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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평점 :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
이 책은 30년 넘게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1959년 강릉생으로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002년 까지 16년간 판사직을 수행하다가 이후 변호사로 활동중인 분이시다.
어제 읽었던 '두 얼굴의 법원' 에서 판사계에 대한 현실을 알고 나니 개인적으로 회복이 좀 필요했다.
물론 사법농단 이 일어나던 때에도 용기있는 판사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수습이 되는 중이라는 희망적 결론을 내린 책이었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쌓인 피로도를 낮추고 싶었다.
그래서 법에도 심장이 있기를 바라는 제목에 끌렸다.
그런데... 판사직을 16년간 일했고 2002년 부터 2019년 현재까지 변호사 생활은 17년을 넘어가고 있는데, 책의 내용은 대부분 판사직에 있을 때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판사로서 보낸 시간보다 변호사로 보낸 시간이 더 긴데 판사로서의 관점을 유지하며 쓴 내용들은 왠지 자서전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경험들의 장점들만을 부각시킨다.
본인이 판사로서 법의 판단을 내려야 할때의 고충을 이야기 하며 자신이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최대한의 훌륭한 결정을 내렸는지 줄줄이 풀어놓는다. 할아버지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하며 모험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듯이...
군법무관 으로 일할때는 군법정에서 일반병사의 지나친 실형을 감해주기 위해 상관과 맞짱뜨고, 형편이 어려운 피의자의 상황에 마음이 아파 양말을 보내주었으며, 심판보다는 화해로 유도했고, 고집불통 주심을 설득시키기 위해 배석판사로서 배려있는 행동을 얼마나 잘 했는지, 사건 하나하나마다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 얼마나 잘 해왔는지 이야기 한다.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의뢰인이 10억을 준다해도 경우가 아니면 수임받지 않았고, 의뢰상담만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해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읽기 거북할정도로 자화자찬만 하는 책은 아니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법은 법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상적 모습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구구절절 바람직한 문장들도 많았다.
법을 존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법을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무조건 수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옳지 못한 법은 고쳐야 한다. 법은 정의롭고 올바르게 사람들을 이끌고 권리를 지키는 동시에 법 자체로도 굳건히 서야 한다. 따라서 옳지 못한 법을 거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고쳐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을 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따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법이 진짜 법이다. (p. 57)
판사는 정의롭고, 검사는 용맹하며, 변호사는 따뜼하다. 이는 아마도 법의 최전방에서 움직이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기대하는 우리의 이상형이 아닌가 싶다. 법조인 대부분이 이런 이상형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파나가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듯, 검사 또한 모두 용맹하고 정의롭지는 않다. 물론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p. 103)
일반적인 디케상은 두 눈을 감거나 가리고 있다. 이는 디케의 정의가 인종, 계급, 성별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 로비에 서 있는 디케상은 두건으로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은 모습이 아니라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다. 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에 엄격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 공명정대함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있는 일반적인 디케의 모습과는 달리 대법원의 디케상은 오른손에 저울을, 왼손에 법전을 들고 있다. 이 역시 다른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법에 근거해 공정하게 판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테다. 사실 정의의 여신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거기에 담긴 의미엔 차이가 없다. 공정한 잣대로 진실을 밝히고 엄정하게 판정해 공동체에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겠다는 다짐 말이다. (p. 112)
디케상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대법원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신선했고 다른 나라들의 디케상도 궁금해지면서 우리나라가 그토록 법전을 중요시 한다면 법이 정말 중요한건데 입법기관의 요즘 행태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나는 16년 넘게 판사로 근무하면서 단 한 건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판결을 내려본 적이 없다. 권위적이었던 옛 시절, 간혹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이 가해지면 선배들은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편 다음 법복을 벗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독립성은 법관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p. 64)
저자는 사법농단을 의식했던 걸까? 지시를 받아 판결을 내려 본적은 없지만, 소신있는 선배들은 결국 법복을 벗어야만 목소리를 낼수 있었다는 건 안타까운 조직문화 아닐까?법관의 생명같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법복을 벗어야 했다면 더이상 올바른 법집행을 못하게 된건데 그것이 과연 법관의 생명을 지킨걸까 못지킨걸까?
2002년 까지 16년 판사직을 수행했다고 하니까, 1986년 부터 였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뜨겁던 시절 판사로서 떳떳하게 일했다면 박수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이후 대형로펌에 들어가 기업편에 선 사건의 변호를 위주로 하고 있는 경험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왠지 이분... 조만간 선거포스터에서 뵐 것만 같다;;;
내가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사법농단 사태 이후 판사들의 책이 눈에 종종 띈다. 대표적으로 문유석 판사의 책이 있겠지만, 그 책 말고도 신간들중엔 소년법정판사의 책도 있었고 김두식 교수의 법정관련 책도 있었다. 검사 변호사 의 영화같은 사건 일화 책이 아닌 법정과 법 자체에 대한 책 혹은 판사들의 의견은 최근에서야 눈에 띄는 걸 보면 판사들에게도 언론의 자유화?! 시대가 온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최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 집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집단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나지 않았던게 아닐까...
저자는 사법농단 사태 이후 추락된 판사계의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현재는 변호사 임에도 17년 전과 그이전의 경험들을 상기하며 올바른 판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여하튼 법조인으로서 개인적 의견을 담은 에세이니까 자화자찬이든 이상향수립이든 뭐든 다 괜찮겠지만 그래도 법에 심장을 부여한 사람이 저자 한사람만은 아닐진데... 좀... 아쉬웠다.
그래도 정말 이런 마인드의 판사들만 계시다면 아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이 계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