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표지에 씌여진 인용구를 보며 생각했다. 내게도 프랑스가 저런 이미지로 있었나? 프랑스를 그렇게 배울 점 많은 선진국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나?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보는 해외뉴스와 어쩌다 보는 책속의 프랑스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점이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래된 문화유산 건물이 많은 만큼 냉난방이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어 불편한 곳, 길가의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 온갖 악취를 피하기 위해 향수를 만들어 뿌리던 나라, 혁명의 도시였으나 여전히 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나라, 불어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나머지 불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나라 로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유럽여행 갔을 때도 프랑스 는 안갔다;;;)
앞표지에 씌여진 <우리는 프랑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라는 문장을 보면서도, 우리가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다기 보다는... 프랑스의 역사는 서유럽의 역사에서나 의미깊지 동양과는 관계없고, 경제대국도 아니고 선진기술국도 아닌데다가, 칸느영화제 같은 작가주의적 작품들만 좋아하는 귀족적 취향을 고집하려 하는 문화적 배타성을 가진 나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만큼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거의 폭락하여 문화유산을 팔며 사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랑스도 파리의 문화유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상태로 지속되다간 이탈리아 수준이 되는게 아닐까 싶은 걱정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저자는 프랑스인으로서 한국에 살며 한국인들이 프랑스를 굉장히 우러러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프랑스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고 이 책을 쓴것 같은데, 나는 프랑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저자의 의도가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프랑스를 알고 싶었다. 비록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라 할지라도 프랑스는 궁금한 나라였다. 서양의 역사관련 책을 즐겨 읽는 내게 프랑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고나서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좋아졌다. 더욱 궁금해졌고, 무척 가고 싶어졌다. 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들도 (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 입장에서의 시작이었겠으나;;;) 많이 옅어졌다. 프랑스는 생각보다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여서 읽으며 여러부분에서 놀랐다.
예전에 홍세화작가의 <나는 빠리의 택사운전사> 라는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프랑스에 대해 호감을 느꼈었다. 조국에서 버려진 이방인을 품어주고 그 이방인이 프랑스인들의 '똘레랑스'를 느끼게 해준 것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프랑스 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이 생겼다.
호감이 생기다 보니 잊었던 뉴스들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파업이 잦지만 불편하다고 욕하지 않고 파업의 정당성을 용인해주고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시민의식이 있는 나라, 대학이 평준화 되어 있어서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나라, 바칼로레아 라는 대입자격시험 문제의 철학성에 온국민이 관심을 갖는 나라, 그리고 혼외자녀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