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 개의 태양이 불타는 센타우루스성 알파 삼중성계 제 196호 문명, 항성 간 함대가 지구를 향해 출발한다. "너희는 벌레다!"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표지 中)

 

 

언제부턴가 SF문학 관련한 글에서 자주 눈에 띄던 이름이 '류츠신' 이었다. 특히나 '삼체' 라는 제목은 꽤 많이 들었었다.

얼마전 류츠신 의 한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대한 소개를 티비프로그램에서 본 계기로 '류츠신 SF 유니버스' 시리즈 중 일부를 읽었었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F소설집으로 이만한 작품이 없겠다 싶을정도로 탁월했다. 청소년 뿐만이 아니라 SF문학이 생소한 사람들이 읽으면 폭 빠질만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무엇보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묘사들이 SF세계를 현실세계로 느끼게 할 만큼 현실감을 높이고 있어서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삼체' 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무척 뜻밖의 전개였다.

지구문명 vs 외계문명 이라는 기본설정이 SF가 맞고, 다른 작품에서 보였던 과학적 사실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탁월한 것도 맞는데,

SF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소설 처럼 혹은 소설이 아닌 과학책처럼 심지어 때로는 철학책처럼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한번에 훅 빠져들어 읽어진다기 보다는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다가 끝부분에 거의 다 가서야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몰입이 되기 시작하는데 1부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어찌보면 2부로 가게 하는 탁월한 전개인지도 모르겠지만, SF소설을 이런 흐름으로 읽어보긴 처음이었다.

저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소설가로 명성이 높고, '지구의 과거' 3부로 일컬어지는 삼체시리즈로 굵직한 상들도 많이 받은 작가이다.

SF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선택한 책이라는 띠지의 홍보문구에서 나는 막연히 미지의 우주인이나 거대한 우주공간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중국의 1960년대 문화혁명부터 시작하는 중국현대사의 서사이자, 인류가 달성해온 과학문명에 대한 참회록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과 도저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삼체시리즈의 1부인 이 책은 본격적인 지구문명 대 외계문명 의 전쟁 배경에 대한 개연설명을 충실히 하고 있는 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2부 부터는 내게 친숙한 그런 SF적인 내용들이 전개되려나?

여하튼 이 책은 1960년대 와 현재시점을 오가며 서술된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분단사에서 사상투쟁이 있었기에 더 잘 이해가 됐던것 같긴 하다. 그래서 한 국가내에서 공산 vs 반공 의 사상대립이 없던 나라 사람들이 읽을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주의 보편적인 물리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물리학은...... 물리학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p. 34)

어느날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갑자기 죽기 시작한다. 과학에 일생을 바쳐오던 사람들이 다다른 막다른 곳엔 그들이 몰랐던 음모가 있었다.

수많은 정보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삼체가 특이한 점은 삼체의 설계자가 여느 게임과는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게임 설계자는 보이는 정보를 최대한 늘려서 실제감을 주려고 하는 반면, 삼체의 설계자는 정보를 최대한 압축해 어떤 거대한 진실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광활한 하늘 사진처럼 말이다. (p. 82)

갑작스레 우주적 음모의 중심에 서게된 응용물리학자 왕먀오 는 '삼체' 라는 컴퓨터 게임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게임은 하면 할수록 정말 이상하다.

38년 뒤, 예원제는 마지막 순간에 [침묵의 봄] 이 자신의 일생에 미친 영향을 떠올렸다. 그전에는 인간의 악의 일면이 그녀의 젊은 영혼에 치유할 수 없는 거대한 상처를 남겼지만 이 책은 인간의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해주었다.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닌, 그저 살충제 남용이 환경에 미치는 위해를 말하고 있는 책이었지만 작가의 시각이 예원제를 뒤흔들었다. 레이철 카슨이 쓴 인간의 행위, 즉 살충제 사용은 예원제가 보기에 그저 정당하고 정상적이며 적어도 중립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대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이 행위는 문화대혁명과 별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세계에 끼치는 폐해는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그렇다면 자기가 보기에 정상이거나 심지어 정의라고 생각되는 인간의 행위 중 사악한 것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더 싶이 생각해나가자 추론 하나가 그녀를 두렵게 했고 공포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했다. 아마도 인간과 악의 관계는 대양과 그 위에 떠 있는 빙산의 관계로, 둘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빙산이 눈에 잘 띄는 이유는 그저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의 실체는 거대한 물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인간 스스로 도덕적 자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 이외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이 생각이 예원제의 일생을 결정했다. (p. 113~114)

 

예원제는 1967년 문화대혁명당시 지식인계층으로 탄압의 대상층이었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 의 [침묵의 봄] 은 그녀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나중에 엄청난 복수의 버튼을 누르게 된다.

[침묵의 봄] 은 환경보호 분야에선 손꼽히는 고전이다. 아직도 읽히고 있고 나도 읽으려고 빌려다 놓은 책인데, SF소설에서 제목을 접하니 너무 뜻밖이었다. 게다가 이번주내로 읽으려고 빌려다 놓은 책을 며칠앞서 소설에서 제목을 접했을 때 기분은, 약간 운명적인 필연같은 인연이 느껴졌달까 ㅎㅎㅎ [삼체] 책을 읽다보면, 레이첼 카슨 뿐만이 아니라, 테드 창과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이러한 숨은그림찾기 하는 듯한 기분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 재미를 느낀 또다른 소소한 발견이었다.

"외계 문명 탐사는 매우 특수한 분야야. 연구자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예원제는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아련한 말투로 말했다.

"사람 소리도 모두 끊긴 깊은 밤, 이어폰으로 우주에서 전해지는 생명이 없어지는 소리를 듣지.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그 별들보다 더 영원한 것 같았어. 때로 그 소리는 다싱안링의 겨울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바람 같이 차가워. 그 고독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때로 야근을 마치고 나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마치 빛나는 사막처럼 느껴졌어. 나는 그 사막에 버려진 불쌍한 아이 같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 지구의 생명은 정말 우주의 우연 속의 우연이라고. 우주는 텅 빈 큰 궁전이고 인간은 그 궁전에 있는 유일한 하나의 작은 개미지. 이 생각은 내 후반 생애에 모순된 감정을 심어줬어. 때로 생명은 정말 귀해서 태산보다 무겁게 느껴지지만, 또 때로는 인간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미미하게 느껴져. 어쨌든 삶은 이런 이상한 감정 속에 하루하루 지나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은 늙었지....." (p. 198~199)

 

이 부분에서 나는 과학서 코스모스의 저자인 과학자 칼 세이건이 쓴 유일한 소설이자 영화화 되기도 했던 '콘택트'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서 영향받은 딸이 우주의 외계문명에 관심을 갖고 접촉을 시도하는 열정은 배경에선 비슷하지만 마인드면에선 거의 정반대에 있다.

칼 세이건의 콘택트 에서의 외계문명은 유토피아 이자 상호보완의 모습을 띠지만, 류츠신 의 삼체 에서의 외계문명은 디스토피아이자 침략자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동일한 점은 외계문명을 꿈꾸었던 자의 이상 그대로 외계문명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믿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구 삼체 조직의 최종 목표와 이상이 바로 모든 것을 잃는 거라네. 우리를 포함한 현 인류의 모든 것을 없애는 거지" (p. 285)

이 소설속엔 어리석은 인간들이 많이 나온다. 굳이 삼체 라는 디스토피아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구문명안에 어리석은 이들이 그득하다. 지구 자체가 이미 디스토피아다. 심지어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복수심에 지구문명을 외계에 송두리째 넘겨버렸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너무나도 기막히게.

가느다란 선에 갑자기 영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녀는 눈앞의 전파가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만든 것이라고 확신했다! (p. 307)

선에 영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앞의 전파가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만든 것이라고 확신했다! (p. 391)

 

쌍둥이 같은 이 두 문장에 등장하는 서로다른 두 생명체는, 자신의 문명 밖에서 처음으로 다른 문명의 신호를 받은 이 두 생명체는, 정확히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둘 다 자신들의 문명이 디스토피아 라 생각했지만, 하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꿈은 현실을 만든다. 하지만 이 두 꿈의 결과는 결과적으로 같게 되었다. 디스토피아.

"최근에 <바람>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어. 봤는지 모르겠는데 끝 부분에 어른과 아이가 무투 중에 죽은 홍위병 묘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있지. 아이가 '그들은 뭐에요?'라고 묻자 어른이 대답했어. '역사야' "

"들었어? 역사! 역사라고!"

뚱뚱한 여자가 팔을 흔들며 외쳤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야.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를 알아주지 않아! 모두 깨끗이 잊었다고!" (p. 340~341)

10여 년 전 비가 내리던 오후처럼 그녀는 또 그렇게 홀로 그곳에 서서 죽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옛 홍위병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던 희망이 뜨거운 태양 아래 이슬처럼 증발했다. 그리고 이미 저지른 자신의 반역을 의심하던 마음도 싹 사라졌다. (p. 341)

 

역사를 잊은 과거를 잊은 인간은 무책임하다.

그 무책임은 결국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문명의 소멸이라는 태풍을 몰고 오게 된다.

외계의 문명이 과학적 발전도가 높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 또한 높다고 볼수는 없다. 하지만 이 소설속에 지구를 팔아버린 인간처럼 우리는 그러한 착각을 굉장히 자주 하며 살고 있다. 배운사람이 더 도덕적일 거라는, 가진사람이 더 베풀거라는, 똑똑한 사람이 내린 판단이 더 옳을 거라는... 그래서 나보다 이웃사람이 더 잘사는 것 같고, 자신의 조국보다 남의 나라가 더 살기 좋은 것 같고, 지구문명보다 외계문명이 더 우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한 모두 알고있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 착각이다. 내집이 제일이고 내가족이 제일이고 내가 제일이다.

그래서 지구인에게 대놓고 '너희들은 벌레다' 라고 말하는 외계문명이 오기까지 남은 450년의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해야하는 지점에서 1권은 끝난다. [침묵의 봄]에서 밝힌 사람도 죽이는 농약을 그렇게 퍼부었어도 살아남은 벌레들을 보며, 벌레보다 못한 지구인들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기대감을 남겨놓으며 1권은 마무리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 에서 < 잘 쓴 과학 소설이란 제일 변화무쌍하고 제일 정신 나간 상상을 뉴스 보도처럼 진실하게 쓴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진실하다. 나는 역사학자가 과거를 진실하게 기록하는 것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 라고 말한다. [삼체] 는 저자의 의도가 정말 잘 반영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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