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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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세상에 착한 일진이 어디 있어요? 일진이면 일진이고, 좋은 애면 좋은 애지"

왕따였던 어른들이 전하는 '그날 거기' 그리고 '지금 여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표지 中)

 

귀여운 표지그림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감을 가진 이 예쁜 책의 제목은 '나의 가해자들에게' 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으로 가슴에 꽂히는 이 제목이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었다. 표지만 한참을 쳐다보다가 책장을 넘겼고 책장을 넘긴 순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이 책은 '씨리얼' 이라는 유투브 영상 콘텐츠 제작팀에서 기획하여 올린 인터뷰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한된 영상 속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인터뷰이 들의 내용을 가감없이 모두 실었다고 한다.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는 책속에서 그대로 글자가 아닌 소리가 되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진솔한 그 말들이 한마디한마디 마음에 닿았다. 옆에 있었다면 손을 잡아주고 등을 어루만져주고 눈을 맞춰주고 싶었다.

학창시절 왕따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아직도 그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학생들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한때 자기 자신이 너무 싫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당당하며 용기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p. 7)

영상 속에서 실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백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또 상처가 되는 댓들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감과 응원의 말을 했고, 특히나 현재 학생들이 단 댓글은, 지금 현재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댓글을 단 학생들의 말은 더 묵직한 아픔을 주었지만, 용기낸 어른들의 인터뷰를 보며 모두가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여전히 버겁지만 스스로의 용기는 누구보다 자기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는 잠시 책을 덮고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린 나'의 등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며 "고생했어. 버텨 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건네길 바란다. 그게 바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어릴 적 나를 넘치게 사랑해 줄 차례다. (p. 8)

아직 그때의 자신을 넘치게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그들의 용기에 정말 힘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왜 하필 왕따를 다뤘어?"

이 인터뷰집은 그 어려운 말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꺼내기로 용기를 낸 출현자들의 이야기다.

출연자 10명을 포함한 설문조사 402명의 응답자 중 96퍼센트가 그때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소외를 경험한 이들 대부분이 무너졌던 존엄성이 회복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와 함께. 그렇다면 우리는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는 그래서 시작됐다.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우리와 같은 일을 아무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가해자가 학교 폭력을 멈추길 바랐다. 방관자들이 최소한 옳지 않은 것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했다. 만약 둘 다 불가능하다면 손이라도 내밀고 싶었다. 지금도 교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혹은 화장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친구들에게, 우리가 여기 함께 모여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연대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p. 12~15)

 

인터뷰를 진행한 프로젝트 기획자의 설명을 읽으며, 책을 접하기 전 유투브를 잘 안보는 나로서는 몰랐던 영상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세상은 참 많이 변했구나를 느끼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영상이 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완전해질 수 있는 시대에 책만 보는 것도 영상만 보는 것도 다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20분여의 동상이 불러낸 큰 호응이 이렇게 책으로 나올 수 있는 시대인 것은 그래도 무척 다행인것 아닐까.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여자반, 남자반, 방과후.

여자반에서는 여학생들이었던 어른들의 경험담이, 남자반에서는 남학생들이었던 어른들의 경험담이, 방과후에는 영상이 올라가고 난 후의 후기가 이야기 된다. 책을 다 읽고 영상을 찾아서 살펴보았다. 마음이 참.... 복잡했다...

"제일 듣기 싫은 게 "어릴 때 일인데, 뭐. 장난이었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 이거랑 "그때는 상황상 어쩔 수가 없었어" (p. 53)

흔한 말들이 주는 상처 속에 흔한 사과의 말은 한번도 없었다. '미안하다' 는 단 네 글자의 말...

그래도 아직 힘든 게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때 눈물부터 나는 거예요. 목소리도 떨리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아, 사람들이 나한테 너무 관심을 갖진 않을까, 야유를 하진 않을까, 이게 참 두려워요. (p. 79)

이 책은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학교폭력 뿐만이 아니라, 약자였을때 당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폭력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 읽으면 여기저기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솔직히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 스스로가 정답은 알 것 같아요. 단지 환경과 상황과 남들의 시건이 문제여서 그렇지, 분명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고 하는, 본인 스스로 정한 답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면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처는 일단 생기면 오래가니까 본인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꿈이 아니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괜찮으니까 둘 중 하나는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p. 217)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돼요. 학교 안 다닌다고 안 죽어요. 이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도망간다고 해서 도망가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하면 돼요. 나만 살면 돼요. ...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피할 수 있다면 피했으면 좋겠어요. 꼭 맞서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고 문제 있는 사람이거나 약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냥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일 뿐이죠. (p. 220)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볼 일이다. 법을 어긴다거나 남을 해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일단 나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가해자들도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요. 내 인생 이만큼 미치게 괴롭혔으면 됐지... 권선징악이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주하겠죠. 이제 누굴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에 지쳤어요. 그럴수록 나 자신만 더 힘들어지고 피폐해져서 그만뒀어요. 잘살든 말든 관심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오래 걸렸죠. 오로지 '나'에 집중하며 살아가니 가능해지더라고요. 즐거운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늘려 가니 나를 찾게 되고 채울 수 있게 됐어요. (p. 257)

심리서나 힐링서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조언들을 한다. 가해자를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였던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용서까지는 할 수 없어도 가해자들을 지워내는 것 정도는 필요하다. 쓰레기봉투를 끌어안고 냄새나냄새나 하면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쓰레기봉투를 버려야 한다. 일단 이것만 해도 숨통이 트이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학교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친구가 몇명 안된다해도 적어도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당시에는 옆에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더 꼼꼼이 기억을 해보니 나는 본적이 있었다. 중학교때, 쉬는 시간마다 반에서 늘 혼자 앉아 있던 아이를, 학교에서 단체버스 타고 놀러갈 때마다 옆에 앉기 꺼려하던 아이를, 어느날 학교에 안왔는데 누구도 그 아이가 왜 학교를 그만둔건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을... 소문만 무성할뿐 직접 눈으로 학교폭력을 본적도 없고 왕따를 시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는데... 나는 방관자였던 걸까? ... 그저 별다르게 기억할만한 큰일한번 없이 소박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주변에도 있었던 걸까? 피해자들이? 몰랐다고 해도 미안하고 알았다고 해도 미안한 일...

내가 자라던 때는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력이 자연스럽던 시대였다. 학생들 간의 폭력은 차치하고, 대걸레자루를 휘두르는 선생님들이 당연했고, 검문에 아무나 잡아가는 공권력이 당연했으며, 상명하복의 폭력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그렇게 학교폭력이 부각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온통 폭력의 시대였고 그것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적어도 폭력이 당연한 시대는 아니다. 학교폭력이 공개되면 강력한 처벌도 가능한 시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이건 현재이건 상처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상처는 똑같은 상처로 만들면 안된다는 것 아닐까? 상처가 없는 미래를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상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예방주사 혹은 처방약 정도는 만들어갈 수 있는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함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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