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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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소크라테스부터 니체, 사르트르와 들뢰즈, 마르크스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19가지 철학적 통찰

일상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생각의 실마리들 (표지문구 中)

 

 

표지가 참 예쁘면서 멋있다.

RHK코리아 출판사의 책들은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은 표지가 일단 합격이었다. ㅎㅎ

이 책은 19장에 걸쳐 31명의 학자들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개략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이다.

한권으로 방대한 분야의 철학을 다루는 만큼 핵심포인트만 콕콕 집어놓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깊게 고민할 때 그 고민을 잘 살필 수 있는 거울, 해결할 수 있는 도구 같은 철학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p. 6)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철학책과 실용서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이다.

서양철학사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했지만, 중간중간 아무데나 읽어도 괜찮을 정도의 간략한 내용들로서, 해당 철학사상의 배경이나 깊이와 무관하게 어떤 철학자가 어떤 개념을 제시했었는지 정도의 파악으로 일상에서의 생각툴로 적용시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주위에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며 젊은이를 야단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없는가? 사실 그리스 시대에도 '사람은 다 제각각이라는 생각은 좋지 않아'라고 청소년들에게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른이 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p. 20)

한밤 중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면 술이 거하게 취한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잘 알아듣지도 못할 설교를 해대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소클테스 역시 청년들을 상대로 정의는 무엇인지, 선이라는 것은 어떤 건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질문을 쏟아내듯 물어보곤 했다. (p. 21)

 

서양철학의 시작은 대부분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한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이런 모습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좀 아닌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유명하지만 쓸데없이 참견하고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배우러 오는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한것이지 아무나 붙잡고 설교한 것은 아니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독약을 마신다. 민주정의 폭정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소크라테스를 본 플라톤은 정치가가 되려던 꿈을 접고 사상가가 된다. (p. 27)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말에 대한 에피소드는 가장 잘못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관련해서는 제자인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졌는데, 소크라테스가 모함을 받고 재판을 통해 독약을 선고받아 그것을 마시고 죽게 된것은 맞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다 라며 독약을 마신 것은 아니다. 자신이 처한 당시 아테네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하는 행동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삶의 모습을 고려했을때 가장 적당하다고 내린 행동이 도망가지 않고 독약을 스스로 마시기로 결정한 것이지 악법도 법이라고 악법을 인정해서 내린 행동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해당 책을 읽어보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읽어봤던 책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플라톤의 사상에는 철학의 모든 것이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 (p. 40)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에서 거의 갈라져 나왔다고 불 수 있다. 이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학회와 학회지가 있는데 그 대부분의 구독자들이 일본학자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근대시대 서양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했다. 플라톤 철학에 정통한 일본이 얼마나 방대하게 연구했을지 짐작도 안 가지만, 수많은 세계적 과학자는 배출하면서 왜 세계적 철학자는 없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보다도 실천철학에 대해 열심히 분석하고 설명했지만, 행동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며 영혼만 움직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행복으로 봤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철학의 핵심으로 두고, 모든 실천과 사유는 행복으로 향한다고 강조했다. (p. 47)

고대부터 철학의 목적은 결국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곧 종교에서 먼저 알려주게 된다.

저자는 구약을 이야기하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카톨릭의 기원을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시작도 구약이다. 왜 빼놓았을까...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두 사람은 신플라톤주의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융합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했다. (p. 68)

9세기부터 15세기 동안의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 한다. 좁은 범위에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말하지만, 그리스도교 교의를 이성의 힘으로 논증하고 체계화하는 대대적인 과정에서 탄생했다. (p. 73)

 

중세 종교적 사상의 힘이 막강했다고는 하나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이) 약해졌고, 이것은 철학의 부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맹목적인 신에 대한 믿음에서 이성적 사고로의 변화는 몇 백년 만에 이루어낸 중세시대 나름의 성과였다. 중세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철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신을 파헤치게 된다.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이를 인성론적 증명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은 일치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께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p. 94)

 

문장에서 느껴지는 종교의 향기...

뒤늦게 저자의 이력을 다시 봤다. 일본인의 이름이 토마스!!! 조치대학 신학부를 나왔다는데 조치대학은 소피아대학의 일본명칭으로 예수회에서 세운 대학이다. 철학자로서가 아닌 신학자로서 철학을 공부하고 책을 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로크의 막대한 업적은 다 소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제부터는 경험론의 두 번째 인물인 버클리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p. 122)

경험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로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로크의 이론은 '인격' 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인격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신을 부정한다. 저자의 이력이 다시금 생각이 안날수가 없었다.

일본은 '신도'라는 전통종교를 인구의 90% 이상이 믿는 나라다. ( 하나의 종교에 이정도의 퍼센트가 나오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기원전에 시작된 애니미즘적 종교를 계속적으로 신봉해 온것이 일본 특유의 단결력이 나오게 된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근대시대 다른 서양학문은 다 빠른 시간에 흡수되고 발달했어도 종교만큼은 선교사들이 발도 못붙이고 나왔던 곳이 일본이다. 그런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한 저자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소수이기에 한층 더 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정신이 발전해나가면 최종적으로 외계에는 정신이 대립하는 것이 없어진다. 이때 정신은 절대의 자유를 획득하고 '절대정신'이 되어 절대자를 파악하게 된다. 절대정신이 자아를 자각하면서 자기실현의 과정을 겪으며 이루려는 목적은 '자유'다. 역사의 주역은 정신이고, 정신의 본질은 자유다. (p. 153)

나폴레옹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헤겔이 나폴레옹을 보고 절대정신이 나타났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철학사가 아니라 철학실용서로 씌여진 책이므로 철학사적 에피소드는 뺄 수도 있지만, 나폴레옹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한데다, 철학을 도구적으로 잘못 사용한 사례도 되기 때문에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의아스럽다.

'지금 나는 불행하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은 거짓이고, 피안이 바로 참 세상이다' 니체는 이러한 사고를 데카당스 라 불렀다. 특히 유럽의 역사를 지배한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전도된 해석을 허용한 것을 보고 그는 그리스도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p. 176)

니체는 이처럼 가치가 역전된 원인은 오로지 증오나 복수심, 즉 로상티망에 있다고 했다. 약자가 세상의 불평등한 현실에서 강자를 증오하고, 그 결과 가치의 전도를 꾀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이기려고 한다. 그것은 원한, 비뚤어진 생각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내연기관인 '힘에의 의지'가 르상티망에 의해 비뚤어지면 '세상이 나쁘다, 진실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라는 불평이 터져나온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불평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 그리스도교이고 지금까지의 철학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p. 177)

괴로운 인생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것이 인생이었단 말인가, 좋아. 다시 한번' 하고 더 이상 스스로의 르상티망을 터뜨리는 것을 그만두고 말이다. (p. 186)

 

저자는 철학의 실용적 도구화를 추구하려다 보니 종종 해당 철학자의 개념을 이용하며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니체의 기독교비판과 허무주의를 가뿐하게 '재도전 의지' 로 넘겨 버린다.

프로이트 관련해서 꽤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니다. 대부분 심리학서에 등장하는데... 무의식의 발견과 정신분석은 분명 커다란 의미가 가치가 있는 학문이지만 철학적으로는... 글쎄...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 대신, 이쯤에서 그의 제자인 하이데거의 사상을 살펴보겠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전혀 새로운 노선을 개척한 20세기 최대의 철학자 중 한명으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좀 더 어렵다. 한숨 돌리고나서 도전해보자. (p. 212)

13장 존재와 현상학에서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소개한다. 하지만 하이데거 는 나치 조력 사실이 들어나면서 철학계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 나오는 철학책일수록 하이데거 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꽤 비중있게 설명한다. 나치 독일과 일본이 같은 입장이라서일까...

살아 있는 자신에게 '존재'를 되돌려 보자고 하이데거는 생각했다. 본래 세계는 자신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지금까지의 근대적 세계관을 버리고 스스로를 기점으로 하여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재음미하고자 했다. (p. 215)

하이데거는 시간을 살아가는 현존재가 미래에는 이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궁극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그 가능성의 끝은 죽는 것이다.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p. 222)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 가장 크지만 철학적으로도 비판받을 지점이 많기 때문에 현대철학에서 제외되고 있는 거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오로지 개인적 고뇌의 과정이자 그 끝은 죽음이다. 머리싸매고 생각하고 생각한 철학적 결론이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거라는, 철학은 결국 노답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저자는 하이데거를 가치있게 다루려 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까먹을래야 까먹을 수가 없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부터 슬슬 신나는 것이 느껴진다.

세계는 논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세계의 한계는 논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할 수도 없다. '운명은 있는 걸까' '진실한 사랑이란 뭘까' '하나님은 어째서 세계를 구원해 주지 않는 걸까'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 '정의란 무엇일까'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해진 대답은 바로 이렇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p. 245)

비트겐슈타인의 출현으로 인해 철학의 중심 문제는 '인식'에서 '언어'로 옮겨 갔다. 이것을 언어론적 전회라고 부른다. 이렇게 언어 분석이 철학의 중심 과제라는 선언이 이루어졌다. (p. 251)

세계는 언어였다. 언어가 늘면 세계가 확장된다. 그렇다면 언어와 언어의 관계를 분석하면 세계의 구조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p. 260)

 

신에 대한 논쟁이 전혀 없는 철학이 되어갈 수록 저자는 열심히 설명한다. 인식에서 언어로 철학의 시선이 옮겨간 순간 저자는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아주 가뿐한 기분이 된것이 책장너머로 전해져 오는건 나만의 느낌적인느낌인걸까...

사회주의 체제에서 멈춘 소련의 붕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의 사상은 이론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생산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르크스의 공적은 컸다고 할 수 있다. (p. 278)

유럽에서 극심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우리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았던 이념전쟁은, 일본에서는 없었다.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바로 근대와 현대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성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윤에 내포된 불합리성과 착취의 개념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이 철학은(후기 구조주의) 오늘날 철학의 주류이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철학'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만 알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난다. 얼핏 생각하기에 가장 쓸모 있을 것 같은 이 철학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p. 285)

결론은 이렇다. 지금까지는 대화언어, 그리고 그로 인해 자기 내면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며 에크리튀르(문자언어)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실은 에크뤼튀르가 어떤 언어들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이다. (p. 288)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스키조(동일성을 고집하지 않고 욕망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방식)에 머물면서 파라노(동일성을 고집하는 경향을 가진 인간)는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그들은 노마드 라 불렀다.

노마드는 자기동일적인 것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방기한다. 그들은 닫힌 것, 굳어진 것을 잇달아 파괴하고 '도주'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한다. '도주'는 사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욕망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모으지 않고 자유롭게 희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 같이 하나로 뭉쳐서 열심히 하자' 따위의 상황은 일어날 수 없다. (p. 298)

 

저자가 반겨하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은 간단히 말하면 각자도생 이다. 하지만 가장 잘 뭉쳐있는 민족이 일본인들 아니던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미국에서 탄생한 철학이 있다. 실용주의로도 불리는 이 철학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자체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 이 사상은 미국 번영의 정신적인 주춧돌로서 지금은 비즈니스 사회에서 활약하며 뜻깊은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p. 300)

1929에 시작된 세계 공황 때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적극적인 연설을 통해 국민 모두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했다. 미디어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흘려보내는 노력을 이어갔다. 실패해도 그것은 반성과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일 뿐, 나중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이야말로 미국의 근본정신이다. 그와 달리 최근 한국에서는 나라가 이대로 가면 엉망이 되고 말거라는 소극적인 메시지가 난무하고 있다. 좀 더 밝은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p. 311)

 

민주주의의 상징적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까고 시작하더니 미국을 칭송하고 한국을 참견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철학적 사고의 툴을 제시해주려던 저자의 의도는 종교적 신념을 여기저기서 은근히 내비치며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방랑하는) 개인주의적 현대철학을 칭찬하면서 철학서와 실용서 사이의 어딘가를 그럭저럭 잘 여행했다는 만족감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을 다룬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한명의 철학자, 하나의 이론에 대한 책한권이 아니라 이렇게 종합적으로 대략적으로 구성된 철학책들이 자주 나오고 많이 읽힌다.

지적 다양성 면에서야 당연히 장점을 가진 책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철학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여기저기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한 이러한 시도를 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철학은 삶의 지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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