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참혹하고 추악하더라도 진실을 대면하는 것, 그것이 탐사 저널리스트의 일이다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지체된 정의를 불러내기 위해 지옥에서 천국을 상상하는 탐사 저널리스트의 이야기 (표지 中)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집 테이블은 정규방송만 나올뿐 유선티비나 케이블티비나 인터넷티비 같은 것이 아예 연결되어 있지 않다.

나는 기사를 자주 보지만 기자 이름을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뭔가 후속기사를 기다렸다가 찾아본다던가 까지는 하지 않고 언론사와 기사제목을 봐서 내용을 훌어보는 정도로 사회소식을 접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습관임을 이 책을 읽으며 반성했다.

책날개에 씌여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저자는

탐사 저널리스트, 중앙일보 탐사기획 에디터, JTBC 초대 보도국장을 거쳐 현재 탐사기획국장으로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 및 진행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본적이 없지만, 보았다 할지라도 책으로 다시 읽는 것은 영상을 보는 것과 또다른 느낌이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은

묻혀 있는 진실을 발굴하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짜맞추며, 공익 탐정으로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한 탐사 저널리스트의 분투기이며 성장기다. 세상은 무관심으로 파괴된다. 직접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참혹했고 그 곳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울고 있었다. 밝혀진 진실이 우리를 할퀴더라도 그 진실은 확인하지 않은 의혹보다는 값지다.

그랬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할퀴어지는 책이었다. 아픈 책이었고 슬픈 책이었다. 하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머리만 알았던 동물의 발끝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코끼리 코만 봤던 사람에게 코끼리 전신을 그리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렇게 사회의 겉모습만 봐왔던 내게 속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면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표지에 써있듯이 책속엔 36건의 탐사보도의 내용이 실려있다. 그 내용들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헤드라인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조두순 사건,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 버닝썬, 최순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루게릭병, 빈곤의 마을 난곡, 이영학, 황우석, 지존파, 5.18, 간첩사건, 평양, 북한식당 종업원 단체 탈북사건, KAL기 폭파사건, 방사능 피폭, 메르스, UFO, 미인도 진위논란, 화성연쇄살인, 전두환, 인혁당 사건 까지 제목을 보는 순간 하나같이 흡 숨이 막히는 사건들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건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만 알고 있던 나는,

기사가 뜨고 폭풍같은 반응이 들끓던 그 정점까지의 소식만 기억하는 나는,

그 후일담에 대해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다.

정점에서 뚝 끊긴 소식이후 오히려 처음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눈물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해결이 되었건 되지않았건 지속적인 관심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깨닫게 되서 죄송스럽고 죄송스러웠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탄생 과정에는 잔혹한 동화가 숨어 있다. 1998년 가을, 마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

직장을 잃고 끼니 걱정을 하던 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 당연히 아버지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바로 이어, 가난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이른바 '손가락 법'을 만든다. 이것이 지금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이 사건을 보면서 '정책의 창' 모델이 생각났다. 사회 문제 흐름과 정치 흐름이 결정적 이벤트의 출현으로 하나로 합쳐질 때 정책의 창窓이 열린다는 것이다. 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문제 흐름과, 김대중 정부 출현이라는 정치 흐름이 '손가락 절단 자작극'이라는 이벤트를 계기로 결합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탄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p. 17)

 

책의 첫장 첫줄부터 당혹스러웠다.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달해온 복지제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런 잔혹동화가 계기였다니...

뒤이어 나오는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은 더 가슴아프다. 어린아이가 동네에서 황산테러를 당했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끔찍했는데... 6살 소년의 몸 겉에만 뿌린 것이 아니라 고개를 젖혀 목안으로 붓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년은 죽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며, 부모는 범인을 지목했지만,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조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7월 31일자로 살인 공소시효 폐지법이 발효됐지만, 이 사건은 법 발효 20여일 전이라 재소사 할 수 있는 사건에 포함되지 못했다. 태완이의 죽음은 그렇게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탐사 보도의 중요 요소 중 하나는 '독자적인 시각'이다. 출입처가 있는 기자들은 출입처의 시각에 매몰되기 쉽다. 굴을 파고 들어가 출입처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받아쓰려는 습성이다. 반면 출입처에 얾매이지 않는 탐사 보도는 그 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각으로 진시리에 접근해야 한다. 일반 보도 기자의 타성에서 벗어나라고 탐사 보도가 있는 것 아닌가. (p. 38)

저자는 스스로 출입처 조직 내부의 프레임에 빠졌던 과거를 털어 놓으며 기자의 본분에 대해, 탐사 보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깨닫고 읽는이도 다시 깨닫게 한다. 출입처 조직 구성원도 아닌 출입기자가 이러할 진대, 조직안에서 끊임없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임은정 검사의 인터뷰는 일제치하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외롭고 위험해 보였고, 안타깝고 아쉬우며 결국 화가 났다....

"검찰은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기관이지 법을 적용받는 기관이 아니에요. 그 법을 집행할 의지가 있는 실질적으로 지휘권을 가진 분들이 내부에서 갑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스스로 자제해야 하거나 또 다른 갑을 만들어야 하는데, 또 다른 갑은 없고 최상의 갑이 그 짓을 하는 거니까 브레이크가 없어요" (p. 41)

상부의 지시를 거스르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임 검사는 인사와 징계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긴 한데, 함께 행동해주지 않으면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적어도 사건이 됐을 때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혼자 죽어요. 이것이 검찰의 현실이기도 해요." (p. 43)

 

최근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검찰 내부 갑들에게는들리지 않는가 보다.

미국에서 뭔가 배워오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검찰 제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미국 검찰은 3개조직으로 분권되어 있다. 그래서 내부의 경쟁적 인식과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면에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한국은 거의 완벽한 피라미드 체제다. 제일 위의 한명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는 조직이자 법을 휘두르는 조직이다. 누가 반항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검찰과 정치권이 손잡으면 그야말로 국민누구도 아무도 모르게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지껏 그래왔기에 한국의 법정의와 정치현실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임은정 검사가 피해자로 혼자 죽어가면 안될 텐데... 조직내에서 임검사의 옆에 지지자가 목격자가 동행해주어야 할텐데... 아직은 몹시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인터뷰말미의 임검사의 말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는 임검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는 듯 하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더이상 잠든 척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검찰이 이제 비로소 잠이 깬 척하면서 눈을 뜨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요."

임 검사는 자신이 몸담은 검찰 조직과 언제까지 대결을 할까.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검찰을 나올 때까지 계속되겠죠" (p. 44)

 

임검사가 검찰조직내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정년퇴임할때까지 무사히 잘 있어주기만이라도 응원해본다...

과학언론 전공으로 문학박사 과정을 밟을 때였다. 과학철학 과목을 수강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그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감별법을 제시했다. "반증할 수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칼 포퍼틑 마르크스주의를 사이비 과학이라고 진단했다. 마르크스주의가 들어맞는다는 사례는 무수하게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화 역시 과학이 아니다. (p. 200)

칼 포퍼의 과학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저 인용문장만 같고 칼포퍼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읽고는 왜 저 인용문을 말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뒤에 황우석 박사가 신화로 불리던 사건이 전개되고 그 뒤는 모두가 알다시피 사기극이었다. 당시 MBC 의 PD수첩에서 황우석 신화에 흠집을 내려 했을때 전국민적 분노가 방송국에 쏟아졌다. 하지만 제보가 이어졌고 결국 용기는 신화를 깨트렸다. 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무지적 맹목성이 정치적인 과학자의 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개략적이나마 사건들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었는데 딱 하나 UFO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이 멀리서 본것도 아니고 공군전투기 조종사가 추적까지 해서 실물 UFO를 보았고 기록까지 남아있는 사건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미국 CIA 창설이 미국에 UFO가 추락한 사건에 대한 은폐뒤 2개월 후에 창설됐다는 것도, 이래서 FBI 와 별도 조직으로 있는 건가 싶으면서 신선했다.

오래된 과거의 팩트를 수집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자료가 적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당대의 권력자는 수치스러운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한다. 입을 막기도 한다. 우리는 지워지거나 더럽혀진 자료나 증언과 싸워야 한다.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해야 한다. 어려운 작업이라도 결국 탐사 언론인이 휘슬을 불어야 하는 이유는 명맥하다. 잊힌 역사는 결국 더 뒤틀려지니까. (p. 424)

읽으면서 탐사 보도는 일반 보도와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슈메이커 같은 기사보다 장기간의 조사끝에 발표되는 후속기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 겠구나 를 절실히 느꼈다. 탐사 보도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세상에 퍼지지 않으면 그또한 묻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묻히는 역사는 우리 모두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를 뒤틀게 만드는 행동이 될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뒤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과거만 보고 살자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가 현재를 좀먹고 미래를 파괴하는 것은 막자는 말이다. 제대로 알기 위해 기자도 독자도 모두 끊임없아 알아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알 수 있는 시대다. 적어도 알고도 모른체 하지는 말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제대로 고쳐알아가며 살아야 겠다.

표지에는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라고 씌여 있지만, 너무 늦더라도 정의를 밝혀내고 알게 된다면 정의는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지 않도록 각성하자는 주의를 주는 멘트였겠지만, 그래도 마음 아프다. 저 멘트를 피해자들이 한다면 정말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피해자들도 제보자들도 용기를 내어 인터뷰하고 끝까지 싸우고 있는 이유는 너무 늦어도 정의를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잊지 않고 함께 응원해주는 우리가 되기를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