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다.

물론, 당신에게도."

모든 것을 뒤바꾸는 29초,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통화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주는 통쾌한 리벤지 스릴러 (띠지문구 中)

 

"내게 이름 하나만 주시오. 감쪽같이 사라지게 해주지, 이 세상에서 영원히."

하나의 번호, 한번의 통화, 그리고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단 29초의 시간

"어쩌면 이것도 마지막이 될 거야. 당신은 이제 죽은 목숨이니까." (뒷표지 中)

 

삭제하고 싶은 이름, 29초, 단 한번의 통화, 리벤지 스릴러, 감쪽같이 사라지게 해주지

이 모든 단어들이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upup 시켰다.

살면서 누구나 인생의 고비 한두번쯤은 다 겪는거 아닌가, 그때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싶은 이름 하나쯤 있게 마련 아닌가, 그런 순간 그런 이름을 없애준다니! 파우스트악마와의 거래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유혹아닌가? 소설을 읽으며 감쪽같이 없애버리는 대리만족 경험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우리네 속내 아니던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기대했다.

조건은 세 가지였다.

72시간 안에 이름 하나를 말해야 한다.

거절하면, 제안은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받아들이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선택을 번복할 수도 없다.

그녀는 이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에도 만난 적 없고, 오늘 밤이 지나면 다시는 만날 일 없는 이 남자를. 그녀에게 빚을 지고 말았다는, 이 강하고 위험한 남자를.

오로지 단 한 번의 거래, 평생 한 번뿐일 제안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거래,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 거의 확실한 거래.

악마와의 거래였다. (p. 11)

 

1부, 2부, 3부 로 구성된 이 소설의 첫 장을 연 이 페이지는 1부의 끝에가서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세라는 30대초반의 매력적인 대학강사이다. 8살 딸과 5살 아들이 있고, 남편은 몇달전 집을 나가서 다른여자와 살림을 차린 후 연락을 끊었다.

근처에 사는 친정아버지가 도와주시긴 하지만, 혼자 생계와 두 어린 자녀를 돌보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녀는 열심히 살았다. 정식교수가 되기 위해 안놀고안자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곧 계약직에서 정직이 될지말지 결정되는 심사날이 오고 있다.

그녀의 상관은 유명한 교수다. TV쇼도 진행하고 후원금도 거액을 받아오는 대학에서 떠받들어지는 스타교수다. 이름은 러블록

러블리한 이름의 러블록은 전혀 러블리하지 않은 이중인격 소유자다. 대외적으로는 온갖 멋진 역할을 다 소화하면서 자신이 점찍은 여직원과 단둘이 있을 때는 성희롱을 일삼고 성폭력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그 러블록이 노골적으로 세라에게 접근해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과시한다. 그녀의 경력과 직업유지를 지속시키느냐 끊어내느냐 를 한손에 움켜쥐고 그녀 또한 움켜쥐려 한다.

아슬아슬하게 상관을 피해왔지만 이제 더이상 피할 곳이 없어진 세라에게 우연히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후 어떤 제안이 온다. 단 한번의 통화만이 허락된 전화번호 하나.

"지금 말씀하시는 게..... 그러니까 그건...... 불법 아닌가요?"

"합법이냐, 불법이냐, 그건 누가 결정하는 거죠? 누가 그렇게 만드는 거죠? 난 지금 법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의를 말하는 겁니다. 당신을 위한 정의, 당신의 가족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정의 말입니다. 나는 내 빚을 갚을 생각입니다. 남자에게 명예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거니까." (p. 137)

 

이 작품은 스릴러 그것도 리벤지 스릴러 라고 표방하고 있다.

읽는 내내 스릴러적 묘사와 분위기 사건 진행 방식, 등장인물 등 거의 다 스릴러 적이긴 했다.

그런데 묘하게 고구마 백개를 먹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2부가 끝날때까지도;;;

한 번의 통화, 3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어쩌면 이 시간이 세라의 예전 삶과 새로운 삶을 나누는 순간이, 무죄에서 유죄로 옮겨가는 순간이 될지도 몰랐다. 세라의 삶이 탈선하여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질주하는 순간이. (p. 233)

어서 그 이름을 말해버려 세라!

속으로 얼마나 말했는지 모른다. 주저주저하고 망설이고 후회하고 자꾸자꾸 되돌아가는 세라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어서 복수해봐, 새로운 삶으로 질주해봐, 어서 말해 세라!

그리고

세라가 그 이름을 말했다.

그런데

그 뒤 세라는 더 힘들어진다.

자책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고민하고 혼자만의 번뇌로도 모자라 외부적인 상황은 더 나빠진다.

말도 못하게 무섭고 엄청나게 뭔가 있어보이던 갱단의 두목이 한 약속은, 29초의 통화는 어이없게 실패했다.

순간 이거 스릴러 아니고 블랙코디인건가? 싶었다.

3부에서 재등장한 러브록은 더 악랄해지고 세라는 더더 막다른 구석으로 몰린다.

477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470페이지까지 고구마는 쌓이고쌓이고쌓이다가 마지막 7페이지에 가서야 펑 터진다. 그제야 이 작품이 왜 리벤지 스릴러인지 깨닫게 된다.

너무 짧은 분량속에 몰아쳐서 결론이 나다 보니 다 읽고 나서도 지금 내가 뭘 읽은 건지 멍 해져서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봤더니, 소설의 앞 쪽부터 차근차근 깔려 있었다. 전혀 연결성 없어보이던 순간 들이 왜 있었는지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작가만을 탓하며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서 속으로 빨리 복수하라고 빨리 없애버리라고 속으로 채근하다가 모든 힌트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전혀 결과를 예상치 못한 소설은 처음인 듯 하다. 또 이렇게 착한 스릴러 소설은 정말 처음인듯 하다. 스릴러 소설을 이렇게 어리둥절 한참을 웃다가 마무리한 소설은 정말 처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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