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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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 사건의 진실, 마침내 드러나는 법원의 숨겨진 얼굴

판사 이탄희는 왜 두 번 사표를 냈나

권석천이 추적한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의 진상!

강제징용 재판, 판사 뒷조사, 청와대 유착... 그 내막을 밝힌다>>

 

 

묵직한 책이었다.

읽기 전엔 사법농단 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반성과 판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택했는데,

읽고 나니 사법계 실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판사들의 양심에 대한 의문으로 읽기 전보다 더 무거워진 책이었다.

하지만 논픽션을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읽긴 오랜만이었다. 이미 벌어지고 이미 알려진 사건에 대한 기록이었음에도 다음이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 궁금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제가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중대한 상황을 또다시 무관심과 진영논리의 휴지통에 욱여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과거'를 손가락질하는 대신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모두이 미래'를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관련자 몇몇의 처벌을 판단하는 형사법정의 좁은 틀에 '사법농단'의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질 때 법원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법원이 달라지면 그 변화는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갑니다. '자유,평등,정의'가 대법원 장식벽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 약동할 때 여러분과 저의 일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제 서막을 올렸을 뿐입니다. 재판은 이어질 것이고, 증거와 증언은 계속 나올 것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저마다의 평가가 내려질 것입니다. 이 순간에도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에 선악이 없듯 진실에도 선악이 없습니다. 맞서지 않으면 진실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조금은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부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대안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p. 7 )>>

저자는 기자다. 법대 출신 기자로 언론사의 법조취재팀에서 오랜시간 일했다. 논설위원, 보도국장을 거치며 법조인들을 오래 옆에서 지켜봐왔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자는 취재대상이 아닌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신념에 더 우선을 두었음을 읽는내내 느낄 수 있었다.

변호사,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건별로 제법 각인된 이미지가 있다. 소수의견편에 선 정의로운 변호사, 경찰의 수사력과 군인의 위계질서와 폭력배에 준하는 깡을 가진 검사. 그런데 판사는?? 변호사와 검사의 대치 속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권한이 있는 것은 판사인데, 그 중요한 역할의 판사를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다. 판사의 이미지로는 고작 포청천의 판관 정도만 떠오를뿐;;;

사상초유의 탄핵사태를 거치며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정의의 심판자처럼 비춰질때 대법원에는 또다른 심판관들이 있었다. 그들이 실은 국민대다수와 더 밀접한 판결을 내리는 핵심판관들이었다. 사법농단 기사들이 쏟아질때 부패정권의 한 가닥 정도로만 여기고 피곤함에 넘겼었는데, 아니었다. 대통령이 누구였건 관계없이 그들만의 조직내에서 썩을만큼 썩은 고름이 터진 것이었다. 물론 그런 조작이 통했던 정권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법권 독립의 두 기둥은 '법원의 독립' 과 '법관의 독립'이다. 두 가치는 같은 길을 걷지만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내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대법원장도 재판에 관한 한 판사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다. 지시나 명령을 하면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다. 판사의 판단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뿐이다.

(p. 15)>>

판사조직에도 상관이 있고 위계가 있지만, 적어도 사건에 한해서는 판사는 온전히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자신의 개인조직처럼 여겼고 판사들을 수족부리듯이 했으며 그 수족들은 정치권과 연합하여 사건의 판결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김앤장이라는 외부회사와의 공조도 서슴치 않았다. 뇌물을 받거나 지위보존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치적을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법원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사법농단이라는횡포를 부렸다. 그 행동들속엔 국민에 대한 의무와 정의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

2017년 이탄희 판사에게 법원행정처에서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온다. 판사들에게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가장 중요한 요직이라고 한다. 승진이 보장된 라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업무인수과정에서 그는 생각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학회의 세미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윗선지시에 의해 부당한 목소리를 내기를 요구받고, 판사들에 대한 성향파악 뒷조사가 있어왔으며, 권력관계에 얽힌 조직서열에 충성하는 판사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처음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 아닌가. 그동안 가져왔던 믿음을 한순간에 버린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이다.

 

<<분리 통치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같은 조직 사람들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던 부당한 일이 맡겨져도 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아닐까.

(p. 62)>>

하지만... 점점 드러나는 판사조직내의 권력의 실체에 그는 실망했고, 자신도 그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적어도 처음엔 개인적 명예만을 생각한 판단으로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했었다

<<그날밤 이탄희가 결단한 것은 '유능하지 않기'였다. 우리는 유능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유능함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유능해야 할 때 유능해야 하는데, 무능해야 할 때 유능할 때가 많다. 잘못 유능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유능하지 않기도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능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탄희는 '유능하다' 는 말도, '무능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능하지도, 무능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자신이 한 행동에 기준을 맞추게 된다. 한번 기준을 낮추면 계속해서 낮추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내고, 그 논리들이 기준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것이 쉽게 무릎 꿇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기준을 낮추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첫 순간이 중요하다. 그때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시작점의 작은 각도 차이가 가면 갈수록 큰 차이로 벌어진다. 당신이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섰다면 첫발을 내딛기 전에 고민해야 한다. 조직논리에 가담하기 전에 삶을 건 고민을 해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못 빠져나온다.

(p. 76, 77, 78)>>

사직서는 반려되고 원래 일하던 곳에서 재판하는 판사로 남기로 한 그에게 폭풍같은 며칠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원래데로 돌아온 것이었다면 그에게 개인적으로 더 평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직에 발령받고 정식출근하기도 전에 제자리로 돌아온 그에 대한 시선은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의문들을 터트리는 계기가 됐고, 그렇게 사법농단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직논리는 무섭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조직만 무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명예나 인격쯤은 한입에 집어삼킨다. 어느 조직에서나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면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사생활이나 인성에 대한 공격이다. 문제 삼을 것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공격한다.

조직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대개 상급자가 아닌 하급자다. 피해자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주고 사회적 고립감을 준다. 조직에서 배겨날 수 없게 한다.

(p. 131)

우스운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만일 사표를 낸 판사가 이탄희가 아니었다면 많이 달랐을 거예요. 이탄희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거든요. 재판 잘한다는 소문도 났지만 행정처TF일도 많이 했어요. 그것도 굉장히 열성적으로 하면서, 샤프하고, 예의바르고... 그러니까 다들 인정했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판사였어요. 평판이 좋았던, 아니 굉장히 좋았던 판사가 무슨 부당한 지시를 받고 사표를 썼다는 것만으로, 그걸로 게임 끝이었던 거죠.(지방법원 부장판사)

(p. 135)>>

이탄희 판사의 사표였기에 많은 이들의 의견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는 결국 두번째의 사표로 판사직에서 물러난다. 피해자에 가까운 그의 사표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표였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얼마나 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법농단의 핵심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법원에서 마지막 메시지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교각살우 란 '쇠뿔이 좀 비뚤어졌다고 해서 쇠뿔을 고치려다간 소를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인데, 크고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시스템에 혼란이나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옳다는 논리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세운 대법원의 시스템을 옹호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쇠뿔이 삐뚤어졌다고 누가 쇠뿔을 통째로 뽑겠다고 막 달려드나? 목숨을 위협할 정도라면 그냥 막 뽑나? 다른 방법을 찾지? 그냥 덮어두고 냅두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기자신이 대법원의 목숨이 담긴 쇠뿔인줄 알았다 보다.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재판을 신성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 판사이지, 신성한 재판을 진행할 힘을 지녔다고 해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신성한것으로 간주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을 건드림으로써 재판의 신성함을 침해당했다고 여길것이 아니라, 재판의 신성함을 침해한 그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처벌받아야 한다.

 

<<외압에 흔들린 판사들도 있었지만 흔들림 없이 재판 독립을 지킨 판사들도 있었다. 그들로 인해 재판 독립이라는 가치가 훼손됐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햇빛만큼 강력한 정책은 없다. 투명성을 높이면 조직논리가 설 곳은 사라질 것이다. 시민들이 조직의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하라. 조직의 문 앞에 걸린 빗장을 풀고 누구든 들어와서 볼수 있게 하라. 그것으로 조직논리 너머의 신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다. 문 하나가 열리면 다른 문들도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개혁은 연결될 수록 완벽해진다.

'사법농단' 사태는 구시대적인 시스템이 더이상 기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내부자 몇몇이 입을 맞춰 은폐하면 감출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법원에도 교과서에서 읽은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탄희의 저항은 새로운 세대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뒤이어 나타난 희망의 징후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다. '판사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작됐던 판사들의 자발적인 회의체가 법원의 공식 기구로 자리잡았다.

(p. 376, 392, 399>>

저자는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개혁은 시작되었다고 희망의 씨앗을 기대하며 마무리 짓는다. 나도 믿고 싶다. 이참에 판사조직도 조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정말 공명정대한 곳으로 거듭나기를 진심 바란다.

하지만 이탄희 판사는 자신의 꿈이었던 판사직에서 사직후 현재 공익변호사단체 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양승태와 수하들의 재판은 아직 진행중이며, 새로 대법관이 된 김명수 판사의 개혁은 가시화된 것이 없다.

국가의 정의를 세워주는 곳 법원에서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려면 소수의 판사들에게 기댈것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많이 읽혀져야 하고, 재판은 계속 주시해야 하며, 올곧은 판사들에겐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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