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정치를 꼭 알아야 하나요? -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미리암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과서 밖 생생한 정치 이야기
미리암 르보 달론 지음, 이정은 옮김 / 글담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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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미리암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과서 밖 생생한 정치 이야기

학교생활, 배우고 가르치는 일, 친구 관계, 직업찾기... 청소년의 삶 모든 게 정치예요!

교과서 속 주요 정치 개념을 대화로 쉽게 풀어낸 청소년 교양서 (표지 中)

 

제목만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청소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 하면서 어른들이 하듯 욕부터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물 책을 보고 나면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이 책은 시집크기의 작고 얇은 책이다. 즉, 책 사이즈 부담없고, 대화체로 씌여있어서 읽기에 부담없고, 아는체 하기 딱 좋은 핵심들만 뽑아 놓은 책이라 청소년의 지적 교양 수준을 은근히 올려 줄 수 있는 책이다 보니 이 정도쯤이야 하며 손에 잡을 법한 책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와 비견될 만큼 유명한 여성 정치철학자 라고 한다. 한나 아렌트는 죽는 날까지 현실정치에 치열한 목소리를 냈는데, 이분은 그 뒷 세대라서 그런지 2006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책을 종종 펴내고 계신다고 한다. 이 책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큰손녀와의 대화에 힘입어 기본 틀을 잡게 된 책인 듯 하다. 아는 것 많고 친절한 할머니에게 찬찬이 설명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게 되는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치에 대해 말해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동시에 정치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만 해요. 정치가들은 '부패'했고 시스템 안에서 기계적으로 일할 뿐 사람들의 삶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요.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고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왜 정치를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하죠? 차라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우리 삶만 챙기며 사는 것이 낫지 않나요? (p. 15)

본문 1장 첫번째 질문부터 그야말로 뼈때리는 질문이다. 청소년들이 혹시나 하며 책을 펼쳤는데 역시나 하며 책을 덮지 않도록 첫번째 질문부터 훅 들어온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어른들도 언론에서도 항상 욕만 퍼붓는 정치에 대해, 청소년들은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왠지 피곤하고 지치는 느낌이 드는데, 어른도 아닌 청소년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첫번째 질문에 관심이 간다면 이 책은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다. ㅎㅎ

우리는 함께 살잖아요. 또한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동등하기 때문에 함께 행동해요. 이런 게 정치라면 어째서 대장이 필요하지요? 왜 그 사람들한테 복종해야 하지요? 누가 그 사람들한테 명령할 권리를 주지요? 그 사람들의 권력은 어디까지인 거예요? (p. 24)

직접민주주의라 불리는 고대그리스에서 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은 간접민주주의라 불리는 현대의 민주주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정치와 정치가를 구분할 수 있게 하고, 정치가가 절대권력자가 아님을 이해하도록 해준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어른들도 종종 잊어버리는 듯 하다. 그들이 절대권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권력은 사물이 아니라 관계란다. (p. 31)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렇게 말했단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종속 관계가 아니다" 라고 말이야. 권력은 서로가 합의한 방식으로 함께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해. 어느 한 사람만의 권력이 아니라 '공동'의 권력이지. 누군가가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거나 어떤 사람이 권력을 쥐거나 또는 행사한다고 말할 때, 그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이름으로 행동할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뜻해. 이런 맥락에서 보면 권력에 대한 정의는 종속적이지 않고 수평적이지. 즉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유애, 관계를 말하는 거야. (p. 36)

그런데 우리는 왜 나눔의 뜻을 잊어버리고 종속 관계로만 권력을 떠올리게 된 걸까요? (p. 39)

 

작고 얇다고,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와 할머니의 대화라고 얕고 어설픈 지식을 알려줄 것이라는 걱정은 넣어두자. 고대의 역사와 근대의 철학까지 시의적절하면서도 해박하게 요점만 간단히 설명해 준다. 멋진 할머니시다. 중간중간 손녀의 질문들은 한결같이 날카롭고 예리하다.

더 이상 우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세상은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무한한 세계로 바뀌었고, 인간은 과거의 기준을 잃어버렸어. 고대 그리스인이 살던 예전 세상은 사라졌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세계가 온 거야. 자연히 인간도 더 이상 중심이 아닌 자연 질서의 한 위치로 편입되면서 이제 정치적 생물로 생각되지 않았어.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도시국가는 더 이상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게 되었지. 결국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연합할 수밖에 없는 개인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어. (p. 50)

정치는 인간의 역사속에 생겨났다. 정치라는 말도 개념도 고대에서 생겨났다고 하지만, 기원후부터 중세라 불리는 시기에는 의미가 없어진 말이었다. 왕정과 신정이 권력의 중심이었을 때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계급과 종교관련된 예민한 부분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짧고 굵게 사회과학적으로 정치개념의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이 청소년들이 읽기엔 오히려 명료해 보여서 좋았다.

왜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처럼 권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권위라는 말을 쓰지요? (p. 73)

그랬나? 사법부는 권력이라 하지 않고 권위라고 썼던가? 지금 우리나라는 사법부가 휘두르는 권력문제로 난리중인데;;;

민주주의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에 맞춰서 조금씩 달라진단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방식,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커다란 원칙에 더욱 잘 들어맞고 적합한 행동과 실천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단다. (p. 92)

모든 제도는 항상 당대의 현실에 맞게 변하기 마련이다. 정치도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변화해 왔다. 지금의 민주주의 현실은 어떤지, 어른과 청소년의 생각의 간극이 얼만큼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날 민주주의 지도자는 아주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 있단다. 옛날 지도차처럼 신권을 부여받은 존재도 아니고, 개인숭배의 대상이 되는 독재자나 전체주의의 우두머리도 아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을 결집할 만한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하거든. (p. 102)

읽을수록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이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대목이 많다. 오늘날 민주주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은 어떠해야 할까? 평범하면 뽑히지 않거나 뽑혀도 일반인과 뭐다르냐고 욕할테고, 카리스마가 잘못 넘치면 오만하고 독불장군같다 욕할테고, 유순하고 평화로와 보이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우유부단하다고 욕할텐데;;;

민주주의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이 유지되려면 시민이 끊임없이 활동해야 해. 민주주의는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을 요구한단다. (p. 123)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 중 하나가, 시민들이 현재 이루어지는 정치에 낙담하고 실망해서 아무 약속이나 늘어놓는 선동가 같은 사람에게 아예 공동의 일을 맡겨 버리는 거야. 사람은 위기나 변화에 놓이면 주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그 사람만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거든. (p. 127)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시민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데 너무나 자연스레 잊고 사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다.

교육은 단지 지식만 전달하는 일이 아니란다. 시민의 자질을 구축해 주지.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항상 다시 시작하는 것,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민도 그 일을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돼. 이건 엄청난 에너지와 끈기를 요구하긴 하지만, 기운 빠지는 일은 전혀 아니란다! (p. 133)

이 책은 미래의 시민을 위한 책이다. 지금의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고 지금의 정치에 불만이 많다면 더더욱 미래에는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 가야 할 텐데, 그 미래는 지금의 청소년이 만들어갈 시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이 알아야할 최소한의 하지만 진지하게 정치상식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미래시민들에게 우리는 한수 배워야 할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기를 몹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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