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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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제임스 그리고 아버지...

오래된 사진과 일기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야기

잊힌 전쟁을 살아낸 이들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 (표지 中)

 

이 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픽션처럼 읽히는 논픽션인데... 일기도 아니고 다큐도 아닌데...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이 느껴지는 이 책은... 진심이라고 해야할까...

저자는 함경도에 고향을 둔 실향민 아버지 의 딸이고

1987년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를 대학교2학년일때 경험한 세대이며

북한교육사를 연구한 북한전문가로

현재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영국가정의 한국인 며느리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됐을때인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을 영국에서 티비뉴스로 본 저자는 마음이 몹시 들떴었다. 곧 정전이 선언되고 통일준비를 할 것만 같아서 잔치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고, 친정아버지의 생애가 유언이 떠올라 마음이 분주해졌다. 저자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잊혀진 6.25전쟁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사에 묻힌 개인사의 고난을 묘한 울림으로 전하고 있었다.

2018년 2월 26일, 아버지는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음이다. 그는 1950년 12월에 어머니와 남동생을 집에 두고 고향을 떠났다. 열다섯살 난 소년은 부산항에서 부두노동을 하면서 전쟁을 넘겼다. 가난한 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 모질게 공부했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 훗날 대학교수가 되었다.

겨우 2년전에 눈치를 챘다. 그에게 무슨무슨 교회에서, 무슨무슨 단체에서 보내는 카톡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린다는 것을. 알림음이 나고 몇초 후에는 늘 대한민국을 빨갱이들로부터 구하자는 날선 웅변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마다 슬그머니 방문을 당았다.

아버지가 의식없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을 열어봤다. 그에게 지난 몇년 간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던 것이 그들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이 그들의 생경한 목소리로 채워진 것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 그런데 그들에게 화가 나는 건지 나에게 화가 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생전에 남북이산가족찾기 신청을 하지 않았다. ... 혹시라고 남쪽에 형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월남자의 가족'으로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해서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 너무 오래 걸렸다. 70년 세월, 그건 정말 한평생이다. 많은 이들이 그 시간을 다 기다리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누가 '열일하는 대통령'이라고 썼다. 나도 내 몫의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게 뭘까?

저 멀리 있는 멋진 일을 꿈꾸면서 정작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상의 실천은 소홀히 하는 것, 익숙한 함정이다. 그래,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군인'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게 '한국' '전쟁' '영국' 을 조합했을 때 가장 쉽게 떠오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노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이 종전을 염원하는 제 나름의 의식이라고 믿었습니다.

(p. 20, 21, 22, 23, 24, 28, 29)

 

실향민 아버지의 죽음과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의 만남은 그렇게 저자에게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자신의 몫을 찾게 했고, 그렇게 찾아다닌 저자의 발자취는 이 한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저자는 템즈강변에 '런던 한국전쟁참전기념비'를 찾아가 본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희생에 감사한다는 문구를 보자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 이런 말들 때문입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호라는 것은 지킨다는 뜻인데, 무엇을 지키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1950년 대한민국에, 수호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이 젊은이들의 희생이 무용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참전군인들에게 빚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만약 기념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면 제 마음속의 저항은 훨씬 적었을 것 같습니다. "영국군 장병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p. 39, 40)

 

저자가 처음 만난 영국군 참전군인은 짐 그룬디씨이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고 죽으면 부산의 유엔공원에 묻히고 싶다는 노병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시신수습팀으로 6.25를 겪었다.

세계1,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는 영국에서도 의무징집을 하던 때였다. 영국 청년들은 열여덟살이 지나면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한국전쟁에 파병된 장병 대부분은 의무징집병이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국내의무복무가 아닌 해외파병의 급여가 높았던데다, 먼나라 전쟁터에 대한 모험적 상상력을 지닌 많은 청년들이 한국전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영국내 어느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한국전쟁은 보도되지 않았고, 가족들조차 그 전쟁에 대해 잘 몰랐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물었다. "한동안 안 보이던데 어디 갔었어?"

"한국에 있었어"

"아, 그랬구나"

그것뿐이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심이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영국은 전사자를 본국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미국과 필리핀은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갔는데 영국군 전사자는 모두 부산에 묻혔다. (p. 58, 59)

 

짐 그루디씨가 힘겹게 수습했던 영국군 병사들은 모두 부산의 유엔공원에 묻혔고, 본인도 그곳에 묻히고 싶어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한국전쟁은 한발짝만 떨어져 바라봐도 이렇게 잊혀진 전쟁이었다. 당연한 현실일텐데도 기분이 묘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병사에 대한 수소문을 하던 중 저자의 딸이 다니는 학교의 졸업생중에도 참전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그렇게 참전군인 '마이클 호크리지' 에 대한 자료를 모으게 되고, 짐 그루디씨가 전사자의 사진을 모아 유엔기념공원에 얼굴없이 묻힌 묘지에 사진을 붙이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이클의 사진을 전해주게 된다.

짐그루디씨는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시신을 수습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기쁜 것처럼, 우리에겐 시신을 수습하는 게 '빅토리'였습니다. 그건 전쟁터에 시신을 버려둔 북한군에 대한 우리의 빅토리였고,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를 위한 빅토리였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한 것에 대한 빅토리였습니다" (p. 98)

저자는 검색한 신문기사에서 알게된, 한영수교 130주년 및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기념한 한국전 참전용사 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데이비드 해먼드씨를 만난다.

"저는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잊힌 전쟁'이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예, 그럼요!"

"여기서는 잊힌 전쟁이에요. 한국정부는 영국군 참전 군인을 한국으로 초대하고 기억해주는데, 정작 군인들을 전쟁터로 보낸 영국정부는 이를 잊은 것 같아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 손자도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싸웠다고 하면, 한국전쟁이 뭐냐고 물어요. 그거 제2차 세계대전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1,2차 대전에 대해서만 가르쳐요. 그건 아주 자세히 가르치고 그 주제로 에세이도 엄청 많이 쓰게 하지요. 손자는 얼마 전에 프랑스와 벨기에에 현장학습도 다녀왔어요. 전적지도 가고 영국 장병들이 묻힌 묘지에 참배도 하고요. 한국전쟁은 그후에 일어난 일인데도 배우지 않습니다." (p. 112)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전쟁은 왜 시작된 겁니까? 그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습니까?" (p. 115)

 

영국군 참전용사들은 귀국해서 그 어떤 환영인사도 받지 못했다. 그 어떤 특별대우도 받지 못했다. 그저 직업군인으로 어디 먼 나라 다녀온것 뿐이었다. 그렇게 한국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영국인 노병이 한국인에게 '그런데 그 전쟁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냐고' 물으면,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외국인으로서 나라의 명령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6.25는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저자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피난시절 일기장을 읽으며 추억하는 아버지는 어린 소년이었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개인사에 미친 영향은 죽음이후 남겨진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큰 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진정한 추모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영국에서 11월11일은 추모일 입니다. 영연방국가들과 미국, 프랑스 등 다른 많은 나라도 이날을 기념합니다. 우리로 치면 현충일입니다. 이날이 추모일이 된 것은 1918년 11월11일11시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년 이 시각이 되면 2분간 묵념을 합니다. (p. 175)

이곳에서는 '전쟁'이라고 하면 제1차 세계대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100년도 전에 일어난 그 오래된 전쟁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기억하는지, 2차대전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1차대전인지... 그건 1차 대전이 사람들에게 준 충격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현대식 무기 개발로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량살상이 벌어진 전쟁, 그전까지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전쟁이 끔찍한 참호 속의 지옥임을 알게 된 전쟁, 정규군으로 시작했으나 중간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모든 젊은이가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전쟁, 국가간동맹 때문에 뛰어들어서 별다른 명분도 없었던 전쟁, 그래서 1차대전이야말로 전쟁의 비극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일 거라고요.

저는 처음에 '추모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현충일에는 '충'자가 들어 있어서인지 저는 묵념을 할 때도 자꾸 국가에 대한 충성이 떠올랐는데, '추모'라는 말에는 그저 기억하는 행위만 있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추모하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 대답은 다 달랐고, 가장 많은 답은 그저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문이었습니다. 무얼 기억할지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인 것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정답 같은 것을 찾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지난해부터 저는 포피를 달면서 한국전쟁 참전군인을 기억합니다. 청년 마이클을 추모하고, 그룬디 씨와 해먼드 씨를 생각합니다. 그 끝에 부두에서 일하는 소년도 따라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p. 177, 178)

 

봄에 영국에서 시작한 저자의 설레임은 여름에 청년병사 마이클을 찾고 가을에 아버지의 일기를 거쳐 겨울에 한국에서의 광화문 촛불집회 참여 와 부산의 유엔기념공원 참배로 잔잔이 가라앉는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 전쟁에 대한 기억찾기 여정은 우리에게 6.25는 어떤 전쟁이었는지 다시 되묻게 한다. 종전과 통일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서 지나간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11월11일이 막대과자의 날이 아니라 어디선가는 추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맨체스터에 있는 제국전쟁박물관에 가려고 생각한 것은 '우리가 잊지 않도록?' 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특별전시를 보고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이날 본 전시는 '적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에 맞서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가 아니라 이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줬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한국전쟁을 이렇게 볼 때가 오겠죠.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적의 잔혹함이 아니라 전쟁의 가혹함을 이야기할 날이,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던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이야기할 날이,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산 평범한 사람들' 의 이야기를 할 날이요. (p. 200,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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