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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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우리가 알게 된 것들

 

 

페미니즘 이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굉장히 익숙한 단어다.

익숙한 단어이기는 한데 사실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대로 페미니즘을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가 쓴 페미니즘 책이다.

페미니스트 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왜곡된 페미니즘적 인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그런 것일 수 있다.

페미니즘 이란 무엇일까? 페미니스트란 어떤 사람일까?

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데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페미니스트는 답이 없는 두 선택지에서 억지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거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다. (p. 5)

이 책은 저자가 2003~2019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기에 쓰여졌느냐에 따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자기성찰이 지속적으로 이루진 것이 글속에 반영됐음을 읽어가며 알 수 있었다. 시기별로 순서대로 글이 배치된 것은 아니지만 흐름을 짚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 흐름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변화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위해 그동안의 글을 정리하고 개고하면서, 대략 2009년 부터 페미니즘이 다시 부흥했다고 알려진 2015년까지 5~6년간 글 청탁이 거의 끊겼던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됐다. 이 시기는 대부분 매체에서 여성면 자체가 사라진 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1980년대 여성운동이 성장하면서 페미니즘은 확산되어 갔으나 2009년즈음 부터 쇠퇴되었다고 한다. 고사 직전의 페미니즘을 되살려 낸 것은 2009년데이트강간약-물뽕사건, 2010년 검사성접대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성 대중들에 의해 페미니스트 선언이 나오는 필연적 배경이 되었고, 페미니즘은 부활했다. 하지만 근래의 페미니즘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도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이견은 있었지만 지금 같은 형태였던 적은 없었다. 평등은 차이를 무시하기 위한 수사로 사용되었고, 자유는 전례 없이 모욕당했고, 혐오는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역사는 쌓이기도 전에 크고 작은 실수가 밝혀지면 즉각 삭제되었다. 비판적 사고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자리뺏기 싸움이나 내부 갈등으로 치환하고, 상대의 절멸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자기 편을 모으는 걸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곳곳에 나타났다. 놀랍고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나로 사는 한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선 내가 아닌 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지만 혼자는 싫고, 나를 억압하는 것들이 나를 살게 하기도 하며, 자유는 언제나 위험을 담고 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언제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냈다. 이 책은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알게 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p. 11)

글들은 여기저기 칼럼식으로 기고되었던 글인만큼 길지 않아 금방금방 읽힌다. 그 짧고 굵은 내용 속에 맘에 와 박히는 문장들이 여러 곳에 있었다.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p. 22)

1장 첫번째 글에서 저자는 트랜스여성을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그때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 다시한번 다짐하듯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며 여성운동을 하던 저자도 트랜스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 실수를 인정한다.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되면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알게 되고 나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에 대한 자책감 을 경계하며 다시한번 다짐하는 저자의 고백은 왠지 울림이 길었다...

정체성의 정치가 신자유주의와 만나 다양성의 목록 하나를 더하는 식으로 축소된 요즘, 진정한 불온세력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p. 24)

불온세력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사실 불온세력이 아닐수도 있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집단은 예측가능하며 따라서 불온하게 되지 않도록 막아진다. 정말 위험한 세력은 저자의 말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택에 의해 사회의 색이 달라질 수도 있다.

수치심을 잃은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아버지를 움직이게 한 마음은 수치심과 정의감이었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해주고, 정의감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p. 34)

저자는 참 멋진 아버지를 두었고 멋진 어머니를 두었다. 권김현영 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을때 부모의 성이 같아서 김김현영이라고 쓰는 것은 이상하니 그냥 김현영이라고 쓰고 있을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고 한다. 여성운동 한다면서 왜 이름을 그렇게 쓰냐고 외할머니의 성을 쓰면 어떠냐고. 저자는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권김현영이 되었다. 아버지의 모임 단톡방에 불법성폭력동영상이 올라왔을때 그런 것을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신 아버지는 천년같은 단톡방의 정적을 이겨내시면서 딸의 의견을 지지해주었다. 이런 부모님덕에 저자의 생각이 어디에 편향되지 않게 잘 자리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에서 일본인 여성을 한국인 청년이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저자도 한국인으로서 화나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본여성의 계정에 많은 한국인들이 대신 사과하는 것을 보고 그 일본여성은 "한국인들이 왜 사과를 하지" 하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사과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해자를 대신해서 사과하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보며 페미니즘적 사고를 했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직접 사과하는 것은 맞고 주변 사람이 대신 사과해주는 문화가 이상한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부모세대가 저지른 제국주의의 폐해를 자신들이 사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사과를 영원히 할 수 없겠구나...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

낙태문제 에 대해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한 예의' 를 먼저 생각하는 것

생리대 유해성 문제가 터졌을때 남성전문가가 나와 생리대 사용법교육같은 무지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어이없는 상황

한국같은 고도의 가족중심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존중의 근거가 아니라 협박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

진보진영 남성들이 남성 권력에 대항하지 않고 그것을 욕망했다는 것

결혼 자체를 부역으로 취급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무너진 사회에서만 가능한데, 가부장제가 무너지기는 커녕 돈독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서 결혼이 여성에게 부역행위인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현실 은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토론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서로의 말이 옳다며 침튀기며 소리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토론이란, 정말 좋은 토론이란

좋은 토론이 되려면 사회자, 촉진자, 발제자, 청중 모두 토론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상대에게 확인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반론하며 자신의 논지를 점검할 수 있따는 기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질문을 명목으로 자기과시적인 연설을 하거나 선동하며 혐오 발화를 할 때 모두가 제지할 수 있다. 토론에 참여하는 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기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론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영향력만을 과시하려는 사람은 토론에서 논박되었어도 전혀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 겨우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토론할 상황을 만들어놓았는데, 저런 이들이 공론장의 주요 스피커로 취급되면 성차별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것이 토론이 아니라 퇴행이라고 보는 이유다. (p. 67)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정착된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인권적인 측면부터 공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권은 "우리"에 대한 기대와 희망, 연대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게 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하고도 유용한 개념이다. 그 때문에 인권에서 인간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자고 하는 것은 인권의 불가능성을 사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좀더 정치적으로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만들어내는 사회관계를 포함해서 인간이 만들어진다고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을 지향한다거나, 여성인권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인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식의 말들이 휴머니즘과 인권을 가장 탈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운동이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혁명적인 휴머니즘이자 가장 급진적인 인권운동이다. (p. 91)

페미니즘에 대해서 좁은 범위의 의미만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대해 폭넓은 사고의 방향을 알려준다.

대학사회의 변화는 향후 대중정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대학 사회에 불고 있는 대표성의 위기와 정치의 내용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분병한 변화는 이제 선출된 이후 결과에 '승복'하는 식의 정치는 더는 없다는 것이다. (p. 105)

학생운동은 옛말이고 대학교에 학생회조직은 사라진줄 알았다. 그냥 과거이고 추억속에 남은 것이겠거니 했는데, 저자는 정점에 있었을때나 바닥이라는 위기에 있을때나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낸다.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실패한 기억이라고 생각했었다. 상실과 좌절의 꺾임이었따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때의 그 시도가 있었기에 이후의 사회적 논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현실이 바뀐 것은 없는데, 실망이 희망이 되는 묘한 느낌이 들면서 내 생각의 프레임이 살짝 돌려지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조차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데도, 역차별 담론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닫아버린다. ... 법,제도적 기반 없이 급조된 여성전용 혹은 여성친화를 내세운 정책들은 역차별을 발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성차별을 강화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반하거나 성별분업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만든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p. 108)

그러고 보니 여성을 위한 정책들이 사실 강제성을 띤 법으로 정해진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러한 유명무실한 시도만으로도 역차별 논란은 거세고 그러면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시도들은 사라진다. 눈치챌 새도 없이...

여자와 남자의 뇌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언제나 인기를 끈다는 저자의 글을 보며 사실 나도 그러한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구분이 서로의 이해를 돕는다고 그냥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차별을 당연시하는 기반이 되는 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여성의 인권은 구타당하고 강간당하고 착취당하는 최악의 상태를 전시해야 공감을 얻는다. 반면에, 남성의 인권은 잠재적인 피해 가능성과 인간으로서 명예훼손에 대한 우려만을 이야기해도 공감을 얻는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학대는 그들의 약한 위치 때문에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쾌락을 자극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정말 불편해하는 장면은 권력자의 눈물과 상처이다. (p. 134)

그러고 보니 그랬다. 여성은 피해가 겉으로 보여야 동정심이라도 얻고 남성은 그럴 가능성만 있어도 바로 들고 일어난다. 그리고 약자들이 항상 저 위에 있는 강자들을 걱정한다. 왜일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들인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서 피해자의 곁을 지키며 정의롭게 살악려는 이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 분노로 인해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우리 일상생활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 힘을 길러야 한다. (p. 152)

일상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다...

여성혐오와 싸우는 이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은 무기라기보다는 족쇄에 가깝다. 전략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은 이미 실패를 거듭해왔다. 사회가 전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 전략으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p. 227)

저자는 지속적으로 연대와 여성들의 목소리를 응원한다. 글쓰는 여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을 보며 사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자기만의 글을 쓰는 여자는 많은데 저자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글 부족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노가 단순히 음란이 문제가 아니라 폭력이 문제라는 것, 아동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가 사실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 아동복지예산이 거의 바닥이라는 것, 여성주의 자기방어운동이 단순히 신체적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등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면서도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수 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싫은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저자가 알게 된 것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알아야 할 내용들이었다.

선입견을 갖지 말고 같은 인간의 이야기로 인권의 이야기로 읽어간다면 분명 가슴깊이 박히는 내용들이 있는 책이었기에 나는 이 책을 페미니즘책으로 국한짓고 싶지 않다.

아집에 갖힌 페미니즘이 아니라 퇴행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진화하는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생각이 아니어야 한다.

다시 알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 속에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함께 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람의 이야기로 읽혀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은 원래 그런 것인것 같다. 한쪽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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