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오헬리엉 루베르.윤여진 지음 / 틈새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박제된 프랑스는 이제 버리시라. 부모가 가난해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디에 가든 생산적인 정치적 논쟁이 있으며, 이민자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 여전히 당신이 프랑스를 이렇게 떠올린다면, 그건 수십 년 전 이야기다. 

 (표지 中)

 

뒷표지에 씌여진 인용구를 보며 생각했다. 내게도 프랑스가 저런 이미지로 있었나? 프랑스를 그렇게 배울 점 많은 선진국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나?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보는 해외뉴스와 어쩌다 보는 책속의 프랑스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점이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래된 문화유산 건물이 많은 만큼 냉난방이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어 불편한 곳, 길가의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 온갖 악취를 피하기 위해 향수를 만들어 뿌리던 나라, 혁명의 도시였으나 여전히 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나라, 불어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나머지 불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나라 로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유럽여행 갔을 때도 프랑스 는 안갔다;;;)

앞표지에 씌여진 <우리는 프랑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라는 문장을 보면서도, 우리가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다기 보다는... 프랑스의 역사는 서유럽의 역사에서나 의미깊지 동양과는 관계없고, 경제대국도 아니고 선진기술국도 아닌데다가, 칸느영화제 같은 작가주의적 작품들만 좋아하는 귀족적 취향을 고집하려 하는 문화적 배타성을 가진 나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만큼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거의 폭락하여 문화유산을 팔며 사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랑스도 파리의 문화유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상태로 지속되다간 이탈리아 수준이 되는게 아닐까 싶은 걱정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저자는 프랑스인으로서 한국에 살며 한국인들이 프랑스를 굉장히 우러러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프랑스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고 이 책을 쓴것 같은데, 나는 프랑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저자의 의도가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프랑스를 알고 싶었다. 비록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라 할지라도 프랑스는 궁금한 나라였다. 서양의 역사관련 책을 즐겨 읽는 내게 프랑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고나서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좋아졌다. 더욱 궁금해졌고, 무척 가고 싶어졌다. 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들도 (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 입장에서의 시작이었겠으나;;;) 많이 옅어졌다. 프랑스는 생각보다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여서 읽으며 여러부분에서 놀랐다.

예전에 홍세화작가의 <나는 빠리의 택사운전사> 라는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프랑스에 대해 호감을 느꼈었다. 조국에서 버려진 이방인을 품어주고 그 이방인이 프랑스인들의 '똘레랑스'를 느끼게 해준 것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프랑스 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이 생겼다.

호감이 생기다 보니 잊었던 뉴스들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파업이 잦지만 불편하다고 욕하지 않고 파업의 정당성을 용인해주고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시민의식이 있는 나라, 대학이 평준화 되어 있어서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나라, 바칼로레아 라는 대입자격시험 문제의 철학성에 온국민이 관심을 갖는 나라, 그리고 혼외자녀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어렸을 때부터 보통 '커플은 같이 산다' 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동거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동거를 쉽게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배경도 있다. 우선 '결혼이 먼저' 라는 인식이 없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꼭 결혼을 하지 않고도 함께 살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50퍼센트를 넘어서는 상황까지 왔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팍스 라는 제도가 있다. 팍스는 이성, 혹은 동성 커플이 계약을 통해 결혼한 배우자와 거의 비슷한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대안적 가족 결합 제도' 다. ... 매년 결혼하는 커플과 팍스로 맺어진 커플 수가 엇비슷할 정도니 지금은 꽤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p. 53~54)

혼외 자녀에 대해 동등한 법적 지위와 혜택이 보장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인구감소나 버려지는 세계최대해외입양수출국 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는 가정문화가 한국과 많이 비슷해 보였다. 부모자식관계나 가족간의 결속력이 개인주의적 문화와는 또 다르게 가족공동체분위기도 강해 보여서 신기했다. 프랑스 가정처럼 이 가족의 범위를 혼인외의 관계까지 넓힐 수 있다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허락하는 한 자식을 많이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성년이 돼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다른 지역으로 전학하거나 취직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부모 집에서 함께 산다. 일찍 독립하는 편인 미국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한국 문화에 더 가깝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자식이 독립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받는 대신, 나중에 자식이 성인이 되면 이를 되갚는 방식인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자식은 평생 받기만 한다. (p. 63)

진심 부러웠다. 한국의 가정이 자식을 빚쟁이로 만들고 있는 것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자식은 평생 받기만 한다는 말이 진짜 너무 부러웠다.;;;

프랑스 여성 인권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향상된 편이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주로 여자가 가사를 병행하는 분위기였다. 여자들에게는 사회 진출의 기회가 생겼지만, 부담은 두 배가 돼 버린 셈이었다.

프랑스는 완벽한 평등 사회가 아니라, 여전히 평등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나라다.

프랑스 배우은 브리지트 바르도가 열렬히 식용견 반대 운동을 한 덕에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동물권'에 굉장히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원래 프랑스는 동물보호법이 잘 갖춰진 나라가 아니다. 반려동물 학대도 '다른 사람 앞에서만 하면 안 된다' 는 법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하는 것까지 법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p. 72~80)

개의 배설물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잘 치우고, 프랑스 사람들이 더 무심한 것 같다. 이건 아마 묘한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개의 배설물을 치우는, 그러니까 '시중'을 드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주인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치우지 않은 개의 배설물을 딱 한 번 본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길을 가다 보면 방치된 개의 배설물을 쉽게 볼 수 있다. (p. 340)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 수록 가부장적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프랑스처럼 역사와 문화가 찬란했던 나라일 수록 기존 세력이 오래 유지되온 곳일 수록 오히려 여성인권과 동물권등 다른 소수에 대한 권리는 그닥 발전하지 못 했다. 저자가 여러번 강조하던데, 프랑스 남자는 그리 로맨틱 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가 보기엔 한국 남자들이 훨씬 로맨틱한 행동을 많이 한다고 ㅎㅎ

나는 보신탕을 먹지는 않지만, 브리지트바르도는 좀 유난맞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름 우리 고유의 식문화 아닌가? 동남아건 중국이건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희한해 보이는 음식을 먹는 건 당연한 거다. 서양 음식도 우리가 봤을 땐 이상한게 많다. 그런데 그 여배우는 한국만 뭐라고 한다. 거참...

내 나이 또래인 30~40대 프랑스인들은 외국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이 딱 그랬다. 당시 우리 집에는 '누누(베이비시터)'가 두 명이 있었는데, 오전 누누는 일본인이었고, 오후 누누는 미국인이었다. 그 '누누'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전 누누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후 누누는 '미국드라마'였다. TV에서 오전에는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해 주고, 오후에는 미드를 방영해 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프로그램들이 '누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p. 117)

문화의 나라 프랑스에서 TV프로그램들은 거의 일본만화와 미드였다니 충격이었다. 게대가 영화의 나라 프랑스에서 '스크린쿼터제'로 자국의 영화상영을 보호해야 할 정도로 영화산업에서도 밀리고 있다고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라디오에도 '음악쿼터제'가 있어 자국의 음악을 일정시간 틀어야 할 정도로 외국음악들이 더 많이 틀어진다며 한국에서는 라디오에서든 카페에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대부분 나오고 있는 것에 저자는 오히려 감탄을 하고 있었다.

'샹송' 이 프랑스 고유의 음악이라고 알고 있엇는데, '샹송'은 프랑스어로 그냥 '노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샹송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것이라고;;;

최근 프랑스 서점에 가 보면 예전보다 자기계발서가 꽤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잘 읽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그 분야 독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분야은 문학이다. 전체의 22.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p. 144)

프랑스에는 마을마다 작은 서점이 많다고 한다. 책선물도 많이 하고 성의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있어 더욱 좋아한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대화를 많이 하는 분위기는 정말 부러웠다.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에 보드게임을 주로 하며 건전하게 노는 것도 신기했다.

프랑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다. '프랑스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항상 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다들 한국을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밤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프랑스에서는 특정 지역에 가거나, 늦게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특별히 본인 잘못이 없어도 좀 위험한 사람을 마주치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p. 157~158)

이 책 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종종 한국이 안전하다는 외국인의 느낌을 여러번 읽은 적 있다. 카페에 핸드폰을 놓고 화장실에 가도 훔쳐가는 사람 없고, 길거리에 소매치기도 없고, 정전이 됐을때 털리는 가게도 없는 한국이 서양인들이 봤을 땐 정말 안전해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ㅎㅎ. 그러고 보니 영국에 갔을 때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데 습관처럼 핸드폰을 물컵 옆에 두고 식사를 하는 내게 현지에 사는 지인이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라고 했었다. 핸드폰 주인이 앉아 있어도 그냥 집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데이터를 살펴보면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두드러진다. 빈부 격차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부모 소득과는 관계없이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 182)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 교육 제도를 너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을 존중하는 수업이 이뤄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인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정말로 전혀 그렇지 않다. 수업 분위기는 한국이랑 비슷하다. 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프랑스 학생들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 아예 수업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랫동안 학교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지겨워한다. (p. 191)

원칙적으로는 모든 대학이 평등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대학 간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위니베르시테'끼리의 이야기다. 엘리트 교육에 해당하는 특수 대학 '그랑제콜'은 입학 시험을 본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교육부의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다.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대학 중 협의회에 가입한 학교들을 일반적으로 그랑제콜로 인정한다. 그랑제콜은 입학하려면 프헤파(그랑제콜 입시 준비반)를 거쳐야 한다. (p. 211)

등록금이 거의 무상에 가까운 위니베르시테와는 달리, 그랑제콜은 학비도 매우 비싸고 긴 기간 동안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학생들은 입학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한다. (p. 218)

 

저자는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아직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존재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한국사회가 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학은 평준화가 기본이긴 한데 아예 신분상승이 가능한 몇몇의 특수대학이 있고 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사회의 엘리트층이 되는 것이 고착화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있는 자들의 그들만의 세상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도 오히려 더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좀 놀랐다...

프랑스에서 미국식 이름은 가난하고, 상급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신분 상승을 하겠다는 야망조차 없는 사람들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반면 일반 바칼로레아를 딴 학생들의 이름에서는 '가랑스' 콘스탄스' 같은 전통적인 프랑스 부르주아 이미지의 이름이 많이 나왔다. 바칼로레아 점수로 이름을 분류해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높은 점수로 통과한 학생들 집단에서는 부르주아적인 이름이, 낮은 점수를 얻은 집단에서는 다국적 이름이 나왔따. 인종 관련 통계는 금지되어 있고 이력서에도 집안 배경을 적지 않지만, 사실상 이름으로 그 사람의 환경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름으로 인한 차별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p. 217)

서양의 대부분은 이름을 돌려가며 쓴다. 우라나라 처럼 이름에 대한 창의성이 존재할 수 없다. 이름으로 정해진 단어들이 아예 있는 식이다. 그래서 같은 이름도 많고 1세2세식의 이름이 있게 된다. 이름은 곧 가문을 드러낸다. 귀족계급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서양에서는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의 출신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역시 한글이 짱이다. ㅎㅎㅎ

정치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선거 때 투표율은 상당히 낮다. 정말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지친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옛날 노인들이 모이는 동네 바 같은 곳에 모여 앉아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투표를 하러 가지는 않는다. 자신과 뜻이 비슷한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람들도 흔치 않다. 이미 정치에 지치고, 상황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p. 240)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 다수가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다수를 차지하는 건 '말하지 않는 우파'다. 보수 성향을 띠고 있지만, 의견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 중에는 좌파가 많은 편이지만, 프랑스는 고령화가 진행된 '늙은 나라'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수의 나라가 됐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이 많고, 자기 손에 쥔 것을 잃을 까봐 우파를 지지한다. 젊었을 때는 좌파를 지지했다가도 나이가 들면 변하기도 한다. (p. 256)

 

실업율이 높은 경제에 불안해하고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민생에 관심없는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은 프랑스와 한국이 무척 비슷해 보였다. 나라가 늙으가며 우파가 되어간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

프랑스의 행정 서비스는 정말, 정말 최악이다. 그야말로 '지옥같은 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유를 들어보면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우선 일 처리가 너무 느리고, 행정 기관의 운영 시간도 짧다. 게다가 행정기관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p. 285)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더라도 프랑스 공무원이 되면 달라진다. 남들은 일을 안 하고 미루는데, 혼자 일 처리를 다 하다 보면 부당함을 느끼고 지레 포기하게 된다. 결국 적당히 게으르게 일하면서 휴가나 즐기는 방식으로 바뀐다. (p. 286)

행정절차가 불편한 것은 단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제도 자체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시민들이 몇 번씩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p. 291)

프랑스 경찰은 누구에게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검사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경찰에게 이런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 나는 단 한번도 신분증 검사를 당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랍계 사람들은 정말 빈번하게 당한다. .. 모든 경찰들이 인종 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닌데, 일단 극우파 비율이 높기 때문에 앞서 말한 부조리한 현상이 나온다. 그래서 백인인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경찰에 대해서는 대체로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다. .. 일반적으로 경찰보다는 군인에 대한 이미지도 좋고 더 친숙하다. (p. 295~299)

 

프랑스에서 행정공무원은 갑이고 민원인은 을이라고 한다. 공무원이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민원인은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시스템 개선도 원활하지 않아서 대기표를 받기 위해 길가에 매트리스를 깔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소리만 질러도 상급공무원이 나오는 우리네와 무척 달랐다. 경찰과 군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군부독재를 겪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이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프랑스인들은 왜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우리가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때 프랑스라는 국각가 지금 수준의 삶을 보장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도 이미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는 많이떨어졌고, 더 이상 세계를 선도하는 압도적인 강대국이 아니다. 앞으로 더 잘할 것이다?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아 앞으로는더 나아질 것이다? 프랑스 청년들에게 그런 희망이나 신뢰가 없다. 국가를 믿기 보다는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p. 310)

 

노년세대와 장년세대 그리고 청년세대의 생각의 차이가 우리네와 흡사하여 외국이건 우리나라건 거기서 거기구나 싶기도 했다. 이걸 안심해야 하는 건지 우울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기업들은 국가에 받은 혜택에 책임감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기업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이윤만을 좇아서 인건비가 싼 나라에 공장을 짓고, 프랑스 내에서는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 한국 대기업을 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대기업보다는 사회 공헌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설령 기업에서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규제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일단 프랑스 기업과 비교했을 때, 자국 내에서 더 많은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프랑스 대기업들은 애국심 없는 자본가 마은드에 가깝다. (p. 380)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본다는 것인 이렇게 큰 차이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인들은 뭐라고 할까? 그렇다고 편을 들어줄까? 아니라고 프랑스가 낫다고 반박을 할까? 좀 궁금해진다. ㅎ

예전에 내가 <반지의 제왕>을 읽었을 때, 거기에 나오는 호빗족을 보면서 꼭 프랑스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자기 마을에만 머물로, 가 봤던 곳에만 가려는 습성이 정말 닮았다. 게다가 뭔가 열심히 하지 않고 즐겁게 먹고 마시는 모습까지 더하면 딱 전통적인 프랑스 사람이다. (p. 397)

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한다. 북유럽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엇는데, 프랑스 인이 자기네 나라사람들을 호빗족 같다고 말하니까 신선했다. 일단 체격차이가 너무 나서 ㅎㅎ 프랑스에 대한 정말 새로운 감흥이었다.

유럽의 역사는 굉장히 얼키고 설켜 있어서 국가별 역사로 떼어 놓기가 어렵다. 프랑스의 역사라고 따로 떼어 배우기 보다는 유럽의 세계사가 곧 프랑스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유럽의 역사에서 민족과 국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워낙 섞여서... 지금의 국경은 2차대전 이후 정해진 것이다. 그 이전에 유럽은 국가단위 보다는 여전히 마을단위 공동체단위의 삶을 영위하는데 익숙하던 곳이었다. 이 책에서 프랑스 에 대한 곳곳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마을단위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점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수도 파리 중심의 나라 프랑스, 정치경제적 위기 속 청년세대의 고민, 교육제도의 불합리 속에 엘리트층의 세습 등은 우리네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유럽같지 않고 그냥 가까이 있는 나라처럼 느껴졌다. 비슷하다는 느낌은 바로 호감으로 발전하여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나중에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훨씬 친근한 마음으로 프랑스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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