로, 편집장' 을 기대하며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건 없었다. 그저 간략한 정보를 보고 편집장을 해본 사람이 쓴 편집에 관한 책일 것 같아 궁금했다. 이때 내가 생각했던 편집은 '책' 에 대한 편집이었다. 예전엔 '편집' 이라는 건 그저 교정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쓴이들의 소감에서 항상 편집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글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같은 소설을 읽어도 출판사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점점 더 궁금해져 갔다. '편집' 이란게 뭘까?

이 책은 '책' 에 대한 편집이야기는 아니었다. 신문과 잡지의 편집이야기 였다. 저자는 한겨레에서 신문-한겨레21-씨네21을 두루 거친 베테랑 편집장이었다.

궁금했던 책편집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간지-주간지 의 편집 이야기도 좋았다. 더구나 '한겨레' 였다. 항상 좋았던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존경하는 매체다. 그곳의 이야기들이 몹시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겨레 신문의 창간과 한겨레21의 창간은 내 인생에서 격동의 시간들과 맞물려 있다. 그 신문을 읽고 그 주간지를 기다리며, 특히나 '만리재에서' 라는 한겨레21 의 첫글을 나는 가장 좋아했었다. 송구스럽게도 그 때의 편집장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어떤 기사보다 울림을 주던 편집장의 글을 보며 나는 진한 여운을 느끼곤 했다. 아....멋있다! 라고.

내가 한창 읽었던 초창기의 한겨레21 편집장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한겨레 이야기에서 나는 세월의 변화를 새삼 느꼈다. 사회의 뜨거움에서 문화의 뜨거움으로 흘러왔달까... 그 흐름이 다시 정의의 뜨거움으로 갈 수 있을까.... 뭐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읽게 되는 책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기에 회고록 처럼 읽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장으로서의 그 시간들이 편집장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뭔가 지침을 준다기 보다는 자신의 편집장으로서의 시간들에 굿바이를 고하는... 그래서 '굿바이, 편집장' 이라는 제목에 슬슬 적응이 되어가는...

종이신문으로 한겨레신문을 본지가 언제던가... 너무 오래되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part1 에서 '토요판의 탄생' 에 대해, 그 치열했던 시간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신문지면의 편집과 기획에 이런 노력들이 들어가고 있었구나 새삼 알게 되서 다음에 신문을 보게 된다면 굉장히 꼼꼼하게 보게 될 것 같다. 편집자의 의도를 파악해보려 자꾸 시도해보게 될 것 같다.

어색함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자연스럽지 않을 때다. 질서에 어긋나 보일 때다. 질서란 무엇인가. 오랫동안의 약속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으레 그렇게 하는 게 옳은 것으로 묵인되어온 방식이다. 어느 날 다르게 하면 어색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이상하다" 는 평이 쏟아진다. 원래의 자리와 방식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편하다. 비난도 사그라진다. 미련하게 어색함의 강을 계속 헤엄치면 어떻게 되는가. 조심! 강 한가운데서 물귀신이 될 수 있다. 강을 무사히 건너 신천지의 뭍에 오르면 어색함을 참신함으로 바뀐다. (p. 77)

저자는 기획자로서의 참신함을 늘 시도해온 편집장이었던 듯 하다.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참신하고 새로운것 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걸 좋아한다. 기획은 1도 못하는 사람이랄까... 그런면에서 저자가 시도해온 것들, 그 연속된 도전들이 용기있어 보였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그 용기를 꺽는 환경이 아니라 북돋워주는 환경에서 마음껏 용기내볼 수 있었던 것이... 역시 한겨레?!

<한겨레21> 창간 경험은 나의 원형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한겨레 안에서 매체와 섹션을 기획하는 동력이 됐다. 그 힘이 없었다면 나중에 그 무엇이든 창간 작업에 뛰어들 용기와 염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한겨레21>은 늘 나의 기준점이었다. <한겨레21>에서 얻은 그 영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먼저 자유 라고 답할 것 같다. 그냥 자유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자유였다. (p. 122)

감당할 수 없는 자유 속에서 처음엔 불안해하다가 스스로 성장의 기록을 만들어낸 경험은 정말 아무때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물론, 자유보다 중요한건 개인의 역량과 의지일 것이다. 자유만 만끽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면 결국 자유가 없던때보다 더 뒤로 도태된다. 자유는 노력과 성장이라는 결실을 맺을 때 더 큰 자유로 돌아오는 부메랑이 아닐까...

사실 아이디어는 무턱대고 떠오르지 않는다. 탐색하고 노력한 만큼 떠오른다. 한 분야에 대해 끈덕지게 취재하고 자료를 찾고 사람을 만나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밝혀나갈수록 새로운 의문거리가 생겨나고, 그 자체가 기획 아이디어가 된다. 제보자들이 나타나 뜻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무엇인가에 꽂히면 꽂힐수록 아이디어가 벌때처럼 내 머리를 공격한다. (p. 130)

사람들은 대부분 1번의 발견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발견이 있기전에 99번의 시도 있었다. 10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을때 1번의 발견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100번 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99번의 시도 없이 100번째의 발견은 없다. 그 99번의 시도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100번 200번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이디어도 백지상태에서 순간 번쩍 떠오르는 게 아니다. 그 찰나의 섬광전에 사실 기나긴 생각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거저 얻는건 없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쾌도난담' 이 저자가 생각해낸, 국어사전엔 없는 말이었다는 거다. 한겨레21 1999년 10월에 첫 선을 보인 쾌도난담은 시작과 동시에 화제성을 몰고 왔었다. 그 이후로 비슷한 시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 저자가 발굴한 필자와 인터뷰이 들은 지금 대단해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저자의 안목에 감탄스럽다. 저자는 기획이나 편집에 있어서 늘 '재미'를 추구했다. 그 점이 내가 읽었던 초창기의 한겨레21에서 가장 변화된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 '재미' 가 가미된 한겨레를 읽어오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 그때의 공감대를 가졌다면 이 책이 더 반가웠을 것 같아서... 그 시도들이 안정화된 지금의 '재미'들에 이미 익숙해진채 그 때의 도전들을 몰랐던건 미안하지만, 그야말로 초단위로 변하는 세상 아닌가? 이러한 세상의 흐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는 것도 의미있었다.

세상은 진화한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낡은 것을 부드럽게 두드려 부수고, 온건한 방법으로 손질하고, 또는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속삭여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뜻밖의 물건, 뜻밖의 가치로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가슴을 적셔주는 이들 덕분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관해 비판을 하거나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미디어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편집장이냐 아니냐는 상관없다. 맞닥뜨린 문제마다 주인 의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이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찍는 새로운 점 하나로 지구별은 멋지게 돌아간다. 오늘도 새로운 태양은 뜬다. 나도 늘 새로운 일과 마주치고 싶지만... 몰려드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p. 453~454)

저자는 편집장일에서 떠났다. 지금은 작은 온라인언론사를 경영하고 있다. 30년 해온 편집장의 일을 떠나며 저자는 두려움이 몰려든다 하지만, 그보다는 태양같은 열정이 그 두려움을 압도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드커버책도 아닌데 하얀 겉표지를 벗겨내면 새빨간 표지가 타오르고 있다. 진화하는 저자의 열정처럼.

편집장직에는 굿바이를 날렸으나, 매일 아침 헬로우를 던지는 대상에 대해 저자가 어떤 뜨거운 길을 개척해갈지 문득 궁금해지면서, 내인생의 편집은 어떻게 하고 있는 중인가도 갑자기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에 굿바이 를 날리고 무엇에 헬로우를 던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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