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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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성 편견으로 진료실에서도 차별받는 여성의 아플 권리에 대한 보고서

나쁜 의학과 게으른 과학이

여성을 무시하고 오진하고 병들게 한 진실에 대한 보고서 (표지 中)

 

 

표지에 한 여자가 있다.

무채색의 이 여자는딱 봐도 아파 보인다.

여자가 말하는 듯 [ Doing Harm } 이라는 글씨가 여자의 입을 가리고 있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이기도 한 'Doing Harm' 은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어! , (나를) 아프게 하고 있어! 로 해석된다.

아픈 여성이 정면을 응시하며 그 시선을 받은 사람에게 당신이 자신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픈데 더 아프게 하는 사람... 이 책은 아픈 여성과 이 여성을 더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인 'Doing Harm' 은 'Do no harm'(환자에게 위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 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사결정 절제 명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는 환자의 몸, 정신, 생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을 하게 되는데 득이 되는 방향의 개입을 하라는 명제보다 해가 되는 개입을 하지 말라는 명제가 먼저 나온다는 것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이 있는 서문에서부터 이미 위협적이다. 치료가 먼저가 아니라 해치지 말라는 것이 먼저였다는 것이, 이미 고대때부터 그러한 인식하에 환자를 대하라고 했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실천이 잘 되지 않았으면 여전히 이 짧은 문장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개요는 <1부> 내용이다.

< 눈 감고 무시해온 구조적 문제> 라는 제목 아래 '지식의 간극' 과 '신뢰의 간극' 으로 나위어 어느 방향에서든 여자의 고통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풀어낸다.

<2부 - '남성 중심' 체계 속에서 사라진 여성> 과 < 3부 -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질병들> 은 그 실제적 사례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촘촘하게 저자가 조사한 내용들을 설명한다.

어찌보면 동어반복적인 내용들이다.

여성이 아프다고 말한다 - 의사는 믿지 않는다 - 여성의 병이 심해지지만 감내할 수 밖에 없다

혹은

여성이 아프다고 말한다 - 의사는 정신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 여성의 병이 심해지고 오랜 시간이 걸려 치료를 받게 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여성은 이 여성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전형적인 서양스타일로 쓰여진 보고서 형태의 책으로 연역식인 구조는 첫장 시작부터 결과는 알고 들어간다.

'의사는 여자의 고통을 믿지 않았다'

이 문장을 증명해내는 증거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450여 페이지 내내 아픈 여성들과 믿지 않는 의사들을 보며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으면서도 중간에 놓을수도 없이 다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보수적인 미국의 의료현실에 대해 새삼 놀랐다.

백인남성우월주의가 너무나 뼛속깊이 박혀 있어서 환자에게 공정해야 할 의사가 너무나 선입견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놀랐다.

서양의학의 역사속에서 난자당한 여성의 몸과 인정받지 못한 여성의 아픔들이 끔찍했다.

미국의료체계는 우리네와 달라서 더 안되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료체계는 일단 의료보험이 개인부담이라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다. 마약성 진통제가 횡행한 곳이라 중독자가 많다 보니 환자를 중독자로 무시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동네 가까운 병원의 주치의에게 먼저 진료받으면서 초기에 오진되는 경우 상급병원으로 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서양의학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여성의 고통은 정신병이자 히스테리로 치부되어 온 서양의학의 역사를 바탕으로 여성의 질병에 대해 제대로 연구도 교육도 발달해오지 못한 곳에서 여성의 질병은 다 엄살로 치부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의료체계 만큼은 미국보다 우리가 나은 것 같다.

우리는 적어도 개인적으로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귀찮아서 안가면 안갔지 부담되서 안가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이 국가주도라는 것은 굉장한 복지혜택이다. 동네병원에 갔는데 진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병원가는 것이 별로 어렵지도 않고 다른 병원들이 멀지도 않다. 상급병원들로 가는 것은 예약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무시당하는 수준은 아니다.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진통제 처방받으려고 하는 중독자로 의심받는 경우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산업-로비스트-정치권 으로 인한 약물남용이 없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서양의학이 기본체제이기는 하나 오랜 세월 동양의학과 함께 해온 우리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신체적 아픔이 생길때 한의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학기기 에서 증명되지 않아도 맥을 짚고 침맞고 뜸뜨면서 안정을 찾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 적어도 아프다고 말할때 여성이라고 해서 무시당하는 경우를 겪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미국은 같은 질병과 같은 증상이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으로 치부해 버린다고 하니 오랜 관습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의료현장에서의 차별은 차치하고라도 임상실험 과 처방기준에 대해서는 공감가는 바가 컸다.

임상 연구와 진료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다는 것은 문제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약의 복용기준은 성인남성 기준이다.

그런데 임상연구 대상에서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동물실험에서도 수컷생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놀라웠다. (심지어 에스트로겐 농도가 낮아지는 폐경기 관련 연구 조차도 남성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여성이든 암컷이든 호르몬주기 때문에 임상실험의 조건이 복잡해지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남성만 수컷만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증명된 약을 남성기준의 양으로 처방받고 있는 여성의 몸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의 호르몬 주기 때문에 남성과 그토록 다르다면 오히려 여성과 암컷을 대상으로 테스트해봐야 더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남성이 잘 걸리는 병에 대한 연구가 먼저이고, 남성은 고통을 여성보다 잘 참는다는 편견아래 여성의 고통은 심인성이다 라고 진료하고, 남성에게 잘 듣는 약으로 개발된 약을 똑같이 처방받고, 여성의 질환은 후대를 생산하는 부인과 외에는 관심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어온 현실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올랐다.

의료체계가 다른 미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발달이 과학의 발달보다 빠르게 움직여 여성환우들의 단체 활동이 큰 힘을 얻고 있었다. 의사에게 인정받지 못한 질병을 지닌 여성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연구단체를 지원하여 새로운 질병임을 인정받고 교육시킬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단체들의 노력이 중요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로 서양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배우고 서양에서 개발된 약을 들여오고 서양에서 전파된 기술을 배우는 국내 의료진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의사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오진을 당하고 무시당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가? 의료체계는 우리가 나을지라도 의료계를 바꿀 수 있는 외부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훨씬 무력하다.

'잘 연구되었으며 놀랍도록 위협적인 책' 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처럼 이 책은 탄탄하면서도 가슴아픈 공포를 주는 책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라지만 절반의 인류로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으로서의 입지가 너무 드러난 책이라 읽는 내내 힘들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일수록 널리 알려져야 뭐하나라도 개선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의료현실이 똑같지는 않더라도 의료계에서의 성,젠더 차별에 대해, 고정관념에 빠지기 쉬운 오래된 전통의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수록 더욱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모르면 어쩔 수 없어도 알고 나면 똑같이 행동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의료계에서 불신을 경험한 사람들도 의료계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사고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껍고도 무거운 책이지만 그 묵직함이 더이상 가벼이 여겨지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여성의 증상은 '모두 머릿속에서 생긴' 증상이라는 고정관념이 의학 지식으로 굳어졌다.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이 상호작용하면서 고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고착되었다. 여성에게 더 많이 생기는 질병과 증상,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해 의사가 단순히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 환자가 질병을 호소해도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사에게 여성 환자는 신뢰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이 있어서 여성의 증상을 무시하는 걸까? 지식의 부재일까? 신뢰의 부재일까? 내 생각에는 양쪽 모두다.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은 이 지점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이 책은 의학계에 있는 몇몇 성차별주의자를 골라내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의학계에 편견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여성에 대해 특정 편견을 가진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 모두와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어떻게 무의식적인 편견을 체화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최고의 의사들조차도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잘 모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의사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들 역시도 여성 건강에 대해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들도 모른다는 것이다. (p. 28)

몸은 항상 아플 수 있고, 의사는 언제나 실수할 수 있으며, 과학이 곧장 사람의 몸에 얽힌 신비를 모두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젠더가 그러한 실수의 요인이 되어서도, 미지의 지식으로 남겨져서도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의학적 탐구가 계속 진행되어, 여성의 고통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의학에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p. 39)

모든 세대의 의사는 현시대의 이론과 기술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확신에 차 있다. 현재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은 지금보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정확한 검사법을 갖춘 미래의 의사조차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들을 통합적인 질병으로 취급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집어넣을,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진단 범주를 만드는 데' 안주한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심인성 원인으로 돌리면서, 의학은 '의사의 무오류성과 의학의 전지성'을 주장한다. 히스테리는 여전히 '적절하지 않은 증상을 던져버리는 의학의 쓰레기통' 으로 남아있다. (p. 119)

증상이 이상하고 낯설다고 해서 질병이 실재가 될 수 없다고 믿어야 하는가? 우리의 실험실 검사가 오래된 질병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병들도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건강한 회의주의' 는 의사에게 귀중한 자질이지만, 이 회의주의자가 환자에게 향할 때는 의료계 전체가 새로운 의학 수수께끼를 풀 수 없게 될 것이다. (p. 368)

의학계가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증거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기질성 질환이 19세기에 히스테리, 신경쇠약, 신경증장애 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는지, 그래서 21세기까지 오진되고 있는지 의학계는 잊어버렸다. 다발성 경화증, 측두엽간질, 자궁내막증, 자가면역질환 처럼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질병도 히스테리나 신경쇠약과 '모든 측면에서 구별할 수 없었다는 사실' 은 무시한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계속 변화하는 수많은 느슨한 진단명들의 유사점은 어쩐지 심인성 기원의 증거라고 여겨지지만, 이것은 그저 여전히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p. 375)

결국 자신들의 역사를 잊은 사람들은 그 역사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지구의 온도는 높아지고, 서식지는 변하고, 환경 독소는 점점 많아지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다음 모퉁이를 돌면 언제나 새로운 질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 426)

여성의 신뢰를 되찾는 것은 의료계의 몫이다. 그에 필요한 변화 중에는 의료체계 전체와 관련된 거대한 문제도 있다. 이는 시행하기가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도 있다. 바로 여성의 말을 듣는 일이다. 여성이 아프다고 말할 때, 여성을 믿어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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