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너머의 통일 -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 이야기
이대희.이재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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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남북통일에 이를 수 있고, 통일 후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30주년을 맞은 동서독 통일 당사자들과 통일전문가, 북한이탈주민들이 전하는 생생한 통일 이야기를 들어본다.

-남북한에 전하는 동사독 통일 이야기- (표지 中)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종전이 아니고 휴전중인 상태로 70년이 다 되어간다.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든 다시 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에 전쟁발발위기라는 이슈는 늘 정치적 뜨거운 감자로 식상하게 존재해 왔다.

본격적인 통일무드가 형성되나 싶더니 한국의 통일문제는 강국들의 계륵이 되어 정체모드 중이다.

통일을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통일 해야지 라고 답하면서 떠오르는 나라는 독일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분단됐던 나라 그러나 분단 30년만에 통일된 나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베를린 장벽

남북한 통일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통일을 흡수통일이리라 당연히 지레짐작하고 드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군식구가 더 생기는 듯한 느낌이라서.

하지만 독일과 한국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통일은 막연한 환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세계2차대전 후 휘몰아친 냉전시기 동독과 서독, 북한과 남한 은 분단되었다.

그러나 동독과 서독은 분단이후에도 교류가 끊이지 않았고 서로의 티비방송도 보고 친척들 간의 왕래도 가능했다. 정치체제가 달랐을뿐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노동해야 한다는 이념아래 일당독재였으나 일인독재는 아니었던 동독은 남녀가 평등하게 노동했고 노동의 대가또한 평등했으며 육아는 국가에서 책임졌고 공동체문화가 확산되었다. 자본주의 서독에서는 돈과 자유가 넘쳐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했으며 여성은 집과 육아에 묶였으나 경제적 삶이 빠르게 윤택해졌다.

무엇보다 동독과 서독은 서로간에 내전없이 정치적으로 분단이 결정되었고 그래서 시멘트벽하나 세우는 것으로 분단이 유지되었으며 오랜역사를 지난 종교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더이상 참혹할 수 없는 내전 이후 강국들의 결정에 따라 분단되었고 지뢰밭과 철조망이 켜켜이 둘러쳐진 38선으로 분단이 유지되었다.

남북한의 교류는 있을 수 없었고 서로의 고립속에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렇게 분단의 세월은 독일분단시기의 2배를 넘어섰다.

같은 언어을 쓰는 민족이므로 통일만 되면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합쳐질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임을 독일의 통일을 살펴보며 알게 되었다.

남북한보다 평화적 관계였고 교류도 있었던 독일의 통일도 아직 진행중이었다. 하물며 우리의 통일은 더 어려움이 있으면 있지 쉬울리가 없다. 서독중심의 흡수통일은 통일의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알게된 동독과 북한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시민의 민주화 운동 이었다.

흔히 한국에서는 동서독 통일을 '독일 통일'로 표기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잘못됐다. 독일에서 동서독 통일은 '재통일' 로 표기한다. '독일 통일'은 프로이센 제국에 의한 1871년의 독일 제국 성립을 뜻한다. 독일 재통일을 시간순으로 정리할 때, 서독의 동방 정책만큼 중요하게 거론해야 할 사건이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다. 동방 정책이 행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움직이며, 이념 대결의 승리자였던 서독이 주도한 정책인 데 반해 동독 민주화 운동은 인민 스스로 민주주의와 자유 여행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운동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한국이 반독재 투쟁으로 민주 정권을 쟁취하던 때에 동독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p. 23)

민주화 운동은 실제 결실도 낳았다. SED(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 동독 집권당)은 독재를 포기하고 자유선거를 받아들이는 한편, 민주화 운동 대표자들과 함께 새동독 헌법 개정 논의를 위한 시민의회가구 창설안도 받아들였다.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민주 국가 동독이 만들어질 역사적 수간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1990년 5월 동서 마르크화 통합이 이뤄짐에 따라 사실상 동서독은 하나가 되고, '민주 동독'을 꿈꾸던 이들은 도둑처럼 찾아온 통일 독일에 적응해야만 했다. (p. 24)

 

동독은 통일을 당했다. 동독이 비록 독재 체제를 유지한 국가이긴 했으나, 인민이 인민으로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에 비해 인민권이 강하게 살아있던 사회였다. 그리고 스스로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평화적 민주화 운동을 하던 때에 정치적 결정이 통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이루어진 통일은 동독인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고 통일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주류층은 서독엘리트 들이고 동독인들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동독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통일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통일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른바 '제2의 시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특히 나이가 많은신 분은 본인이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에 동독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동독 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던' 사람도 재통일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적응 역시 쉽지 않았고요. 저는 그래서 동독 출신자는 '움직이지 않은 이주민' 이라고 생각합니다." (p. 65)

동독은 민주화 투쟁의 승리로 얻은 자발적 인민민주주의 체제의 성립을 코앞에 두고 서독에 흡수됐다. 이로 인해 동독은 '일 국가 이 체제' 식의 연방제 후 통일 이라는 절차를 밟지 못하고, 서독 체제를 일방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패배자가 됐다. 이 상황에서 기존 자기 체제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구 동독인의 열패감이 공동체 개념, 복지 체제 등에 대한 향수로 나타났다. (p. 107)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하는 통일, 한민족이니까 하는 통일 그런말들은 다 가면적이다. 세금의 대부분을 군비로 쓰는 분단국, 작은 땅덩리에서 자원조차 없는 분단국, 지리적 이용가치로 강국들에게 끊임없이 이용당하는 분단국 의 위치를 벗어나야 하기에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심화되는 세계자본주의시대에 경제적우위를 선점하는 방법은 이제 통일 뿐이기 때문에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통일의 구상은 구체적이고 장기적이어야 한다. 경제적 우위를 지녔다는 자만심으로 흡수통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같이 망하자는 것이고, 최대한 빨리 진행하자는 것은 후폭풍의 고난을 간과하는 것이다. 동독과 서독 그리로 하나된 독일의 현재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남북한의 통일은 세세히 계획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여야 한다.

대부분 인터뷰이에게 '당신은 자신을 동독인이라 생각하느냐, 독일인이라 생각하느냐, 유럽인이라 생각하느냐' 고 물었는데, 적잖은 인터뷰이가 자신을 '튀링엔 사람', '예나사람' 이라고들 답변했다. 국가를 정체성의 기본 단위로 생각한 아시아 사람인 필자들과 유럽인의 사고방식 차리를 이런 국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p. 157)

독일은 나치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 개념 자체를 경원하는 분위기가 짙다. 독일 행정 체계는 연방제다. 베를린 정체성, 드레스덴 정체성이 국가보다 앞선다. 더구나 독일은 유럽엽합의 거두다. 밀레니얼 세대는 유럽인 정체성 교육을 받는다. 국가주의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반대로, 남북한의 경우 일단 통일이 된다면 사회 통합이 독일보다 쉬울 수 있다. 남북한 사람 모두 국가주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입받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p. 192)

"한국 사람들은 흔히 통일을 이야기할 때 한반도 통일이 독일 재통일 과정과 흡사하리라 전제하는 듯합니다. 그건 오류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미 자본주의와하고 있는 북한이 나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룬 후에야 통일 프로세스가 시작될 겁니다. 북한이 한국과 비슷한 발전 과정(개발 독재)을 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은 텅 빈 공간이 아닙니다. 이미 재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p. 193)

북한의 내부 취약성, 곧 강고한 독재 체제를 역으로 보자면 오히려 남북 평화 공존이 더 쉬울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한 사람만 결심해도 대남 태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위원장의 결심이 실제 달라진 모습으로 구현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강력한 관료제의 힘이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 주는 불확실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처럼 바깥의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그들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p. 201)

북한 이탈 주민, 나아가 북한은 흔히 정치적 잣대로 양극단의 대접을 받는다. 한편에는 북한을 악마화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에게 북한 이탈 주민은 북한의 악마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다. 다른 한편에는 북한과 적극적인 화해를 염원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에게 당장 김정은 정권을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북한 이탈 주민은 논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저 한국에 들어온 이들을 조용히 지원하는 데 그들은 집중한다. 한편에선 정치적 도구로만, 다른 한편에선 일방적 시혜의 대상으로만 북한 이탈 주민을 소모한다. 일장적 타자화가 진행되는 현실에 북한 이탈 주민의 목소리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동독을 흡수한 통일 독일이 동독을 소모한 바로 그 구도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독일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 고스란히 예상되는 그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기회로 보고 북한 이탈 주민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북한 이탈 주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점검할 때다. (p. 225)

 

읽을 수록 독일과 한국은 너무 달랐다. 읽을 수록 통일은 정치적인 이슈만은 아니었다. 통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모두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어야 했다. 다만 그 선택을 하는 주체가 정치인들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어야 한다는 것은 버거운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깨달음이었다. 이 책에 담긴 독일인들의 목소리가 통일을 준비하는 이들의 귓가에 제대로 콕콕 박혔으면 좋겠다. 짧고 쉽게 읽히면서도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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